교수협회가 선정한 올해의 사자성어는 ‘제구포신(除舊布新)’이다. 묵은 것을 제거하고 새 것을 펼쳐낸다는 뜻이다. 2013년 반환점을 돈 7월 오늘, 어떤가? 케케묵은 것들을 들춰내고 설거지하느라 새 것을 꺼내볼 엄두도 못냈다. 쓰나미 ‘막말’이란 놈이 아고라(그리스 시대의 광장)를 덮쳤다. 여의도는 튀기고, 흘리는 침의 홍수에 잠겼다. 태풍 ‘경제민주화’란 놈은 대기업의 치부(致富)를 향해 세력을 키웠다. 대기업 금고는 현금이 차고 넘치는 데도 허리띠를 졸라매려고 한다. 난데없이 형성된 폭풍 ‘NLL’이란 놈은 민생(民生)을 아예 집어 삼겼다. ‘아니면 말고’가 될 판인데 ‘패’를 돌렸던 대선 후보는 ‘파토’라고 우긴다. 쓰나미 ‘막말’, 태풍 ‘경제민주화’, 폭풍 ‘NLL’ 3각 편대가 요란한 소리만 낸 지난 몇 개월동안 민생은 그야말로 쪽박 일보직전까지 갔다.
막말부터 짚어보자. 지면이 부족해서 전·현직 대통령을 겨냥한 발언만 추렸다. 김홍신 전 의원의 ‘공업용 미싱’ 발언은 공전의 히트를 쳤다. 공성진 전 의원의 ‘무뇌(無腦)’ 발언도 ‘베스트 10’은 가뿐하다. 이종걸 의원의 ‘그×’과 이정희 대표의 ‘다카키 마사오’도 베스트 후보로 충분하다. 뭐니뭐니해도 올해의 막말은 홍익표 의원이 뱉은 ‘귀태(鬼胎)’가 될 듯 싶다. 현직 대통령을 겨냥해 ‘태어나지 말았어야 할 사람’이라고 했다. 홍익표가 인용한 귀태는 강상중 도쿄대 교수가 쓴 책 ‘기시 노부스케와 박정희’에서 등장하는 표현이다. ‘우리말 큰 사전’에도 없는 강상중의 언어를 교묘하게 차용해 현직 대통령을 ‘귀신에게서 태어난 아이’쯤으로 깎아내렸다.
막말은 불량정치인들의 만국공통어인 듯 싶다. 최근 이탈리아에서 벌어지고 있는 작태를 소개하면 이렇다. 이탈리아 최초의 흑인 장관인 키엥게는 각종 인종차별적 발언에 시달리고 있다. 극우 세력은 그녀를 ‘콩고의 원숭이’, ‘줄루족’, ‘반이탈리아적인 흑인’ 등으로 비유한다. 지난달에는 북부연맹 소속의 한 지역 정치인은 아프리카인 여성 두 명이 성폭행당한 사건과 키엥게를 엮어서 최악의 막말을 퍼부었다. “성폭행 피해자들이 겪는 고통을 이해할 수 있도록 누군가 그녀(키엥게)를 성폭행해야 한다.” 막말은 자신의 유전자가 우월하다고 여기는 반(反)사회성에서 기인한 듯 하다. 막말의 각인(刻印)은 한순간 강렬하다. ‘치맥’(치킨+맥주) 폐인을 양산한다. ‘소폭’, ‘양폭’에 녹아들어 한바탕 분탕질친다. 해질녘만 되면 말끔히 사라지는 술병처럼 선거때만 되는 까맣게 잊어버린다는 것이 문제지만.
막말보다 더 무서운 것이 ‘막장’이다. 정부가 엇그제 발표한 취득세 영구 인하 정책은 그야말로 ‘막장’이다. 마치 초가삼간(지방정부)을 태워서라도 구중궁궐(중앙정부)만은 살리겠다는 듯 ‘막장도’를 꺼내든 것이다. 현오석 경제팀에게 묻고 싶다. 취득세 400만~700만원(85㎡기준)이 없어서 싯가 4억원짜리 아파트를 못사는 사람이 실제 있는 것인지? 실태조사는 해본 것인지? 만일, 그런 사람이 지천(至賤)이라면 왜 감면 혜택이 있었을 때 ‘버블’현상이 나타나지 않았던 것인지? 세종시로 출근하지 않아서 지방정부 사정을 모르는 것인지? 아니면 무협지에나 나올법한 차도살인지계(借刀殺人之計)라도 써서 가문의 영광을 며칠 더 누려보려는 것인지? 등등. 취득세를 낮추면 경기도 곳간은 매년 7천300억원(2012년도 기준)이 펑크난다. 수원·성남 등 5개 시·군을 제외한 26개 시·군도 매년 100억원의 세수 결함이 생긴다. 상응하는 보전 대책이 없으면 당장 내년부터 얘들 공짜밥 먹이는 무상급식부터 중단해야 할 판이다.
당원들에게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 정당공천제 존폐 여부를 묻는 민주당이 전(全)당원 투표는 막장중의 막장이다. 대선 때 약속했으면 지키면 그만이다. 뭐하자는 것인가? 당원에게 책임을 전가하자는 것인가? 새누리당이 이런 일을 벌였더라면 대통령 탄핵 운운했을 것이다. 겨우 20%(한국갤럽의 7월 22일 발표자료)에 불과한 정당지지율을 갖고 도도한 여론에 맞서보자는 것인가? 민주당이 왜 ‘불임정당’ 소릴 듣는지 이 문제 하나만 봐도 열이 보인다.
경기도가 얼마 전 단행한 사무관(5급) 승진·전보 인사도 막장급이다. 이번 인사로 항간에 설(說)로만 떠돌던 ‘성골’, ‘진골’, ‘견골’은 명명백백해졌다. 전통적으로 성골로 분류돼온 비서·인사출신에게 전보제한(1년)은 아주 조금 불편한 제도에 불과했다. 지원부서인 기획·행정출신 진골은 이번에도 자신들의 밥그릇은 챙겼다. 반면 ‘개뼈다귀’ 견골은 여지없이 찬밥신세를 면치 못했다. 이러다 과거 사(私)조직 논란에 휩싸였던 비우회(비서출신 모임), 인우회(인사 출신 모임) 파동이 재연될 판이다. 그래서 나도 이쯤해서 막말 좀 해보자. “거기서 그러시면 안됩니다.”
한동훈 정치부장/funfun@joongb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