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임 있는 주류는 책임을 져야 한다”, “친노는 없다. 모두의 성찰과 반성이 필요하다” 이번 19대 대선 결과를 두고 민주통합당은 아직까지 이 논쟁의 틀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패배에 대한 책임을 지고 반성해야 한다고는 하지만 실제로는 아무도 반성하지 않는다.
민주당의 한 관계자는 “민주당은 문재인 뿐 아니라 안철수, 심상정의 ‘판 돈’까지 가져와서 다 날려먹었다”며 “그래도 이정도면 선전한 거라고 히히덕거리고 있다”고 적나라하게 비판했다.
대선 패배 3주 만에 간신히 비대위를 구성했지만 정작 ‘혁신’의 상도 없다. 비대위 출범 전부터 계속된 ‘네 탓’ 공방은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애초에 혁신의 출발점인 평가도 없었다. 홍종학 의원이 개인적으로 주최한 토론회가 유일한 대선 평가 자리였다. 이 때문에 민주당 안 팎에선 ‘차라리 당을 해체하는 것이 낫다’는 성토도 나오고 있다.
▷친노의 개념은 없다?= 노웅래 민주통합당 의원은 15일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혁신’의 개념을 “당 내 패권주의 해소”로 꼽았다. 노 의원은 “공사구분이 안되고 사적친분이 공적형태로 나타났다”며 “패권주의를 극복하는 것이 큰 문제일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나 친노로 분류되는 측은 “친노의 실체가 없다”고 주장한다. 안희정 충남지사는 라디오 인터뷰에서 “친노라는 개념은 실체가 없다. 민주당을 분열시키는 그런 논의를 하는 건 옳지 않다”고 정면 반박했다. 전해철 의원 역시 미디어오늘과의 통화에서 “친노가 누구냐는 것도 불분명하다”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통합당 출범 이후 대선까지 ‘범 친노’로 분류되는 인사들이 잇달아 당권을 장악했다. 지난 4월 총선 당시 한명숙 당대표가 선거를 이끌었으며, 친노로 분류되는 백원우 의원이 당의 핵심인 공천심사위원회 간사를 맡았다.
비주류로 분류되는 한 의원실 보좌관은 “친노, 486의원들은 운동주의적 정치관을 가지고 있고 먹물 근성이 있어 서민들의 정서를 잘 모른다”며 “지지자들의 열의에만 이끌리다보니 김용민 공천이라는 실수도 나타났고 임수경 의원도 북한 방문 이후 특별히 한국사회 발전을 위해 족적을 남긴 것이 없음에도 공천을 받았다. 운동권 패밀리 정당 형태”라고 비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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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4일 문희상 비상대책위원장,박기춘 원내대표를 비롯한 민주통합당 지도부, 의원, 당직자들이 동작구 국립서울현충원 앞에서 국민들께 사죄의 절을 올리고 있다. ©민주통합당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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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후 총선에서 패배했지만 패배의 원인에 대한 성찰과 냉정한 분석은 온데간데 없었다. 대신 친노로 분류되는 이해찬 전 대표가 박지원 전 원내대표 등 일부 호남세력과 합쳐 다시 당권장악에 성공했다. 대선 후보도 친노 성향의 문재인 후보가 압도적 1위로 선출됐다.
대선 국면에서도 선거전략이 2040에 치우진 이벤트성으로 치러졌다는 비판도 있다. 한 의원실 보좌관은 “2002년 국민참여경선 이후 당의 움직임이 이벤트에 편중된 측면이 있었다”며 “이는 이번 대선에서 2040세대에 대한 과도한 쏠림으로 나타났다”고 분석했다. 이어 “과도한 쏠림, 그건 선거의 기본자세가 아니”라며 “박근혜 후보는 지방을 다녀도 소도시를 가는데 민주당은 대도시에서 이벤트성 유세로 끝냈다”고 말했다.
실제 선거운동이 시작된 11월 27일부터 12월 9일까지 유세일정을 보면 박근혜 후보는 서울 12회, 부산 13회 뿐 아니라 충남 11회, 강원도 5회 등 지역별로 고르게 분포되었지만, 문재인 후보는 서울에서만 16회 집중유세를 치렀고 타 지역은 1~5회 정도에 불과했다.
또한 이번 대선과정에서 박근혜 후보 측은 잇달아 기득권을 포기했다는 인상을 줬지만 민주통합당 주류는 그렇지 않았다. 비주류 측은 친노 측의 ‘공직 포기’ 공식선언, 문재인 후보의 ‘의원직 사퇴’를 요구했지만 이는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노 의원은 “당 중심으로 대선이 치러지기보다 사조직 형태로 운용돼 더 아쉬움이 있다”며 “우리 것을 내놓는 모습을 보여줄 수도 있었는데, 이를 못했던 것도 공적 조직의 힘 보다는 사적 조직 중심이라는 한계를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진성준 의원은 “대선 패배의 원인이 특정 계파의 책임으로만 볼 수 있는 것은 아니”라며 “친노의 실체도 불분명하고 (캠프 대변인을 하면서 친노 측이) 어떤 역할을 실재로 했는지 본 적도 없고 잘 모르겠다”고 말했다.
▷비주류는 혁신할 수 있나?= 대선을 한 달여 앞둔 지난해 11월 23일, 이종걸, 김영환, 김동철, 안민석, 노웅래, 문병호, 황주홍 의원 등 비주류 측 의원들은 문재인 후보와 안철수 후보의 단일화를 요구하며 국회 로텐더홀에서 농성에 돌입했다. 단일화 촉구 농성이었지만 사실상 안철수 후보가 제시한 룰을 문재인 후보가 받아야 한다는 뉘앙스가 짙었다.
같은 달 16일 민주당 전직 의원들은 ‘지지후보에 대한 자율 선택권을 달라’고 기자회견을 열었다. “안철수 후보를 선택할 권리를 달라”는 것이 그들의 주장이었다. 경선을 통한 당 후보 선출에 대한 불복이자 대선을 앞둔 당의 일체감을 파괴하는 형태였다.
현재 비노 측 의원들은 ‘당 내 주류 책임론’을 제기하고 있지만 정작 대선 때 나타난 당내 혼란, 비일체화 등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고 있다. 자당 후보를 두고 ‘지지후보에 대한 자율 선택권’을 달라고 주장했던 이부영 상임고문 등은 비대위원장으로 비리전력이 있는 정대철 고문을 추대하는가 하면 ‘친노 책임론’ 제기에 앞장서고 있다.
시민사회계로 민주통합당에 합류한 김기식 의원은 “친노에 분명히 책임이 있고, ‘친노가 없다’라는 식의 접근도 부적절하지만, 모두가 책임이 있는데 그것을 특정 세력에게 돌려 공방으로 가는 것도 적절하지 않다”며 “모두 책임을 통감하고 거기에 걸맞게 당을 변화시키고 혁신해서 수권정당으로 신뢰를 받아 나갈 것이냐에 대해 지혜를 짜내야 할 때”라고 말했다.
한 의원실 관계자는 “친노를 몰아내면 새로운 세상이 열리냐”며 “민주노동당에서 NL을 몰아내면 PD가 대안이 될 것처럼 했지만 PD끼리 모인 진보신당도 대안이 안됐다. 평상시 실력부터 쌓아야 한다”고 말했다.
▷산으로 가는 비대위, 혁신보다 봉합?= 당내 분란을 조절하고 평가와 혁신을 주도해야 할 비대위는 계파·지역별 안배형으로 구성돼 스스로 결의한 ‘사즉생’이란 말에 진정성이 있는지 조차 의문을 낳고 있다. 외부 인사를 수혈하는 방안도 난항을 겪고 있다. 정성호 당 대변인은 “비대위의 경우 두어명 외부 인사를 영입하기 위해 접촉하고 있다”며 “대선평가위원회나 정치개혁위원회는 외부 인사 주도로 이끌려고 했지만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 재선 의원실 보좌관은 비대위 구성과 관련해 “과연 이런 비대위 구성원의 면면으로 국민들의 동의를 얻을 수 있겠느냐”고 지적했다. 김기식 의원도 “당내 초재선 소장의원들이 혁신 비대위가 되어야 한다는 주장을 했는데 지금 관리형으로 간 것”이라며 “조기전당대회를 치르기로 했기 때문에, 비대위 역할도 제한될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노웅래 의원은 “국민들은 정치적 책임을 질 것을 요구하고 있다”며 “사퇴할 각오로, 재신임 받을 각오로 책임지는 모습을 보여야 국민들의 평가가 나올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박근혜 당선인이 (차떼기 국면에서)천막당사를 설치한 것처럼 확실히 책임지는 모습과 반성하는 모습을 보이고 도약해야 한다”고 말했다.
“서민·생활밀착 정당 실패…낮은 곳으로” [인터뷰] 민주통합당 박홍근·오중기 비대위원
민주통합당에 대선 패배 이후 돌파구를 하루빨리 마련해야 한다는 주문이 잇따르고 있다. 당을 해체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터져나올 정도로 국민 신뢰에 금이 간 상태여서 어떻게든 로드맵을 내놔야 한다는 지적이다.
뒤늦게 비상대책위원회를 꾸렸지만 아직까진 눈에 보이는 해법이 없는 것은 패배 요인에 대한 이견이 크기 때문이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은 비대위원들에게 개인적 발언을 자제해줄 것을 요청했다. 대선 패배 요인에 대한 이견이 밖으로 표출되는 것을 우려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미디어오늘은 비대위원 중 전국청년위원장을 지낸 박홍기 의원과 원외인사인 오중기 경북도당 위원장에게 대선 평가와 향후 민주당 진로 방향을 물었다.
박 의원은 대선 패배 요인으로 친노 패권주의, 호남 계파 주의 등 고질적인 문제와 선거 과정에서 전략 문제를 구분해야 한다고 분석했다. 그는 특히 50대에 민주당을 외면을 받은 것을 대선 패배의 주요 요인으로 지적하면서 “민주당의 문화와 체질, 시스템을 짚어봐야 한다. 밑바닥 유권자들을 일상적으로 접하고 생각을 듣고 대변하는 생활밀착형 대중 정당이 아닌 적극적인 지지자 중심의 선거 때만 가동되는 선거용 정당 한계가 분명히 드러났다”고 평가했다. 투표율을 높이고 구도를 잘 짜서 공중전만 잘해서 단일화 프레임으로 승부하면 이길 것이라는 안일한 생각이 대선 과정 중 팽배했다는 것이 박 의원의 생각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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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통합당 박홍근(왼쪽)·오중기 비대위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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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히 박 의원은 생활밀착형 정당이 되지 못한 이유에 대해 당내 리더십을 발휘하지 못하는 구조적인 한계때문이라는 진단을 내놨다. 박 의원은 “과거 김대중, 노무현 대통령 이후 생활밀착형 정당의 청사진을 제시했어야 하며 공천이나 당 활동에서도 반영하는 버전 3.0이 나와야 했다”며 “김대중 대통령과 같은 제왕적 총재 리더십, 노무현 대통령과 같은 수평적 리더십을 뛰어넘어 현장에서 유권자와 생활 정치를 하는 전형을 만드는 리더십을 창출해야 한다”고 말했다. 다만, 박 의원은 특정 세력의 리더십이 잘못된 것이라는 것은 아니라며 말을 아꼈다.
박 의원은 대선 전략 전술상 다양한 세력의 자율성에 맡기다보니 일사분란하게 움직이지 못한 것도 옆에서 지켜본 대선 패배 요인 중 하나라고 지적했다.
오중기 경북도당 위원장의 진단도 크게 다르지 않다. 개별 세력의 책임이라기 보다 이번 대선에서 민주당이 얼마나 시대적 요구를 받아들여 시민에게 진정성있게 다가갔느냐를 평가하는 것이 우선이라는 것이다.
오 위원장은 “가령 야당은 소수인데 서민을 죽이는 법안을 날치기하면 몸이라도 막아야 한다. 그런데 국민들은 몸싸움을 하지 말라고 요구한다”며 “민주당이 어떻게 신뢰를 어떻게 얻을지 고민해야지 어느 계파가 물러가야 하느냐의 문제가 아니다. 어느 계파가 물러가면 그 계파가 없어지는 것도 아니다”고 잘라말했다.
공통적으로 제기되는 50대 중도층을 잡지 못했다는 분석에 대해서도 “서민과 중산층을 위한 진보적인 당 강령이 잘못이 아니라 실천의 문제”라며 “50~60대 연령층의 아픔과 고민들을 풀 수 있는 실천적 대안을 만들고 믿음을 주는 데 부족했다. 노선과는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박 의원과 마찬가지로 생활밀착형 정당 활동이 새누리당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뒤떨어져 있다고 진단했다. 오 위원장은 “동네 통반장은 대부분 새누리당 성향의 주민들이다. 새누리당이 일상 생활의 조직을 장악하고 있다”며 “시민들의 삶의 현장에서 실천 공간을 만들어야 한다 각종 단체의 지도자가 꼭 당의 리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작은 단위에서 리더를 하는 분들이 민주당과 함께 할 수 있는 공간이 필요하다. 그런 분들이 민주당에 다가올 수 있도록 메리트를 주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오 위원장은 “분단과 지역주의, 계층 갈등으로 인해 수권정당으로 인정받지 못하는 어려움이 있지만 가장 집중적으로 노력해야 할 것은 생활밀착형 정당의 움직임, 뛰는 일꾼들과 역량 확보”라고 말했다.
이재진 기자 jinpress@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