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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운의 가족사 딛고, 대한민국 ‘과반 대통령’ 되다 外 선거 관련 기사 모음- 경기신문

비운의 가족사 딛고, 대한민국 ‘과반 대통령’ 되다22세에 퍼스트레이디 대리… 선거의 여왕으로 화려하게 부활
18대 대통령 당선까지 박근혜 당선자 풀스토리

김수우 기자  |  ksw1@kgnew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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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인 2012.12.20    전자신문  5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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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박근혜 새누리당 대통령 후보가 지난 17일 수원시 팔달구 지동시장 앞 유세 하는 모습./이준성기자 oldpic316@
‘대통령의 큰 딸’이 대한민국 첫 ‘여성대통령’에 당선됐다.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근대화의 아버지’와 ‘독재자’라는 양면의 평가를 받고 있는 박정희 전 대통령의 큰 딸로 1974년 육영수 여사 피살, 22세의 나이에 퍼스트레이디 대리, 1979년 박정희 대통령 서거로 이어지는 그녀의 드라마틱한 삶은 그 자체만으로도 대한민국의 산 역사다.



■ 출생과 학창시절= 박 당선인은 6·25전쟁 중인 1952년 대구 삼덕동에서 당시 육군정보학교장이던 박정희 대령과 어머니 육영수 여사 사이에서 태어났다.

61년 박근혜가 초등학교 4학년이던 당시 박정희가 주도한 5·16 군사정변을 통해 최고권력자의 자리에 올랐고, 결국 63년 5대 대통령에 취임했다.

자식들이 특권의식을 갖게될 것을 두려워한 어머니의 결정으로 동생 근령과 신당동 외할머니 집에서 지내던 박근혜는 성심여중 2학년 시절 기숙사가 폐쇄되면서 청와대에 입성하게 된다.

박 당선인은 중학교와 고등학교 시절 반에서 1등을 놓치지 않았다. 중학교 2학년 때 실시한 IQ검사 결과도 127이었다. 산업 발전에 기여하고 싶다는 생각에 71년 서강대학교 전자공학과에 입학했고 이공학부를 수석으로 졸업했다.

■ 10·26과 퍼스트레이디= 1974년 대학 졸업 후 교수의 꿈을 키우며 프랑스 유학길에 올랐던 박 당선인은 갑작스런 귀국 요청을 받게 된다.

영문도 모른 채 귀국길에 오르던 박 당선인의 눈에 들어온 것은 ‘Madam Park, Assassinated(육 여사 암살되다)’. 어머니인 육영수 여사의 암살 소식을 듣게 된 것이다.

22살의 박 당선인에게 갑작스럽게 퍼스트레이디의 역할이 주어졌고 정치인 ‘박근혜’의 삶이 시작됐다.

박 당선인은 당시 일기를 통해 “지금 나의 가장 큰 의무, 그것은 아버지로 하여금, 국민으로 하여금 아버지가 외롭지 않으시다는 것을 보여드리는 것이다. 소탈한 생활, 한 인간으로서의 나의 꿈, 이 모든 것을 집어던지기로 했다”고 서술하기도 했다.

박 당선인은 아버지가 아침 식사를 할때면 조간신문을 읽어주며 아버지와 주요 현안을 의논했고 유신정권하에서 5년간 퍼스트레이디로 각종행사 참여와 외국사절 의전을 도맡았다.

■ 18년간의 은둔생활= 1979년 10월27일 새벽, 박 당선인은 김계원 대통령 비서실장으로부터 “각하께서 돌아가셨습니다”라는 말을 전해들었다. 이때 박 당선인은 가장 먼저 한 말은 “전방에는 이상이 없습니까”였다.

9일간 국장으로 치러지고 장례식 이후 박 당선인은 동생들과 함께 청와대를 나와 신당동 자택으로 돌아갔다. 트렁크 6개가 이삿짐의 전부였다. 그때부터 박 당선인은 퍼스트레이디에서 한 집안의 가장이 돼야만 했다.

그 이후 박 당선인은 18년 간 대중앞에서 사라졌고 음지의 세월이 시작됐다.

박 당선인은 1988년 박정희·육영수기념사업회를 발족하고 박정희 일대기를 다룬 책과 영화를 제작하며 홀로 아버지의 명예회복을 위해 고분분투했지만 시련의 연속이었다.

박 당선인은 당시 일기를 통해 “그런 생을 다시 살라고 한다면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고 기록했다.

■ 정계입문부터 대통령 당선까지= 1998년 박 당선인이 대중 앞에 재등장했다. 박 당선인은 자서전을 통해 “외환위기 이후 일련의 사태를 지켜보며 나라가 이렇게 흔들리는데 나 혼자만 편하게 산다면 훗날 스스로에게 당당할 수 있을까? 죽어서 부모님을 떳떳하게 뵐 수 있을까? 하는 질문이 머릿속을 계속 맴돌았다”고 밝혔다.

1998년 보궐선거에 당선된 이후 대구 달성에서 내리 4선을 했다. 당시의 한나라당이 불법 대선자금과 노무현 전 대통령 탄핵 역풍으로 위기에 처한 2004년 당대표를 맡아 4·15총선에서 121석을 확보, 침몰 직전의 당을 구하고 각종 보궐선거와 지자체 선거 등에서 승리를 이끌며 ‘선거의 여왕’으로 거듭났다.

5년 전 경선 패배 후 전문가들로부터 개인 수업을 받으며 박근혜만의 정책을 만들어갔고, ‘준비된 여성 대통령’으로 5년간 대한민국호를 이끌 수장에 당선되면서 대한민국 역사상 첫 여성대통령의 자리에 오르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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