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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묻지마 범죄' 교실 안까지 뚫렸다

[단독] '묻지마 범죄' 교실 안까지 뚫렸다

김연주 기자

양승식 기자

입력 : 2012.09.29 03:11 | 수정 : 2012.09.29 07:33

우울증 고교 중퇴생, 서울의 초등학교 난입… 야전삽 휘둘러 6명 부상
범인 "처음엔 국회 가려했다"… 정신질환자가 학교 노린 범행 첫 발생
"경비 철저한 사립학교가 당했으니, 이 나라에 안전한 학교는 없어"

 
초등학교에서 흉기를 휘두른 고교 중퇴생 김모(18)군이 범행 당시 소지했던 쪽지.“하면 안 되는 것을 알면서도 (범행을) 저지른다”고 적혀 있다. /이준헌 기자 heon@chosun.com

우울증을 앓는 10대 고교 중퇴생이 수업 중인 초등학교 교실에 침입해 흉기를 휘둘러 학생 6명이 다치는 사건이 발생했다. 외부인이 학교에 난입해 어린 학생들을 상대로 '묻지 마 범죄'(별다른 이유 없이 범행을 저지르는 것)를 저지른 경우는 그동안 미국·일본 등 외국에서는 종종 있었지만, 우리나라에선 처음이다. 학교만큼은 묻지 마 범죄에 대해 안전하다는 통념이 깨지면서 "학교 안전 시스템을 전면 재점검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서울 방배경찰서는 28일 서울 서초구 반포동 계성초등학교 교실에 침입해 야전삽과 비비탄 모조 권총 등 흉기를 휘둘러 학생들을 다치게 한 혐의로 김모(18)군을 붙잡아 조사 중이다. 김군은 이날 오전 11시 50분쯤 이 학교 4학년 사랑반 교실에 들어가 학급 회의를 하던 학생들에게 흉기를 휘둘렀고, 여학생 3명과 남학생 3명 등 6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김군은 경찰 조사에서 "국회의원을 살해하려다 경비가 삼엄해 혼자 감당할 수 없다고 생각했다"며 "지하철 근처의 초등학교를 인터넷으로 검색하던 중, 부자들이 거주하는 지역으로 판단한 신반포역 인근 계성초등학교를 선택했다"고 진술했다.

사건이 발생한 계성초는 천주교 재단이 이끄는 전통 있는 사립학교로 학생 안전을 위한 예방 수준이 상대적으로 우수한 곳에 속한다. 이날도 배움터 지킴이 2명과 민간 경비원 1명이 학교를 지키고 있었다. '이런 학교가 뚫린다면, 전국에 마음을 놓을 수 있는 학교가 없을 것'이라는 말도 나온다.

외국에선 어린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묻지 마 범죄'가 드물지 않게 발생한다. 일본에선 2001년 6월 실업자 다쿠마 마모루(당시 37세)가 약물을 먹고 환각 상태에서 오사카교대 부속 이케다 초등학교에 난입해 닥치는 대로 흉기를 휘둘러 1~2학년 학생 8명이 숨지고, 교사 3명 등 15명이 중경상을 입는 사건이 있었다. 범인은 정신분열증을 앓고 있다고 주장했지만, 경찰 수사 결과 처벌을 피하려고 정신이상자 행세를 한 사실이 밝혀졌다.

영국에선 1996년 3월 역시 실업자인 토마스 해밀턴(당시 43세)이 권총 네 자루를 들고 소도시 던블레인의 한 초등학교에 난입해 어린이 16명과 어른 1명을 살해하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이 사건으로 영국에서는 개인의 권총 소지를 금지하는 법안이 통과됐다. 중국에서도 2010년 4월 실직자가 한 유치원에 침입해 유치원생 28명과 어른 3명에게 중경상을 입혔다.

이 같은 학교 내 ‘묻지 마 범죄’의 공통점은 사회 적응 능력과 분노 조절 능력이 떨어지는 사람들이 흥분 상태에서 약자들이 모여 있는 공간에 난입해 일방적으로 폭력을 휘둘렀다는 점이다.

김동석 교총 대변인은 “사회가 핵가족화될수록 이런 위험한 사람들이 늘어날 수밖에 없다”면서 “우리 교육 당국은 그동안 외국의 사태를 ‘강 건너 불’처럼 구경만 했지 대비책은 세우지 않았다”고 말했다.

정부와 지자체는 2010년 김수철이 서울 영등포의 한 초등학교에 들어와 학생을 납치해 성폭행한 사건을 벌인 뒤 교내 발생 범죄를 예방하기 위해 배움터 지킴이와 학교 보안관을 배치하기 시작했다.

현재 서울 지역 590여 초등학교에는 학교마다 2명씩 배움터 지킴이나 학교 보안관이 배치돼 있다. 사립학교는 민간 경비원을 추가로 고용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번 사건은 학교가 안전지대가 아니라는 사실을 다시 보여준다. 김동석 대변인은 “일본에서도 정신병력자에 의한 묻지 마 범죄가 발생한 직후 ‘학교 방문 사전 예약제’를 도입하고 외부에 CCTV를 설치하는 등 각종 대책을 마련했다”며 “약자인 학생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과도하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예방 수위를 높이는 방향으로 학교 안전 확보 시스템을 전면적으로 다시 논의해야 한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