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5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 족히 1,500여명쯤은 되어 보이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중년 신사들이 모여 피켓을 흔들면서 고함을 질러대고 있었다. 요즘 이런 풍경은 서울 도심 곳곳에서 흔히 볼 수 있다. 시민들은 또‘한·미 FTA 반대’집회거나 아니면 무슨 시민단체의 이런저런 시위이겠거니 하고 생각하는 듯 별 관심 없다는 표정들을 하고 그냥 지나쳐 갔다. 이날 집회는 전국시군자치구의회 의장협의회라는 단체가 개최한‘지방자치 발전을 위한 제도개선 촉구 결의대회’였다. 전국 각 지역에서 작심하고 서울까지 올라온 기초의원들은 이날 결의문을 통해 기초의원·단체장 정당공천제 폐지와 의정비 제도 개선 등을 촉구하고 있었다. 중앙정치 예속된 기초자치제 아닌 게 아니라, 기초의원·단체장 정당공천제의 폐해는 지난 2006년 이 제도가 도입된 이래 끊임없이 제기돼 왔다. 풀뿌리 민주주의를 발전시킨다는 취지로 출범한 기초자치제는 지역주민의 일꾼이어야 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들이 정당공천제로 중앙정치권에 종속되는 바람에 민생의 문제는 사실상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게 부인할 수 없는 현실이다. 기초단체장이나 지방의원들은 주민들을 의식하기 보다는 지역구 국회의원의 눈치를 살피는 게 더 중요하고, 지역구 국회의원에게 줄을 잘 서야 공천을 따내 당선될 수 있다. 특히 특정지역에서는 특정 정당의 공천이 곧 당선을 의미한다는 점 때문에 공천 과정에서 공천헌금 가격표가 떠돌기까지 했다. 이런 풍토에서 공천을 통해 한몫 챙기려는 국회의원과 정당은 돈 선거를 부추겼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에 대한 지역 국회의원의 막강한 영향력은 이들을 지역일꾼이 아닌 국회의원의 지역구 조직 관리비서 쯤으로 전락시키고 있기도 하다. 불법 정치자금을 찔러주고 공천을 따내 당선된 일부 기초의원들은‘투자금’을 만회하기 위해‘의원’임을 내세워 지역의 이권사업에 끼어들어 온갖 비리를 일삼는 경우도 적지 않다. 검은 돈 오가는 기초의원 공천제 지방의회가 부활된 지 20년이 지났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성년이 된 지방자치제가 아직도 제 기능을 제대로 하지 못하고 취지 자체가 빛을 바랜 데에는 한마디로 중앙정치권의 탓이 크다. 지난 2006년 국회는 5·31 지방선거를 앞두고 공직선거법을 개정해 기존 광역단체장과 광역의원, 기초단체장 외에 기초의원에게도 정당공천제를 적용하도록 했다. 정당이 기초의원 후보자의 자질과 능력을 철저히 검증해 유능한 인재를 골라 공천함으로써 함량 미달의 기초의원 선출을 막고 토착 기득권 세력의 발호를 막겠다는 게 그 명분이었다. 그러나 이는 오히려 중앙정치권의 지배력을 강화하고 지방선거를 정당 대리전으로 전락시켰으며 공천을 둘러싸고 검은 돈이 오가는 등 온갖 비리와 부패가 난무하는 역기능을 초래했다.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이 중앙정치에 예속되는 바람에 지역경제와 민생문제는 뒷전으로 밀려나 있다는 주장도 제기되고 있다. 기초의회 폐지론도 설득력 있다 일각에서는 시·군·구의 기초의회 무용론을 주장하고 있기도 하다. 국회와 광역시·도의회에 더하여 군(郡)과 구(區)에까지 의회를 둘 필요가 있느냐는 회의론은 나름대로의 설득력을 지닌다. 공무원들 봉급도 주기가 벅찰 정도로 재정자립도가 취약한 곳이 전국 기초자치단체 가운데 70%를 상회하는 마당에 기초의회까지 운영하는 것은 사실상 지나치다는 주장이다. 전국 228개 시·군·구의 기초의원 총수는 2,888명으로, 이들의 1인당 평균 연봉은 4,820만원으로 집계되고 있다. 여기에 이러저러한 명목의 지원금이 연봉 총액을 훨씬 상회하고, 의회 사무국 운영에 따른 예산이 보태어진다. 말하자면, 기초의회를 폐지하면 연간 조 단위의 예산이 절감된다는 계산이다. 어떻든 이대로는 안 된다. 기초의회 폐지 여부는 뒤로 할지라도 우선 기초단체장과 기초의원의 정당공천제는 폐지하는 게 옳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