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석연료 자동차 없는 도시 세계 처음 선보일 것"
프로야구 10구단 유치한 염태영 수원시장의 또 다른 꿈
이승녕 기자, 권은율 인턴기자 francis@joongang.co.kr | 제307호 | 20130126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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염태영(53·사진) 수원시장은 열정적이었다. 염 시장과의 인터뷰는 23일 밤 9시가 넘어서야 시작됐다. 염 시장은 "연초라 바쁜 데다 최근 프로야구 10구단 유치 확정으로 업무가 늘어 일정이 빡빡하다"며 양해를 구했다. 하지만 수원시정의 과거와 미래에 대한 그의 설명에는 쉼표가 없었다. 큰 구상뿐 아니라 디테일에도 강했다. 기업, 시민단체, 행정을 두루 경험한 사람답게 아이디어가 풍부했다.
염 시장은 올해 수원시 역점사업으로 9월 수원화성 주변에서 펼쳐질 '생태교통 수원 2013' 행사를 들었다. 내용을 들여다보면 그의 말대로 축제에 대한 선입견을 뒤엎는다. 행사 기간 동안 대상 지역인 팔달구 행궁·신풍·장안동 일대에서 차를 없앤다. 차가 안 다니는 정도가 아니라 대체 주차장을 구해 차를 통째로 빼내는 게 핵심이다. 사람이 살던 특정 지역에서 화석연료를 쓰는 자동차를 완전히 없애는 시도는 세계에서 처음이다. 대신 주민과 참여자들은 보행을 기본으로 자전거를 비롯한 다양한 무동력·친환경 생태교통 수단을 이용한다. 영화제나 국제회의도 열리지만 대규모 시설을 짓는 게 아니다. 수많은 이벤트는 골목길이나 기존 건물을 리모델링해 활용한다. 주민과 방문객이 모두 참여해 즐기는 데 초점을 맞췄다. 수원시가 자치단체국제환경협의회(ICLEI), 유엔 인간정주계획(HABITAT)과 공동주최하는 글로벌 행사다.
"생태·환경에 대한 관심들은 누구나 있습니다. 하지만 화석연료에 익숙하다 보니 먼 미래로만 여깁니다. 이걸 세계에서 처음으로 실행에 옮기는 겁니다. 실제 해봐야 좋은 점을 실감할 수 있고 문제점도 찾는 겁니다. 수원이 브라질의 쿠리치바 못지않은 모범적 생태도시로 거듭날 기회입니다."
주민 참여 '마을 르네상스 사업' 자부심
염 시장은 수원이 생태도시뿐 아니라 지자체의 운영방식, 나아가 한국 지방자치의 미래에 대해서도 새로운 모범이 될 수 있도록 하는 데 힘을 쏟고 있다. 행정 분야에서의 '수원형 모델'도 그 일환이다. 수원은 인구 114만 명으로 광역시가 아닌 도시 중 창원시와 함께 가장 큰 규모다. 광역시 기준인 인구 100만 명을 넘어선 지 10년째다. 하지만 광역시 추진은 쉽지 않다. 경기도에선 수원뿐 아니라 성남·용인·부천·고양시도 모두 인구 100만 명 돌파를 넘보고 있다. 이 도시들이 모두 광역시가 되면 경기도만의 문제가 아니라 지방행정의 근본이 흔들린다.
염 시장은 "이런 고민 끝에 나온 게 수원형 모델"이라며 "광역시 승격을 고집하지 않는 대신 공무원 수나 행정조직을 기존 일반시보다 크고 광역시보다 작은 수준에서 늘리면 행정 수요에 대응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2010년 지방선거에서 시장에 당선된 그는 이처럼 수원을 모태 또는 시발점으로 하는 다양한 개혁 사업에 힘을 기울이고 있다. 염 시장은 "2년 반의 임기를 돌아보면 주민이 실질적으로 시정에 참여하는 길을 많이 만든 것이 큰 자랑거리"라고 말했다.
대표적인 게 '마을 르네상스 사업'이다. 마을마다 자체적인 아이디어를 내서 작게는 마을신문을 만드는 것부터, 교회가 첨탑 부분을 노을 전망대라는 이름으로 지역사회에 내놓고, 옥상이 넓은 집이 장소를 제공해 마을 음악회가 열리기도 한다. 주민들이 마을 벽화를 그리고 화단과 갤러리를 만들거나, 마을기업이 제품을 만들기도 한다. 악보도 모르던 70대 노인들이 합창단을 만들어 공연을 한 동네도 있다.
"모든 계획은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하는 겁니다. 시에서는 행정적인 지원에만 그치고요. 예산 지원은 프로젝트당 수백만원, 많이 들어가도 수천만원에 그칩니다. 하지만 마을 주민들이 스스로 만들어 낸 작은 사업들에서 얻는 기쁨이나 활력은 대단하죠."
마을 르네상스 사업은 다른 지자체에도 꽤 자극을 줬다. 염 시장이 수원환경센터 등 시민운동을 할 때부터 인연이 있던 박원순 서울시장도 비슷한 아이디어를 활용하고 있다.
이 밖에 염 시장이 '전국 최초'로 수원에서 시도한 주민참여 행정은 여러 가지다. 도시계획 전문가가 아니라 청소년을 포함한 시민들이 '2030 도시계획 시민계획단'을 만들어 장기 도시계획을 세웠다. 행정이나 생활 주변의 문제를 시민들이 스스로 조사하고 판단하는 '시민배심법정', 시의 우선 해결과제를 토론하는 '500인 원탁토론' 등 다양한 시도가 있었다. 승용차를 함께 이용하는 '카 셰어링' 제도나 현장 행정을 위한 '모바일 현장행정' 시스템 등 전국 최초 사례가 넘친다.
염 시장은 "지금 우리나라 정치 구조의 누적된 문제점과 한계를 지방정부부터 바꿔서 한국 사회 리모델링의 하나의 전형을 만들고 싶다"며 "수원의 성공을 바탕으로 전국에 퍼지면 한국 사회를 변화시키는 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수원이 고향인 염 시장은 수원 수성고를 나와 서울대 농화학과를 졸업했다. 수질관리 분야 환경기술사로 관련 기업에서 10여 년을 지냈고, 경실련 환경개발센터 연구위원을 시작으로 녹색연합·환경정의시민연대·수원환경운동센터 등 시민단체에서 일했다. 2002년 대통령직인수위 자문위원이 된 뒤 대통령비서실 국정과제담당 비서관, 국립공원관리공단 감사 등 행정도 경험했다. 그는 "그동안 기회가 없었을 뿐이지 시민들이 스스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엄청난 성과를 이룰 수 있다. 행정은 정교한 프로그램으로 제도적 뒷받침만 하면 된다"고 강조했다.
하지만 아이디어만으로 100만 도시의 시정이 저절로 이뤄지는 것은 아니다. 가뜩이나 취약한 재정으로 새로운 사업을 벌여 나가기에는 여유가 그리 없다. 그는 취임 직후부터 대대적인 부채 감축에 나섰다. 취임 전 3175억원에 달하던 부채를 지난해 말 644억원으로 확 줄였다.
프로·아마 스포츠 중심도시 만들 계획
염 시장은 "2006년 민선 4기 이후 많은 지자체에서 방만한 경영을 하는 사례가 잇따랐다. 개인적으로 앞으로 복지에 많은 재정이 필요할 텐데, 무리한 사업 진행이 지방정부에 계속 부담이 돼서는 안 된다고 처음부터 생각했다. 예산을 쪼개 빚을 갚는 게 쉬운 일은 아니다. 시장 업무추진비부터 30% 줄여놓고, 일회성 행사비를 크게 줄이는 등 솔선수범하려 애썼다"고 말했다. 공무원 부패를 줄이기 위한 노력도 기울였다. 그동안 관행 등으로 치부해 가볍게 넘어가던 부정부패에 대해 가혹한 잣대를 들이댔다. 한번만 적발되도 옷을 벗는 '원스트라이크 아웃제'가 대표적이다. 이 덕분에 국민권익위원회가 실시하는 지자체 청렴도 조사에서 2009년 꼴찌인 75위였던 것이 지난해 말 27위까지 올라왔다.
최근 확정된 프로야구 10구단 유치에 대해 염 시장은 "시민들로부터 축하를 많이 받고 있다"며 "인구나 흥행성 면에서 경쟁 지역보다 유리해 유치가 가능했다"고 분석했다. 프로야구단 유치 이전에도 수원은 이미 스포츠 도시로 유명하다. 프로축구와 프로배구 모두 연고팀이 있다. 프로뿐 아니라 이미 국내에서 지자체로는 실업팀 등에 가장 많은 투자를 하고 있다. 수원이 프로·아마를 통틀어 스포츠의 중심이 되는 것도 그의 행정 목표다.
염 시장은 “정치인이지만 선거를 염두에 두기보다는 주어진 임기 동안 원 없이 일해 보고 싶다”며 "한국 사회와 행정을 바꿀 수 있는 가능성을 우리 도시에서 찾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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