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게’, 그까짓 거가 무슨 풍물이야? 라고 할 수도 있다. 수원에만 있는 것도 아니고, 전국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것이 지게이다. 그리고 아직도 지게질을 하는 곳이 있다. 그런데 왜 하필 수원에 풍물을 소개하면서 지게를 이야기할까? 흔하디흔한 그 지게가 무엇이 그리 대단한 물건이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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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찻길이 없고 굴곡진 산길의 운송수단은 지게가 유일하다 |
하기야 그 지게 하나가 무슨 큰 물건은 아니다. 또 지금도 볼 수 있기도 하다. 요즈음은 나무를 잘라 꾸며 만든 지게보다는, 알루미늄으로 만들어 가볍고 단단하기도 하다. 지금이야 운송수단이 많다. 바퀴가 달린 손수레 등 참 편하게 짐을 나를 수가 있다. 하지만 그런 것들이 비좁고 길이 울퉁불퉁한 바위산을 오르지는 못한다. 지게란 사람이 가는 곳이라면, 어디나 갈 수 있는 운송도구이다.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지게이야기
“한 40년 전만 하여도 지게가 없으면 살 수가 없었지. 그 때는 모두 나무들을 해다 땠으니까. 그 당시는 아주 잘사는 사람들이나 연탄을 사다 땠지. 그렇지 않으면 모두 산에 가서 나무를 해다가 땠으니까”
한 달에 한 번 정도 들리는 이발소. 연세가 70이 넘은 분이 운영을 하시는 이발소다. 그래도 아직 이발 실력 하나는 딱 소리가 난다. 주로 연세가 많이 드신 분들이 단골인 이 이발소. 안으로 들어가니 나무를 때는 난로를 사용하고 계시다. 나무를 토막 내 잘게 잘라 땔감으로 사용을 하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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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발소 안. 어르신들이 들려주는 지게이야기(아이폰 촬영) |
“40년 전이면 연탄들을 많이 땔 때 아닌가요?”
“그렇지 않아 그 당시 이곳(수원시 팔달구 지동)은 마누라 없이는 살아도 장화 없이는 못 산다고 하던 동네였지. 비만 오면 온통 흙길이 되어서 발목까지 빠지고는 했으니까? 참 이제 세상 살기 좋아진 것이지”
“정말예요. 저도 40년 전에는 광교산에 가서 나무를 해오고는 했어요. 연무동은 유난히 피난민들이 많이 살아서, 거의 모두가 나무를 해다가 땠거든요. 그 때만해도 광교산이 벌겠는데요.”
“요즘 사람들 너무 잘 먹고 잘살아. 큰일이여 정말로. 그 텔레비전인가 무엇인가가 사람들을 다 망쳐 놓고 있어. 노인들이 이혼을 해서 혼자 산다고 황혼이혼인가 머라고 떠드니, 이젠 이혼까지 따라하는 사람들도 있고”
이야기는 끝없이 이어진다. 근 한 시간 정도를 머리를 만지고 다듬는 시간이니, 그 사이에 얼마나 많은 말들을 하실 것인가? 곁에 기다리시는 분들까지 합세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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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발소 안에는 나무를 땔감으로 사용하는 난로가 있다 |
“지게질이 힘드셨을 텐데요?”
“힘들다마다. 겨울철에 나무를 하러 산에 가면 정말 미끄러지기도 수도 없이 하고,무릎도 많이 깨졌지. 아마 요즈음 사람들 그렇게 해서 땔감 준비하라고 하면, 하나도 안 할 거야”
“누가 그런 어려운 일을 하겠어요. 차라리 죽고 만다고 하겠죠.”
“그 땐 정말 힘들었지. 주먹밥 한 덩이 들고 산을 올라가면 해질녘에나 내려오니 말여. 그래도 같이 간 동무들이 지겟작대기를 치면서 소리라도 할라치면, 정말 그 소리에 가슴이 뭉클 하고는 했어”
지게 하나에도 사연이 많아
“지게에도 여러 가지가 있잖아요?”
“그럼 그냥 나무를 하고 짐을 지는 지게 말고도, 물을 길어다 먹던 물지게도 있었지”
“정말 물지게지고 많이 넘어 졌는데요.”
“어디 그것뿐인가? 오줌지게 똥지게도 있었지. 하하... 지금은 오줌장군 똥장군이라도 부르지만. 이제 어디 가서 보기도 힘들어”
“왜요. 아직도 농사짓는 마을에 가면 가끔 보이던걸요.”
지게 하나에도 사연이 많은 어르신들. 연세가 70~80이 드셨으니, 정말 힘들 때를 살아오신 분들이다. 그런 분들에게는 들을 이야기가 참 많다. 말 한마디만 들었으면 하고 꺼낸 지게이야기가, 한 시간이 넘도록 그칠 줄을 모른다. 하긴 몇 년 전만 해도 나 역시 지게질을 하고 모악산을 오르고는 했다. 물론 찻길이 없으니 유일한 운송수단이 지게였다. 이제는 까맣게 잊어버리고 만 기억이지만.
그리고 보니 광교산을 지게를 지고 오르던 분이 생각이 난다. 그 위 어딘가에 짐을 날라야 한다면서. 아무것도 아닌 듯한 지게 하나가, 이렇게 어르신들의 옛 기억을 끄집어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