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제가 파괴한 수원 화성행궁…119년 만에 완전 모습 복원
정조대왕 건립 이후 임금‧수행 관원 머무는 궁실로 이용된 곳
시민 주도로 1989년 복원사업 시작…35년 만에 복원 마무리
2002년 1단계 복원 완료 이후 2단계로 우화관‧별주 완전 복원
수원시, 24일 오후 2시30분 우화관 바깥마당서 복원 개관식
- 장진 기자 gigajin2@kgnews.co.kr
- 등록 2024.04.24 06:00:00
▲ 복원사업을 마친 수원 화성행궁 전경. (사진=수원시 제공)
수원 화성행궁이 일제강점기 철거된 이후 우화관‧별주가 복원되면서 119년 만에 완전한 모습으로 복원됐다. 1989년 복원사업이 시작된지 35년 만이다.
화성행궁은 정조대왕이 아버지 사도세자 묘소를 수원부 읍치(화성시 융릉)로 이장하고 신읍치를 팔달산 기슭으로 옮기면서 1789년(정조 13년) 건립됐다.
평상시에는 관청으로 사용하다 임금이 수원에 행차할 때는 임금과 수행 관원들이 머무는 궁실(宮室)로 이용됐다.
화성행궁은 정조가 만들고자 했던 신도시 수원화성의 행정을 도맡았던 관청이자 화성유수부를 굳건하게 지킨 장용영 군사들의 군영이기도 했다.
수원화성 축조 과정이 기록된 ‘화성성역의궤’에 따르면 화성행궁은 약 600칸 규모로 정궁(正宮) 형태다. 정조가 훗날 왕위를 물려주고 수원에 내려와 머물고자 만들어 규모와 격식은 궁궐에 버금간다. 조선시대 지방에 건립된 행궁 중 최대 규모이기도 하다.
정조는 화성행궁이 건립된 이후 모두 13차례 머물렀고 1795년에는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 잔치를 행궁에서 거행하기도 했다.
▲ 1989년까지 경기도립병원, 신풍초등학교 등으로 사용된 수원 화성행궁의 모습.
19세기 말까지 궁실이자 관청으로 제 기능을 했던 화성행궁은 1905년 우화관에 수원공립소학교가 들어서면서 파괴되기 시작했다.
1911년 봉수당은 자혜의원으로, 낙남헌은 수원군청으로, 북군영은 경찰서로 각각 사용됐다. 1923년 일제가 화성행궁 일원을 허물고 경기도립병원을 신축하면서 화성행궁은 역사에서 사라지는 듯했다.
1945년 8.15 광복 이후에도 경기도립병원(현 경기도의료원 수원병원)은 계속 유지됐고 1989년 현 부지에 현대식 건물로 신축하겠다는 계획까지 발표됐다.
그러나 시민들이 나서 화성행궁 복원 움직임이 일었다. 당시 수원문화원장이었던 심재덕 전 수원시장(1939~2009)과 일제가 왜곡한 역사를 바로잡는데 평생을 바친 수원 출신 서지학자 사운 이종학 선생(1927~2002) 등 42명이 같은해 10월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원회’를 구성했다.
수원화성행궁 복원추진위는 경기도지사를 만나 화성행궁 복원 당위성을 설명하며 경기도립병원 이전을 건의했다.
다행히 경기도지사가 건의를 받아들이면서 35년에 걸친 복원사업이 시작됐다. 수원시는 경기도립병원을 철거하고 화성행궁 1단계 복원사업을 추진했다.
화성행궁 복원 원칙은 ‘1796년 화성행궁 완성 모습으로 복원’, ‘화성성역의궤, 정리의궤 등 기록‧발굴자료 토대로 고증 복원’ 등이었다.
화성행궁 중심 건물인 봉수당을 시작으로 482칸을 복원하면서 2002년 1단계 복원사업이 완료됐다. 다음해 10월 화성행궁 개관식을 열고 중심 건물을 시민에게 개방했다.
▲ 복원된 수원 화성행궁 우화관. (사진=수원시 제공)
시는 2003년부터 우화관(于華館) 복원사업을 준비했다. 2013년 우화관 자리에 있던 신풍초등학교가 이전하고 2016년 신풍초 분교장이 폐지된 뒤 본격적인 복원사업을 시작해 우화관, 낙남헌, 동행각, 별주 등을 복원했다.
우화관은 임금을 상징하는 ‘전(殿)’이라는 글자를 새긴 나무패를 모신 화성유수부 객사(客舍)로 1789년 화성행궁에서 가장 먼저 건립된 건물이다.
객사는 지방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 앞에서 의례를 행하는 곳이면서 관아를 방문하는 관리‧사신들이 머문 장소다.
우화관 건립 당시 이름은 팔달관이었는데 1795년 을묘년 행차 때 정조의 명으로 명칭을 바꿨다. 우화관은 ‘화(華) 땅의 봉인(封人)이 축원’한다는 의미로 수원화성에 사는 백성들이 모두 부유하고 즐겁기를 바라는 정조의 마음이 담겼다. 을묘년 행차 때 우화관에서는 문과 과거시험이 열리기도 했다.
우화관은 수원군공립소학교로 이용되다 1933년 일체 치하에서 수원공립보통학교(현 신풍초등학교)가 건립되면서 철거됐다.
시는 복원사업을 통해 2016년부터 2019년까지 발굴 조사를 통해 우화관 건물터를 찾아냈고 2020년부터 2년에 걸쳐 화성성역의궤와 문헌 기록을 바탕으로 고증해 복원설계를 완성했다. 이후 문화재청 승인을 받아 2021년 7월 복원공사를 시작해 지난해 준공했다.
낙남헌 동행각은 낙남헌(洛南轩)과 우화관 경계를 이루는 행각이다. 낙남헌은 화성행궁에서 공식행사나 연회를 열 때 사용된 곳으로 2단계 복원사업을 통해 낙남헌 동행각, 연못, 취병(나무가지를 지지대에 엮어 만든 생울타리)을 복원해 낙남헌 일원이 ‘임금의 정원’으로 재탄생했다.
▲ 복원된 수원 화성행궁 별주. (사진=수원시 제공)
별주(別廚)는 임금이 행차할 때 음식을 준비한 곳으로 음식 예법을 기록한 문서를 보관했다. 1795년 혜경궁 홍씨의 회갑잔치 때는 별주에 처마를 덧붙여 만든 임시 건물 12칸에서 잔칫상을 준비했다.
별주는 제사에 쓰이는 제물, 임금의 수라, 반과, 왕실 잔칫상에 필요한 식재료를 준비하고 조리하는 것을 관리하는 일종의 관서(官署)였다.
정조 승하 후 분봉상시(分奉常寺)로 이름이 바뀐 별주는 현륭원과 건릉, 화령전에 올릴 제물을 마련하고 이와 관련된 문서를 보관하는 곳으로 쓰였다.
화성행궁 복원사업을 완료한 시는 24일 오후 2시 30분 우화관 바깥마당에서 ‘수원 화성행궁 우화관‧별주 복원 개관식’을 진행한다.
이재준 수원시장이 화령전 운한각에서 정조대왕에게 화성행궁 개관을 고하는 고유제로 시작해 우화관 현판 제막식, 복원 시설 관람 등이 이어진다.
시 관계자는 “화성행궁처럼 다양한 역사와 기능이 있는 행궁은 어디서도 찾아볼 수 없다”며 “이번 복원사업으로 평범하면서도 특별한 화성행궁의 온전한 모습을 회복해 화성행궁만의 가치를 널리 알릴 수 있게 됐다”고 말했다.
▲ 1997년 9월 열린 수원 화성행궁 봉수당 상량식. (사진=수원시 제공)
[ 경기신문 = 장진 기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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