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지역_서울 경기 및 지방의 종합/*❼김동연 경기도지사

[보도자료] 『경기도 역사』 보물을 제자리에 모셔주세요/ [언론기고] 경기도청 청사 이전을 보며= 이강석 前 경기도의회 공보담당관

[보도자료] 『경기도 역사』 보물을 제자리에 모셔주세요/ [언론기고] 경기도청 청사 이전을 보며= 이강석 前 경기도의회 공보담당관

********************

[보도자료] 『경기도 역사』 보물 2개

경기도청 광교 이전에 따라 ‘경기도의 보물이라 평가할 수 있는 팔달산 도청에 있던 도청과 도의회 현판을 광교청사 현관에 배치하고 서울 광화문 구 경기도청 터에서 가져온 측백나무 역시 광교 도청사에 자리 잡아야 한다’는 의견서가 경기도에 제출됐다.

경기도청에서 40년 공무원으로 근무하고 퇴직한 경기도민이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강석 전 남양주부시장은 김동연 경기도지사에게 국민신문고를 통해 제출한 건의서에서 “1967년에 현재의 자리에서 출범한 경기도청 정문에는 두 분 대통령이 직접 쓴 글씨를 새긴 동판 문패가 있었고, 서울 광화문 경기도청 자리에 있던 측백나무가 지금 광교 역사공원에 이식되어 광교신청사 제자리로 갈 날을 기다리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씨는 “경기도청(박정희 대통령 글씨), 경기도의회(김영삼 대통령 글씨) 동판이 고철로 사라질 위기에서 자신이 구해냈다”고 전하고 “도청, 의회 현판으로 쓰인 동판은 광교신청사 현관에 설치하고, 1910년부터 서울 광화문 도청을 지키다가 2017년 남경필 도지사와 박원순 서울시장의 협의로 광교 역사박물관에 이식된 측백나무는 경기도청내 공원 중앙에 이식해서 경기도의 역사성을 이어가는 축의 하나로 삼아야 한다”고 김동연 도지사에게 건의했다고 밝혔다.

이 씨는 “그동안 언론에 동판 이야기와 측백나무의 스토리를 여러 번 전했다”면서 “동판과 측백나무는 100년 경기도 역사를 이어가는 경기도의 보물과도 같은 존재이며 김동연 도지사님이 제자리에 자리를 잡아주실 것으로 믿는다”고 말했다.

이어서 “어렵게 지켜낸 경기도청, 경기도의회 동판을 광교청사의 현관에 아름답게 배치하여 도청과 의회를 방문하는 도민의 자긍심을 고양하는 일익을 담당하도록 해 주시기를 건의했다”며 “광교역사박물관에 이식된 측백나무 역시 100년 경기도 역사를 이어가는 의미에서 광교청사 중앙에 자리한 공원에 이식하고 그 역사를 널리 알리는 것이 도민의 자긍심을 드높이는 일”이라고 도지사 건의문에서 밝혔다고 말했다.

 

[언론기고] 경기도청 청사 이전을 보며

경기도 청사는 서울 광화문에서 시작된다. 도청의 전신인 경기감영은 한성부 내에 있었다. 청사가 서울시에 있는 것은 도민의 자존심의 문제였을 것이다. 1953년 4월 15일 인천에서 먼저 ‘경기도청 유치위원회’가 발족되자 1주일 뒤 수원에서도 ‘경기도청 수원 존치위원회’가 구성되었다. 존치란 표현을 쓰는 이유는, 조선시대에 수원에 경기도 감영이 있었고 6.25전쟁 당시에도 임시도청이 설치된 적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리고 1962년에 수원의 지역 유지가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에게 도청을 수원으로 이전하자는 건의서를 제출하였는데, 1963년에 박창원 경기도지사는 청사를 시흥군 안양읍에 이전하자고 보고했다. 그러나 이병희 수원유치위원장이 도의 발전과 미래를 생각하며 삭발까지 감행해 박정희 의장에게 찾아가 무릎을 꿇고 도청 이전을 요청하였던 바 1963년에 법률 제1538호가 제정되어 수원으로 결정되고 1967년에 현재의 청사로 이전했다. 참고로 공사비 15억원이 들었다고 한다. 이전 당시 도민은 289만명으로 현재는 1천353만명이니 4.7배가 늘었다. 공무원수도 늘었고 경기북부지역 발전을 위해 의정부에 북부청사를 두고 있다.

경기청사 이전에서 고배를 마신 인천시는 오히려 1981년 직할시로 승격하는 추진력을 얻었다는 것이 당대 행정가의 평가다. 그리고 도청을 인천시로 이전하였다면 교통상황이 불편하여 도민과 공무원의 고생이 심했을 것이라 생각된다. 또한 14년만에 또 다시 청사를 지어 이사를 하는 말 그대로 ‘탁상행정’의 상황이 발생할 뻔했다.

◇ 100년 역사의 측백나무

1910년경 서울 광화문 앞 의정부(議政府) 터에 경기도청사가 건립되면서 심어졌을 것으로 추정되는 이 측백나무는 높이 13m에 가지 양끝 길이가 13∼15m로 성장했다. 이 나무는 1967년 경기도청의 수원 이전 때까지 57년간 광화문 청사와 함께 했다.

그리고 도청 수원으로 이전한 후에 홀로 남겨졌다. 그 후 대략 50년간 서울의 청사철거, 주변 개발 등 격동의 삭풍 속에 용하게도 견뎌내던 중 서울시가 ‘의정부’터 발굴조사계획 추진하면서 베어지거나 이식해야 하는 위기를 맞는다.

2017년 8월에 서울 박원순 시장과 경기도 남경필 지사가 논의한 끝에 경기도에 기증된다. 도는 즉시 이 측백나무를 광교역사박물관 부지에 가이식하고 광교청사 준공되면 옮겨 심기로 했다.

◇ 55년을 함께한 경기도청 동판

김문수 경기도지사(32~33대, 2006. 7 ~ 2014. 6)는 2006년 도지사에 취임하면서 도청주변의 철조망을 걷어내라고 지시했다. 도민과의 거리를 가깝게 한다는 의미였다. 그리고 2009년에는 정문과 후문의 철제대문도 철거했다. 철문을 철거한다는 소식을 듣고 당시 경기도의회 공보과장으로서 도청 청사를 관리하는 회계과에 의견을 냈다. 경기도청·경기도의회 동판을 살려내자고 말했다. 동판이 박힌 시멘트 구조물을 통으로 뽑아 화단에 옮겼다가 광교청사 준공시에 이전하자고 건의했다. 담당자도 사무관도 모르겠다고 했다. 예산이 없단다.

다시 문화재과에 의견을 냈다. 아직 50년이 지나지 않아서 문화재로서의 가치가 없다는 답이다. 태어나면서 자격증을 들고 세상에 나오는 사람은 없다. 도청에 1967년에 입주하였으니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 ‘경기도청’은 2008년도에 41년을 맞는다. 9년이 지나면 50년을 충족한다. 2021년에는 54살이 된다. 하지만 더 이상 논의가 이어지지 못했다.

정문을 철거하는 토요일에 양복을 차려입고 현장으로 나갔다. “저는 도청 과장입니다. 이 동판은 소중한 역사물이니 흠결없이 떼어내서 넘겨주십시오.” 경기도청 현판은 총무과로 보내고 김영삼 대통령이 1992년말에 경기도의회 이달승 의원의 청을 받아 써준 ‘경기도의회’ 현판은 의회 총무담당관실로 보냈다.

그리고 2018년말 공직 42년을 마감하면서 oo일보 기자와 점심을 먹으면서 공직생활 중 가장 기억에 남는 일로 경기도와 도의회 현판을 지켜낸 일화를 소개했다. 함께한 젊은 기자가 즉시 취재를 시작했다. 어렵게 구해낸 동판이 공무원의 관리소홀로 사라졌다는 기사가 예상되었다. 하지만 점심을 함께한 그날 오후 5시가 지나지 않아서 문자와 사진을 받았다. 경기도인재개발원 행정자료실에 온전하게 보존되어 있다는 희소식이었다.

경기도청이 2022년 초에 광교청사로 이전한다. 이에 도민의 의견을 듣고자 한다. 측백나무는 100년 넘게 경기도청의 상징이므로 광교청사 중심부에 이식되기를 바란다. 그런데 경기도청과 경기도의회 현판(동판)은 현재의 팔달산 청사의 중심부에 자리하기를 바란다. 광교청사 로비에 설치하는 안도 제시한다.

◇역사발전을 위한 작은 노력

이미 지나간 일이지만 지난 6월에 청와대 국민청원으로 ‘경기도청이『이건희 미술관』입니다’라는 청원을 올려 159명의 서명을 받았다. 현재의 도청 청사는 리모델링 공사 6개월후에 미술관 개관이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정부는 받아들이지 않았다. 공직 42년이 훅하고 지나갔다. 경기도의 역사는 쉼 없이 이어진다. 도민은 물론 후배 공무원들이 역사를 가꾸고 이어가는 작은 날개짓을 이어가기를 바란다. 광교청사로 이사 간 경기도청에서 더 큰 경기도 역사를 줄기차게 이어가기 바란다.

이강석 前 경기도의회 공보담당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