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ho Is ?] 안철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노녕 기자 nyeong0116@businesspost.co.kr | 2022-03-23 10:20:00
록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 겸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
◆ 생애
안철수는 윤석열 제20대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이다. 국민의당 대표도 맡고 있다.
인수위원장으로서 ‘윤석열·안철수 공동정부’ 출범 준비를 얼마나 내실 있게 해내느냐가 정치인 안철수의 미래를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1962년 1월22일 경상남도 밀양에서 태어나 부산 범천동에서 자랐다.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을 졸업한 뒤 서울대학교 대학원에서 의학 석사학위와 박사학위를 받았다.
일본 규슈대학교 의학부 방문연구원,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학과장을 지낸 뒤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해 컴퓨터 백신 사업에 뛰어들었다.
경영 일선에서 물러나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교 대학원에서 경영학 석사학위를 받은 뒤 카이스트(KAIST)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와 대통령선거에 나섰으나 각각 박원순 후보와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하고 출마를 접었다.
서울 노원구병 재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해 공동대표에 취임했으나 얼마 지나지 않아 치른 재보선에서 참패하자 책임을 지고 대표에서 사퇴했다.
새정치민주연합을 탈당하고 국민의당을 창당해 천정배 의원과 공동대표를 맡았다.
국민의당 소속으로 서울 노원구병에 출마해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국민의당 총선 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이 제기되자 당대표에서 물러났다.
대선 출마를 공식 선언한 뒤 손학규 후보와 박주선 후보를 상대로 7차례 전국 순회경선 모두에서 압승하며 국민의당 대선후보로 확정됐다.
대선에서 패배한 뒤 잠시 일선에서 물러나 있다가 국민의당 안팎의 반발을 무릅쓰고 당대표로 정계에 복귀했다.
바른정당과 통합을 추진해 바른미래당을 창당한 뒤 대표에서 물러났다가 한 달 만에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돌아왔다.
지방선거에서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지만 낙선하자 또 일선에서 물러났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정치권에 복귀해 소속했던 바른미래당을 나와 국민의당을 창당했지만 의석 3석을 확보하는 데 그쳤다.
정권교체와 다당제 정치개혁이라는 대의를 안고 제20대 대통령 선거에 출마했다. 완주해도 승산이 없게 되자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로 보수야권 후보를 단일화하는 승부수를 던져 윤 후보의 당선에 기여했다. 이후 대통령직인수위원장을 맡았다.
감성보다 이성에 호소하는 정치 스타일과 반듯한 이미지로 새로운 리더십을 제시하며 지지층을 확장해 왔다.
다만 국가경영과 기업경영을 혼동하는 아마추어 정치인이라는 비판도 듣는다.
◆ 활동의 공과
△정권교체 성공과 대통령직인수위원장 선임
안철수는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와 손잡고 정권교체에 성공했다.
윤석열 후보가 근소한 표 차이로 승리했기에 막판 단일화로 윤 후보의 손을 들어준 안철수가 기여한 바가 적지 않다는 의견이 나왔다.
윤석열 당선인은 3월13일 안철수를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했다. 윤 당선인은 “안철수 대표는 저와 국정운영 가치와 철학을 공유하고 있다”며 “안 대표도 인수위원회를 이끌 의지가 있고 저 역시 적임자로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안철수는 인수위원회 구성에 깊이 관여했다. 전체 인수위원 가운데 3분의 1가량이 안철수 쪽 인사로 분류된다.
김도식 서울시 정무부시장(사회복지문화분과), 신용현 전 국민의당 의원(대변인), 이태규 국민의당 의원(기획조정분과) 등은 국민의당 출신이다.
신성환 홍익대 경영학부 교수(경제1분과), 유웅환 전 SK 혁신그룹장(경제2분과), 고산 에이팀벤처스 대표(경제2분과), 남기태 서울대 재료공학부 교수(과학기술교육분과), 백경란 성균관대 의대 교수(사회복지문화분과) 등은 안철수가 추천한 인사다.
안철수는 3월18일 인수위 전체회의에서 "우리에게 남은 53일간 휴일 없이 일해야 한다"며 "함께 일하는 새정부 동료로서 부처 공무원들과 서로 존중하는 마음을 지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21년 10월1일 서울 여의도 국회 잔디광장 분수대 앞에서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 선언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 및 후보 사퇴
안철수는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으나 완주하지 못했다.
2021년 10월1일 안철수는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기득권 양당이 간판선수만 교체하는 정권교체는 구 적폐를 몰아낸 자리에 신 적폐가 들어서는 적폐 교대만 반복할 뿐”이라며 “이제는 5년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탈출하기 위해 판을 갈아야 할 때”라고 말했다.
세 번째로 대선에 도전하는 것인데다 예전과 달리 지지율이 한 자릿수에 불과한 상황에서 쉬운 도전이 아니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를 선언했을 때 대선에 나가지 않겠다고 한 말을 번복했다며 곱지 않게 보는 시선도 있었다. 이와 관련해 안철수는 “서울시장에 당선되면 대선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말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대선후보 여론조사에서 안철수의 지지율은 초반에는 5% 안팎에 그쳤으나 시간이 지나며 10%를 넘기도 했다.
윤석열 국민의힘 후보가 선거 과정에서 실언과 실수를 반복하고 국가 정책에 대한 이해 부족 등 결함을 드러내면서 중도층과 청년층 등 부동층 표심이 안철수 쪽으로 옮겨갔기 때문이다.
그러면서 보수야권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도 높아졌다. 단순 지지율만 보면 안철수가 크게 뒤처졌으나 보수야권 후보 단일화를 가정한 경우에는 안철수의 지지율이 윤 후보와 비등하거나 오히려 높았다.
안철수가 세 번째로 대선에 도전하는 데다 안철수와 윤석열 후보 중 어느 한 쪽이 압도적으로 유리한 상황도 아니었기 때문에 단일화 방식과 조건 등에 관한 합의가 쉽지 않았다. 2022년 2월20일 안철수는 단일화 최종 결렬을 선언하기도 했다.
안철수와 윤 후보는 투표일을 6일 앞둔 3월3일 마지막 TV토론이 끝난 뒤 만나 새벽까지 회동하고 단일화에 전격 합의했다.
안철수는 대선후보에서 사퇴하고 국민의당은 대선 후 국민의힘과 합당하기로 결정했다.
△서울시장 보궐선거 출마 및 단일후보 선정에서 패배
안철수는 2020년 말 다음 대통령선거 출마 의지를 일단 접고 2021년 4월에 치러지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는 우회로를 선택했다.
안철수는 2020년 12월20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은 대선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정권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만은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며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고 말했다.
5년 동안 주택 74만6천 호를 공급한다는 내용의 부동산 공약도 내놓았다.
안철수는 2021년 1월14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문재인 정부에서 소외됐던 3040세대, 5060세대를 위해 주택을 공급하고 민간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5년 동안 주택 74만6천 호를 공급하겠다”고 공약했다.
부동산 관련 규제완화 정책도 함께 내놓았다. 부동산 세금을 낮추고 고가주택 기준을 상향조정하는 등 세금부담 경감을 약속하면서 주택담보인정비율(LTV)과 총부채상환비율(DTI) 등 금융규제도 완화하겠다고 했다.
안철수는 민주당을 탈당한 금태섭 전 의원과 제3지대 후보 단일화를 먼저 이룬 뒤 보수야권 후보 단일화에 나섰다.
안철수는 국민의힘 후보로 확정된 오세훈 전 시장을 만나 단일화에는 뜻을 같이했으나 그 방식을 놓고 신경전을 펼치다가 여론조사 결과에 따르기로 합의했다.
여론조사 결과 안철수는 보수야권 후보 단일화에서 오세훈 후보에게 패배했다.
안철수는 2021년 3월23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결과에 승복하며 야권 승리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2021년 4월7일 서울시장 재보궐 선거에서 보수야권 단일 후보인 오세훈 후보가 57.50%를 득표해 당선됐다. 오세훈 서울시장은 안철수와 서울시 공동경영 약속에 따라 안철수의 비서실장을 지낸 김도식을 서울시 정무부시장으로 발탁했다.
그러나 국민의힘과 국민의당의 합당까지는 이르지 못했다. 안철수는 2021년 8월16일 기자회견을 열고 합당 결렬을 선언했다.
△보수 야권과 접촉면 넓혀
안철수는 21대 국회가 열린 뒤 점차 보수 야권과 접촉면을 넓혔다.
부동산정책이나 공수처 구성과 운영 등 주요 정치 쟁점에서 문재인 정부를 비판하며 국민의힘과 공조체제를 유지하는 모습을 보였다. 여권 인사들을 향해 공격 수위를 높이는 한편 안보정책에서도 국민의힘과 비슷한 기조를 이어갔다.
국민의당과 국민의힘 의원들 사이 교류도 많아졌다.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와 주호영 국민의힘 원내대표가 국회 현안을 공유하고 당 차원의 연대 방안을 논의하는가 하면 두 당이 공동 연구모임인 ‘국민미래포럼’을 결성해 정책 토론을 진행하기도 했다.
안철수는 국민의힘을 향해 계속해서 ‘야권이 혁신경쟁을 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안철수는 2020년 9월23일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야권의 혁신 과제’를 주제로 강연을 하며 “지금은 선거 준비라든지 통합, 연대를 고민할 수준은 안 된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야권에 귀를 닫은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혁신 경쟁을 벌일 때”라고 덧붙였다.
안철수는 2020년 11월6일 국민미래포럼 초청강연에서 “야권재편으로 새로운 혁신 플랫폼을 만들어야 한다”며 헤처모여식 야권 재편을 주장하기도 했다. 단순한 연대에서부터 신당 창당 가능성까지 염두에 두고 정계개편을 제안한 것이다.
안철수가 보수야권과 접촉면을 넓히며 보수야권에 안착하기를 시도한 것은 총선에서 의석 3석을 확보하는 데 그치며 정치적 영향력이 크게 줄었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 더 이상 중도실용 노선을 고수하며 홀로서기를 유지하기가 어려워졌다.
△제21대 총선에서 국민의당 3석 확보
안철수는 실용중도 노선을 앞세우며 제21대 국회의원 선거에서 10~15석을 확보한다는 목표를 세웠지만 3석을 얻는 데 그쳤다.
중앙선거관리위원회가 2020년 4월16일 확정한 선거 결과를 보면 국민의힘은 비례대표 정당투표에서 6.79%의 득표로 의석 3개를 확보했다.
안철수는 선거기간에 기득권 양당을 견제하는 역할을 하겠다며 민심을 설득하는 데 주력했다.
국민과의 약속을 지키는 ‘언행일치’를 보여주겠다며 총선에 앞서 2020년 4월1일 여수 이순신광장에서 출발해 선거기간 중 국토대장정 마라톤 430km를 완주했다.
하지만 총선 결과 거대 양당 쏠림 현상은 심화했고 특히 더불어민주당은 180석에 가까운 의석을 얻어 거대 여당으로서 막강한 권한을 쥐게 됐다.
제20대 국회(2016~20년)에서 안철수는 38석의 옛 국민의당을 이끌었지만 21대 총선을 앞두고 새로 창당한 국민의당은 3석으로 쪼그라들었다.
안철수는 총선이 끝난 이틀 뒤인 2020년 4월17일 서울 마포구 국민의당 서울시장 사무실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국민과 함께하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약속을 지키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국민의당이 꼭 보여드릴 것”이라며 “거대 정당들은 선거가 끝나면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이 시작”이라고 말했다.
그는 “투표하신 분의 6.8%, 거의 200만 명에 이르는 분들이 저희를 지지해주셨다”며 “마음속으로 지지하면서도 양극단의 진영 대결 때문에 할 수 없이 거대정당 중 하나를 찍을 수 없었던 그 마음도 저는 생각하고 있다”고 덧붙였다.
▲ 안철수 국민의당 대표가 2020년 3월1일 오후 대구시 중구 계명대학교 대구동산병원에서 코로나19 확진자 진료를 마친 뒤 비상대책본부 건물로 돌아가고 있다. <연합뉴스>
△대구에서 코로나19 의료봉사 활동
대구를 중심으로 코로나19가 급속도로 번져 큰 문제가 되자 안철수는 부인 김미경 서울대학교 의과대학 교수와 함께 대구로 내려가 의료봉사를 시작했다.
국민의당 공보실은 “안 대표가 대구 봉사활동의 시한을 정하지 않고 있다”며 “안 대표는 자원봉사 시민 대열 속에서 봉사활동에 참여하기로 했다”고 전했다.
대구 의료봉사를 시작한 뒤 국민의당은 한동안 최고위원회의 등 당 일정을 잡지 않았다.
안철수는 성명을 내고 “코로나19에 속수무책인 정부를 지켜보면서 지금 국가가 제 역할과 책임을 다하고 있는지 묻지 않을 수 없다”며 “국가는 보이지 않고 정부는 무능하지만 우리는 빠른 시간 안에 이겨낼 수 있다는 희망과 확신을 품는다”고 말했다.
안철수의 의료봉사를 두고 긍정적 평가가 많이 나왔다. 일부에서는 안철수가 의사로 일한 지 오래돼 그의 의사면허가 유효한지를 놓고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안철수 측은 의사면허가 여전히 유효하다고 해명했다.
박지원 민생당 의원은 KBS라디오 김경래의 최강시사 인터뷰에서 “이번에 안철수 대표 부부가 대구에서 의사로서 봉사한 것은 너무 잘한 일”이라며 “보수 대통령후보의 길을 뚜벅뚜벅 가고 있다”고 평가했다.
실제로 안철수가 의료봉사를 시작한 뒤 안철수의 대선주자 지지도와 국민의당 정당 지지도가 오르는 효과가 나타나기도 했다.
안철수는 과거에 대선주자 가운데 비호감도가 가장 높은 인물로 꼽히기도 했는데 의료봉사 이후로 호감도가 늘어난 것으로 파악된다.
△정계복귀 후 국민의당 창당
안철수는 2020년 1월 외국에서 돌아와 정치권에 복귀했다. 원래 소속인 바른미래당에서 정치를 재개할 것이라는 관측이 있었지만 곧 탈당한 뒤 신당 창당 작업에 들어갔다.
안철수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3위로 낙선한 뒤 독일과 미국 등에서 유학하며 '정치적 휴식'을 취했는데 2019년 말부터 정치에 복귀할 조짐을 보였다. 2020년 총선을 앞두고 안철수의 정치적 역할을 요구하는 목소리도 커졌다.
안철수는 2020년 1월2일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통해 정계복귀를 공식적으로 선언한 뒤 같은 해 1월19일 귀국했다. 귀국 당시 인천공항에서 만난 기자들에게 총선에 출마하지는 않겠다고 말했다.
귀국 다음 날인 2020년 1월20일 현충원 참배를 시작으로 정치 행보에 나섰다. 애초 바른미래당에 남아 정치활동을 이어나갈 의사도 있었지만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와 뜻을 모으지 못했다.
안철수는 손 대표에게 당대표에서 물러나 비상대책위원회 체제를 구성할 것을 요구했는데 손 대표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결국 안철수는 바른미래당을 탈당한 뒤 독자 정당을 만들어 정치활동을 이어가기로 했다.
안철수는 신당을 만드는 과정에서 ‘안철수신당’, ‘국민당’ 등의 이름을 내걸려고 했지만 모두 중앙선거관리위원회로부터 정당 명칭으로 사용할 수 없다는 유권해석을 받았다. 결국 과거 창당에 참여한 적이 있었던 ‘국민의당’ 이름으로 신당을 창당했다.
보수진영은 안철수를 향해 끝없이 구애의 손을 내밀었다. 미래통합당이 구성되기 전부터 과거 안철수와 바른미래당에서 한솥밥을 먹었던 유승민계의 새로운보수당 쪽에서 안철수에게 합류를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후 미래통합당(현 국민의힘)과 그 위성정당인 미래한국당도 안철수에게 힘을 합치자는 뜻을 보냈지만 안철수는 그때마다 ‘실용적 중도정치의 길을 갈 것’이라며 통합을 거부했다.
안철수는 “외롭고 힘들지라도 국민께 약속한 실용적 중도정치의 길을 가겠다”고 말하며 미래통합당 등과의 선거연대에 선을 그었다. 결국 안철수계 의원들 상당수는 지역구 출마를 위해 안철수의 국민의당에 함께하지 않고 미래통합당으로 넘어갔다. 권은희, 이태규 두 의원만 국민의당에 합류했다.
안철수는 2020년 4월 총선에서 국민의당에서 비례대표만 공천하고 지역구 후보는 따로 내지 않기로 했다.
▲ 안철수 국민의당 창당준비위원장이 2020년 2월20일 서울 마포구 케이터틀에서 열린 ‘자영업 침체 원인과 대안을 말하다’ 토론회에서 “4차 산업혁명 때문에 소상공인들이 처한 상황이 더 열악해질 가능성이 높아 국가 차원의 대비가 어느 때보다도 절실한데 정부가 경제문제를 제대로 해결하지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사진은 안 위원장이 토론회에서 박수를 치고 있는 모습. <연합뉴스>
△독일과 미국 유학
안철수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같은 해 9월1일 독일로 떠났다. 독일 뮌헨에 있는 막스플랑크연구소의 초청을 받아 방문연구원 신분으로 연구를 진행했다.
독일에 유학 간 뒤에는 국내 정치권과 특별한 교류가 없었다. 안철수의 측근들은 그의 복귀 가능성을 지속적으로 이야기했지만 안철수는 2019년 10월 독일에서 미국으로 거처를 옮겨 정계 복귀 시점이 더 불확실해졌다.
안철수는 2019년 10월6일 트위터에 "미국 유학 계획을 오래 전부터 세웠다“며 ”독일을 떠나 10월1일부터 미국 스탠퍼드 법대의 법·과학과 기술 프로그램에서 방문학자로 연구를 이어가기로 했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해외에서 유학하는 동안 저서 ‘안철수, 내가 달리기를 하며 배운 것들 – 인내하며 한 발 한 발 내딛는 삶에 대하여’를 출간했다.
안철수는 이듬해인 2020년 1월 한국으로 돌아와 정계에 복귀했다. 유학생활은 1년4개월 정도였다.
△서울시장에 출마해 3위로 낙선
안철수는 2018년 6·13 지방선거 때 서울시장 선거에 출마했지만 3위로 낙선했다.
그는 서울시장 출마를 공식적으로 선언하는 자리에서 '서울의 혁신신화, 성공신화를 쓰겠다'고 강조했다. ‘바꾸자, 서울! 혁신경영 안철수’를 슬로건으로 내놓았다.
인공지능과 사물인터넷, 빅데이터 기술을 적용해 서울에서 사고와 재해, 범죄 예방 확률을 높이며 코딩 교육과 토론 교육을 방과후학교 프로그램에 도입하는 방안 등을 서울시장 공약으로 내놨다.
'일자리 넘치는 창업도시, 서울'을 목표로 창업을 막는 제도와 규제, 금융장벽을 낮추고 '디지털 행정혁신, 서울'을 위해 블록체인 기술에 기반한 행정서비스를 마련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따뜻한 공동체 도시, 서울'을 만들기 위해 각종 사회보장제도의 사각지대를 해소하고 사회안전망을 촘촘히 만들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지하철 역사에 미세먼지 저감 시설을 설치하고 마을버스 노선을 늘리겠다고도 했다. 기존 서울시 행정의 약점으로 강남 집값과 미세먼지 문제를 거론했다.
하지만 2018년 6월13일 지방선거에서 안철수는 19.55%의 득표율에 그쳐 3위에 머물렀다. 1위인 박원순 서울시장(52.79%)는 물론 김문수 자유한국당 후보(23.34%)에도 밀리며 정치적 위상에 타격을 입었다.
안철수는 2018년 7월12일 여의도의 한 카페에서 기자간담회를 열어 “정치 일선에서 물러나 성찰과 채움의 시간을 지니고자 한다”고 말했다.
▲ 2020년 1월27일 안철수 전 바른미래당 공동대표(오른쪽)와 손학규 바른미래당 대표가 국회에서 만나 언론공개 행사를 마친 뒤 비공개 회동을 위해 이동하고 있다. <연합뉴스>
△바른미래당 창당하고 인재영입위원장 맡아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2018년 1월2일 비공개 회의에서 신설 합당 방식으로 합당하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다음 날 통합추진 협의체를 만들었다.
안철수는 유승민 전 바른정당 대표와 함께 통합추진위원장으로서 신당 창당에 힘썼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은 2018년 2월13일 원내 30석 규모의 제3당 ‘바른미래당’으로 출범했다.
안철수는 합당과 동시에 대표를 내려놓고 2선으로 물러났다가 한 달 만인 3월16일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복귀했다.
안철수는 인재영입위원장으로서 여러 인재들을 영입했다.
인천 송도국제도시 개발 특혜 의혹을 제기한 정대유 전 인천시 시정연구단장, 자유한국당에서 탈당한 전현직 지방의회 의원, 서진웅 전 삼양홀딩스 임원, 정수경 변호사, 조용술 꿈꾸는골목 대표, 용성욱 한국IT융합기술협회 부회장 등을 영입했다.
장성민 전 의원도 영입했다. 장 전 의원은 김대중 전 대통령의 야당 총재 시절 비서를 지냈고 종합편성채널 TV조선에서 시사프로그램을 진행한 경험이 있다.
△국민의당 당대표로 복귀
안철수는 2017년 8월27일 국민의당에 새 대표로 복귀했다.
안철수는 국회 의원회관 대회의실에서 열린 국민의당 전당대회에서 2만9095표(51.09%)를 얻어 대표에 선출됐다. 과반 득표율로 결선투표 없이 당선을 확정했다. 임기는 2019년 1월까지로 2018년 지방선거와 재보궐선거 등을 이끌게 됐다.
안 대표는 당대표 선출로 대선 패배 3개월여 만에 다시 정치 전면에 나서게 됐다. 당대표 선거 출마에 대한 당내 반발이 거셌지만 당원들의 재신임을 얻는 데 성공했다.
이번 당선으로 안철수는 국민의당의 창업주이자 간판임이 다시 확인됐다.
백혜련 더불어민주당 대변인은 “문재인 대통령의 공약과 안 대표의 대선후보 시절 공약이 비슷한 부분이 많기 때문에 적폐청산과 개혁입법을 추진하는 데 초당적 협력이 이뤄질 것으로 기대한다”고 밝혔다.
정용기 자유한국당 원내수석대변인은 “문재인 정부가 인사청문 정국 등에서 오만한 인사를 할 수 있었던 건 국민의당이 보여준 자세, 처신 등과 무관치 않다”며 “문재인 정부의 독선, 독주를 견제하는 야권 공조를 굳건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19대 대선에서 '뼈아픈' 참패
안철수는 2017년 5월9일 19대 대선에서 득표율 21.4%로 3위에 그쳤다.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41.1%,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는 24%를 얻었다.
안철수는 문재인 후보를 정면 공격하면서 자신과의 양자대결로 유도하는 전략을 구사했으나 결과적으로 이 전략은 실패로 돌아갔다.
텃밭으로 여겼던 호남에서조차 문 후보에게 큰 표 차이로 뒤져 참패해 지역적 지지기반을 잃었다는 평가를 받았다.
안철수는 대선 과정에서 국민의당 중심의 집권 전략인 ‘자강론’을 내세웠다.
안철수는 2016년부터 자강론을 주장했는데 2017년 3월 지지율이 오르면서 자강론이 먹히는 듯했다. 2017년 3월30일 발표된 리얼미터의 지지도 조사에서 안철수는 17.4%의 지지율로 안희정 충남지사를 끌어내리며 10개월 만에 2위에 올랐다.
안철수의 지지율이 오르면서 박지원 국민의당 대표와 김무성 바른정당 고문 사이 물밑 라인을 통해 세를 모으던 중도·보수 통합론이 잦아들었다. 안철수는 2017년 4월2일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열린 서울·인천지역 순회경선에서 “정치인에 의한 공학적 연대론은 모두 불살랐다. 국민에 의한 연대, 그 길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라며 인위적 연대론과 사실상 결별함을 선언했다.
2016년 20대 총선 때 민주당의 야권통합 요구에 맞서 “기득권 양당체제를 깨뜨리겠다. 광야에서 혼자 죽어도 좋다”고 외쳤던 것과 흡사한 태도였다.
△2016년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 약진
안철수는 2016년 4·13 총선에서 ‘국민의당 돌풍’을 일으키며 최상의 결과를 얻었다.
국민의당은 선거 전 여론조사와 달리 정당명부 투표에서 새누리당에 다음가는 지지율을 얻어 전국정당의 면모를 보여주었다. 여세를 몰아 선거에서 38석이라는 큰 성과를 거두었다.
안철수 본인도 서울 노원구병 지역구에서 52.33%의 득표율로 재선에 성공했다.
4·13 총선은 16년 만에 양당체제가 허물어지고 다당체제의 출발점이 됐다는 평가를 받았다.
새누리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국회 과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해 어느 당도 국민의당의 협조 없이는 법안 처리를 못하게 됐다. 국민의당이 '캐스팅보터'의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하지만 국민의당은 호남에서 큰 성과를 거둔 것과 달리 그밖의 지역에서는 의미 있는 성과를 거두지 못했다. 선거에서 획득한 국회 의석 38석 가운데 지역구 25석은 수도권 2석, 호남 23석이었다. 나머지 13석은 비례대표 의석이었다.
▲ 2016년 5월2일 안철수 국민의당 공동대표가 국회에서 열린 국민의당 최고위원회의에 국민대표 자격으로 참석한 고 신해철의 아내 윤원희의 '신해철법' 통과 촉구 발언을 듣고 있다. 왼쪽부터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 윤원희, 안철수 공동대표. <연합뉴스>
△새정치민주연합 탈당
안철수는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했다.
문재인 대표가 조선대 강연을 통해 문재인, 안철수, 박원순 3인체제로 지도부를 구성하자고 했으나 안철수는 이를 거부했다. 안철수는 혁신 전당대회를 역제안했으나 이번에는 문재인 대표가 이를 거부했다.
안철수는 당이 심각한 위기상황이라고 봤고 그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서는 특단의 대책이 필요하다고 판단해 혁신 전당대회라는 타개책을 내놓은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는 2015년 12월13일 국회 정론관에서 “새정치민주연합을 떠나 정권교체를 할 수 있는 정치세력을 만들겠다”며 탈당을 선언했다.
안철수는 “지금 야당은 국민께 어떤 답도 드리지 못한다. 세상을 바꿀 수도, 정권교체의 희망을 만들지도 못한다. 더 큰 혁신은 배척당하고 얼마 되지 않는 기득권 지키기에 빠져 있다”면서 문재인 대표를 비판했다.
△제19대 국회 의정활동
안철수가 제19대 국회(2012~16년)에서 발의한 18건의 법안 가운데 6건이 본회의를 통과했다. 국민의당은 이를 두고 안철수 후보가 문재인 후보보다 의정활동을 훨씬 더 성실하게 한 증거라고 했다.
김유정 안철수 대통령후보 선거대책위원회 대변인은 논평을 통해 “문 후보는 법안 4건을 발의하는 데 그쳤는데 그마저도 본회의를 통과한 법안은 1건도 없다”며 “문 후보의 국회 상임위원회 출석률은 62%에 불과한데 안 후보는 출석률 85%를 넘는 성실함을 보여줬다”고 말했다.
안철수는 2013년 4월24일 서울노원병 지역구 국회의원 보궐선거에서 60.5%의 득표율로 당선되어 국회에 입성했다. 해당 지역구에서는 노회찬 전 진보정의당 의원이 삼성X파일 폭로 사건으로 의원직을 상실해 보궐선거가 진행됐다.
△제18대 대선에서 문재인에게 양보
안철수는 2012년 9월19일 제18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선언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안철수는 유력한 대선주자였다. 대선 전 여론조사에서 박근혜 새누리당 후보가 근소한 차이로 1위를 달렸고 그 뒤를 무소속인 안철수와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가 쫓고 있었다.
그러나 대선을 약 한 달 앞두고 문재인 후보가 안철수를 역전해 지지율에서 조금씩 앞서나갔다. 안철수는 2012년 11월23일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후보 사퇴를 선언했다.
안철수는 정권교체를 위해 문재인 후보에게 양보한다고 밝혔는데 단일화 과정에서 문 후보 측과 여러 차례 마찰도 있었던 것으로 알려졌다.
△서울시장 선거에서 박원순에게 양보
안철수는 2011년 9월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무소속으로 출마할 가능성이 있다는 말이 나오면서 화제에 올랐다.
안철수는 정치입문 가능성을 단호하게 부정하다가 점차 태도를 조금씩 바꿔 관심을 끌었다.
안철수는 언론 인터뷰에서 “현 집권세력이 역사를 거스르고 있는데 내가 역사의 물결을 거스르는 결정을 내리진 않을 것”이라며 “야권 단일화에 참여하는 것도 고려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박원순 변호사에게 양보해야 하는지, 선거에 출마하기 위해 서울대 융합대학원 원장직을 그만두게 되면 신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닌지, 정치를 한다면 10년 정도는 꾸준히 해야 할 텐데 그럴 수 있을지를 고민하고 있다고 여지도 남겼다.
안철수는 결국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겠다고 발표함으로써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인 박원순 변호사에게 사실상 양보했다. 박원순 후보는 정몽준 후보를 꺾고 서울시장에 당선됐다.
△’무릎팍 도사’ 출연
안철수가 대중적 관심을 받은 것은 2009년 6월 MBC 예능프로그램 ‘무릎팍 도사’에 출연하면서부터다.
무릎팍 도사 안철수 편은 16.6%의 높은 전국 시청률을 보였고, 이를 계기로 안철수의 대중적 인지도가 하루 아침에 급등했다. 안철수는 당시 정치에 입문할 생각이 전혀 없었다고 한다.
안철수는 2010~11년 ‘시골의사’ 박경철 안동신세계 연합클리닉 원장과 함께 대학을 돌며 ‘지방대학 기 살리기’ 강연에 나섰다. 이를 본 법륜 스님이 청춘콘서트를 열자고 제안했고, 안철수는 이를 받아들여 대중과 소통을 늘리며 젊은이의 멘토 이미지를 확실하게 굳혔다.
청춘콘서트 열풍으로 인지도가 높아지고 젊은층에서 전폭적 지지를 받게 되자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할 뜻을 내보였다. 그러나 박원순 당시 희망제작소 상임이사에게 양보했다.
△안철수연구소 설립
1995년 3월15일 안철수연구소를 설립했다.
안철수는 사업을 잘 모르는 상태에서 안철수연구소를 시작했기 때문에 처음 4년 동안에는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안철수연구소의 월급날은 매월 25일이었는데 월초부터 직원들의 월급을 걱정해야 하는 지경이었고, 안철수는 월급을 받지 않으면서 직원들에게는 월급을 줄 때도 있었다고 한다.
2년 뒤인 1997년 세계적 보안솔루션 업체인 미국의 맥아피(Mcafee)로부터 ‘1천만 달러’에 회사를 인수하겠다는 제의가 왔지만 거절했다.
안철수는 “회사를 매각한다면 그 후 직원들이 해고되어 실업자가 된다는 사실을 직시했고, 또한 한국의 백신이 맥아피 같은 해외 업체에 의해 장악당하는 그런 결과를 원하지 않았기 때문에 거절했다”고 밝혔다.
1999년 흔히 체르노빌 바이러스로 불리는 CIH 바이러스의 등장으로 컴퓨터 백신에 대한 수요가 늘어나면서 안철수연구소는 흑자전환했다. CIH 바이러스로 인해 국내에서 30만 대가량의 컴퓨터가 먹통이 되면서 기업과 공공기관 등에서 수천억 원의 피해가 발생하자 백신에 대한 관심이 급증했다.
이후 안철수연구소는 매출이 계속 늘어나 1999년 대한민국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한글과컴퓨터에 이어 두 번째로 연매출 100억 원을 넘겼고, 나중에 세후순익 100억 원은 안철수연구소가 국내 소프트웨어 업계에서 최초로 달성했다.
◆ 비전과 과제
▲ 국민의힘 윤석열 대선 후보가 2022년 3월5일 경기도 이천시산림조합 앞에서 국민의당 안철수 대표와 공동유세를 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는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있다.
안철수는 3월14일 기자간담회에서 “부족한 사람이 국민통합 정부 성공을 위한 일념 하나로 중책을 맡았다"며 "앞으로 임명될 인수위원들과 함께 새 정부의 비전과 철학을 정립하고 국정과제와 청사진을 위한 밑그림을 차분하지만 신속하게 준비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윤석열 정부는 코로나19 장기화와 대외정세 불안, 사회적 갈등 심화 등 안팎으로 어려운 상황에서 출범하게 됐다. 안철수는 이런 상황을 극복할 수 있는 정부의 기틀을 마련하도록 인수위를 이끌어야 한다.
20대 대선에서 0.7%포인트 차이로 승패가 갈림으로써 국민통합이 더욱 절실해졌다. 이에 따라 그동안 제3 정당을 이끌면서 새 정치를 주장해온 안철수의 역할에 관심이 모이고 있다.
윤석열 당선인과 안철수 인수위원장은 국민의힘과 국민의당 사이 세력 통합을 원만히 이루어야 공동정부 구성까지 자연스럽게 나아갈 수 있다. 후보 단일화 과정에서 국민의힘 내부에 안철수에 반대하는 목소리가 없지 않았던 만큼 양쪽의 갈등을 극복하는 일이 최우선 과제다.
당장 인수위원회 구성을 두고 국민의힘에서 불만이 새어나오기도 했고 안철수의 측근인 권은희 국민의당 원내대표가 합당을 수용할 수 없다며 당에 제명을 요청하는 등 갈등 양상이 나타났다.
안철수 개인으로서는 인수위원장 임무를 마친 뒤에 어떤 정치행보를 할지도 고민해야 한다. 국무총리를 맡는 방안이 유력하다는 전망이 나오고 있지만 국무총리로는 정치력을 행사하는 데 한계가 있어 차기 대통령선거를 바라보기 어렵다는 지적이 있다.
다가오는 큰 선거인 6월 지방선거에서 광역단체장에 출마할 가능성도 있다. 경기도지사 후보로 거론되기도 한다.
◆ 평가
▲ 2015년 1월3일 안철수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와 문재인 의원이 국회 의원회관에서 안 공동대표 주최로 열린 장하성 교수 초청 신년특집 좌담회 '고장난 한국경제 진단 및 함께 잘사는 정의로운 국가'에서 만나 악수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가 2012년 9월 대선 출마를 선언하자 뉴욕타임스는 그를 ‘한국의 정치 스타’로 표현했다. 프랑스 AFP는 “부패와 정치, 기업권력으로부터 때묻지 않은 인물”로 평가했다. 일본의 극우 언론 산케이신문은 “지금까지의 정치인과 다른 신선한 인물”이라고 소개했다.
국내 기성 정치권에서는 대체로 이와 상반된 반응을 보였다.
이회창 전 총재는 “안 원장 같은 분은 유능한 과학자로, 컴퓨터 백신 전문가로 유능한 사람이니 그 분야에서 세계 1등이 되게 해줘야 한다. 정치권이 부추겨서 망가뜨리는 것은 안타깝지만 본인도 간이 배 밖으로 나오고 있다”고 혹평했다.
김종인 전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안철수를 놓고 “경제민주화에 대한 이해가 완전히 부족한 사람”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정세균 의원은 “정치를 모르는 초짜는 (대통령 후보로) 곤란하다”고 직격탄을 날렸다. 김무성 의원은 안철수의 대선 출마에 대해 “경험 없는 아마추어 정권이 나서면 대한민국은 더 큰 위기와 불안에 빠져 국민을 고생시킬 것”이라며 안철수의 출마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혔다.
그러나 긍정적인 평가도 적지 않았다.
“정치에 대한 불신, 기성 정당에 대한 환멸, 새로운 인물에 대한 갈망이 겹치면서 안철수 교수 태풍 현상이 있지 않았느냐. 국민들은 바이러스 백신 무료 배포, 대기업 독식 비판과 분노 등 안철수 교수가 공적 헌신을 했던 모습의 연장선에서 감동을 받는 것 같다”는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평가가 대표적이다.
2015년 12월 새정치민주연합에서 탈당한 뒤 공개석상과 사석에서 이전과는 다르게 거침없는 화법과 유머를 구사해 화제가 됐다.
기자들과 영화를 관람한 뒤 ‘더불어민주당’이라는 당 이름에 대해 “지금도 재미있잖나. 더‘불어’, 또‘ 터진 (민주당)”이라거나 자신의 탈당에 빗대어 “안철수없당”이라고 말하기도 했다.
또 머리 스타일을 어디서 바꾼 것이냐는 질문에 “지역구에서 어디 한 곳만 가면 아줌마들이 싫어해 미용실을 돌아다닌다”고 말했다.
틀에 박힌 모범생 이미지와 유약하다는 세평에서 벗어나 단호한 리더십을 지닌 호감형 정치인의 인상을 주기 위한 시도로 풀이됐다.
2016년 4월13일 총선에서 국민의당은 38석을 차지하며 3당체제를 이끌어냈다. 3당체제의 최대 기여자이자 수혜자로 평가받았다.
2017년 대선 국면에서는 또 다른 면모를 보였다.
2017년 3월부터 시작한 국민의당 대선후보 전국 순회경선에서 기존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아닌 중저음의 굵은 목소리로 연설해 관심을 모았다. 표정과 손동작에서도 자신감이 드러나자 ‘이제 진짜 정치인 다 됐다’는 평가가 나왔다.
국민의당 경선 흥행과 함께 다자구도에서 10% 초반대에 머물던 안철수의 지지율이 20%대까지 치솟으며 19대 대선에서 문재인 후보의 강력한 대항마로 떠올랐다. 안철수-문재인 양자구도로 가면 판세가 뒤집힐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기도 했다. 그러나 결국 홍준표 자유한국당 대표에게도 밀려 득표율 3위에 그쳤다.
'안초딩'이라는 별명이 있다. 대선후보로 TV토론에 나와 “내가 MB 아바타입니까? 문 후보님 말씀해보십시오”라고 물었던 발언이 화제가 되면서 생긴 별명이다.
모든 사람에게 나이와 지위고하를 막론하고 존댓말을 쓴다. 반말을 못 한다. 심지어 군의관으로 복무하던 시절에도 병사들에게 반말을 쓰지 못했고, 부부싸움도 존댓말로 한다고 한다. 이는 안철수가 어렸을 때 훈계조차 늘 존댓말로 하시던 어머니의 영향은 받았기 때문으로 알려졌다.
CEO는 대외적으로 회사를 대표하는 일을 하는 사람일 뿐이라고 생각한다. CEO와 직원 모두 수평적 관계에 있고 단지 하는 일이 다를 뿐이며 공유하는 가치관이 있다면 구성원이 바뀌어도 조직은 지속가능하다는 것이다.
하지만 2011년 9월 서울시장 출마와 관련된 기자회견에서 "아무리 수평적 리더십을 지니고 있다고 해도 정부조직이 수평이 되면 곤란하다"고 말하기도 했다.
바둑을 좋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바둑책 수십 권을 탐독한 뒤 대국에 나서며 바둑을 배웠다고 한다. 저서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에서 바둑에서 배운 경영원리를 언급하기도 했다.
그는 “바둑은 부분적 이익보다 전체 국면을 봐야 한다”며 “바둑이 그러하듯 인생이나 사업도 결국은 장기전”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요소를 선점해야 바둑이 편해진다”며 “선점의 중요성을 알기 때문에 회사가 어느 정도 성장한 뒤 관련 있는 영역으로 조인트벤처를 만들어 요소를 지켰다”고 적기도 했다.
'무엇인가에 도전할 때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점' 세 가지로 "첫째, 내가 정말로 의미를 느낄 수 있는 일인가. 둘째,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열정을 지니고 할 수 있는 일인가. 셋째, 실제로 내가 잘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혜택을 줄 수 있는 일인가"를 꼽은 적이 있다.
좌우명은 '남보다 시간을 더 투자할 각오를 한다'인 것으로 알려졌다.
건강관리를 위해 주로 달리기를 한다. 마라톤대회에도 참가할 정도로 달리기를 좋아한다. 대선 패배 후 독일로 갔을 때 오스트리아 비엔나시티 마라톤대회에 참가해 하프마라톤으로 1시간 56분 33초의 기록을 냈다.
고향이 부산이라 프로야구단 롯데자이언츠 팬이라고 한다.
◆ 사건사고
▲ 윤석열 국민의힘 대선후보(왼쪽)와 안철수 국민의당 대선후보가 2022년 3월3일 국회 소통관에서 단일화에 관한 기자회견을 마치고 두 손을 들어올리고 있다. <연합뉴스>
△줄다리기 끝에 윤석열 당선인과 단일화 선택
안철수는 제20대 대통령선거에 출마했다가 윤석열 후보와의 단일화를 선택하며 후보를 사퇴했다.
안철수가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이끌어냈다는 평가도 나왔다. 하지만 단일화 과정은 험난했다.
윤석열의 지지율이 아내 김건희 리스크로 하락하고 안철수의 지지율이 반등하자 야권후보 단일화를 요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졌다.
안철수는 대선 완주 의지를 내비치면서도 단일화 여지를 조금 남겨뒀다.
대선후보 등록 첫날인 2022년 2월13일 안철수는 윤석열에게 여론조사 경선 방식의 야권후보 단일화를 공식 제안했다.
하지만 일주일 만에 단일화 제안을 거둬들였다. 2월20일 안철수는 긴급 기자회견을 열고 “윤석열 후보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며 “더 이상의 무의미한 과정과 시간을 정리한다. 이제부터 내 길을 가겠다”고 단일화 결렬을 공식 선언했다.
대선 투표용지 인쇄를 하루 앞둔 2월27일 윤석열 후보는 단일화 막판 협상을 위해 선거유세 일정을 전격 취소했다. 단일화가 이뤄지는 듯한 기대감을 줬으나 결국 무산됐다.
윤석열 후보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단일화 논의가 최종 합의를 앞둔 상태에서 결렬 통보를 받았다”면서도 “국민들의 열망인 정권교체를 위한 야권통합에 대해 나는 희망의 끈을 놓지 않겠다”고 말했다.
결국 마지막 대선토론이 끝난 3월3일 새벽 안철수와 윤석열이 후보 단일화에 뜻을 모았다.
이날 아침 두 사람은 기자회견을 열고 “오늘부터 정권교체를 향한 국민의 여망을 담아 국민통합과 대한민국의 미래로 가는 대장정을 시작한다”고 선언했다.
△국민의힘과의 통합 시도 실패
안철수는 국민의힘과의 합당을 추진했지만 실패했다.
안철수는 서울시장 보궐선거 때 국민의힘과 합당을 추진한다고 밝혔다. 국민의힘 내부에서도 공개적으로 합당의 필요성을 주장하는 목소리가 나왔다.
그러나 합당 방식에 관해 본격 협상이 이뤄지기도 전에 김종인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국민의당과 국민의힘의 합당에 반대하고 나섰다.
게다가 합당을 하더라도 이른바 '공정 이미지'로 큰 인기를 끌고 있는 윤석열 전 검찰총장과 대선후보 자리를 두고 경쟁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앞서 서울시장 선거를 앞두고 후보 단일화 경선에서 떨어진 후 오세훈 후보의 선거 승리에 크게 기여했다고 보는 사람도 적었다.
2021년 8월16일 안철수는 국민의힘과의 합당 결렬을 선언했다.
안철수는 기자회견을 열고 “단지 합당을 위한 합당, 또는 작은 정당 하나 없애는 식의 통합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도,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고 결렬 이유를 설명했다.
11월1일 안철수는 제20대 대통령선거 출마를 공식 선언했다. 2012년과 2017년에 이어 세 번째 도전이었다.
△서울시장 선거 패배 뒤 ‘바른미래당’ 빠진 현수막 내걸어
안철수는 2018년 서울시장 선거에서 낙선한 뒤 내건 현수막에 바른미래당 이름을 넣지 않아 논란을 빚었다.
안철수는 현수막에 ‘시민 여러분 고맙습니다. 부족한 저에게 보내주신 사랑을 결코 잊지 않겠습니다. 안철수 드림’이라고 적었다. 당 이름은 빼고 자기 이름만 넣은 것이다.
이를 두고 이준석 바른미래당 노원병 당협위원장은 CBS 라디오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해 “당의 후보들이 성적이 안 나와 화를 내면 그 화를 달래는 것이 리더인 안철수 전 후보의 역할“이라며 “안 전 후보가 그 분노를 처리하지 않고 낙선 현수막에 당 이름도 넣지 않았는데 이 때문에 ‘안 전 후보가 당을 생각하고 있나’하는 지적까지 나온다”고 비판했다.
△카이스트 재직 당시 외유성 출장 의혹
안철수는 카이스트 교수로 재직할 당시 해외출장을 여러 차례 다녀왔는데 이 가운데 개인적 ‘외유성 출장’이 몇 차례 있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2018년 4월11일 우상호 더불어민주당 서울시장 예비후보는 국회 정론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안 후보는 국민의 세금으로 운영되는 카이스트에서 미국 유학 중인 딸을 방문하기 위한 출장을 다녔다”며 “딸이 다니는 미국 펜실베이니아대학 관련 출장이 딸 방학기간과 딸 관련 행사에 맞춰져 있다”고 말했다.
우 의원은 안철수가 2009년 3월 동창회 참석 등을 명목으로 미국에 가서 딸이 재학 중인 펜실베이니아 대학을 방문했고, 부인 김미경 교수는 같은 해 10월 펜실베이니아 대학으로 출장갔다. 이 출장 일정에는 딸의 지도교수 면담도 포함됐다.
안철수 부부는 2010년 6월부터 약 3개월 동안 방문연구 등의 목적으로 펜실베이니아 대학에 출장갔는데 이 기간은 딸의 방학이었으며 2011년 5월 출장 때에는 딸의 사교모임 강연에 참석했다고 우 의원은 주장했다.
안철수는 이 의혹을 놓고 “구태정치에서 흔히 쓰는 수법이 본질을 흐리고 물타기를 하는 것”이라며 “김기식 금융감독원장이 의원으로 재직할 당시 외유성 출장을 간 것으로 문제가 되고 있는데 이걸 또 평교수가 학교에 허락을 받고 출장간 것으로 이렇게 물타기하려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국민의당과 바른정당 통합 논의로 내홍
안철수는 2017년 12월 당분간 바른정당과 정책연대를 거치면서 공감대를 이룬 뒤 선거연대를 논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바른정당과 함께하면서 창당정신을 확대해서 튼튼한 제3지대를 만들어 다당제를 확실히 구축하겠다는 것이었다.
이후 국민의당 지도부는 국민의당과 바른정당의 통합을 추진했다. 하지만 이상돈 전 국민의당 의원 등은 안철수가 처음부터 당을 이끌어갈 생각이 없었다며 사퇴해야 한다고 비판했다.
안철수는 호남계와 결별할 것이라는 말도 나왔다.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는 “안철수가 가고 싶은 블루오션은 호남이 아니라 보수의 본토인데 계속해서 호남을 껴안고 갈 수 있느냐”고 말했다.
박지원 전 국민의당 대표 등 국민의당 소속 호남 지역구 의원들 대다수가 통합에 반대했고, 결국 민주평화당 창당에 합류했다.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 부결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인준안이 2017년 9월11일 국회 투표에서 찬성 145표, 반대 145표 동수가 나와 국회법에 따라 부결됐다. 국민의당 소속 의원 중 절반가량이 반대표를 던진 결과로 풀이됐다.
안철수는 이를 두고 "국민의당의 존재감을 드러냈다"며 긍정적 평가를 내놓았다. 그는 "국민의당이 20대 국회에서 결정권을 쥐고 있다"고도 했다.
이를 두고 자유한국당은 ‘오만한 여당의 독주를 멈추고 문재인 정부를 견제하는 기조를 만들었다’고 평가했지만 더불어민주당은 ‘국민의당이 오만하다’고 비난했다.
△2017년 국민의당 당대표 출마로 내홍
안철수가 2017년 8월3일 국민의당 당대표에 도전한다고 선언하자 당 내부에서 반발이 일었다. 사당화라는 비판도 나왔다.
조배숙·주승용을 비롯한 국민의당 의원 12명은 성명을 내고 “책임정치를 실현하고 당을 되살리기 위해 안 전 대표의 전당대회 출마에 반대한다”고 밝혔다.
이상돈 의원은 TBS 라디오 ‘김어준의 뉴스공장’에 출연해 “출마를 반대하는 의원이 절반을 넘을 것”이라며 “적극 지지한 사람은 이언주 의원 한 사람뿐”이라고 말했다. 그는 이어 “어떤 언론이 인지부조화라고 했는데 (출마 선언은) 분명히 상식에 벗어난 것”이라고 덧붙였다.
당권을 놓고 안철수와 경쟁하던 천정배 의원과 정동영 의원도 안철수의 출마 결정을 강하게 비판했다.
정 의원은 기자회견을 통해 “국민의당은 지난 1년 반 사당화의 그림자가 지배했다”며 “정치적 책임을 지지 않고 아무 때나 출마할 수 있고 당선될 수 있다면 이것 또한 사당화의 명백한 증거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천 의원도 안철수의 당대표 도전을 놓고 “누울 자리, 누워서는 안 될 자리조차 구분하지 못하는 몰상식, 몰염치의 극치”라고 비난했다.
안철수는 이런 내홍 속에서도 2017년 8월27일 대통령선거 패배 3개월여 만에 당대표로 복귀했다.
△109인 지지성명 진위 논란
2017년 7월30일 김철근(서울 구로갑) 국민의당 지역위원장이 안철수의 당대표 출마를 촉구하며 지역위원장 109인의 서명을 전달했다고 발표한 것을 두고 조작 의혹이 제기됐다.
국민의당 김현식(천안병)·고무열(유성구갑) 지역위원장 등 6명은 8월6일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서명 과정에 참여한 지역위원장들의 증언에 따르면 취지가 불분명한 질문에 대한 단순한 지지 의사를 표명한 것이 출마에 동의하는 서명으로 둔갑했다”고 주장했다.
이들은 “지금까지 109인의 리스트를 본 사람을 찾을 수 없다”며 “여러 차례의 공개 요구에도 안철수 측이 이 리스트를 밝힐 수 없다는 말만 반복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 의혹과 관련해 서명을 주도한 김철근 지역위원장은 8월4일 교통방송 ‘색다른 시선, 김종배입니다’ 인터뷰에서 “친필 서명을 받진 않고 구두 동의를 받았다”고 해명했다.
그러나 ‘조작 의혹이 있다면 깨끗하게 공개하면 되지 않느냐’는 물음에는 “공개라는 것이 이미 출마를 선언한 상태에서 선거운동 과정에 별로 득이 안 되는 것이기 때문에 일단은 비공개하겠다”며 공개를 거부했다.
△‘극중주의’ 논란
안철수는 국민의당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면서 ‘극중주의’를 내세웠다. 좌우 어디에도 치우치지 않고 중도노선을 걷겠다는 것인데 이를 놓고 당 안팎에서 비판이 이어졌다. 의미 없는 양비론 또는 기회주의라는 것이었다.
이상돈 국민의당 의원은 “영어 단어로 bullshit이나 마찬가지”라고 직격탄을 날렸다. 정동영 국민의당 의원은 “극중주의라는 듣도 보도 못한 구호는 방향이 없고 신념이 없다는 점에서 기회주의적”이라며 “지난 1년 반 당이 걸어온 길이 극중주의라면 실패한 것”이라고 꼬집었다.
안철수가 당대표에 당선된 뒤 ‘선명야당’을 표방한 것 역시 문제가 됐다.
김성태 자유한국당 의원은 “안 대표가 불과 한 달 전 이야기했던 ‘극중주의’조차 그 형용모순에 대해서 이렇다 할 해명이 없는 상태에서 이번에는 ‘선명야당’을 들고 나왔다”며 “극중야당이든 선명야당이든 무엇을 어떻게 하겠다는 것인지 입장을 분명히 해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안철수가 극중주의를 김대중 대통령이 IMF를 극복한 노선과 비교한 점도 도마에 올랐다.
김 전 대통령의 장남인 김홍걸 더불어민주당 국민통합위원장은 “국가를 위기에서 구하기 위해 많은 기득권을 포기하고 희생한 일을 개인의 정치생명 연장을 위한 발버둥과 비유하다니 정말 어이가 없다”며 “‘아전인수’란 말이 이런 분 때문에 생긴 것 아닌가 싶다”고 비난했다.
새정치, 극중주의, 선명야당 등 안철수가 내세운 용어들이 어떤 함의를 담고 있는지 뚜렷이 설명된 적이 없다는 지적도 나왔다.
국민의당 대선평가위원회는 2017년 9월1일 ‘19대 대통령선거 평가 보고서’에서 당대표 안철수의 책임론을 강하게 제기했다. 이 보고서 역시 안철수의 ‘중도노선’을 문제삼았다. 보고서는 “(안철수는) 정책에 대한 입장이 불분명하고 가치관이 정립되지 않은 상태에서 대선을 치렀다”며 “아무런 가치도 담기지 않고 내용도 없는 중도를 표방하면서 오히려 ‘MB 아바타’라는 이미지를 강화했다”고 비판했다.
대선 당시 안철수가 내세운 ‘자강론’과 관련해서도 “모호한 태도로 호남과 영남 모두로부터 외면받는 최악의 결과를 초래했다”는 혹평을 내놨다. 그러면서 “결국 문재인 대통령이 촛불의 메시지를 껴안은 반면 안철수는 보수의 이미지조차 주지 못하고 MB 아바타, 박지원 상왕론 같은 반(反)촛불 이미지에 갇혔다”고 평가했다.
▲ 2014년 4월6일 안철수·김한길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서울 마포구 서교동 홍대앞 '걷고 싶은 거리'에서 ‘기초선거 정당공천 폐지 국민과의 약속입니다’라는 주제로 젊은 세대들과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문준용 입사 관련 증거조작 파문
국민의당은 2017년 6월 문재인 대통령의 아들 문준용의 입사와 관련한 증거조작 파문으로 창당 이래 최대 위기에 몰렸다. 이 파문으로 당 지지율이 역대 최저치인 3.8%까지 곤두박질했다.
사건의 핵심 인물인 이유미와 이준서 전 최고위원이 안철수의 측근인 만큼 그가 어떤 식으로든 책임을 져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았다.
국민의당은 제19대 대선 4일 전인 2017년 5월5일 문준용과 미국 파슨스스쿨 동료라는 사람의 증언이 담긴 음성파일 등을 공개하며 문준용이 고용정보원에 특혜 채용됐다는 의혹을 제기했다.
더불어민주당은 제시된 증거가 조작된 것이라며 고발해 검찰수사가 시작됐다. 국민의당은 2017년 6월26일 증거조작을 인정하고 대국민 사과를 했다.
박주선 국민의당 비상대책위원장은 긴급 브리핑을 통해 “5월5일 문준용의 고용정보원 입사 관련 의혹을 제기한 미국 파슨스스쿨 동료의 카카오톡 캡처화면과 녹음파일이 조작된 것으로 밝혀졌다”며 “국민 여러분께 허위사실을 공표하고 혼란을 드려 죄송하다”고 고개를 숙였다.
국민의당은 자체조사 결과 이를 이유미의 단독 범행으로 결론지었지만 검찰은 이준서 전 최고의원도 공직선거법(허위사실 공표) 위반 혐의로 7월28일 불구속 기소했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이유미로부터 조작된 음성녹음 파일과 카카오톡 캡쳐화면 등을 받아 당 공명선거추진단에 넘겼다. 검찰은 이 전 최고위원이 이유미로부터 받은 제보자료가 허위임을 알았거나 허위일 가능성을 인지했으면서도 국민의당 공명선거추진단 관계자들에게 전달해 이를 공표하도록 한 것으로 파악했다.
국민의당은 이를 두고 “당 진상조사단의 조사 결과와 다른 점은 없다”며 “검찰은 이번 사건이 이유미의 단독 범행이라는 사실관계를 인정하면서도 제보 내용을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이 전 최고위원에 대해 법률적 책임을 물은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유미와 이준서 전 최고위원 둘 다 안철수가 영입한 측근인 만큼 안철수 책임론도 불거졌다.
심상정 정의당 대표는 국민의당이 이 사건을 이유미의 단독 범행이라고 결론내린 것을 놓고 “꼬리를 잘라도 너무 잘랐다”며 “참으로 염치없는 일”이라고 강하게 비판했다.
이유미는 안철수가 카이스트 기술경영대학원 교수로 있을 때 스승과 제자로 만난 사이였다.
이유미는 제18대 대선 때 안철수의 '진심캠프'에 참여했고 그 경험담을 ‘66일-안철수와 함께한 희망의 기록’이라는 책으로 남겼다. 이유미는 검찰 조사에서 혐의를 일부 시인했으나 독자 범행이 아니라 ‘당 윗선’의 지시를 받고 한 일이라고 진술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준서 전 최고위원은 안철수에게서 ‘젊은 IT 창업가’, ‘최고의 인재’라는 말을 들을 정도로 높은 평가를 받았던 사람이다.
안철수는 2016년 1월 트위터에 이준서 전 최고위원, 허지원 지원인스티튜트 대표와 같이 찍은 사진을 올리고 “젊은 IT 창업가들이 마포 당사를 찾아왔다”며 “천하의 인재가 다 모이는 국민의당을 만들겠다”는 말을 남겼다.
안철수는 박주선 전 비대위원장이 증거조작 사실을 처음 공개한 지 16일 만인 2017년 7월12일 기자회견을 열고 정치적, 도의적 책임을 지겠다는 입장을 내놨다. 그는 반성과 성찰의 시간을 보내겠다고 했지만 정계은퇴 여부와 관련해서는 명확한 뜻을 밝히지 않았다.
안철수는 “이번 제보조작 사건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며 “저를 지지해주신 국민 여러분과 이번 사건으로 심적 고통을 느꼈을 당사자에게 사과드린다”고 말했다.
그는 “처음에 소식을 들었을 때 저에게도 충격적인 일이었다”며 사전에 이 사건을 알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안철수는 “더 일찍 사과문을 발표하라는 요청도 많았지만 검찰 수사가 이미 시작된 상황에서는 사실관계를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생각했다”며 “검찰 수사를 지켜보는 것이 필요하다고 판단했다”고 설명했다.
△박근혜 사면 발언
안철수가 박근혜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한 발언을 내놔 정치권이 설전을 벌였다.
안철수는 2017년 3월31일 박 전 대통령 사면과 관련해 질문을 받자 “국민의 요구가 있다면 사면위원회에서 다룰 내용”이라고 말했다.
안철수의 발언을 놓고 추미애 더불어민주당 대표는 “박 전 대통령은 기소조차 안 된 적폐의 본산”이라며 “벌써부터 사면을 말하는 세력이 정권교체를 말할 자격이 있느냐”고 비난했다.
보수진영도 비판에 가담했다.
윤상현 자유한국당 의원은 페이스북에 “박 전 대통령 탄핵을 주도했던 사람들이 사면 운운하는 것은 졸렬하고 비열한 정치”라며 “대선 승리에 집착해 보수층의 환심을 얻어보겠다는 얕은 술책”이라고 비판했다.
논란이 커지자 안철수는 페이스북에서 “비리 정치인과 경제인에 대한 사면권을 자의적으로 행사하지 않겠다는 공약을 재확인한 것”이라고 해명했다.
△국민의당 리베이트 의혹
안철수는 국민의당 선거홍보비 리베이트 의혹이 일자 2016년 6월29일 천정배 국민의당 공동대표와 함께 국민의당 대표에서 물러났다.
국민의당은 리베이트 의혹으로 2016년 4·13 총선 때 당 실무를 담당했던 왕주현 전 사무부총장이 구속되고 박선숙 의원과 김수민 의원이 검찰 조사를 받게 되면서 창당 이래 최대 위기를 겪었다.
서울서부지법은 같은 해 7월12일 선거홍보비 리베이트 혐의로 박 의원과 김 의원에 대해 청구된 구속영장을 “주거가 일정하고 증거인멸과 도망의 염려가 인정되지 않는다”며 기각했다.
1심 법원은 2017년 1월11일 박 의원과 김 의원에게 무죄를 선고했다. 왕 전 부총장 등 5명도 다른 재판에서 무죄를 선고받았다.
검찰은 앞서 1월17일 “법원이 선거홍보 태스크포스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판결을 내린 것을 이해할 수 없다”며 항소했다.
△이희호 여사 녹취록 유출
2016년 1월4일 안철수가 고 김대중 전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를 예방해 비공개로 나눈 대화의 녹취록이 공개돼 파문이 일었다.
안철수는 예방 뒤 이희호 여사로부터 “꼭 주축이 돼 정권교체를 하라”는 말을 듣고 왔다고 주장했다. 이희호 여사가 대선후보로 안철수를 지지한다고 했다는 뜻으로 해석될 수 있는 발언이었다.
이에 대해 김 전 대통령의 삼남 김홍걸이 사실이 아니라는 해명자료를 내자 1월25일 한 매체에서 안철수와 이 여사가 나눈 녹취록을 공개했다.
녹취록에 따르면 안철수가 “다음 대통령선거에서 꼭 정권교체를 하겠다, 그 밀알이 되겠다”고 말했고 이에 이희호 여사가 “꼭 그렇게 하세요”라고 화답했을 뿐이어서 논란이 더욱 커졌다.
이 사건으로 안철수는 비공개 대화를 부풀렸을 뿐 아니라 녹취를 해 ‘마케팅’에 활용까지 했다는 비판까지 들었다.
최원식 국민의당 대변인은 “당시 수행비서가 독단으로 녹음했다”며 “자리를 박탈해 책임을 묻기로 했다”고 해명했다.
안철수는 이희호 여사를 찾아가 사과하고 당사에서도 기자들에게 “진심으로 송구스럽다. 큰 결례를 했다”고 말했다. 그는 이희호 여사의 말을 과장 해석해 언론에 발표했다는 지적엔 “세부적인 사항들은 따로 말씀드리겠다”며 즉답을 피했다.
△노회찬과 마찰
안철수는 2013년 3월 이준석 당시 새누리당 후보를 상대로 서울 노원구병에 출마하면서 노회찬 정의당 원내대표와 마찰을 빚었다.
노원구병 지역구는 ‘삼성 X파일’을 폭로해 2013년 2월 의원직을 박탈당한 노 원내대표의 지역구였다.
노 원내대표 사면복권이 추진되면서 당시 진보정의당은 노원병을 지키려 했는데 안철수가 돌연 노원구병 출마를 선언한 것이다. 노 원내대표의 의원직을 박탈한 대법원 판결이 부당하다는 여론이 있던 가운데 일어난 일이라 일부 야권 지지자의 반발을 샀다.
더욱이 노 원내대표와 통화해 노원구병 출마를 놓고 양해를 구했다는 안철수의 주장이 사실이 아니라고 노 원내대표가 반박하면서 논란이 커졌다.
노 원내대표는 손석희 아나운서와 한 인터뷰에서 “덕담 수준의 얘기를 나눴지만 노원구병 출마 문제나 양해 문제는 전혀 언급하지 않았다”며 “통화가 끝나고 1시간쯤 뒤에 언론사에서 전화가 와서 알게 됐다”고 말했다.
노 원내대표는 “기자회견을 잡아 놓고 1시간 반 전에 전화해서 간단한 통화만 한 뒤 양해를 구한 것처럼 (말했다)”며 “마치 각본을 짜맞춘 듯하다”고 비판했다.
△논문 표절 논란
2012년 9월 논문 표절 논란이 불거졌다. 안철수가 자신보다 2년 앞서 박사학위를 받은 서울대 서모 교수의 박사논문을 표절했다는 것이었다.
볼츠만 곡선 유도식을 서 교수 논문에서 3페이지에 걸쳐 베꼈다는 게 표절론의 주요 내용이었다. 심지어 서 교수의 논문에 기술된 볼츠만 공식은 대괄호가 하나 빠져서 오류가 있는 공식인데 안철수의 논문에서도 같은 공식에서 대괄호가 빠져 있었다.
이에 대해 안철수 측은 볼츠만 공식은 보편적으로 알려진 공식이라 원저를 밝히지 않는 것이 관행이고 노벨상을 수상한 홉킨과 헉슬리의 논문에서도 볼츠만 공식이 사용됐는데 원저를 밝히지 않았다고 해명했다.
서울대 연구진실성위원회는 2012년 11월16일 예비조사를 벌인 결과 안철수의 논문에 본조사를 진행할 필요가 있을 만한 문제의 소지는 없다고 밝혔다.
△학력 의혹
학력 의혹도 수 차례 제기됐다. 2012년 10월8일 국정감사에서 박민식 새누리당 의원은 안철수가 다녔다는 펜실베이니아대학 대학원 공학석사 과정과 2008년 펜실베이니아대 와튼스쿨 경영학석사 과정은 정규과정이 아닌 단기 교육코스라고 주장했다.
뒤이어 신의진 의원은 안철수가 다녔다는 와튼스쿨은 실제로는 샌프란시스코 분교이며 안철수는 한 달에 겨우 4일 수업하면서 1년에 약 1억 원의 학비를 내는 황제유학을 한 셈이라고 덧붙였다.
이에 대해 안철수 측은 ‘중견 혹은 고위직급 경영자들을 위한 정규 MBA 과정’이었다고 해명하며 와튼스쿨은 필라델피아 캠퍼스와 샌프란시스코 캠퍼스 두 곳에서 코스를 운영하며 이를 ‘분교’라고 지칭하며 수준 낮은 교육을 한다는 인상을 주는 말은 사실과 다르다고 반박했다.
△다운계약서 작성
안철수 부부가 2000년에 서울 사당동 아파트를 매각하고 2001년에 서울 문정동 아파트를 매입하는 과정에서 다운계약서를 작성한 사실이 2012년 9월26일 언론 보도를 통해 드러났다.
안철수 다음 날 기자회견을 열고 “여러 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지만 잘못된 일이고 국민들에게 사과드린다”고 밝혔다. 안철수 측은 “당시 부동산 거래 관행이었지만 안 후보가 어제 국민께 말씀드린 ‘앞으로 더욱 엄중한 기준과 잣대로 살아가겠다’고 한 말로 갈음하겠다”고 말했다.
△최태원 구명 탄원서 논란
2003년 4월 최태원 SK그룹 회장이 1조5천억 원대 분식회계 혐의로 구속기소됐을 때 안철수가 탄원서를 제출한 것으로 알려졌으나 사실은 탄원서에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안철수와 최태원 SK그룹 회장은 재벌2·3세와 벤처기업인이 모여 만든 사교모임 V-Society(브이 소사이어티)의 회원이었다.
안철수는 저서 ‘안철수의 생각’에서 “기업주가 전횡을 일삼거나 주주 일가의 사적 이익을 추구한다면 그건 범죄이며 ‘무전유죄, 유전무죄’라는 법치에 대한 불신과 우리 사회가 정말 불공평하다는 절망감을 낳았다”고 썼다.
그런데 2012년 대선을 앞두고 저서의 내용과 모순된 행동을 10여 년 전에 한 것 아니냐는 비판이 일자 안철수 측에서 “회원 전체가 서명했던 일이고 내키지 않아 맨 마지막에 서명했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사실은 서명하지 않은 것으로 나중에 확인됐다.
△신주인수권부사채 특혜 논란
1999년 10월 안철수연구소(현 안랩)가 신주인수권부사채(BW)를 발행하는 과정에서 주가를 코스닥 등록 전 실거래가의 12분의 1 수준으로 낮게 책정해 267억 원대의 평가차익을 봤다는 의혹이 일었다.
2000년 10월 안철수가 안철수연구소 주식 146만1988주를 취득한 가격은 주당 1710원이었다. 그러나 BW 발행 4개월 뒤인 2000년 2월 대주주인 나래앤컴퍼니(현 나래텔레콤)가 장외에서 안철수연구소 주식을 매입했을 때 주당 가격은 2만 원이었다. 4개월 사이에 11.7배 차이가 났다.
이 때문에 안철수연구소가 BW 발행가격을 실거래가보다 낮게 책정해 안철수에게 부당이익을 안겨준 것 아니냐는 의혹이 제기됐다.
◆ 경력
▲ 2004년 3월9일 안철수연구소가 서울 웨스틴조선호텔에서 연 컴퓨터 바이러스 백신 `V3 프로'의 2004년판 출시 전략 발표회에서 안철수가 참석자들과 기념사진을 찍고 있다. <연합뉴스>
1989년부터 1992년까지 단국대학교 의과대학에서 전임강사로 근무했다.
1990년부터 1991년까지 단국대 의과대학 학과장을 역임했다.
1995년부터 2005년까지 안철수연구소 대표이사로 일했다.
2005년부터 2012년까지 안랩(옛 안철수연구소)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2008년부터 2011년까지 카이스트 기술경영전문대학원 석좌교수로 일했다.
2010년부터 2011년까지 포스코 이사회 의장을 지냈다.
2011년부터 2012년까지 서울대학교 융합과학기술대학원 원장을 지냈다.
2012년 제18대 대통령 후보로 출마했다가 중도에 후보를 사퇴했다.
2013년 무소속으로 제1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2014년 새정치민주연합을 창당해 공동대표를 맡았다.
2016년 2월 국민의당을 창당해 같은 해 6월까지 공동대표를 지냈다.
2017년 국민의당 제19대 대통령 후보로 뽑혔다. 대선에서 3위에 그쳐 패배했다.
2017년 8월부터 2018년 2월까지 국민의당 대표로 일했다.
2018년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에 임명됐다.
2018년 바른미래당 서울시장 후보로 출마했다. 선거에서 3위로 낙선했다.
2020년 국민의당을 창당한 뒤 대표를 맡았다.
◆ 학력
부산 동성초등학교, 부산 중앙중학교, 부산고등학교를 거쳐 1980년 서울대학교 의과대학에 입학했다.
서울대 의과대학 졸업 후 같은 대학 대학원에서 생리학 전공으로 석사와 박사 학위를 받았다.
199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대학원에서 공학석사, 2007년 펜실베이니아 대학교 와튼스쿨에서 EMBA(경영학석사)를 취득했다.
◆ 가족관계
조부인 안호인은 일제강점기에 부산상고를 나와 금융조합에서 근무했다.
부친 안응모는 부산 범천4동 판자촌에서 범천의원을 개업한 의사로 안철수의 서울대 의대 선배다. 남동생 안상욱과 여동생 안선영이 있다.
1988년 서울대 의대 1년 후배인 김미경과 결혼했다. 김미경은 서울대 의대 교수로 재직하고 있다.
김미경과 외동딸 안설희를 두고 있다. 안설희는 스탠퍼드대학에서 이론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고 캘리포니아대학 샌디에이고캠퍼스에서 박사후 연구원으로 일하고 있다.
◆ 상훈
1990년 한국컴퓨터기자클럽이 주는 올해의 인물상을 받았다.
1996년 청와대에서 자랑스런 신한국인상을 수상했다.
1998년 중소기업진흥공단 주관 제2회 벤처기업대상 국무총리 표창을 받았다.
2002년 국가산업 발전에 기여한 공로가 뚜렷한 사람에게 수여하는 동탑산업훈장을 받았다.
2010년 문화체육관광부 ‘세종문화상’ 사회봉사부문상을 수상했다.
◆ 기타
2022년 제20대 대선 후보 재산신고 내역에 따르면 안철수는 안랩 주식 등 모두 1979억8554만 원의 재산을 보유하고 있다.
2021년 12월31일 기준으로 안랩 주식 186만 주(18.6%)를 보유하고 있다. 2022년 3월18일 종가 기준으로 1891억6200만 원어치다.
'별난 컴퓨터 의사 안철수'(1995), ‘CEO 안철수 영혼이 있는 승부’(2005), ‘안철수의 생각’(2012) 등 컴퓨터, 경영, 정치 분야에 대한 지식과 생각을 담은 30여 권의 책을 썼다.
1991년 2월 입대해 해군 군의관(대위)으로 복무했다. 입대일에 미켈란젤로 바이러스를 치료할 수 있는 최초의 V3를 배포했으며 실수로 가족에게 군대 간다는 말조차 하지 못하고 집에서 나왔다고 한다.
◆ 어록
▲ 2003년 7월16일 안철수 안철수연구소 소장과 노무현 대통령이 청와대에서 열린 한국 CEO포럼 소속 전문경영인 초청 간담회에서 악수를 나누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후보의 당선을 축하한다. 힘을 모아 공정과 상식의 대한민국, 그리고 미래와 국민통합으로 가는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 최선의 노력을 다하겠다.” (2022/03/10, 국민의힘 제20대 대통령선거 개표상황실에서)
“어떻게 해서든 단일화 프레임에 가두려는 정치 환경과 구도를 극복해보려는 교육지책이었고 정권교체를 위해 힘을 합쳐달라는 여론의 뜻을 받들고자 한 것이었다. (단일화) 제안을 받은 윤석열 후보는 일주일이 지나도록 가타부타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더 이상의 무의미한 과정과 시간을 정리하겠다. 이제부터 내 길을 가겠다.” (2022/02/20, 국회 소통관에서)
“두 후보가 차기 정부의 국정비전과 혁신과제를 공동으로 발표하고 이행할 것을 약속한 뒤 여론조사와 국민경선을 통해 단일후보를 정하자. 압도적 승리를 위해서는 단일화 방식이 두 당사자와 지지자들은 물론 아직 후보를 정하지 못한 국민들도 동의할 수 있는 합리적 방식이어야 한다. 누가 더 미래를 이끌 적임자인지 국민의 판단에 맡기면 경선은 복잡할 일도, 시간 끌 일도 없다.” (2022/02/13, 유튜브 생중계로 긴급 기자회견을 열어 야권 단일화를 제안하면서)
“국민연금과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학연금 등 3대 특수 직역연금은 납부 보험료율, 소득대체율이 서로 다른 비율과 구조로 돼 있어 국민연금 가입자의 불평과 불만이 계속 쌓여가고 있다. 연금통합의 첫 단계로 동일연금제를 추진하겠다.” (2021/11/23, 국회에서 '동일연금제' 공약을 발표하며)
“기득권 양당이 간판선수만 교체하는 정권교체는 구 적폐를 몰아낸 자리에 신 적폐가 들어서는 적폐 교대만 반복할 뿐이다. 이제는 5년마다 반복되는 악순환에서 탈출하기 위해 판을 갈아야 할 때다.” (2021/11/01, 대선 출마 선언식에서)
“단지 합당을 위한 합당 또는 작은 정당 하나 없애는 식의 통합은 정권교체를 위해서도, 더 좋은 대한민국을 만들기 위해서도 결코 바람직하지 않다” (2021/08/16, 합당 결렬 선언 기자회견에서)
“(국민의힘과) 원칙 있는 통합을 추진하자는 데 최고위원들이 뜻을 같이했다. 빠른 시일 안에 주호영 국민의힘 당대표 권한대행을 직접 만나 의논하겠다.” (2021/03/27, 비공개 최고위원회를 마친 뒤 기자들과 만나)
“(오세훈 국민의힘 서울시장 보궐선거 후보에게) 진심으로 축하한다. 반드시 승리해 문재인 정권을 심판해줄 것을 부탁한다. 나도 야권 승리를 위해 힘을 보태겠다. 국민이 바라는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함께 놓고 가겠다.” (2021/03/23, 야권 단일화 경선에서 패배한 뒤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정부가 허락한다면 먼저 아스트라제네카 백신을 맞을 용의가 있다. 1차 백신 접종 대상자는 아니지만 백신에 관한 불안감 해소를 위해서다.” (2021/02/22,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최전선으로 떠나는 군인의 심정으로 집을 나섰다. 선관위에 제출한 서류는 단순한 예비후보 등록 서류가 아니다. 반드시 선거에서 승리해 정권교체의 교두보를 확보하겠다는 굳은 의지가 담긴 출사표다.” (2021/01/26, 선관위에서 예비후보로 등록한 뒤 기자들과 만나)
“문재인 정부에서 소외됐던 3040세대, 5060세대를 위해 주택을 공급하고 민간이 재개발‧재건축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할 수 있는 환경을 조성해 5년 동안 주택 74만6천 호를 공급하겠다.” (2021/01/14,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부동산 공약을 발표하며)
"링컨 대통령의 사진을 마주하면서 '나무를 베는 데 6시간이 주어진다면 나는 도끼를 가는 데 4시간을 쓸 것'이라는 링컨의 말이 떠올랐다. 많은 시간 도끼를 갈고 닦았지만 얼마나 날이 서 있는지 잘 모르겠다." (2021/01/10, 페이스북에 김동길 연세대학교 명예교수로부터 링컨 전 대통령 사진을 선물로 받은 사실을 공개하며)
“지금은 대선을 고민할 때가 아니라 서울시장 선거 패배로 정권교체가 불가능해지는 상황만은 몸을 던져서라도 막아야겠다고 생각했다. 정권의 폭주를 멈추는 견인차 역할을 하겠다.” (2020/12/20, 국회 소통관에서 서울시장 출마 기자회견을 열고)
“지금은 선거 준비라든지 통합·연대를 고민할 수준은 안 된 것 같다. 현재 야권에 귀를 닫은 사람들의 관심을 돌리기 위한 혁신 경쟁을 벌일 때다.” (2020/09/23, 여의도 켄싱턴호텔에서 열린 ‘대한민국 미래혁신포럼’에서 ‘야권의 혁신과제’를 주제로 강연을 하며)
“공수처법을 바꿔 야당의 공직 후보자 추천권을 강탈하고 정권에 부역하는 인사를 공수처장에 임명한다면 이것은 의회와 민주주의를 파괴하는, 도저히 묵과할 수 없는 범죄가 될 것이다.” (2020/07/02,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은 자신과 자신 편에 너무나 철저하고 엄격한 분이었다. 그분이 살아계셨다면 지난해 조국 사태와 지금의 윤미향 사태를 놓고 ‘부끄러운 줄 알아야지’라며 일갈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2020/05/25,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국민과 함께 하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약속을 지키는 정치가 어떤 것인지 국민의당이 꼭 보여드리겠다. 거대 정당들은 선거가 끝나면 끝났다고 생각하겠지만 선거가 끝난 지금이 시작이다. 투표하신 분의 6.8%, 거의 200만 명에 이르는 분들이 저희를 지지해주셨다. 마음속으로 지지하면서도 양극단의 진영대결 때문에 할 수 없이 거대정당 중 하나를 찍을 수밖에 없었던 그 마음도 저는 생각하고 있다.” (2020/04/17, 4월 총선에서 대패하고 서울 마포구 국민의당 서울시당 사무실에서 열린 선대위 해단식에서)
“충남도는 중국에 마스크 13만 개를 보내기 위해 1억3천만 원의 예산을 들여 마스크 1개당 1천 원에 샀고 다른 지방자치단체도 엇비슷할 것이다. 국민들은 6500원을 주고도 마스크 한 장 구하기가 어려운 상황에서 어떻게 지자체는 마스크를 1천 원에 살 수 있는지 납득이 되지 않는다.” (2020/02/25, 페이스북에서)
“선열들께서 이 나라를 지켜주셨습니다. 선열들의 뜻을 받들어 대한민국을 더욱 굳건히 지켜내고 미래세대의 밝은 앞날을 열어나가겠습니다.” (2020/01/20, 서울 동작구 국립현충원에서 현충탑과 전직 대통령 묘역에 참배한 뒤 방명록에 쓴 글)
“저는 지난 1년여 동안 해외에서 그동안의 제 삶과 6년 동안의 정치활동을 돌아보고 성찰하는 시간을 보냈다. 정치를 다시 시작하는 것이 옳은 것인지 깊이 생각했다. ‘정치는 국가의 미래를 위한 봉사’라는 제 초심은 변치 않았다. 국민께서 저를 정치의 길로 불러주시고 이끌어주셨다면 이제는 제가 국민과 함께 미래를 향해 나아가고자 한다.” (2020/01/02, 정계복귀를 위한 귀국을 앞두고 사회관계망서비스(SNS)에 올린 글)
“‘성공이 끝이 아니다’라는 윈스턴 처칠의 말이 있듯 실패가 완전한 마지막은 아니다. 가장 중요한 것은 계속해서 일을 이어갈 수 있게 하는 용기다.” (2018/06/27, 서울시장 선거에 패배한 뒤 정계 은퇴론이 고개를 든 시점에 바른미래당 당직자들과 오찬을 함께 하며)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경쟁하고 싸워서 이겨야 할 대상이다." (2018/04/01, 국회에서 기자들과 만나)
"(서울시장 후보로) 아직 출마를 결심한 것도 아니지만, 결심한다고 해도 무슨 양보를 받아서 뭘 해보겠다는 생각을 해본 적이 없다. 정치적인 공격으로 다른 정치적인 상대들이 그렇게(지나치게 출마 타이밍을 따진다고) 주장할 수도 있다. 저희는 계획대로 먼저 해야 하는 일부터 뚜벅뚜벅 해나갈 것이다." (2018/03/20, MBC 라디오 '양지열의 시선집중'에서)
"우리가 바라는 인재는 깨끗하고 유능한 인재로서 그게 바로 우리 당의 지방정부 구상에도 맞는 인재다. 우리는 거대 양당이 제대로 못 하는 민생 문제와 미래 대비에 중점을 둔 지방정부를 꿈꾸고 그에 맞는 인재를 널리 찾겠다." (2018/03/19, 각계 대표자와의 인재영입 간담회에서)
“복귀 요청을 받고 망설였지만 지금 당에서 가장 중요한 역할과 꼭 필요한 일이 인재영입이라고 생각해 (인재영입위원장을) 맡게 됐다. 인재영입을 책임지고 하는 것이 우리 당을 이번 지방선거에서 제대로 자리 잡도록 만드는 일이라 판단했다. 인재를 영입하는 모습을 국민께 보여드리고 (지방선거에서) 결과로 보여드리겠다.” (2018/03/18, 바른미래당 인재영입위원장으로 당직에 복귀하며 기자간담회에서)
"통합은 이번 지방선거를 통해 완성된다. 정당은 선거를 통해 완성되기 마련이다. 그런 일들과 진정한 화학적인 결합을 위해 할 수 있는 역할들을 정말 열심히 하겠다는 각오가 있다." (2018/03/08, 수도권 원외 지역위원장 간담회에서)
"같은 방향을 보고 만났지만 달리 살아온 사람들이기에 양보하고 이해하지 않으면 싸우기도 하고, 또 그러면서 단단해진다. 통합을 줄곧 결혼에 비유했는데 결혼식만으로는 행복한 생활이 만들어지는 게 아니다. 역사의 진전은 결국 변화를 추구하는 이들의 의지에 따라서 바뀌었다. 오늘 만난 우리가 강한 의지를 되새기고 함께하는 뜻을 지키고 키워나갈 때 변화가 만들어지고 역사가 진전할 것이다." (2018/02/12, 바른정당과의 공식 합당을 하루 앞두고 연석회의에서)
"총선 때 정당을 보고 투표해 뽑힌 분들이기에 정치적 소신이 다르다면 탈당하시고 그 당에 가서 활동하는 것이 정치적 도의라고 생각한다." (2018/02/06, 기자간담회에서 민주평화당 공식 출범과 관련해)
"중재를 위해 애써주시는 분들이 (통합에) 함께 해준다면 2월13일에 통합신당 창당을 완결시키고 대표직에서 물러나겠다. 통합의 올바른 길에 한 분이라도 동참할 수 있도록, 제 사퇴가 그분들의 결심에 도움이 된다면 어떤 일이라도 하겠다는 심정으로 말씀을 드린 것이다. (중재파가) 함께할 것이라 믿는다." (2018/01/31, 최고위원회의 후 기자들과 만나)
"별도로 창당을 할 거라면 국민의당을 나가서 해야 할 일이다. 당 대표로서 원칙과 기강을 바로 세우기 위해 당헌·당규에 정해진 바에 따라 필요한 조치를 취할 수밖에 없음을 분명히 한다." (2018/01/22, 최고위원회의에서)
"좌고우면하지 않고 통합의 길로 전진하겠다." (2017/12/31, 바른정당과의 통합에 70% 넘는 찬성표를 던진 전당원 투표 결과와 관련해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신고리 5·6호기의 공정률이 29.5%다. 1조6천억 원이 투입된 공사가 대통령 말 한마디에 멈췄다가 공론화위원회를 거쳐 결국 공사 재개로 결론이 났다. 이 뻔한 상식으로 돌아오는 과정에서 대한민국은 최고 1046억 원을 날려보냈다. 공론화 과정의 직접비용만 계산해보면 건설참여 업체의 손실이 1천억 원이 넘고 공론조사에만 46억 원의 비용이 들었다. 대통령은 공론화 과정을 칭송하고 넘어가려고 하지만 상처가 너무 크다.” (2017/10/23, 최고위원회의에서)
“문재인 정부가 혁신성장의 중요성을 이제야 깨달은 것 같다. 안보정책도 나약한 유화의 길을 가다 뒤늦게 국민의당의 제안을 따라왔는데 경제정책도 국민의당이 제안한 혁신성장의 길을 따라오는 것 같다. 처음부터 옳은 길을 갔더라면 얼마나 좋았겠나. 만시지탄이지만 다행이다.” (2017/9/27, 부산시의회에서 열린 부산 현장 최고위원회의에서)
“군산조선소는 전북 제조업 매출의 4분의 1, 전북 수출의 10%를 차지한다. 군산조선소 폐쇄로 전북 경제가 흔들린다. 대선을 거치면서 전북도민들은 군산 조선소가 다시 가동되리라고 꿈꿨다. 문재인 대통령은 조만간 답이 있을 것이라며 기대하라고 했는데 결국 가동이 중단됐다. 얼마 전 러시아가 유조선 15척을 한국에서 건조하겠다고 밝혔는데 이 물량 중 일부만이라도 군산조선소에 배정하면 재가동될 수 있다. 군산이 살고 전북이 사는 정부의 결단을 이끌어낼 것이다.” (2017/9/13, 전북도청에서 열린 국민의당과 전북도 정책협의회에서)
“새만금은 지금부터라도 속도전에 나서야 한다. 우리가 새만금 사업에서 머뭇거리는 동안 비슷한 시기에 개발을 시작한 중국 상해 푸동지구는 경제규모 면에서 100배 성장을 이뤄냈다. 내년도 예산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만큼 새만금 사업의 성공을 위해 철저한 준비와 고민이 필요한 때다.” (2017/09/11,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 제1소회의실에서 열린 ‘새만금 사업 부진요인 점검과 촉진방안 정립을 위한 세미나’에 참석해)
“3류 정치가 1류 기업을 깔보고 있다.” (2017/09/11, 국회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김상조 공정위원장이 이해진 전 네이버 이사회 의장에 대해 ‘미래 비전을 제시하지 못했다’며 부정적으로 평가한 것을 비판하고 20년 전 ‘우리나라 기업은 이류, 행정은 삼류, 정치는 사류’라고 한 이건희 전 삼성전자 회장의 말을 인용하며)
“기업가를 머슴으로 보는 문재인 정부의 오만함을 고쳐야 한다. 더 이상 정부가 기업을 앞에서 끌고 가는 시대가 아니다. 정부가 뒤에서 자유롭고 공정한 경쟁이 가능하도록 밀어주고 불공정행위는 일벌백계하는 것이 필요하다.” (2017/09/11, 최고위원회 회의에서)
“지금은 북핵위기 상황인데 자유한국당(현 국민의힘)은 국회를 거부하고 있고, 더불어민주당은 야당 탓만 하고 있다. 한심함을 넘어 참담함을 느낀다. 제발 정신 차려라. 이런 것들을 바로잡으라고 국민들이 국민의당을 세워준 것이다. 이럴 때야말로 중도개혁 정당인 국민의당이 더 큰 역할을 할 수 있다고 믿는다.“ (2017/09/04, 국민의당 소속 수도권 광역기초의원 간담회에서)
“극중주의는 예전 김대중 전 대통령께서 IMF를 3년 만에 극복했을 때의 그 노선과 정확히 일치한다.” (2017/08/10, 광주MBC ‘시선집중 광주’ 인터뷰에서 ‘극중주의’가 애매모호하다는 비판을 받는다는 질문에)
“작지만 강한 야당인 ‘강소야당’을 만드는 동시에 지방선거에서 승리하는 정당을 만들어야 한다. 4%, 5% 이하의 당 지지율은 사실 존재감의 거의 없다는 것과 같다. 이 상태가 연말 정도까지 지속된다면 내년 지방선거에서 정말 참담한 결과를 얻게 될 것이고 당은 소멸될 위기에 놓이게 될 수밖에 없다.” (2017/08/06, 국회에서 ‘혁신비전 간담회’를 열고 젊고 스마트한 정당’, ‘분권정당으로 변화’, ‘당원중심 정당’, ‘민생정당으로 도약’을 국민의당 4대 혁신방향으로 제시하며)
“‘선당후사(先黨後私, 당을 먼저 생각하고 자신을 앞세우지 않는다)’의 마음 하나로 출마의 깃발을 들었다. 다음 대선을 먼저 생각했다면 물러나 때를 기다리는 쪽이 현명한 선택이겠지만 내 미래보다 당의 생존이 더 중요하다.” (2017/08/03,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당대표 출마를 선언하며)
“민심의 바다가 여론조사를 뒤집을 것이다. 안철수를 찍으면 안철수가 이긴다. 국민이 이긴다.” (2017/05/08, 19대 대선을 하루 앞두고 서울 여의도 국민의당 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막판 표심 잡기에 나서며)
“저 안철수, 국민을 위한, 국민에 의한, 국민의 대통령 되겠다. 안철수의 시간이 왔다. 안철수의 시간이 오니 문재인의 시간이 가고 있다. 저 안철수, 2012년보다 백만 배, 천만 배 더 강해졌다.” (2017/04/04, 대전 중구 한밭체육관에서 국민의당 대선후보 수락 연설을 하며)
“이제까지 국민의당 중심 정권교체를 일관되게 주장해왔다. 우리 스스로를 믿어야 국민도 믿어준다. 오직 국민을 믿고 국민의당을 믿고 전진할 때 대선에서 승리할 수 있다. 국민에 의한 연대, 오직 그 길만이 진정한 승리의 길이다.” (2017/04/01, 경기 수원 종합운동장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대선후보자 선출을 위한 5차 전국순회경선'에서 정견발표를 하며)
“여론조사에 잡히지 않았던 민심이 열풍처럼 쏟아져 나오고 있다. 변화와 개혁을 원하는 절절한 민심이다. 뿌리까지 썩은 나라를 제대로 바꾸라는 국민의 명령이다. 부패세력을 청산하고 대한민국을 바꾸라는 요구다. 대한민국이 큰 위기다. 안보, 경제, 외교 모두 위기”라며 “계파 패권주의 세력에 또 나라를 맡겨선 안 된다.” (2017/03/30, 대구 실내체육관에서 열린 '국민의당 대선후보자 선출을 위한 4차 전국순회경선' 합동연설에서)
“정당은 비전을 밝히고 국민의 평가를 받아 선거를 치르는 것이다. 대통령 탄핵 불복 세력에 면죄부를 주는 연대, 특정 정치인을 반대하기 위한 연대, 정치인 만을 위한 무원칙 연대에 반대한다.” (2017/03/20, TV조선에서 열린 종편합동 토론회에서 대선 전 비문·비박 연대가 가능한지 묻는 질문에)
“절망의 시간이 희망의 시간으로 바뀌고 있다. 선거에 출마해 반드시 당선되겠다. 평화를 지키는 과정에서 안보는 기본 중의 기본이다. 국방비를 늘려서라도 스스로를 지킬 수 있는 자강안보를 실현해야 한다.” (2017/03/19, 서울 종로구 ‘마이크임팩트 스퀘어’에서 열린 출마 선언식에서)
“대기업이 기획부터 투자·제작·배급·상영까지 모든 것을 다 하다 보니 아무리 좋은 영화라도 중소 제작사에서 만든 작품은 심야상영이나 새벽상영으로 밀려난다. 영화산업 발전을 위해 중소 제작사가 좋은 영화를 만들면 대박을 만들고 큰 제작사로 성장해야 한다. 그래야 전체적으로 파이가 커지고 세계적 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다.” (2016/12/19, 국회 의원회관에서 참여연대·한국영화제작가협회와 공동으로 '한국 영화산업 불공정 생태계 개선을 위한 공청회'를 열고)
“이제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다. 운명의 일주일이다. 9일 탄핵안 표결에 국회의원 300명 전원이 동참해야 한다. 압도적으로 가결하라는 게 국민의 명령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또 무슨 일을 저지를지 걱정하는 국민이 많다. 어떤 일을 저지르지 말고 그대로 계셔달라.” (2016/12/05, 국회 본관 앞에서 열린 박 대통령 탄핵 촉구 대회에서)
“국민 세금과 연금에 손을 대면 다시는 사회에 복귀하지 못하게 만들어야 한다. 국민연금공단이 삼성물산과 제일모직의 합병 과정에서 삼성의 손을 들어주면서 5천억 원의 손실을 봤다. 전 국민이 아르바이트해가면서 400조 원을 만들었는데 한 방에 그 많은 돈을 날렸다.” (2016/11/30, 부산 동아대 특강에서 국민연금공단의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개입 의혹을 거론하며)
“박근혜 대통령은 온 국민이 다 알고 검찰 공소장에도 적시된 스스로의 죄를 혼자 부정하고 있다. 민심을 외면한 수사 회피용이자 탄핵 물타기용 담화다. 어떤 시민은 이번 담화를 대국민 광화문 초대장이라고 했다. 국민들을 언제까지 차가운 길거리에 나오게 할 것인가?” (2016/11/29, SNS에서 박 대통령의 3차 대국민 담화에 대해)
“100만 명, 200만 명 모인 민심이 더 이상 용납하지 않는다. 이렇게 모인 마음은 대통령을 바꾸라는 것을 넘어서 국가를 바꾸라는 요청이다. 지금이 기득권 세력을 몰아낼 기회가 될 수 있다. 이번 기회에 부패 기득권을 척결하고 정경유착의 고리를 끊어야 한다.” (2016/11/27, 광주 조선대에서 열린 비상시국강연회에서 촛불집회를 11·12 시민혁명으로 규정하며)
“이번 사태로 대한민국의 민낯이 드러났다. 공공기관뿐 아니라 학교, 사법체계, 회사에 이르기까지 뿌리부터 썩었다. 1970년대 정경유착이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 그대로 살아있다. 세상이 바뀌는 것을 막고 개인 욕심을 취하는 기득권 정치를 깨부술 때가 바로 지금이다.” (2016/11/26, 국민의당이 서울 종로에서 연 ‘박근혜 대통령 퇴진 당원보고대회’에 참석해)
“현재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 가운데 18세가 투표하지 못하는 나라는 대한민국밖에 없다. 더 나아가 17세 투표권까지도 검토해봐야 한다.” (2016/11/17, 국회 의원회관 내 자신의 사무실에서 ‘18세 선거연령 인하’ 현판식을 한 뒤)
“국민의당을 중심으로 반드시 정권교체하라는 (국민의) 명령을 가슴 깊이 새기고 모든 것을 바치겠다.” (2016/08/28, 광주 무등산을 등반한 뒤 사실상 대권 출마를 선언하며)
“내년 대선은 예전의 양극단 간의 대결구도에서 벗어나 양극단 대 합리적 개혁세력 간 대결이 될 것이다.” (2016/08/27, 전남 광양 강연회에서 친박계와 친문계 사이에서 제3의 세력을 만들어 대선을 치르겠다는 의지를 드러내며)
“국민의당은 지금 힘들고 두려운 광야에 있고 사방에 적뿐이다. 그래도 돌아갈 수 없다. 전진해야 한다. 야권통합을 위해 세 번 결단하고 국민 앞에 연대보증을 섰지만 정권교체에 실패했다. 그동안 김종인 더불어민주당 비상대책위원회 대표는 새누리당의 세 확산을 위해 헌신했다. 누가 통합을 말할 수 있느냐. 나를 포함해 모두 이 광야에서 죽을 수도 있다. 그래도 좋다.” (2016/03/06, 기자회견을 열어 김종인 당시 민주당 대표의 야권통합 제안을 거부한다는 뜻을 재학인하며)
“정치권에 들어오기 전 의사로, 프로그래머로, 경영자로, 교수로 분절된 삶을 살았으나 지금은 내 인생이 하나가 됐다고 느낀다. 이번이 마지막 기회라고 생각한다. 각 분야에서 따로따로 일했던 지식과 경험을 모두를 위해 쓰겠다.” (2015/12/29, 서울 여의도에서 출입기자들을 만나)
“저나 신당에게 주어진 최우선적인 과제는 새로운 시대 요구와 새정치의 비전과 목표를 분명히 하는 것이다. 협력 문제는 이런 문제들이 어느 정도 해결이 된 후에야 가능할 것으로 생각한다.” (2015/12/21, 신당 창당을 선언하며)
“제가 새정치민주연합 대표 시절에 느낀 것은 이기는 공천은 없다는 것이다. 여론조사나 자료를 토대로 선거공학적으로 후보를 선출할 때 반드시 이기는 결과를 가져오지는 않는다.” (2015/12/29, 내년 총선이 ‘일여(一與) 대 다야(多野)’ 구도로 치러지더라도 야권 통합과 연대를 고려해야 하지 않겠느냐는 질문에 답변하며)
“국민 통합을 위해서, 세월호 참사로 상처받은 국민 마음을 치유할 인재를 찾기 위해서 박 대통령은 자신만의 인사 수첩을 폐기해야 한다. 그래야만 대한민국 시스템을 바꿀 진정한 탕평인사를 할 수 있다. 우리나라에는 훌륭한 재능을 가진 인재가 많다. 내 진영 사람 중에서, 내가 만나본 사람 중에서 내 맘에 드는 사람만 기용하면 쓸 수 있는 인재풀이 줄어든다.” (2014/05/30, 새정치민주연합 공동대표가 주재한 ‘국민 안심 선대위’ 본부장단 회의에서)
“정치경험 대신 국민들께 들은 이야기를 소중하게 가지고 가겠다. 여러분이 제 스승이다.” (2012/09/19, 제18대 대통령 선거 출마를 선언하면서)
“상식과 비상식의 기준으로 말하고 싶다. 굳이 말하자면 난 상식파다.” (2012/07/23, SBS ‘힐링캠프, 기쁘지 아니한가’에서 ‘안철수는 보수인가 진보인가’라는 질문에 대답하며)
“저에게 보여주신 기대 역시 온전히 저를 향한 것이 아니라 변화에 대한 열망이 저를 통해 표현된 것이라고 여긴다. 그래서 저는 이번 서울시장 보궐선거에 출마하지 않기로 했다.” (2011/09/06, 2011년 서울시장 재보궐선거 불출마 선언 기자회견에서)
“사람들한테 대접받으면서 오래 살고 싶은 생각이 없다. 나는 자기발전도 중요한 사람이고 끊임없이 학습하고 도와주며 평생을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이렇게 정치로 들어서면 자기발전의 기회보다는 내가 가진 걸 소모하면서 도와줘야 한다. 지금껏 해왔던 것과 전혀 다르다. 10년 간 그런 삶을 견딜 수 있을까, 거기에 대한 고민이다. 나는 수평적인 사람이다. 그런데 정부 조직은 내가 아무리 수평적 리더십을 갖고 있어도 조직이 수평이 되면 곤란하다. 그런데 이런 관계를 10년 이상 유지하는 게 가능할까.” (2011/09/04, ‘오마이뉴스’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출마설과 관련해)
“대북 문제에 대해서 보수적 입장을 갖고 교육 문제에 대해서 진보적 시각을 갖고 있으면 진보인가 보수인가? 그것은 나눌 수가 없다. 그것을 나누고 분열함으로써 이득을 보는 사람들이 이런 짓을 한다.” (2011/09/04, MBC 시사매거진 2580 인터뷰에서 서울시장 출마설과 관련해)
“참여정부 시절 정보통신부 장관 제의를 받았고 2006년 지방선거를 앞두고 한나라당으로부터 서울시장 후보 제안을 받았지만 (정치를) 잘할 자신이 없고 힘(권력)을 즐기지 못하기에 거절했다. 실무적 방법으로 사회에 기여하고 싶다, 앞으로 정치를 할 가능성은 낮다.” (2009/12/18, 한 매체가 주관한 10만인클럽 특강에서)
“‘기업가 정신’을 이야기할 때 흔히 미국 실리콘밸리를 예로 든다. 그런데 한국에서 실리콘밸리의 성공사례에만 관심을 갖는다. 하지만 실리콘밸리는 ‘성공의 요람’이 아니라 ‘실패의 요람’이다. 이 점을 외면하면 우리는 실리콘밸리에서 배울 수 없다.” (2009/03/20, 서울 수송동 희망제작소 세미나실 희망모울에서 ‘기업가 정신(entrepreneurship)’에 대해 강연하며)
“V3를 외국에 넘겨버리면 (국내) 사용자들이 불편하다. 세계 제일의 소프트웨어로 만들겠다.” (1998/06/22, 안철수연구소를 100만 달러에 인수하겠다는 맥아피의 제의를 거절한 것에 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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