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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역_서울 경기 및 지방의 종합/*경기도의회(염종현의장, 부의장=남경순·김판수

'광교신청사 시대' 경기도의회 걸어온 발자취와 향후 과제

'광교신청사 시대' 경기도의회 걸어온 발자취와 향후 과제

팔달산시대 지방자치 부활 알렸고… 자치분권 2.0 원년에 새 역사

발행일 2022-01-20 제3면

명종원·고건기자

light@kyeongin.com


경기도의회는 자치분권 원년인 올해 광교 신청사에서 의정활동을 이어가게 된다. 사진은 개원을 앞둔 경기도의회 신청사. 2022.1.19 /김금보기자 artomate@kyeongin.com

경기도의회는 오는 24일 수원 팔달산 자락에서의 현 청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자치분권 원년인 올해부터 광교 신청사에서 도정 감시활동을 이어간다.

과거 제1대부터 현재 10대 의회에 이르기까지 파란만장한 의정 역사를 남긴 도의회는 앞으로도 많은 변화를 겪을 것이다. 도의회가 걸어온 발자취부터 의회에 주어진 향후 과제들까지 들여다본다.


경기도의회 역사


한국전쟁의 여파로 다른 지역보다 4년 늦게 출발한 경기도의회는 1956년 9월3일 서울 광화문 경기도청 부지에서 의원 45명으로 출발했다.

미수복 지역인 연천군과 계엄으로 선거가 연기된 옹진군을 제외한 2개 시, 17개 군에서 선거가 실시됐으며 전쟁 후 혼란이 극심한 가운데서도 초대 도의원들은 정기회 8회, 임시회 32회 등 총 40회 회의를 진행하고 628건의 안건을 처리하는 등 의정활동에 열을 올렸다.

 


1964년 서울 소재 경기도 청사.

1960년 12월에 열린 제2대 도의회는 다음 해에 벌어진 5·16 군사정변으로 인해 4년의 임기를 채우지 못하고 강제로 해산됐다. 군사정변 주도세력인 군사혁명위원회가 정권인수·국회해산·정치활동금지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하는 포고령 제4호를 발표해 제47회 임시회를 끝으로 광화문 시대는 기약 없이 막을 내렸다.

1956년 광화문서 의원45명으로 출발

2대 1961년 '군사정변'으로 막 내려

강제해산 30년만에 경기도에 '둥지'

'팔달산' 29년간 265회 회의 진행해

24일 새 청사로 이전 10대 마무리

 

지방의회가 해산된 지 30년 만인 1991년 7월 제3대 도의회가 의원 117명으로 경기문화예술회관(현 경기아트센터)에 임시 의사당을 마련해 개원했다. 그후 1993년 2월 현 경기도의회 부지로 자리를 옮겨 수원 팔달산 시대를 열며 지방자치제도의 부활을 본격적으로 알렸다.

29년간 현 청사에서 3대부터 10대 도의회까지 도민의 권익을 위해 총 974명의 의원들이 의정 활동에 뛰어들었다. 총 265회 회의를 진행해 현재까지 1만건에 육박하는 안건을 처리했다.

이제 24일이면 도의회는 현 청사 생활을 마무리하고 새 청사로 이전한다. 수원시 영통구 이의동 186 일원 2만9천184㎡ 대지에 지하 4층~지상 12층, 연면적 약 3만3천㎡ 규모로 지은 도의회 광교신청사다. 임기 말을 바라보는 10대 도의회와 올해 6월 제8대 전국동시지방선거로 선출될 11대 도의회는 이곳에서 의정활동을 이어간다.


신청사 준비과정


경기도의회가 신청사 이전 논의를 시작한 것은 장기간 군사독재 등으로 의회가 열리지 못했다가 30년 만에 문을 연 1990년대 들어서부터다.

1961년 5월16일 새벽 발생한 군사정변 이후 약 30년간 도의회가 문을 열지 못했으나 한참 뒤인 1991년 6월 제6공화국 시절 시·도의회 의원 총선거를 실시하며 당해 7월 제3대 도의회가 출범했다. 수십년 세월 동안 국내 인구 증가에 따라 사무직원 수와 의원 수 모두 늘어났다.

특히 임시 청사에서 1993년 현 청사로 옮기면서부터는 기존에 있던 경기도청 직원 수의 급격한 증가 등이 맞물려 다른 시설을 찾아야 한다는 필요성이 부각되기 시작했다.

당시 도청 직원 수는 1967년 서울에서 경기 지역으로 이전한 시기에 159명이었던 것에 비해 약 7배 증가한 1천여 명이었다. 여기에 1·2대 도의회보다 3배가량 많아진 3대 도의원 수 121명, 의회사무처 직원 수를 함께 고려한 구상이었다.

 


1970년 경기도 청사.

도의회는 일찌감치 이전 준비를 시작했으나 급작스런 경제위기와 호화 청사 비판에 직면, 좌절되기 일쑤였다. 우선 청사 이전 목소리가 처음 나오기 시작한 지 2년 뒤 발생한 1997년 외환위기(IMF 사태)로 제동이 걸렸다. 18억 달러를 모두 상환하면서 외환 위기에서 완전히 벗어난 2001년, 청사 이전이 도의회 차원에서 재추진됐으나 이번에는 재정적 한계가 발목을 잡았다.

3대 의회 출범 당시 국내인구 증가

서울때보다 직원 7배·의원 3배 늘어

호화청사 비판·외환위기로 이전 좌절

'복합개발방식' 발상 전환이 활로

 

그러자 2001년 임창열 경기지사 당시 팔달산 청사를 리모델링하는 방안도 등장했다. 다만 도의회가 비전을 갖고 더 넓은 곳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권고를 내면서 리모델링 방안은 철회 쪽으로 기울었다. 도청과 의회는 새로운 장소를 찾아 나섰고, 수원 광교와 호매실, 의왕 백운지식문화밸리 등이 후보군에 올랐으나 광교로 정했다.

그럼에도 신청사 이전은 10년 넘게 난항을 겪었다. 이에 도의회는 또 한 번 집행부에 제안했다. 2015년이다. 도 재정만으로는 한계가 있으니 '복합개발방식'을 취하자는 발상의 전환이다.

도가 이를 받아들여 마침내 당해 7월 도는 '신청사 로드맵'을 공식 발표했다. 처음 신청사 이전 필요성이 나온 1995년 이후 20년 만의 일이다.


무엇이 달라지나


광교신청사 시대가 열리는 지금 도의회는 '하드웨어'와 '소프트웨어' 측면에서 큰 변화를 맞이한다. 먼저 하드웨어의 변화는 도의회 설계 구조에서 엿볼 수 있다.

광교신청사는 최근까지 사용한 팔달산 청사(1만4천㎡)보다 면적에서 2.4배 커졌다. 넓어진 공간을 활용해 청사 1층 로비에는 도민들이 방문, 사용할 수 있는 의정관 '경기마루'를 마련했다. 이곳은 미래형 의정특화 도서관과 의회 체험형 전시관 등을 설치해 최첨단 복합문화공간으로 활용된다.

의장실과 상임위원장실을 비롯한 도의원 모두에게 각각 사무실 1개씩이 생긴다는 것도 이전과 달라지는 큰 변화다. 신청사에는 의원 총수에 알맞게 개인 의원실 142개가 마련된다.

 


2016년 경기도의회 청사 전경. /경인일보DB

소프트웨어 면에서는 이달 13일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라 지방의회 권한 및 역할 강화가 있다. 주요 변화는 두 갈래인데, 의회가 직접 의회 인사권을 행사할 수 있다는 점과 지방의원의 의정활동을 돕는 정책지원관이 생긴다는 점 등이다.

면적 2.4배 커지고 최첨단 공간 활용

인사권·정책지원관 등 역할 강화돼

 

법시행 이전까지만 해도 무려 32년간 지자체장이 지방의회 사무처 직원의 인사권을 가졌으나 최근 지방의회의 장에게 넘겨졌다. 또 그동안 도의회 공무원들은 도청 소속으로 도와 의회를 오가며 근무했지만 조직이 분리되면서 의회에서만 일하게 됐다.

또 입법·예산심의 등 지방의원의 의정활동을 전문적으로 지원해줄 전문인력 '정책지원관'이 도입된다. 정책지원관들의 의정 지원으로 더욱 심도 있는 민생 조례를 연구, 제정할 토대가 마련된 셈이다.

올해는 전부 개정된 지방자치법 시행에 따른 자치분권2.0시대 원년이다. 내달 7일 광교 신청사에서 열리는 첫 회의인 제357회 임시회에 눈길이 쏠리는 이유다. 이제는 성과로 답할 차례다. 주사위는 던져졌다.

/명종원·고건기자 light@kyeongi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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