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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자가 직접 쳐 본 공인중개사 시험, 40만명·역대 최다응시 "다들 왜 도전하셨나요?"

기자가 직접 쳐 본 공인중개사 시험, 40만명·역대 최다응시 "다들 왜 도전하셨나요?"

이주형 기자 coolee@imaeil.com

매일신문 입력 2021-10-30 20:21:33 수정 2021-10-31 00:44:15

"취업 어렵고 불투명한 미래…집값 떨어지지 않을 것이란 믿음도"
"자격증만 있다고 고수익 보장 못해…신중한 접근도 필요"

제32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이 실시된 30일 서울 성산중학교에서 수험생들이 고사장으로 들어가고 있다. 연합뉴스

"수도권, 비수도권 할 것 없이 전국 집값이 너무 올랐잖아요. 내 집 마련이 평생의 꿈인 시대인데, 한 달에 한 건만 거래를 성사시켜도 나쁘지 않겠더라고요. 나도 당장 전세든 매매든 수요자로 부동산 거래를 계속 할텐데, 공부해서 나쁠 건 없다고 생각했어요." 최우영(가명·39·경찰)

제32회 공인중개사 국가자격시험날이었던 30일 오전 8시 30분. 경북 안동시 복주여자중학교 앞은 고사장으로 향하는 수험생들과 배웅하는 차량들로 시끌벅적했다. 한 손에는 참고서와 필기노트를 끼고 고사장 정문 앞으로 향한 이들은 조금은 긴장된 모습으로 안내에 따라 손 소독을 하고 고사장 위치를 확인했다.

시험 당일 아침 현장 모습은 어느 곳이나 대동소이하지만, 이날 기자의 눈에 띈 것은 응시자들의 다양한 연령대였다. 돋보기 안경을 쓴 흰머리 지긋한 노신사와 캐릭터 필통을 든 갓 대학교를 졸업한듯한 여학생이 나란히 고사실을 확인한 후 정문 안으로 들어갔다.

이날 한 반에 15~20명 내외의 응시자들을 수용한 고사실은 18실까지 이어졌다. 전체 인구 16만명에 불과한 경북 안동은 고령인구가 많은 중소도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20·30대로 보이는 지원자들이 고사실마다 대여섯명씩 눈에 띄었다.

◆ 해마다 지원자 고공행진

한국산업인력공단은 이날 시행된 제32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 1·2차 시험 원서 접수자가 역대 최대인 40만8천492명에 달한다고 밝혔다. 지난해에도 역대 최대 규모였는데, 올해는 그보다 12.6%(4만5천728명) 늘었다.

집계에는 1차와 2차 시험을 한날 같이 보려는 사람이 중복돼 계산됐기 때문에 실제 시험을 보는 사람은 접수자보다 적을 것으로 보인다. 다만 사회 여러 분야에서 사람이 줄어드는 가운데 공인중개사 도전자는 증가세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 눈길을 끈다.

대구경북에서도 35개 고사장에서 2만5천81명이 응시했다. 지난해 응시 인원 2만1천506명에 비해 16.6% 증가한 수치다. 지난 8월 시험 접수 초반부터 대구 지역 고사장 4곳은 일찌감치 모집이 마감되기도 해 대구에서 경북으로 원정 시험을 감수하는 응시자들도 있었다.

특히 이번 공인중개사 시험에서는 2030세대들이 다른 세대에 비해 더 많이 응시한 것으로 집계됐다. 계속된 코로나19로 인해 기업 공채가 크게 줄어들면서 취업 한파가 도래하자 공인중개사 시험을 선택한 것으로 파악된다. 실제로 이번 시험에서 2030세대의 응시비율은 39%에 달한다.

제32회 공인중개사 자격시험이 실시된 30일 서울 은평중학교에서 수험생들이 시험을 마친 뒤 고사장을 나서고 있다. 연합뉴스

◆집 값이 내리지 않을 것 같아요

이날 1차 시험 후 만난 류연희(가명·40) 씨는 "부동산 관련 전문 자격증이라 장점이 많은 것 같다"고 했다. 중개사 사무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그는 현장에서 자격증 유무에 따라 활동의 제약도 많았다고 말했다. 그는 "2년 간 일을 하다보니 자격증이 있는 것과 없는 것이 하늘과 땅 차이라는 것을 알았다"며 "안동과 경북도청 인근도 최근 집값이 많이 올랐다. 결국 사람은 집 생각을 안 하면서 살 수 없기 때문에 공인중개사의 미래는 밝은 것 같다"고 말했다.

김대현(가명·58) 씨는 공기업에 재직하면서 시험을 준비해왔다. 은퇴 후 공인중개사로 제 2의 인생을 시작하고 싶다는 그 역시 집값이 내릴 것 같지는 않다고 했다. 김 씨는 "대도시에 비할 수는 없겠지만 경북 지역도 집값, 특히 땅값이 꾸준히 상승하고 있다"며 "초기 자본이 많이 드는 것도 아니고, 오히려 나이가 많으면 많은 대로 장점이 많은 일이라서 시험을 계속 치고는 있는데 번번이 낙방하고 있다"고 웃었다.

◆ 당장 안 써도 언젠가는 도움이 돼

김정아(가명·37) 씨는 경북의 한 식품회사에서 7년 간 일했다고 했다. 대학 전공에 맞춰 취직을 했지만 막상 일을 해보니 전망이 밝지만은 않았다. 그는 "35살 이후부터 내가 여기서 계속 일할 수 있을까 고민을 많이 했다"며 "마침 친적 중에 중개사를 하는 분이 있어 이야기를 들어왔는데 나이에 구애 받지 않는 전문직 자격증이라는 생각에 공부를 하게 됐다"고 말했다.

20대 지원자인 최한결(가명·28) 씨는 거듭 취업에 실패하다 서비스직으로 눈을 돌린 경우다. 고향에 내려와 카페 아르바이트를 하다가 시험을 준비해왔다. 최 씨는 "오늘 민법 시험에 생각보다 판례 문제가 너무 많이 나와서 어려웠다. 결과는 자신이 없다"면서 난처해 했다.

그는 "서비스업이 적성에 맞는 것 같은데 계속 아르바이트를 할 수는 없을 것 같아서 부모님과 상의하다 공부를 시작했다"며 "이번에 붙으면 가장 좋지만, 안 되더라도 일단 중개사 사무실에 취직을 해보려고 한다. 일단 따 놓으면 선택지가 하나 더 생기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30일 기자가 친 제 32회 공인중개사 1차 시험문제지. 역대 최대 응시자가 몰린 이번 회차 시험 직후 에듀윌은 부동산학 개론은 작년과 비슷한 수준, 민법 문제는 작년보다 어려운 난이도라고 발표했다. 이주형 기자

◆ 반값 중개료 논란은 여전, 자격증이 고수익 보장 안해줘

앞서 서울 강남구의 일부 아파트 단지는 한번 거래를 성사시키는 것만으로 수천만원에 달하는 수수료를 챙길 수 있어 언론에 여러 차례 회자되기도 했다. 크게 오른 집값 덕분에 공인중개사들의 수수료 역시 덩달아 오르면서 시험 응시 인기가 급증했다는 분석이지만, 현장에서는 자격증만이 대수가 아니라는 지적이 끊임없이 나온다.

국토교통부가 지난 19일 부동산 중개 수수료를 기존 수준의 최대 절반으로 인하하는 새 공인중개사법 시행규칙을 공포와 함께 시행하면서 논란도 이어지고 있다.

새 규칙에 따르면 주택 매매는 6억원 이상부터, 전월세 거래는 3억원이 넘는 집부터 중개 수수료가 이전보다 저렴해지게 된다. 공인중개사 업계는 이같은 조치를 받아들이기 어렵다는 입장이다.

공인중개사들은 중개 보수 개편 과정에서 꾸준히 현 개편안에 대해 반대 입장을 밝혀왔다. 중개 업계는 현 최고요율제가 중개인과 의뢰인간 갈등 문제를 일으킨다는 판단에 따라 고정요율제로 전환을 주장하고 있다.

이와 관련, 대구 수성구에서 공인중개사 합동사무실을 운영하는 업계 관계자는 "15년 전과 비교하면 응시 열기와 시험 난이도가 상상을 초월하는 수준"이라며 "그만큼 중개사의 수도 많아졌고, 다들 자격증이 있는 상태에서 경쟁하기 때문에 고수익을 올릴 수 있는 능력은 또 다른 문제"라고 말했다.

그는 "정말 이 업계에서 일하고 싶다면 자격증에 매몰되지 말고, 먼저 취업을 해서 어떤 일인지, 적성에 맞는지 알아보는 것도 한 방법"이라고 조언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