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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수원현미경(41)] 영통구청에 얽힌 이야기-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김충영 수원현미경(41)] 영통구청에 얽힌 이야기-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승인 2021.10.18 06:00

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영통구청 개청식 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영통구는 수원시에 구청제도가 도입된지 15년 만인 2003년 11월 24일 분구됐다. 당시 수원시 인구는 104만223명이었다. 수원은 영통구가 신설됨에 따라 4개구 체계가 됐다. 영통구는 분구 당시 팔달구의 매탄1동, 매탄2동, 매탄3동, 매탄4동과, 영통1동, 영통2동, 태장동, 원천동, 이의동이 분할되어 영통구가 됐다.

10년 전인 1993년엔 팔달구 산하의 동이었다. 영통구가 분구된 것이 아니고 팔달구가 분구된 것이나 다름없었다. 영통구를 분구시킨 팔달구는 장안구의 신안동과 화서1동, 화서2동, 권선구의 매교동, 매산동, 고등동을 편입했다. 영통구는 면적27.48㎢에 24만3109명의 구민을 갖게 됐다.

수원시 4개구 행정구역도. (자료=수원시)

장안구는 33.18㎢에 28만5113명, 권선구는 47.39㎢에 28만5616명, 팔달구는 13.05㎢에 21만5160명 등이었다. 영통구의 구성을 살펴보면 기존 시가지는 매탄1,2,3,4동과 원천동이었다. 이곳은 1980년대까지 매원동(매탄, 원천동)이었다, 그리고 신도시인 영통지구와 매탄3지구가 영통구가 됐다. 그리고 광교지구는 영통구가 분구된 이후 이의동, 하동, 원천동과 용인시 상현동이 광교택지 개발지구로 개발됐다.

영통이라는 이름은 영통동에서 따온 이름이다. 영통택지개발사업지구가 개발되면서 영통은 동쪽의 중심이 됐다. 영통(靈通)이라는 의미 또한 좋았기에 영통구의 이름이 됐다. 1989년 10월 14일 용인시 기흥읍 영덕리 일원 62만7000㎡(18만9700평)가 영덕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됐다.

영통지구 개발사업전 모습. (사진=수원시)

그리고 1989년 10월 27일 화성군 태안읍 영통리와 수원 원천동 일부 256만7000㎡(77만6500평)가 영통택지개발지구로 지정됐다. 수원시 원천동의 2만여 평도 함께 편입됐다. 이때 영덕과 영통이 2개 단지로 지정된 것은 행정구역이 상이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개발계획을 수립하는 과정에서 영통지구로 통합하여 개발계획을 수립하게 됐다.

영통지구 택지개발사업 추진은 1988년 2월 25일 제13대 대통령으로 취임한 노태우 대통령의 선거공약으로 시작됐다. 주택 200만호 건설계획은 취임 1주년을 맞으면서 본격적으로 추진됐다. 당시 1기신도시사업은 성남시의 분당과 고양시 일산, 안양시 평촌, 군포시 산본, 부천시 중동 등 5개 단지가 발표됐다.

그러나 영통지구는 1기 5대 신도시보다 조금 늦게 추진됐다. 1기 5개 신도시로서는 주택물량이 부족하자 영통지구를 추가로 지정했다. 그래서 영통지구 또한 1기 신도시라고 해야 옳은 표현일 것이다. 영통지구는 당시 수원시 도시계획구역이었다. 그런데 수원시 도시계획상 시가화구역(주거지역)이 아니었다. 당시 택지개발사업은 도시기본계획상 시가화구역에 한해서 택지개발사업 예정지구를 지정했다.

그래서 수원시는 영통지구 택지개발사업 지구지정 의견서에 ‘시기 미도래’ 등을 이유로 동의하지 않는다는 의견을 제출했다. 이때 건설교통부는 용인군과 화성군의 의견도 함께 들었다. 건설교통부는 수원시가 도시계획 입안권자로서 동의하지 않았음에도 중앙정부가 추진하는 중점사업이라는 이유로 지구지정을 했다.

영통택지개발사업 조감도. (자료=수원시)

수원시는 허망한 입장이 되고 말았다. 당시 지구지정 때 제출한 시.군 의견이 택지개발사업 시행 조건이 되곤 했다. 수원시의 부동의를 무시하는 순간 수원시 의견은 없는 것이 됐다. 그리하여 영통지구는 수원시의 의견을 관철하는데 애로 사항이 많았다.

이후 1994년 12월 26일 영통지구 전체가 수원시로 행정구역이 넘어오게 되면서 개발계획 협의 시 수원시 의견을 반영하기도 했다. 이때 영통지구에 구청부지 1만8845㎡(5700평)을 확보하게 됐다. 그리고 1994년 6월 15일 대한주택공사에서 신청한 매탄4지구 택지개발사업예정지구가 지정됐다.

매탄4지구 개발전 모습. (사진=수원시 항공사진 서비스)

시청 앞길에서 삼성전자 방향의 동수원에서 마지막 남은 65만6658㎡(19만8640평)이었다. 이곳은 경지 정리된 생산녹지 지역이었다. 주변이 모두 개발되다 보니 집중호우 때는 침수 피해를 겪는 지역이었다. 수원시는 개발계획수립과정에서 이곳에 공공청사 부지 2만㎡(6500평)를 확보했다.

매탄4지구 택지개발사업은 1996년 12월 10일 착수해서 2001년 12월 31일 사업이 완료됐다. 매탄4지구는 심재덕 시장의 아픈 역사가 있는 곳이다. '김충영의 수원현미경(37) 장안구청사에 얽힌 이야기'에서 밝힌 바와 같이 당시 수원시는 수도권정비계획법상 제한정비권역이어서 공업지역의 증설이 불가했다.

그런데 당시 삼성전자는 수원공장만으로는 한계에 이르자 타 지역에 공단조성을 추진하게 된다. 이후 추진된 곳이 아산탕정과 평택 고덕 등이 추진됐다. 이렇게 되자 수원에서는 이상한 소문이 나돌기 시작했다. 심재덕 시장이 삼성을 홀대해서 삼성전자 옆의 땅을 삼성에 주지 않고 대한주택공사에 주었다고 했다. 그런 이유로 삼성전자가 공장증설을 못해서 다른 곳에 공장을 이전하게 됐다고 했다.

그래서 수원경제가 어렵게 됐다는 이야기가 돌았다. 이런 소문은 민선3기 시장 선거과정에서 절정에 달했다. 당시 수원에서 택시를 타면 택시운전기사들이 공공연하게 이런 이야기를 하곤 했다. 이런 소문과 8개월간의 옥고를 치른 후유증으로 심 시장은 민선3기 시장 선거에서 낙선을 하게 됐다.

2003년 영통구의 분구가 확정되자 구청사의 위치를 두고 고민이 많았던 듯 했다. 영통관내는 구청부지가 2개나 되었기 때문이었다. 영통지구의 청사 부지는 동쪽에 치우친 위치였다. 대신 매탄4지구의 청사부지는 영통의 중심이라고 할 수 있는 위치였다. 당시 추진 중인 광교택지개발사업지구가 완공된다 할지라도 접근성이 편리한 위치였다.

영통구청 개청 행사모습. (사진=수원시 포토뱅크)

그런 이유로 영통구청사는 삼성전자 옆인 매탄4지구로 확정됐다. 청사부지가 확정되자 청사준비에 들어갔다. 예산형편과 시급성이 감안돼 경량철골조로 공사가 추진됐다. 영통구청은 2만㎡(6,500평)부지에 지상2층으로 건립됐다.

현재 영통구청 주변 모습. (사진=수원시 항공사진 서비스)

이윽고 영통구청은 2003년 11월 24일 개청식을 갖고 문을 열게 됐다. 초대구청장은 행정자치부 출신으로 영통이 고향인 김진흥 구청장이 취임했다. 이로써 수원시는 일반시 가운데 전국 최초로 4개구를 두는 기초지방자치단체가 됐다. 그런데 수원시는 해결해야 하는 숙제가 있었다.

당시 4개구청장 중 1개 구청장은 행정자치부가 임명을 했고 1개 구청장은 경기도지사가 임명했다. 이후 수원시의 끈질긴 노력으로 4개 구청장을 수원시장이 임명하게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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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충영 도시계획학 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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