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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먼시티 수원] 수원 근대 역사·문화… ‘신작로’ 타고 다시 깨어나다

[휴먼시티 수원] 수원 근대 역사·문화… ‘신작로’ 타고 다시 깨어나다

장희준 기자 junh@kyeonggi.com

입력 2021. 04. 27 오후 8 : 21

市, 4년 걸쳐 인문기행 ‘신작로, 근대를 걷다’ 개발

3.9㎞에 2시간30분 코스, 수원의 옛 이야기 가득

‘인문도시’를 지향하는 수원시는 근대 역사와 문화의 향기가 가득한 인문기행 코스 4개를 개발했다. 오랜 공을 들여 하나의 코스를 개발하고 스토리를 담는 작업은 4년에 걸쳐 완성됐다. 그 첫 번째 코스는 100년 전 조선 말에서 일제강점기를 거치며 새로운 문물의 유입이 활발했던 신작로에 초점이 맞춰진다. 교동을 중심으로 근대의 입구를 통과하던 수원사람들과 당시의 흔적을 만날 수 있다. ‘신작로 근대를 걷다’라는 제목의 인문기행 코스는 화성행궁광장을 출발해 공방거리를 지나 팔달사 구 수원시청사 구 수원문화원 수원향교 수원시민회관 매산초등학교, 인쇄소 골목을 거쳐 수원역에서 끝을 맺는다. 총 3.9㎞의 코스를 둘러보는 데 걸리는 시간은 2시간30분 남짓. 곳곳의 근대 건축물과 그곳에 남은 역사의 흔적을 살펴보며 풍성한 이야기를 곱씹어 보는 건 어떨까.

수원 근대 인문기행 1코스 출발점인 수원시 행궁동의 공방거리 입구.

■ 공방거리~수원 구 부국원

행궁광장에서 서남쪽으로 이어진 길을 따라 형성된 공방거리는 ‘수원의 인사동’처럼 작고 아기자기한 공방들이 눈을 즐겁게 한다. 차 없는 거리 행사의 중심지였던 이곳은 보도블록이나 배수로도 일반적인 길과 다르다.

공방거리 중간쯤 만날 수 있는 ‘한데우물’은 정조대왕이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준비할 때 물을 길어 사용했던 곳으로 전해진다. 1980년대에 안전상의 이유로 폐쇄됐던 우물은 2008년 마을만들기 사업으로 복원됐고, 현재 ‘도심 속 우물’이라는 독특한 볼거리로 존재한다. 신상옥 감독의 대표작 ‘사랑방 손님과 어머니(1961)’의 주 배경인 집도 한데우물 맞은편 골목에 그대로 남아 있다.

공방거리를 빠져나온 뒤 남문로데오거리를 걷다 보면 빌딩들 사이에 다소 생경한 한옥 건축물이 나타난다. 전통사찰인 ‘팔달사’다. 용화전 측면에 ‘담배 피우는 호랑이와 시중드는 토끼 두 마리’가 해학적인 벽화로 남은 곳이다.

길을 따라 내려오면 대한성공회 수원교회를 만날 수 있다. 1905년 수원지역에서 시작된 성공회는 브라이들(Bridleㆍ부재열) 신부가 지금의 위치에 자리를 잡아 1908년 설립한 ‘성스데반성당’이다. 팔달산 비탈에 붉은 벽돌의 독특한 외관을 지닌 성당은 국채보상운동과 학교, 고아원, 수녀원 운영 등 서울 이남에서 성공회의 활약을 주도한 곳이다.

일제의 농업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수원 구 부국원 건물.

■ 수원 구 부국원~수원시민회관

향교로 입구부터는 수원의 근대를 대표하는 건축물들이 곳곳에 자리한다. 시작점은 ‘구 부국원’이다. 독특한 모양의 이 건물은 1923년 일본의 주식회사 부국원이 종자와 종묘 등을 판매하기 위한 본거지로, 당시 교동에서 가장 높은 ‘이질적인’ 건물이었다. 권업모범장과 함께 일제의 농업침략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이다. 해방 후에는 관공서, 병원, 인쇄소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되며 세월의 흔적을 남겼다. 구 부국원 건물은 2015년 철거의 위기에 처했으나 수원시가 매입해 근대문화공간으로 만들어 일제의 침략성을 알리고 다양한 교육과 전시 등에 활용하고 있다.

구 부국원에서 향교로를 따라 수원역 방향으로 내려가면 보이는 수원시가족여성회관은 ‘구 수원시청사’다. 수직성과 수평성을 강조한 모더니즘 건축 양식을 잘 보여주는 건물은 1956년 7월 준공돼 청사로 사용되다가 수원시의 규모가 커지면서 1987년부터 권선구청으로, 2007년 9월 이후부터는 수원시가족여성회관으로 활용되고 있다.

향교로라는 이름의 주인 격인 ‘수원향교’는 1789년 현재의 터에 자리를 잡은 수원지방 인재 교육의 산실이었다. 붉은색 홍살문과 말에서 내려야 한다는 뜻을 새긴 하마비가 조선시대로 초대한다. 수원향교는 공자를 비롯한 유교 성인과 우리나라 유학자들의 위패를 모시고 제사를 지내는 대성전과 인재 양성 공간인 명륜당으로 구성돼 있다. 특히 대성전은 경기지역 향교 대성전 중 가장 큰 규모로, 역사적ㆍ예술적ㆍ학술적 가치를 인정받아 지난해 12월 보물로 지정됐다.

수원 향교에서 팔달산 방향으로 언덕을 올라가면 ‘수원시민회관’이 나온다. 1971년 건립돼 비교적 젊은 건축물 양쪽엔 부조와 모자이크 작품이 걸려 있다. 옥상에 올라서면 수원시 구시가지를 조망할 수 있는 ‘파노라마’ 풍광이 펼쳐진다.

수원역 인근에 남아 있는 2개의 급수탑.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철도 시설로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돼 있다.

■ 매산초등학교~수원역 급수탑

수원문화원에서 내려오면 기와지붕을 얹은 ‘매산초등학교’가 나온다. 1900년대 일어를 가르치던 일어화성학교가 일본인 소학교로 바뀌며 수원거류민립소학교가 됐고, 지금의 매산초 자리로 이전했다. 이후 수원공립국민학교까지 수차례 이름이 변경됐으나 일본 패망과 함께 폐교됐다. 민족정기를 바로 세우고자 1945년 매산국민학교로 다시 태어나면서 수원 초등교육의 살아있는 역사가 됐다.

향교로 일대는 인쇄산업의 중심지였다. 1918년 일본인들이 설립한 수원인쇄주식회사를 시작으로 1920년대에는 한국인이 운영하는 인쇄소도 등장했다. 서적 수요가 늘어나며 활황을 누리던 인쇄소 골목은 1970~1980년대 수원시내 인쇄소의 절반가량이 모여있을 정도로 번성했다.

인쇄소 간판이 즐비한 골목을 따라 끝까지 가면 ‘수원역’이 등장한다. 일제가 대륙침략을 목표로 철도를 만들면서 당초 예정됐던 노선은 지지대고개와 화서문 외곽, 팔달산 기슭을 통과하는 것이었다. 하지만 수원사람들의 끈질긴 반대로 지금의 노선으로 확정돼 1905년 1월 개통했다. 철도는 일본의 약탈과 침략 목적으로 이용됐지만, 해방 후에도 수원지역 주민들의 삶과 밀접한 연관을 맺었다. 지금은 일반철도와 고속철도, 지하철 1호선, 분당선, 수인선 등 많은 열차가 정차하며 유동 인구가 40만 명에 달하는 활기 넘치는 곳이 됐다.

특히 수원역 광장에서 병점 방향으로 300여m 거리에 증기기관차에 물을 공급하던 ‘급수탑’이 남아 있다. 붉은 벽돌로 만들어진 급수탑은 국내에서 유일한 협궤선 증기기관차용 급수탑이며, 시멘트로 만들어진 급수탑은 광궤철도 급수탑이다. 수인선과 수여선이 지나는 곳으로, 소금과 쌀을 수탈하던 일제의 운영 목적이 분명히 드러나는 곳이다. 수원시는 2015년 급수탑 주변에 녹지를 조성해 공원화했으며, 동일한 부지 내 현존하는 희귀한 철도 유산이라는 특수성을 인정받아 지난해 국가등록문화재로 등록됐다.

수원시 문화예술과 관계자는 “수원의 근대를 품은 건축물의 희로애락(喜怒哀樂)이 담긴 스토리를 따라 만들어진 인문기행 코스는 인문·역사에 관심이 많은 시민에게 흥미로운 볼거리와 지식을 제공할 것”이라며 “다양한 코스가 소개되는 만큼 수원에 대한 자부심과 정체성을 느낄 수 있는 계기가 되길 바란다”고 말했다.

장희준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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