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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없는 윤석열 책… 득일까, 독일까?

윤석열 없는 윤석열 책… 득일까, 독일까?

[아무튼, 주말] 대선, 앞으로 1년

서점가도 관련서 붐

곽창렬 기자

입력 2021.04.24 03:00 | 수정 2021.04.24 03:00

‘안철수의 생각' ’안철수를 생각한다’ ‘안철수의 생각을 생각한다’ ’안철수를 읽는다'….

대선이 있던 2012년, 제3지대 유력 대권 후보로 떠오른 안철수 당시 서울대 융합과학기술대학원장을 다룬 책이 쏟아졌다. 교보문고에 따르면 2012년 한 해 동안 제목에 ‘안철수’라는 이름이 들어간 책은 모두 56권. 이 중 안철수 후보가 직접 관여한 책은 ‘안철수의 생각’ 하나다. 나머지는 제3의 인물이 안 후보를 칭찬하거나 비판하거나 분석한 내용을 담았다. 당시 안 후보 캠프에서 팀장급으로 일했던 한 인사는 “관심을 받아서 좋긴 했지만, 자칫 잘나가던 레이스에 브레이크가 걸리지 않을까 염려했던 것도 사실”이라고 했다. 대선이 1년도 채 남지 않았다. 대선 후보를 주제 삼은 책들이 전초전처럼 서점에 등장하고 있다. 후보 자신도 모르는 책은 대선 주자에게 득일까, 독일까.

◇붐업은 고맙지만, 잡음 날까 신경 쓰여

제3지대 유력 대선 후보를 담은 책은 특히 주목받는다. 수십 년간 정치판에 몸담아온 주요 정당의 후보와 달리 사생활 등이 잘 알려지지 않아서다. 2012년 안철수 후보가 그런 케이스다. 당시 안철수 캠프 인사들은 책이 나오는 건 그만큼 주목받는다는 증거여서 좋았다고 말한다. 언론 분야를 담당했던 A씨는 “정치인은 자기와 관련된 부고(訃告) 기사 빼고는 아무리 날 선 비판 책이라도 좋은 일”이라며 “특히 후보를 찬양하는 책이 나오면 팩트 여부를 떠나 좋아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그러나 마냥 반길 일이 아니라고 고백한 인사도 있다. 후보에게 유리한 책을 쓴 뒤, 한몫 챙기겠다는 목적이 있을 수 있기 때문이다. 당시 정책 분야에서 활동했던 B씨는 “후보의 인기가 올라가니 이런저런 사람들이 산악회 같은 조직을 만들어서 지분을 요구하더라. 대선 주자의 책을 펴내는 사람 가운데는 그런 목적을 가진 경우도 있었다”고 했다. 그는 “민주당이나 국민의힘 같은 정당은 거대 조직이라 통제가 가능하지만, 안철수나 윤석열처럼 기성 정당의 도움을 받지 못하는 후보들에겐 쏟아져 나오는 책들이 반드시 반길 일만은 아니다”라고 했다.

◇지지율 1위 윤석열에게 득 될까 독 될까

비슷한 상황은 윤석열 전 검찰총장에게도 서서히 나타나고 있다. 윤 전 총장이 현직에 있던 올해 2월 5일 ‘지식공작소 정세분석팀’이라는 곳이 윤 전 총장과 관련된 책을 내며 스타트를 끊었다. 지난 12일에는 방송작가 출신 인사가 윤 전 총장의 서울법대 동기들을 취재해 책을 펴냈다. 그다음 날에는 윤 전 총장의 고교(충암고) 동창인 전직 언론인이 윤 전 총장과 3시간 만나 들은 얘기를 책으로 출간했다. 또 다른 언론인 출신 인사도 ‘윤석열의 운명’이라는 책을 다음 달 내놓을 예정이다. 저자인 오풍연 전 서울신문 기자는 본지 통화에서 “2020년 4월 1일부터 2021년 4월 1일까지 윤 전 총장에 대해 쓴 칼럼이나 에세이 200여편을 묶어 낸 책”이라며 “윤 전 총장과 직접 만나지는 않았지만 직간접적인 소통을 하고 있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다”라고 했다. 출판사 측도 “책과 관련해 오 전 기자가 윤 전 총장과 카톡 메시지를 주고받았으며, 책의 디자인 시안도 보내서 의견을 받았다. 사람들이 뭐라 할 것에 대비해 카톡 메시지를 보관하고 있다”고 했다.

하지만 각종 잡음도 흘러나온다. ‘윤 전 총장을 고작 3시간 만나 대화한 것을 토대로 책 한 권을 뚝딱 내놓았다' ’윤석열의 진심을 담은 내용은 눈을 씻고 봐도 없다'는 평가가 그것이다. 또 한 책은 윤 전 총장을 석 달여간 연구·조사한 대학교수 3명이 ‘가상’ 인사청문회를 한다는 형식으로 썼는데, 저자인 대학교수 3명이 누군지 밝히지 않아 의구심을 자아냈다. 이 같은 보도가 나오자, 북한의 대외 선전 매체(메아리)는 지난 20일 “윤 전 총장이 돈벌이 도구로 전락되는 가련한 신세에 놓이게 됐다”고 주장했다.

윤 전 총장이 책에 대해 어떤 반응을 내놓았는지는 정확히 알려지지 않았다. 일부 저자는 윤 전 총장의 암묵적 동의를 받았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윤 전 총장이 ‘밥 한 끼 같이 먹고 무슨 책을 쓰느냐’며 펄쩍 뛰었다거나 대단히 곤혹스러워했다는 보도도 나왔다. 2012년 안철수 캠프에서 일했던 차재원 부산 가톨릭대 교수는 “별 내용 없는 책들이 계속 나올 경우 읽어본 사람들은 속았다고 느낄 수 있다”며 “저자에 대한 반감이 자칫 윤석열에 대한 반감이 될 수 있기에 윤 전 총장도 마냥 이 상황을 즐겨서는 안 된다. 본인의 생각을 담은 책을 빨리 내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그 외 주요 대선 주자들도 저서를 준비하고 있다. 과거와 달리 글의 호흡이 짧아진 것이 특징이다. 정세균 전 국무총리는 지난 22일 ‘수상록'을 펴냈다. 정 전 총리의 생각을 담은 1~2쪽짜리 짧은 수필 100여편을 묶었다. 정 전 총리 측 관계자는 “긴 글에 익숙하지 않은 젊은 세대를 고려해 짧은 글을 여러 편 담았다”고 했다. 2012년 안철수 후보와 대담한 내용을 ‘안철수의 생각’으로 펴냈던 제정임 세명대 교수는 “모바일에 익숙한 젊은 유권자를 겨냥하기 위해서는 종이책에서 벗어나 오디오북 같은 방식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조선일보

곽창렬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