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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新수인선 로드] 수원·고색·오목천역, 경기~인천 이어준 대동맥​

[新수인선 로드] 수원·고색·오목천역, 경기~인천 이어준 대동맥

기자명 명종원 입력 2021.03.17 20:00 수정 2021.03.21 10:09

일제 강점기시대 1937년 8월 정식 운행… 시작은 국내의 물자수탈 수단으로 활용

수원역 1905년 1월1일 처음으로 개관… 1928년 한옥형태 2003년 현 모습 갖춰

고색역 1937년 건립 후 1974년 폐지… 오목천역 1937년 정류장 등급 첫 운영

수인선은 일제 강점기 시절인 1937년 8월 6일 정식운행을 시작한 이후 반세기가 넘는 세월을 경기도와 인천을 이어주는 대동맥이었고 주민들의 삶을 지탱해주는 다리였다. 탄생은 비록 일제의 수탈을 용이하게 하려는 도구였지만 1994년 노선이 폐지되기 전까지 경인지역 주민들의 인·물적 교류에 크게 기여했다. 이후 27년 만인 지난해 다시 달리기 시작한 신(新) 수인선은 어떤 모습으로 우리 삶에 다시 다가와 영향을 끼칠지 철길을 되밟으며 톺아봤다.<편집자주>

 

옛 철도청에서 30여년 간 협궤전동차 정비노동자로 일하던 김학중 씨가 자신 집앞에 들어선 아파트 단지를 보고 있다. 아파트 신축 공사장 앞으로 지난해 9월 재개통한 오목천역이 보인다. 명종원기자

◇일제강점기 아픔 서린 역사 = 수원역은 일본이 우리 외교권을 박탈하려 한 을사늑약(1905년 11월 17일)이 체결되던 그해 1월 1일 문을 열었다. 온 나라가 침통했던 을사년에 개통했기 때문일까. 수원역은 우리 역사의 아픈 곳과 맞닿아 있다.

일본이 인천 소래와 남동, 시흥 군자 등지 염전지대서 나는 소금을 비롯해 쌀, 해산물을 자국으로 옮기기 위해 만든 것이 수원역이다. 수원역 개통 이후인 1930년에는 수여선(수원~여주)이, 1937년에는 수인선(수원~인천)이 연달아 개통했다. 역이 처음 생길 당시에는 한옥 형태로 지어지지는 않았지만 10여 년 뒤인 1928년 한옥의 모습을 갖췄다. 이후 한국전쟁으로 건물이 파손된 뒤 1961년 역사를 새로 지었고, 한옥 형태의 수원역은 자취를 감췄다. 지금 수원역 모습은 2003년에 만들어진 것이다.

일본이 경기 지역 물자를 인천으로 옮기는 과정에서 많은 물자와 인파가 수원역을 오갔다. 이는 수원역 주변을 자연스레 물류와 경제의 중심지로 발돋움케 했다. 1911년 우마차 사용이 늘면서 수원장과 오산장, 남문장이 생긴 것도 이러한 영향이다. 숱한 변화를 겪으면서 오늘날 수원역 로데오거리와 인근의 남문시장(옛 남문장) 모습에 이르렀다.

수원역에서 한 정거장 떨어진 고색역은 80여 년 전인 1937년 8월 5일 지어졌다. 수인선이 처음 개통했을 때 정차장 등급으로 영업을 시작한 역이다. 정차장은 열차를 정지 시켜 여객의 승강이나 화물이 내리는 등 운행에 필요한 조치를 하는 장소를 말하는데, 고색역은 이 역할을 했다.

고색역은 이후 40년 가까이 열차 운행을 지속했다. 이는 일제강점기의 끝을 알리는 1945년 8월 15일 광복절을 훌쩍 넘기는 시간이다. 고색역이 문을 닫은 것은 1974년 8월 15일. 대한민국관보 철도청이 폐지를 공식화하면서다.

그러다 지난 9월 12일, 수인선이 재개통을 하면서 폐지 역사가 있던 자리에 고색역이 다시 문을 열었다. 수도권 외곽을 하나로 잇는 철도망 구축 필요성이 제기됨에 따라 정부가 문을 다시 연 것이다. 이로써 수도권 외곽을 잇고, 수도권 남부를 순환하는 철도망이 만들어졌다.

이와 달리 수인선 중 수원 지역 끄트머리에 있는 오목천역은 고색역과는 다른 방식으로 문을 열었다. 오목천역은 옛 역명인 ‘오목역’이 있던 장소에서 300m가량 떨어진 곳에 문을 열었다. 1937년 8월 5일 개업한 오목역은 당시 정류장 등급으로 문을 열었고 정확한 폐업 시기는 분명치 않다. 오목천역의 원래 가칭은 주변에 있는 화성 봉담읍에서 따온 ‘봉담역’이었다. 다만 이 역이 협궤철도였던 때에 해당 지역이었던 적이 없고, 오늘날 수원 오목천동에 위치해 오목천역으로 이름이 확정됐다.

 

정오께 찾은 고색역 주변에 있는 백반집. 식사를 하러 온 일용직 노동자들이 보인다. 이 식당은 일부 철거를 앞두고 있다. 명종원기자

◇‘손님 뺏길까 불안한’ 방앗간과 ‘매출 늘까 기대하는’ 편의점 = 수인 철도 길을 따라 생겨난 마을 모습은 오랜 세월만큼이나 변했다. 수원역은 2000년대 들어서면서 대형 쇼핑센터가 경쟁하듯 들어섰고 많은 사람이 찾는 관광명소가 됐다. 이곳에 입점한 한 브랜드의 대형복합쇼핑몰은 전국 매출이 1위라고 전해질 정도다. 수원역이 경제 중심지로 자리매김했다면, 고색역과 오목(천)역은 그보다는 변화 속도가 더뎠다. 고색역은 수인선이 문을 닫은 70년대 이후 현재까지 이렇다 할 변화가 없었지만, 최근 다시 개통하자 새 상가들이 들어서거나 리모델링을 하는 사례가 늘었다. 특히 젊은 층이 비교적 땅값이 저렴한 이곳으로 유입되면서 집을 리모델링하는 경우도 많아졌다고 주민들은 말했다.

그래서일까. 역이 다시 생기자 역 주변 공사터로 모인 일용직 노동자들 모습을 쉽게 찾아볼 수 있었다. 정오께 찾은 역 앞에 자리한 백반집에는 고색역 공원 공사를 하는 노동자들로 붐볐다. 많은 노동자가 허기를 달래러 온다는 이 식당을 취재진도 배를 채우려 찾았다. 이 식당은 도로확장공사로 일부 철거를 앞두고 있다.

식당 주인 차혜경(53) 씨는 "철거 보상이 지급되면 내년 초쯤에는 식당면적 절반이 줄고 나머지 공간에서 영업할 예정이에요. 오랫동안 장사해 온 게 아쉽지만 보상받은 돈으로 다른 활용방안을 찾아봐야 하지 않겠어요?"라고 말했다.

십수 년 간 단골들만 오던 슈퍼마켓에는 얼마 전부터 낯선 얼굴도 찾아왔다.

식당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은 거리에 있는 슈퍼마켓을 운영 중인 조영준(34) 씨는 "십여 년 동안 매일 비슷한 얼굴의 단골손님들만 찾아왔던 가게에 수인선 개통 이후에는 새 얼굴들도 보이는 게 큰 변화라면 큰 변화"라며 "최근 역 주변에 도로가 좁다는 시 평가가 있어 넓히는 방안을 두고 동네가 시끄럽다"고 말했다. 조 씨는 20여 년 전부터 부모님이 하시던 가게를 대신 맡아 영업 중이다.

오목천역은 변화의 폭이 더욱 큰 듯 보였다. 20년 전부터 아파트단지가 들어서더니 매년 공사가 끊이지 않아 아파트가 병풍처럼 들어섰다. 오목천역 바로 앞에는 역세권 아파트단지가 조성됐고 내년 준공을 목표로 새 단지가 또 들어선다.

오목천역 앞에 있던 한 주택이 철거된 뒤 잔해로 남아 있다. 이곳 부지에 어떤 건물이 들어서는지를 놓고 주민들 사이 의견이 엇갈린다. 명종원기자

이곳에 발붙여 살아온 주민들은 이러한 변화들이 반가우면서도 걱정스럽다고 했다. 아파트가 생기면 사람이 늘어 좋지만, 대형 상가들이 생겨 골목상권이 위축될까 하는 불안이 공존했다.

오목천역 바로 앞 상가건물에서 24년째 방앗간을 운영하는 김선영(62·가명) 씨는 "아파트 생기는 건 사람이 많아져서 좋은데 지하철역사 주변으로 상가들이 생길 것 같아 걱정이다. 코로나로 안 그래도 매출이 반 토막 이상이 났는데 대형마트까지 생긴다는 소문이 돌고 있어 불안해"라고 토로했다. 선영 씨는 이곳 오목천동 골목상권이 오후 9시만 되도 모두 문을 닫아 적막감이 흐를 정도라고 설명했다.

오목천동에서 50년을 넘게 살았다는 한 할아버지를 만났다. 옛 철도청에서 협궤전동차 정비업무를 30년 해 왔다는 김학중(81) 씨다. 그는 지은 지 40년은 돼 보이는 2층짜리 벽돌집에 살고 있다. 그의 집 주변으론 신식 아파트들이 줄지어 들어섰고 내년 준공하는 신축 아파트 단지까지 합하면 10개 단지는 족히 돼 보였다. 그사이에 자리한 2층짜리 집에서 보는 풍경은 퍽 비좁고 갑갑하게 느껴졌다.

"태산, 청구, 주공, 푸르지오…." 김 씨 할아버지가 집 앞 아파트 이름을 지은 순서대로 읊었다. 50년 동안 동네가 어떻게 변했는지 설명해 달라는 취재진 물음에 대한 답이었다.

"내가 수원에서만 20년을 살고 있는데 20년 전부터 태산 아파트가 들어서더니 이후 하나둘씩 생겨 지금은 아파트가 집 주위를 둘러싸버렸어." 그는 덤덤히 말했다.

신축 아파트가 하나둘 늘면서 기대감을 품은 주민도 있다.

오십 평생을 이곳 마을에서 살았다는 이금순(57·가명) 씨는 아파트가 많아져 손님이 더욱 늘지 않을까 하는 기대감이 있다고 입을 뗐다.

그는 "지금 짓고 있는 아파트 공사가 끝나면 교통도 장사도 더 좋아지고 잘 될 거라는 게 주민들 생각이고 바람이에요. 또 3년 전부터는 젊은 사람들 많이 간다고 하는 스타벅스도 들어오고 다른 프랜차이즈 대형 커피숍들도 들어오고 있어요. 큰 변화는 없지만 작은 변화들이 하나둘 생기고 있지요"라고 했다.

다시 문을 연 수인선. 이 길을 따라 새로이 찾아오고 또 사라지는 것은 무엇일까. 크고 작은 변화들이 이미 시작됐다.

명종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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