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공기관 이전 발표 한 달… 이재명이 불붙인 경기도 남북갈등
경기도 공공기관 이전은 승부수가 될까
입력 2021.03.20 15:00 | 수정 2021.03.20 15:00
이재명 경기지사가 경기 남부인 수원에 있는 경기도 산하 공공기관을 경기 동부와 북부로 옮긴다고 발표한 지 한 달이 지났다. 앞서 두 차례에 걸친 이전 발표 때와 달리, 3차 이전 발표 이후, 산하 공공기관 이전이 예정된 지역과 직원 등은 이 지사에게 정면으로 맞서 불만을 터뜨리고 있다.
한 수원 시민은 “전형적 불통 행정”이라며 삭발 시위를 했다. 공무원들은 “대선이라는 큰 전쟁에 나가는 장수가 부하들을 사지로 몰아 희생시키는 것”이라며 반발했다. 하지만 이 지사는 낙후된 지역에 대한 공공기관 이전은 지역 발전을 견인할 뿐만 아니라 희생에 대한 정당한 보상이라며 밀어붙이고 있다.
경기도 공공기관 3차 이전 추진 기자회견하는 이재명 지사
도내 17개 시·군은 저마다 특별팀까지 꾸려 “우리 쪽으로 와야 한다”고 유치 경쟁에 뛰어들었다. 각 지역민들은 공공기관이 자신들의 동네로 올 수도 있다는 기대감에 환영 의사를 밝혔다. 도지사에 의해 반으로 쪼개진 경기도 여론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경기도 공공기관 ‘빅 3’도 옮겨라”
경기도는 지난달 경기주택도시공사(GH),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 경기신용보증재단, 경기연구원, 경기도여성가족재단, 경기복지재단, 경기농수산진흥원 등을 이전한다고 발표했다. 이 지사는 “특별한 희생을 하고 있다면 이에 합당한 보상을 해야 한다. 이것이 균형 발전을 위한 길”이라고 밝혔다. 경기 동부와 북부 지역이 수도권 규제법, 군사 보호 구역, 상수원 보호 구역 등 중첩 규제로 수원에 비해 발전이 더디다는 점을 지적한 것이다.
3차 이전 기관에 근무하는 직원은 총 1100여명이다. 이에 따라 1·2차를 합쳐 동부와 북부로 이전하는 공공기관은 전체 26개 중 15곳으로 늘어났다. 경기도는 “경기도의료원이나 수원월드컵경기장관리재단처럼 ‘하드웨어’를 통째로 옮기는 것이 불가능한 기관은 이전 검토 대상에서 제외했다”며 “사실상 이전이 가능한 기관은 모조리 옮기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3차 발표가 뜨거운 감자가 된 이유는 GH나 경기신용보증재단(경기신보),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처럼 소위 ‘빅3’로 분류되는 굵직한 산하기관까지 이전 대상에 올랐기 때문이다. GH는 LH 처럼 신도시 개발 사업을, 경기신보는 은행 역할을 하며 큰돈 관리 등을 담당한다. 특히 GH와 경기신보는 수원 광교신도시에 신사옥을 현재 건립하고 있어 ‘설마 옮길까’ 하는 분위기가 지배적이었다.
25일 경기도 수원시 경기도청 앞에서 광교비상대책위원회 이오수 위원장이 경기도 공공기관 3차 이전계획에 반대하며 삭발을 하고 있다. /연합뉴스
GH 직원 A씨는 “기관과 협의도 없이 무작정 옮기라고 밝혀, 조직원 대부분이 충격을 받은 상태”라며 “추진력 강하다는 정치인 이재명에게 직접 당해 보니 기분이 매우 묘하다”고 말했다. 경기도청 2급 공무원 B씨는 “과거 도지사들도 공공 기관 북부 이전을 검토했다가 비용, 효율성 등을 이유로 보류했었다”며 “하지만 이 지사는 도정보다 대권을 바라보기 때문에 과감한 결정이 가능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수원은 뿔났고, 다른 시·군은 신났고
지난달 25일 수원 광교 주민들은 도청 앞에서 삭발 시위를 했다. 주민들은 ‘경기도 공공 기관 이전 반대 범시민추진위원회’를 구성해 “이재명 지사는 공공 기관 이전 계획을 철회해 독재 행정을 멈추라”고 촉구했다.
민주당 박광온 의원, 수원시의회 등 지역 정치인들은 “연대해 반대 행동을 이어간다”는 입장을 밝혔다. 경기도의회 수원 출신 의원 13명은 “공공기관 이전이 북부 지역 발전을 가져온다는 근거는 없다”며 “큰 선거를 앞둔 정치적 행위”라고 밝혔다.
반발이 거세지자 이 지사는 한 발짝 물러서기도 했다. 지난 4일 염태영 수원시장을 만나 “수소특화단지 조성을 위해 경기도가 적극적으로 돕겠다”고 밝혔다. 그러면서 그는 “당연히 섭섭하고, 억울할 수도 있다”며 “수원시민들이 이해하고 수용해주면 좋겠다”고 위로했다.
반면 타 시·군들은 공공 기관 유치를 목표로 하나로 뭉치는 모양새다. 양주, 포천, 연천, 파주는 경기도경제과학진흥원을 우선 유치 대상으로 정하고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유치에 나서고 있다. 남양주 시민단체인 다산신도시 총연합회는 이달 중에 ‘경기주택공사 남양주 유치위원회’를 발족한다. 경기 북부를 중심으로 지자체들은 저마다 “이 지사의 배려에 감사하다”는 입장문을 냈다.
경기도 공공기관 입지 현황. /경기도
한편 경기도 공공기관 노조는 지난 15일 “경기도의 기관 이전 발표가 공공기관 이주를 강제하는 법적 효력이 있는지 독립된 기관으로부터 판단을 받겠다”며 이 지사를 국민권익위원회에 신고했다. 그러면서 “중앙 부처 이전과 달리 경기도는 정책 결정 전 의회와 충분한 사전 협의가 없었다”고 설명했다.
◇‘경기 분도론’ 대신 던진 떡밥?
‘경기 분도론(分道論)’은 의정부를 중심으로 1990년대부터 경기 북부에서 나오던 여론이다. 한강 북쪽인 경기도 10개 시·군을 분리하자는 논리다. 경기북부지역이 경기남부에 비해 소외받았다고 주장하며 자신들끼리 뭉치고 싶다는 의지가 반영됐다. 현재 민주당 김민철 의원을 중심으로 국회에서 논의되고 있다.
하지만 이 지사는 “분도를 한다 해도 경기 북부가 잘 살 수 있다는 근거는 없다”며 분도론에 대한 반대 입장을 고수하고 있다. 이 때문에 남부의 경기도 공공기관을 북쪽으로 끌어올려 여론의 시선을 돌리려는 것이 아니냐는 해석도 나온다. 이에 대해 이 지사는 지난 기자회견에서 “분도론과 상관없는 정책적 결정”이라고 선을 긋기도 했다.
그럼에도 이 지사의 승부수로 분도론에 우호적이던 의정부나 남양주 등은 3차 이전 계획 발표 후 유치 경쟁 구도에 어쩔 수 없이 끌려 들어가게 됐다. 의정부시청 공무원 C씨는 “공공기관 유치전에 적극적으로 안 뛰어들면 주민들에게 ‘도대체 뭐 하고 있느냐’는 강한 질책을 받게 될 것”이라며 “분도를 찬성하는 입장에서 이들 기관은 분도 할 경우 필요 없는 기관인데도 일단 유치한 뒤 훗날을 생각하게 됐다”고 말했다.
한편 경기도는 공공기관 이전을 위해 응모한 시·군을 대상으로 4월에 심사를 거쳐 5월쯤 기관별 이전 지역을 발표할 계획이다. 이를 위해 외부 전문가로 심사위원회를 구성하고 균형 발전과 사업 연관성, 접근성과 도정 협력도 등을 종합적으로 평가할 방침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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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국 사회부 경기취재본부에서 근무하는 기자 조철오입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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