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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동칼럼]‘투기의 역사’가 말하는 것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정동칼럼]‘투기의 역사’가 말하는 것 -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입력 : 2021.03.12 03:00 수정 : 2021.03.12 03:03

3기 신도시 지정 지역에 한국토지주택공사(LH) 직원들이 부동산 불법투기를 했다는 참여연대와 민주사회를위한변호사모임의 폭로가 모든 이슈를 집어삼키는 블랙홀이 되고 있다. 국민의 분노와 좌절이 크다는 방증이다.

박상인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

문제의 심각성을 인지한 문재인 대통령이 직접 나서서 합동조사단을 구성해 사실을 규명하라고 신속하게 지시했다. 4년 재임 기간 중에 이처럼 문 대통령이 신속하게 반응한 사건은 드물었다. 수사 권한이 없는 합동조사단의 실효성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자, 이번에는 총리가 나서서 국가수사본부·국세청·금융위원회 등이 참여하는 합동특별수사본부를 구성해 발본색원하라는 지시를 내렸다.

정부의 신속한 대응에도 불구하고,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을 받고 있는 LH 직원들을 처벌하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대체적인 의견이다. LH 직원도 부패방지법상 ‘공직자’이므로, 업무상 비밀이용죄를 적용하면 7년 이하의 징역형에 처해질 수 있다. 그러나 업무처리 중 얻은 비밀을 이용해 부동산 투기를 했다는 사실을 구체적으로 입증하는 것은 쉽지 않을 수 있다. 3기 신도시 지정은 이미 언론을 통해 공공연하게 알려졌고, 광명·시흥 지역은 언젠가는 개발될 유력 후보지였다는 점도 사실이기 때문이다. 심증과 사법적 입증 사이에 괴리가 있는 것이다.

개발정보를 이용해 땅 투기하고 거액의 이득을 남긴 사례는 그동안 차고 넘치게 많았다. 노태우 정부 때 1기 신도시로 건설한 분당·일산·평촌 지역에 부동산 투기가 급증했고, 당시 정부는 투기와의 전쟁을 선포해 1만3000명 정도의 부동산 투기범을 적발했고, 1000명 정도를 구속했다. 2003년에 노무현 정부 때에도 유사한 일이 벌어졌다. 이런 역사적 경험이 LH 직원들의 3기 신도시 땅 투기 의혹이 빙산의 일각일 것이라고 생각하게 만드는 배경이기도 하다. 또 공직자·정치인·언론인·기업가 등등 이른바 힘 있거나 정보에 밝은 사람들이 더 많이, 더 은밀하게 관련되어 있을 것이라는 추측을 하게 만드는 근거이다.

그러나 더 중요한 문제는 이런 반복된 정책 실패에서 제대로 된 교훈을 못 배웠고, 또 제대로 된 대책도 못 세워왔다는 점이다. 소 잃고 외양간을 제대로 못 고쳐서, 또 소를 잃는 일이 반복되고 있는 셈이다. 사건이 벌어지고, 조사와 수사가 이뤄지고, 일부 투기범들을 처벌하는 방식으로는 투기와 부패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 현재 논란이 되고 있는 검찰의 수사 참여 여부가 문제의 핵심도 아니다.

부동산 투기와 이와 관련된 부패를 발본색원하기 위해서는 보다 근본적인 제도 개혁이 필요하다. 먼저 부동산이나 금융자산에서 발생하는 불로소득에 과세를 강화해 투기를 통해 축재하는 유인 자체를 제거해야 한다. 그동안 정부의 정책은 투기지역 지정을 통한 이른바 ‘핀셋 규제’와 대출 규제 그리고 특정지역 개발정책 등으로 아파트 가격을 잡는 데 초점을 맞춰왔다. 그러나 이런 핀셋 규제와 특정지역 개발정책은 오히려 부동산 투기와 부패를 더 조장할 뿐이고, 부동산 가격 안정에는 별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 우리의 경험이다. 핀셋 규제나 특정지역 개발정보를 한발 앞서 접할 수 있는 공직자, 정치인, LH 직원 등에게 이런 정책은 먹잇감을 던져주는 꼴인 것이다.

부동산 양도소득이나 택지 보상액에 대한 충분한 과세를 구체적으로 어떻게 설계할지는 정책기술적인 문제이다. 그러나 부동산이나 금융거래 정보의 가용성 등을 고려할 때, 지면 제약으로 구체적 설명을 하기는 어려우나, 부동산 거래를 위축시키지 않도록 제도를 설계하는 것이 가능함을 분명히 지적하고자 한다. 세제 개혁과 더불어 이해충돌방지법의 제정도 필요불가결하다. 이해충돌방지법이 제정된다면 LH 직원, 공직자, 국회의원 등은 자신의 주식이나 부동산 관련 정보 등을 정기적으로 신고해야 하며, 직무와 관련된 이해충돌이 있으면 관련 업무에서 사전적으로 배제된다. 또한 신고하지 않은 차명 등의 자산이 사후적으로 밝혀지면, 그 자체가 징계, 벌금, 징역형의 근거로 이용될 수 있다. 따라서 부패방지법상 업무상 비밀이용죄의 적용보다 훨씬 입증이 쉬워지고, 그만큼 부패를 사전적으로 방지하게 된다.

문재인 정부의 임기가 1년2개월 정도 남았다. 그러나 집권여당이 사실상 5분의 3 이상 의석을 확보한 국회의원 임기는 아직 3년 남았다. 2016년 가을 광화문광장을 가득 메웠던 시민들의 분노는 ‘이게 나라냐’라는 짧은 문구에 요약되어 있었다. 문재인 정부와 민주당은 이 분노에 답할 수 있어야 한다. ‘비정상의 정상화’는 구태적인 정책과 대책의 반복으로 달성될 수 없다.

경향신문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2103120300065&code=990100#csidxd2172d4935c8e5daede3ca687cfcc0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