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그 첫 공식 업무 - 퍼스트레이디
"한 게 뭐냐?"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주장하는 말이다. 도대체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한 일이 뭐기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당 대표를 지내고 대선 후보까지 올라가느냐는 것이다. 100% 아버지 후광 말고는 뭐가 있느냐는 얘기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먼저 이런 대답을 한다.
"벌써 20대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대답들이 있지만 국회의원이 된 이후의 활동에 대해선 잠시 접고, 인간 박근혜가 가장 먼저 공식적인 일을 맡았던 70년대 후반기로 가보자.
박사모 홈페이지에는 당시의 박근혜를 찬양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몇 구절만 인용해 본다.
"하지만 박근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불과 엿새 후부터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했다....(중략) 공인이란 그런 것일까. 우리는 기쁘면 마음대로 기뻐하고 슬프면 마음대로 슬퍼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어머니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여유마저도 없었다. 대통령 딸이라는 책임에 더해 어머니의 역할이었던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임까지 짊어지게 되었으니 그는 더 독해지고 더 단단해져야만 했을 것이다...(중략) 5년여의 퍼스트레이디 생활로 단련된 정치 감각은 지금의 정치인 박근혜를 만든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동양의 부덕 겸비한 한국의 무궁화'라는 제목의 글에는 좀 더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 나온다.
"다망한 일정 가운데도 거의 매주 열리는 새마음운동대회의 축사를 대필시키지 않고 직접 쓴다. 기자들이 스피치라이터에게 맡기라는 의견을 냈지만 한사코 거부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이 새마음운동을 해도 성공할까 말까한 정신 혁명 운동을 그렇게 안이하게 해서 성취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대필을 권했던 기자들은 그의 열성과 확고한 신념에 두말을 잇지 못했다."
그 외에도 "그의 학덕은 영어, 불어,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사서오경에 도달하고 있다"는 글을 보면 여기가 북한인지 남한인지 혼동될 정도이다.
백보 양보해 위의 말들이 대개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퍼스트레이디로서 임무를 잘 수행했다고 치자. 퍼스트레이디 역할 5년 한 것이 과연 정치적 능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혹자는 힐러리클린턴이 퍼스트레이디로서 지낸 세월이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힐러리는 오히려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힐러리 옆에 누가 남편이 되었어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거라는 농담도 있다.
![](http://www.wikipress.co.kr/wys2/file_attach/2012/01/25/1327476757-22.jpg) |
왜 가만 있는 날 갖고 그래, 정치 생각 없어요 | |
|
그토록 영부인으로서의 경험이 중요했다면 오히려 이순자 여사는 어떨지 물어보고 싶다. 박근혜보다 2년 더 영부인 생활을 했고, 이 여사 역시 비리가 좀 있어서 그렇지 큰 무리 없이 내조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물 두 살의 박근혜가 정신없이 겪은 5년 보다는, 웬만큼 정치를 알만한 50대의 이순자여사가 겪은 7년의 시간이 더 값지지는 않을까. 혹 이 여사의 비리가 정말 문제라면 다음 일화는 어떨까.
1978년 박근혜는 <대한구국십자군>과 <구국여성봉사단>의 명예총재로 있었다. 이 두 단체를 창설한 이는 최태민 목사. 낯선 이름일 수 있으나 70년대 말 기업인들에게는 이가 갈리는 이름이다. 물론 김재규에게도 그랬다. 최태민은 두 단체를 만들고 박근혜를 명예 총재로 앉힌 후, 호가호위 하듯 박근혜의 이름을 팔아 기업들에게 수천만원씩의 협찬을 받았다.
당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 1000만원 정도 할 때니 기업들의 부담은 엄청났고 그만큼 청와대로 민원도 빗발쳤다. 1978년 김재규 정보부장은 최태민에 대한 내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와의 불륜, 수십억 원의 횡령 등 비위사실이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박근혜 최태민 김재규 백광현(당시수사책임자)을 불러 대질까지 시켰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울며불며 '아니라고' 주장했고 마음이 약해진 박대통령은 이 일을 유야무야 끝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갈라지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김재규 정보부장. 10.26 사건의 발단은 여기부터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최태민 목사는 최근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에 수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A씨가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모씨와 함께 캠프의 자금을 담당했다"고 '뉴시스'측에 폭로하면서다.
물론 기사 어디에도, 또 70년대 일화 어디에도 박근혜가 직접 비리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하긴 박정희나 박근혜 모두 비리를 저지를 필요가 없던 사람들이다. 박정희는 죽을때까지 대통령을 하려고 했고 대한민국을 '내것'처럼 생각했던 사람이다. 기업이든 언론사든 정치인이든 마음만 먹으면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굳이' 귀찮게 비리를 뭣하러 저지르겠는가. 하지만 직접 더러운 곳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고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러운 신발들이 현관에 있으면 저절로 깨끗한 신발에도 냄새가 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자리는 일을 하는 자리라기보다 사람을 앉히는 자리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직접 '전봇대를 뽑아라',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돈을 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생각이 똑바로 박힌 국토해양부 장관을 임명하면 되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앉히면 된다. 얼마나 주변 사람들이 괜찮은가가 그 대통령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의 대통령 직무수행에는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