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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파란blog이전(+)됨:약7십만접속/-기존_자료2 종합(박근혜 前 대통령관련)

 박근혜. 박근혜? 박근혜! <대선후보 검증 프로젝트> 박근혜 (1)(2)

박근혜. 박근혜? 박근혜! <대선후보 검증 프로젝트> 박근혜 (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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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 례]

박근혜. 박근혜? 박근혜! <대선후보 검증 프로젝트> 박근혜 (1)

박근혜? 박근혜! <대선후보 검증 프로젝트-1 박근혜> 2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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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박근혜? 박근혜! <대선후보 검증 프로젝트> 박근혜 (1)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2012년01월17일 11시09분조회수:46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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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나라당 비상대책위원장 박근혜, 그는 누가 뭐래도 현 여당의 가장 유력한 대선 후보이다. 지난 수 년간 대선 후보로 늘 지지율 1위를 달려왔다. 최근 몇 개월 사이 안철수 원장의 강력한 도전을 받고 있지만 여전히 집권 여당의 강력한 대선 주자이고, 지금 당장 선거를 한다면 당선될 가능성이 가장 높은 것이 사실이다.

그렇다면 우리는 우리의 대통령이 될지도 모르는 박근혜 비대위원장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을까. 독재자 박정희의 딸, 수첩공주, 선거의 여왕 그리고 "대전은요?" 정도가 우리가 알고 있는 박근혜에 대한 전부다. 그를 지지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박근혜 위원장에 대해 '약속을 지킬 것 같다' 정도의 막연한 믿음과 기대를 갖고 있고, 마찬가지로 그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독재자의 딸', '수첩공주' 외에는 아는 것이 거의 없다.

<위키프레스>는 앞으로 여권 유력 대선 후보인 박 위원장에 대한 철저한 검증을 통해 과연 한 나라의 대통령 후보가 될 자격이 있는지, 대통령이 된다면 국정을 잘 운영할 것인지를 살펴보고자 한다. ‘박근혜 검증 프로젝트’에는 다음과 같은 원칙이 적용된다.

첫째, 박정희에 대한 이야기는 가급적 하지 않을 것이다. 박정희가 얼마나 많은 죄 없는 이들을 간첩으로 몰아 죽였는지, 얼마나 친일 행위를 했는지, 얼마나 방탕하고 얼마나 비열했는지는 어디까지나 박정희에 대한 평가로 끝내야 한다는 것이 우리의 판단이다. 물론 박근혜의 지지라는 것이 대개 박정희로부터 나온 것이기에 무 자르듯 모든 관계를 끊을 수는 없겠으나, 이번 검증 프로젝트는 가능한 박근혜에게만 초점을 맞출 것이다. 그리고 철저하게 대통령 후보로서 박근혜의 능력과 철학만을 따져볼 것이다.

둘째, 잃어버린 17년에 대해서는 가능한 다루지 않을 것이다. 1979년 박정희 암살 이후 97년까지 박근혜는 영남대학교 이사, 육영재단 이사장 등 직함을 가진 것 외에 별다른 정치적 행동을 하지 않았다. 당시의 기록을 추적함으로써 개인적 비리나 부정행위를 찾는 것은 어렵지 않지만, 이는 조중동에서 흔히 하는 '신상털기' 수준의 저급 기사라 판단해 되도록 공적 활동 및 발언 등을 토대로 검증할 것이다. 즉, 퍼스트레이디로 있었던 74년부터 79년까지, 국회의원으로 데뷔한 1998년부터 지금까지의 의정활동 및 공식적 대외 활동에 대해서 집중할 예정이다.

셋째, 박근혜 측의 반론 및 의견 제시에 대해서는 적극적으로 수용할 것이다. 박 의원의 반론 요청문은 원문 그대로 실어줄 것이며 박 의원 측의 해명에 대해서도 언제든 전향적으로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다.

이외에 원칙은 다음과 같다. 기사에 등장하는 인물은 혼동의 소지가 없는 경우 ‘의원’ ‘위원장’ 등 호칭을 생략할 것이다. 박지만, 박근령 등이 관련된 인척비리는 박 위원장과 관련된 현재진행형 비리일 가능성이 크기 때문에 이에 대한 검증은 비껴가지 않을 예정이다.

끝으로 만에 하나 기사에 대한 어떠한 형식이든 압력이 들어올 경우, 그 상황 그대로 다시 기사화 할 것임을 밝혀둔다.

다시 한 번 밝히지만 특정 정치인을 흠집 낼 의도도 이유도 여유도 없다. 다만 대통령으로 자격이 있는지, 대통령이 되면 우리나라를 잘 이끌어나갈 사람인지가 우리가 밝히려는 A 부터 Z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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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박근혜! <대선후보 검증 프로젝트-1 박근혜> 2부

퍼스트레이디 5년 경험은 중요한 정치적 자산이다?

트위터로 보내기페이스북으로 보내기미투데이로 보내기 2012년01월25일 16시25분조회수:34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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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그 첫 공식 업무 - 퍼스트레이디

"한 게 뭐냐?"

박근혜를 반대하는 사람들이 가장 먼저 주장하는 말이다. 도대체 국회의원이 되기 전까지 한 일이 뭐기에 국회의원에 당선되고 당 대표를 지내고 대선 후보까지 올라가느냐는 것이다. 100% 아버지 후광 말고는 뭐가 있느냐는 얘기다. 박근혜를 지지하는 사람들은 이 질문에 먼저 이런 대답을 한다.

"벌써 20대에 퍼스트레이디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했다"

물론 그 외에도 여러 대답들이 있지만 국회의원이 된 이후의 활동에 대해선 잠시 접고, 인간 박근혜가 가장 먼저 공식적인 일을 맡았던 70년대 후반기로 가보자.

박사모 홈페이지에는 당시의 박근혜를 찬양하는 글들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몇 구절만 인용해 본다.
"하지만 박근혜는 어머니가 돌아가신 지 불과 엿새 후부터 어머니의 역할을 대신했다....(중략) 공인이란 그런 것일까. 우리는 기쁘면 마음대로 기뻐하고 슬프면 마음대로 슬퍼할 수 있다. 하지만 박근혜는 어머니의 죽음을 마냥 슬퍼할 여유마저도 없었다. 대통령 딸이라는 책임에 더해 어머니의 역할이었던 퍼스트레이디라는 책임까지 짊어지게 되었으니 그는 더 독해지고 더 단단해져야만 했을 것이다...(중략) 5년여의 퍼스트레이디 생활로 단련된 정치 감각은 지금의 정치인 박근혜를 만든 밑바탕이 되었을 것이다."

'동양의 부덕 겸비한 한국의 무궁화'라는 제목의 글에는 좀 더 손발이 오그라드는 표현이 나온다.

"다망한 일정 가운데도 거의 매주 열리는 새마음운동대회의 축사를 대필시키지 않고 직접 쓴다. 기자들이 스피치라이터에게 맡기라는 의견을 냈지만 한사코 거부했다. 열과 성을 다해서 이 새마음운동을 해도 성공할까 말까한 정신 혁명 운동을 그렇게 안이하게 해서 성취되겠느냐는 것이었다. 대필을 권했던 기자들은 그의 열성과 확고한 신념에 두말을 잇지 못했다."

그 외에도 "그의 학덕은 영어, 불어, 스페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며 사서오경에 도달하고 있다"는 글을 보면 여기가 북한인지 남한인지 혼동될 정도이다.


백보 양보해 위의 말들이 대개 사실이라고 받아들이고 퍼스트레이디로서 임무를 잘 수행했다고 치자. 퍼스트레이디 역할 5년 한 것이 과연 정치적 능력과 어떤 상관관계가 있을까. 혹자는 힐러리클린턴이 퍼스트레이디로서 지낸 세월이 지금의 자리를 만들었다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힐러리는 오히려 빌 클린턴을 대통령으로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는 사람이다. 힐러리 옆에 누가 남편이 되었어도 대통령으로 만들었을 거라는 농담도 있다.
왜 가만 있는 날 갖고 그래, 정치 생각 없어요

그토록 영부인으로서의 경험이 중요했다면 오히려 이순자 여사는 어떨지 물어보고 싶다. 박근혜보다 2년 더 영부인 생활을 했고, 이 여사 역시 비리가 좀 있어서 그렇지 큰 무리 없이 내조를 했다. 아무것도 모르는 스물 두 살의 박근혜가 정신없이 겪은 5년 보다는, 웬만큼 정치를 알만한 50대의 이순자여사가 겪은 7년의 시간이 더 값지지는 않을까. 혹 이 여사의 비리가 정말 문제라면 다음 일화는 어떨까.

1978년 박근혜는 <대한구국십자군>과 <구국여성봉사단>의 명예총재로 있었다. 이 두 단체를 창설한 이는 최태민 목사. 낯선 이름일 수 있으나 70년대 말 기업인들에게는 이가 갈리는 이름이다. 물론 김재규에게도 그랬다. 최태민은 두 단체를 만들고 박근혜를 명예 총재로 앉힌 후, 호가호위 하듯 박근혜의 이름을 팔아 기업들에게 수천만원씩의 협찬을 받았다.


당시 서울 아파트 한 채 값이 1000만원 정도 할 때니 기업들의 부담은 엄청났고 그만큼 청와대로 민원도 빗발쳤다. 1978년 김재규 정보부장은 최태민에 대한 내사를 본격적으로 시작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 비서와의 불륜, 수십억 원의 횡령 등 비위사실이 드러났다. 박 대통령은 박근혜 최태민 김재규 백광현(당시수사책임자)을 불러 대질까지 시켰다. 이 자리에서 박근혜는 울며불며 '아니라고' 주장했고 마음이 약해진 박대통령은 이 일을 유야무야 끝냈다. 박 대통령에 대한 존경심이 갈라지고 자존심에 큰 상처를 받은 김재규 정보부장. 10.26 사건의 발단은 여기부터라는 것이 일반적인 시각이다.
박통과도 막역한 최태민 목사,94년 사망

최태민 목사는 최근 다시 뉴스에 등장했다. 2007년 한나라당 경선 당시 박근혜 후보 측에 수억원을 건넸다고 주장한 A씨가 "최태민 목사의 사위인 정모씨와 함께 캠프의 자금을 담당했다"고 '뉴시스'측에 폭로하면서다.

물론 기사 어디에도, 또 70년대 일화 어디에도 박근혜가 직접 비리를 저질렀다는 이야기는 없다. 다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있었을 뿐이다. 하긴 박정희나 박근혜 모두 비리를 저지를 필요가 없던 사람들이다. 박정희는 죽을때까지 대통령을 하려고 했고 대한민국을 '내것'처럼 생각했던 사람이다. 기업이든 언론사든 정치인이든 마음만 먹으면 다 내 마음대로 할 수 있는데 '굳이' 귀찮게 비리를 뭣하러 저지르겠는가. 하지만 직접 더러운 곳에 발을 담그지 않았다고 깨끗한 사람이 되는 것은 아니다. 더러운 신발들이 현관에 있으면 저절로 깨끗한 신발에도 냄새가 난다.

또 하나 중요한 것은 대통령의 자리는 일을 하는 자리라기보다 사람을 앉히는 자리라는 점이다. 대통령이 직접 '전봇대를 뽑아라', '기초생활 수급자에게 돈을 줘라'고 말할 필요가 없다. 생각이 똑바로 박힌 국토해양부 장관을 임명하면 되고 보건복지부 장관을 앉히면 된다. 얼마나 주변 사람들이 괜찮은가가 그 대통령의 성공 여부를 결정하게 되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박근혜의 대통령 직무수행에는 의심이 갈 수 밖에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