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시간 버티다 뛰어내리려할때 소방관이.." 절규어린 울산의 밤 - (‘헬멧을 쓴 신이 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며 “정신을 잃고 깨보니 소방대원분께서 33층에서 1층까지 저를 업고 내려왔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김준호 기자 입력 2020.10.09. 11:07 수정 2020.10.09. 14:29
울산 아파트 주민들 "아이만 데리고 가달라며 울던 엄마 말 안 잊혀"
9일 오전 울산 남구 주상복합건물 삼환아르누보에서 화재가 완전히 진화되지 않아 연기가 퍼져나가고 있다. /울산소방본부
“1시간 넘게 버텼는데 죽겠구나 싶어 뛰어내리려고 했어요. 그때 소방대원이 들어와 구해줬습니다.”
8일 오후 울산 남구 주상복합건물 삼환아르누보에서 화재가 발생해 불길이 번지고 있다./독자제공 연합뉴스
9일 새벽 울산시 남구 신정동 한 아파트서 불이 나 화염이 치솟고 있다. /연합뉴스
8일 오후 울산시 남구 한 주상복합 아파트서 난 불이 밤새 계속되고 있다. /연합뉴스
울산 남구 삼산동 한 호텔 로비. 전날 오후 11시14분쯤 불이 난 남구 신정동 주상복합아파트 아르누보 주민들이 넋이 나간 상태로 앉아있었다. 일부는 지인, 친구들과 전화를 하며 울음을 터뜨리기도 했다.
주민들은 휴대전화 속 뉴스를 보며 사망자가 없다는 소식에 안도하면서도 더딘 진화 속도와 최초 발화점에 대한 엇갈리는 주장에 답답해하기도 했다.
호텔에 대피한 주민은 모두 52가구 155명 정도로 알려졌다. 호텔 로비에서 만난 이모(20)씨는 33층에 거주해 거의 막바지 극적으로 구조됐다. 이씨에 따르면 전날 오후 11시20여분쯤 매케한 냄새를 맡았다. 현관문을 열자 복도에 연기가 자욱했다고 한다. 함께 있던 엄마와 이모, 이씨는 대피하지 못한 채 다시 집 안 방으로 대피했다. 119에 전화를 했지만 통화중이었고, 어렵게 연결된 112에서는 ‘젖은 수건으로 빠져나와라’고 했다. 하지만 세사람 모두 엄두를 내지 못하고 꼼짝없이 집안에 갇혔다.
큰불이 발생한 울산시 남구 신정동의 한 33층짜리 주상복합 아파트. 9일 꺼져가던 불씨가 강풍으로 되살아나고 있다./뉴시스
세 사람은 방 안 창문을 열어 고개만 내놓은 채 구조대를 기다렸다. 이씨는 “처음엔 조금 있으면 누군가 구조하러 오겠지 했는데 점점 시간은 흐르고 절망적으로 변했다”고 말했다.
당시 초고층 화재진압용 고가사다리차가 없어 33층 화재는 더디게 진화되는 상황이었다. 시간은 점차 흐르고 구조 손길이 미치지 않자 세 사람은 뛰어내릴 생각까지 했다고 한다.
이씨는 “정말 뛰어내릴 생각으로 ‘에어매트를 깔아줄 수 있느냐’고 119에 묻기도 했다”며 “정신이 혼미하고 더이상 못 버티겠다 할 때 현관문을 부수고 구조대원들이 도착했다”고 말했다.
구조대원을 본 후 이씨는 혼절했다. 이씨는 "희미한 기억 속에 당시 저를 업은 소방대원을 본 순간 ‘헬멧을 쓴 신이 왔다고 생각할 정도’로 현실이 아닌 것 같았다”며 “정신을 잃고 깨보니 소방대원분께서 33층에서 1층까지 저를 업고 내려왔었다”고 고마움을 전했다.
한 주민은 “비상계단을 통해 긴급히 대피하는데 신생아를 안고 있던 아기 엄마가 ‘아이만이라도 먼저 안고 가달라’고 했던 모습이 잊혀지질 않는다”고 눈시울을 붉혔다. 당시 아이와 엄마 모두 무사히 대피한 것으로 전해졌다.
9일 진화작업을 마친 한 소방대원이 생수로 열기를 식히고 있다. /뉴시스
8층에 거주하는 여모(21)씨는 11시10여분쯤 집안에서 타는 냄새를 맡았다. 여씨는 “냄새만 나고 불꽃은 보이지 않아 다시 방으로 들어갔는데, 타는 냄새가 더욱 나서 거실로 나왔다"며 “거실에 이미 연기가 가득 차 있었다”고 말했다.
당시 여씨와 가족들은 집안에서 화재가 난 줄 알고 소화기를 들었다. 하지만 연기가 더욱 자욱해지면서 11시17분쯤 소방당국에 신고했다. 여씨는 “소방에 신고하고 나서야 우리 아파트에서 비슷한 신고가 많이 왔다고 하더라”며 “소방관이 ‘빨리 나오세요’라고 해 그제서야 집에서 빠져나왔다”고 말했다.
여씨에 따르면 가족들이 아파트 밖으로 빠져나온 뒤에도 한참 불꽃은 보이지 않았다. 하지만 약 10분 뒤인 11시28분쯤 주상복합 3층 놀이터 부근에서 불꽃이 치솟으며 불길이 아파트를 따라 순식간에 올라갔다.
이를 전해들은 주민들도 “방송에서 12층이라고 하는데, 3층에서 불이 시작됐다는 말도 있고 해서 정말 헷갈린다”며 “3층 놀이터에서 시작됐다고 하면 방화같은 것도 의심된다”고 했다.
또 다른 주민은 “12층에서인가 먼저 신고를 하고 소방관이 올 때만해도 아파트 사람들은 인근에서 화재가 난 줄 알 정도로 불꽃이 보이지 않았다”고 거들었다.
이곳 입주자대표 김모씨는 “불을 끌 소방장비도 없으면서 초고층 건물 건축허가는 어떻게 났느냐”며 더딘 화재 진화에 답답해했다.
한편, 화재가 난 주상복합 건물은 연면적 3만1210㎡ 규모로 지난 2009년 4월 준공됐다. 지하 2층, 지상 33층으로 오피스텔 19가구를 포함해 총 146가구, 382명이 거주하는 것으로 파악된다. 주민 89명이 연기를 마셨으나, 큰 부상은 입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화재 원인으로 에어컨 실외기 등이 지목되고 있지만 정확한 원인은 확인되지 않는다. 건물 외장재는 알루미늄 복합패널로 소방당국은 패널의 접착제가 가연성으로 화재를 키웠을 가능성이 있는 것으로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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