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➀경제활성화➁수맥과건강➂(알림,광고,홍보), /*전통시장 종합. 소상공인

[인터뷰] 이명욱 수원시소상공인연합회 칠보상인회장

[인터뷰] 이명욱 수원시소상공인연합회 칠보상인회장

기자명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글·사진=김동초 대기자

승인 2020.03.09 10:00

"소상공인에게 전통시장의 10분의 1이라도 신경 써줬으면"

전통시장 뺀 상인회, 권선구에만 10여개

대부분 1인사업자 많고 50대 이상 고령자

인터넷 미숙해 각종 지원대책 활용 못해

소상공인들의 애로나 현실 파악 시급해

권선지역 개발 미흡...시 차원 배려 필요

이명욱 수원시소상공인연합회 칠보상인회장이 새수원신문과의 인터뷰에 앞서 카메라 앞에 포즈를 취하고 있다.[사진=김동초 대기자]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글·사진=김동초 대기자] 나이에 비해 얼굴이 무척동안이다. 뒤에 밝혀진 사실이지만 향후 권선구 지부장을 준비중인 이 명욱 칠보상인회장은 화장품 업 계통에서만 40년 이상을 종사해온 화장품업계의 ‘배태랑’이다. 피부가 곱지 않으면 일선에서 화장품판매를 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직업정신으로 자연히 외모에 신경을 썼을 것이고 40년의 결과가 한 10년 이상을 젊게 보이게 하는 오늘을 가져온 것이다.

이명욱 회장은 1961년 경기도 양평에서 7남매 중 2남으로 태어났다고 한다. 문득 고향이 양평이었던 전 권선구청 이택용씨가 생각나 안면을 물으니 양평 지평고등학교 동창이라고 한다. 세상이 좁다는 느낌이 들며 새삼 이 명욱 상인회장의 얼굴이 동안이란 느낌이 재차 각인되는 순간이다. 이 회장은 양평의 지평초를 나와 지평중을 거쳐 지평고를 나온 골수 ‘지평맨’이었다. 부친은 시골면사무소에서 공직생활을 하셨고 모친은 전형적인 우리나라의 아낙이라고 했다.

양평은 예로부터 산세가 좋고 물과 공기가 맑아 우리나라 대표 청청지역이다. 그 곳에서 태어나 질풍노도의 시기인 청소년기를 다 보냈으니 심성도 맑고 건강도 좋았다고 했다. 성격 또한 무난한 편이라 서열다툼이나 경쟁에서 늘 중간쯤은 차지했다고 말했다. 고교 졸업 후 전원적이고 목가적인 고향을 떠나 서울로 올라와 생업전선에 뛰어들었다고 했다. 당시는 시골에서 진학이 안 되면 거의 객지로 나가 취업전선에 진출하는 게 사회적인 현상이었다며 또래들도 다 그렇게 고향을 떠났다고 했다.

서울 신림동에 있던 태평양화학(화장품도매업)에 입사 열심히 근무를 했고 3년 후 동경사로 군에 입대를 하게 되었다고 했다. 강원도 고성에 있는 부대로서 일명 ‘동경사’ 동해안 경비를 맡던 사령부다. 주특기가 900이었던 관계로 사단통신행정병으로 무난하게 군대생활을 마쳤다고 했다.

제대 후 87년 경, 과거 직장동료의 소개로 북문에 있던 ‘아모래’방문판매업체에 취직하며 수원과 인연을 맺는 계기가 되, 91년까지 근무를 하다 6월경 구운동에 ‘쥬단학 화장품도매점을 개업했고 2002년 월드컵 당시 화장품업계가 하향 길로 접어들자 10년 만에 구운동의 쥬댠학을 정리하고 금곡동에서 아모래퍼시픽 화장품업체인 아리따움 소매점 사업을 20년째 이어 오고 있다고 했다. 한 권역에서 30년을 같은 업종으로 점포를 운영한다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을 것이다. 그 지역의 한편의 기록과 같은 존재가 되고 있는 것이다.

2012년 서수원에 진출한 홈플러스 개업당시에 주변 소상공인들과 홈플러스 입점저지운동을 적극적으로 펼치며 ‘구 상권 살리기’에 최선을 다했지만 신도시개발계획 등에 밀리며 한계를 느꼈다고 했다. 2019년 11월경 경기도 시장상권 진흥원에서 권선구 지역의 소상공인회 구성요청이 들어왔고 주변 상인 30여 명과 상인회를 결성, 현재 수원시소상공인연합회 권선지부장을 맡아 지역상권 살리기에 최선을 다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아직도 체계화가 미흡하고 전통시장에 비해 조직력이나 단합이 덜 되있는 관계로 많은 어려움이 있다고 토로하기도 했다.

소상공인들의 현실이 전통시장에 비해 모든 면에서 열악하고 지원 또한 미미한 탓에 아직도 정부나 시는 전통시장위주의 정책을 펼치고 있다며 진한 아쉬움을 표하기도 했다.

전통시장의 1/10만이라도 신경을 써주길 바란다며 원망스런 표정을 짓기까지 했다. 그리고 수원시에는 현재 전통시장을 제외한 상인회로 2019년 11월 경기도시장상권진훙에서 구성한 상인회가 권선구에만 10여개가 존재하고 있고 경기도시장상권진흥원이 상인들을 상대로 ‘경영개선’ ‘현장체험’ ‘경영교육’ 등을 실시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한 소상공인들을 위해 서류간편화 등 여러 좋은 제도를 펼쳐주고 있다며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하지만 골목상권에 위치한 소상공인들은 일인 사업자가 많고 대부분 50대 이상의 고령인 탓에 ‘인터넷’이나 ‘온라인’접속에 익숙하지 못하며 서툰 관계로 많은 지원책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활용도가 미미하고 무이자 대출 등의 지원도 기존 대출금이 버거운 상태여서 소상공인들의 실질적인 혜택을 위한 현실적인 파악이 시급하다고 했다.

이런 현실을 감안 할 때 이명욱 상인회장은 앞으로 해야 할일을 생각하면 책임이 막중하고 무거운 짐을 느낀다고도 했다. 특히 이 회장은 수원지역 중에서도 권선구가 가장 개발이 덜 됐고 그만큼 낙후된 점을 들며 앞으로 수원시 차원에서도 각별한 지원과 배려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기도 했다.

이야기 끝 무렵 수원에 대해서 묻는 질문엔 이명욱 상인회장은 20대 초반에 수원에서 뿌리를 내려 40년을 살아온 관계로 수원이 마치 태어난 고향 같다고 말하기도 했다. 결혼은 90년도 했는데 당시 3男인 바로 아래 동생이 같은 해에 먼저 해서 자신은 다음해에 하는 것이 마땅하다고 생각했는데 아내가 서둘러서 아래 동생과 같은 해에 아홉수(29세)결혼을 하게 됐다고 당시를 회상하며 어색한 미소를 짓기도 했다. 현재는 아내와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고 있으며 아주 행복한 가정이라고 은근히 자랑을 하기 도 했다. 당시 아내를 만나게 된 사연을 묻는 질문엔 제대 후 87년 수원에 입성, 같은 회사에서 근무하던 아내와 만나 90년도에 식을 올렸다고 했다. 인물이 좋은 이명욱 회장은 아내도 미인일 것이란 생각이 드는 순간이기도 했다.

당시 회사에는 여직원이 4명 정도 근무를 하고 있었는데 아내가 시골(경북 봉화)출신이어서 인지 소박하고 성실하며 이쁘기까지 해서 주변의 평판이 좋았다고 했다. 그래서 호감을 느껴 교재를 시작했고 3년 만에 결혼에 골인했다고 했다. 신혼살림은 사업장인 구운동에서 시작했다고 했다. 화장품경기가 하향세를 타기 시작해 사업이 어려움에 봉착하던 중 아내의 권유로 도매업에서 소매업으로 전환, 금곡동에서 아리따움을 개점, 현재까지 무난하게 사업을 영위해오고 있다며 아내에 대한 애정과 고마움을 동시에 표하기도 했다.

당시 이명욱 회장의 바램은 아내가 전업주부로서 집안일에만 전념해주길 바랬으나 어려울 때 사업전선에 같이 뛰어들어 적극적인 내조를 통해 역경을 헤쳐 난관을 극복해 주었던 것에 대해 진심으로 고맙게 생각한다고 했다. 또한 자녀들도 잘 자라주어 그 행복이 배가 된다고 말하기도 했다. 30세가 된 큰 아들은 현재 기간제교사로 근무하고 있으며 작은 딸은 대학 3학년을 휴학하고 공무원시험을 준비하고 있다고 말했다.

인터뷰를 마쳐갈 즈음 개인적인 삶의 주관인 정체성과 좌우명을 묻자 “초지일관하자”란 대답이 나왔다. 사람은 어떤 분야에서 어떻게 일을 하든 처음 먹은 마음으로 꾸준하게 삶을 산다면 정도차이는 있겠지만 나름대로의 성공한 삶이 아니겠냐는 주장이다.

인생을 진실하고 열심히 사는 게 평범한 사람들에게는 가장 소중한 덕목일 것이라고 했다.

그리고 자신 삶의 후반부인 지금은 수원이란 도시에서 삶의 여정과 질곡이 묻어있는 만큼 이곳에서 행복하게 말년을 보내고 싶다고 했다. 동시에 골목상권을 살리며 소상공인들과 함께 최선을 다해 지역경제 활성화에 앞장 설 것이라고 마지막까지 상인다운모습을 보였다.

소박하지만 아름답고 작지만 강한 인터뷰였다. 권선구와 수원의 소상공인들이 이명욱 상인회장의 열정 속에서 함께 상생 발전해 가는 모습이 보이는 듯하다.

대담=김인종 편집위원장/글·사진=김동초 대기자 webmaster@newsuwon.com

다른기사 보기

저작권자 © 새수원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