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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기석 칼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국민들 - 문기석 주필

[문기석 칼럼]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국민들 - 문기석 주필

문기석

기사입력 2020.03.01 21:19

최종수정 2020.03.01 21:19

9년 전 일본 소설가 ‘소네 게이스케’의 소설을 기반으로 한 영화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짐승들’은 지금의 힘든 시간에 개봉해 나름 선전한 기록을 남겼다. 대개의 영화 속 내용이 그러하듯이 인간 군상은 바닥이다. 하지만 구성은 치밀하다. 목욕탕 아르바이트로 근근이 살아가는 가장과 정의감 정도는 비껴놓고 악덕 형사와 뒤엉켜 가면서도 반전의 사이다. 여기에 양념이라 하기는 넘칠 가정 폭력과 빚에 시달리는 가정주부 등 고달픈 인간들이 마지막 지푸라기를 잡고 있는 장면마다 긴장의 연속이다. 다만 5만 원 권으로 가득 찬 현금가방을 얻기 위해 죽고 죽이는 피 튀는 현장은 추적대는 빗속에 한 장의 마스크를 구하려 끝도 없을 줄에 의지하는 국민들의 그것과 오버랩 되고 있다. 영화의 능력은 스토리 속 특별한 능력 없이 각자에 주어진 희한함을 부각시키고 있다. 이를 중심으로 펼쳐지는 얘기의 끝은 반전의 카타르시스를 선물하면서 극장 안은 불이 켜진다.

매일 텔레비전 화면에 등장하는 질병관리본부장의 머리가 ‘숏컷’으로 변신, 연일 계속되는 격무로 인한 결과니 각오를 보여준 것이니 하는 뉴스로 변신하는 때였다. 급기야 전선에서 방역 당국의 입 역할을 하던 정은경 본부장은 짧은 2월을 마지막으로 마이크를 놓았다. 약간은 어설프지만 하루하루의 소식을 열실한 정 본부장에게서 들어오던 국민들조차 ‘저러다가 쓰러진다’는 걱정을 하던 참이다. 하긴 어디 정 본부장 뿐 만이겠는가. 노란 점퍼를 입고 나와 차분한 어조로 또 다른 마이크를 잡던 정부측 다른 진행자는 코밑이 헐어 딱지가 앉아 검게 변한 모습까지 생중계한 상태다. 이런 정황에 한 매체는 부산의 썰렁한 자갈치시장을 그리고 있었다. 우한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이 확산되면서 70년 만에 문을 닫았다는 얘기다.

그야말로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상인들은 이제 그 지푸라기도 찾기 힘들게 된 셈이다. 국내 첫 확진자가 나온 후 몇몇 지역과 함께 ‘코로나 청정지역’으로 남아 있었지만 지금은 모든 지역이 지워졌다. 이처럼 우한 코로나는 전국의 모든 지역으로 스며들면서 감염 예방을 위해 시장은 물론 구멍가게나 각종 기관 등이 잇따라 문을 닫거나 행사들을 취소·연기시키고 있다. 거리가 썰렁해지는 것도 당연하다. 모두 집 안에서만 머무는 과거의 ‘방콕’에 사촌 격인 ‘집콕’이 일상화되면서다. 비단 자갈치뿐 아닌 지역마다의 거리, 아니 도시 전체가 멈춰 선 듯한 느낌을 주고 있다. 어쩔 수 없이 먹어야 하는 구내식당에서도 모두들 앞만 보고 앉아있다. 마주 보면 튈 수 있는 염려증에서다. 즐겁게 대화하던 그림들은 저 만큼 치워져 있다. 오로지 먹고 대화는 각자의 휴대전화 몫이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매체들이야 시원찮은 말을 뱉은 장관이나 정치인들을 솎아내면서 검증되지 않은 여러 설들을 조심스레 짚고 있다. 하지만 나는 실제로 우리 사회 안의 2차 안전을 책임져야 하는 ‘과속방지턱’이 없어서 생긴 것으로 믿고 있다. 어쩔 수 없는 출발을 막을 수 없었다면 이를 한 번쯤 걸러야 하는 과속방지턱이 제 역할을 못 한일이다. 알다시피 이 고장난 차량 격인 코로나와 정부는 내비게이션마저 고장난 채로 전국을 앞만 보고 질주하고 있다. 좇아가 이를 세워야 할 정비사 역시 간단한 ‘마스크’ 행정조차 허둥지둥이다. 왜 청와대에서 ‘머지않아 종식될 것’이란 얘기를 먼저 해 아차 했는지, 그 머리 좋은 참모들이 이를 확인해 방지턱에서 브레이크를 잡았어야 했다. 물론 이들에게 지푸라기 정도는 보이지 않았을 상황의 짐작은 나 혼자만의 욕심은 아닐 것이다.

늦었다. 하지만 어쩔 수 없는 일들로 허리춤을 잔뜩 부여 매야 하는 시간만 남았다. 지금에 와서 지도력의 부재를 논할 시간마저 우리에게는 사치에 불과하다. 사과는 필요하지만 어차피 머지않은 시간에 한 장소에서 만나야 할 사람들이라면 그때 따져 물어도 늦지 않는다. 총선도 코앞에 있다. 그리고 더 큰 시간들도 줄 서있다. 따지고 보면 믿고 찍은 사람들의 모두의 운명일 수 있다. 권리와 책임을 따지기 앞서 장부터 지져야 할 손가락들이다. 모든 국민들이 당장 마스크 한 장 구하기에 마치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한다. 그러나 국민들에 보여야 할 그 지푸라기는 어쩌면 다른 곳에서 더 이상하고 다른 모양으로 남아 있는지도 모른다. 각자도생(各自圖生)이란 말이 전혀 낯설지 않은 2020년 3월 대한민국의 민낯이다.

문기석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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