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골목내시경]수원역전 골목-아시아 음식 맛보고 싶은 사람 어서 오세요
수원역은 경기 남부지역의 교통 요충지다. 경부선과 분당선이 지나고 역전에는 80개 이상의 버스노선이 통과한다. 북적이고 번잡하고 소란하다. 사람과 물자가 모이고 흩어진다. 그러니 수원역전의 골목도 그만큼 복잡하고 다채롭다.
5일장이 서던 수원역전 매산시장은 다문화 시장 골목이 됐다.
수원역 앞을 직선으로 그은 매산로를 두고 남쪽과 북쪽의 골목길은 극단적으로 다르다. 남쪽의 매산시장 일대 골목길은 다국적과 다문화의 정점에 이르렀다. 경기 남부지역 일대의 공장지대는 이주노동자가 없다면 하루도 돌아갈 수 없다. 멀리서 일하러 온 이들을 위한 다양한 공간이 골목을 채우고 있다. 대충 봐도 러시아·중국·몽골·방글라데시·베트남·태국·네팔·인도·미얀마·라오스·캄보디아·인도네시아·말레이시아 식당이 문을 열었고, 그들을 위한 술집과 노래방까지 성업 중이다. 가히 아시아 대륙의 모든 문화를 이 골목 안에서 엿볼 수 있다. 나라별 노동자를 위한 휴대폰 가게며 환전소와 송금 영업소까지 번창하고 있다. 휴일이면 가게마다 삼삼오오 문을 열고 들어서는 이주노동자들로 성시를 이룬다.
5일장이 다문화 시장으로 변신
고향에 물건을 보내기 위해 무역사무실을 찾은 네팔 출신의 마헨드라는 한국생활 3년차다. 경기 화성의 접착공장에서 일하고 있고 벌이도, 근무여건도 나쁘지 않다고 했다. 네팔에서 배워왔다는 그의 한국말 실력은 능숙했다. 그는 “지금 일하는 곳에서 5년 더 일할 수 있다. 그 후에도 한국에서 계속 일할 계획이다. 이제까지 일하는 공장을 바꾸지 않았기 때문에 일터를 바꾸면 또 기한을 연장할 수 있다”고 한다. 가끔 외롭고 처자식과 부모형제가 보고 싶을 때는 화상통화를 한다고 했다. 한국에서 버는 돈이 고향을 떠나온 모든 어려움과 아쉬움을 덮을 수 있다는 게 그의 이야기다. 휴일이면 이곳에 와서 친구도 만나고, 고향 소식도 전하고, 입맛에 맞는 음식도 먹을 수 있어 좋단다. 무엇보다 일자리 정보를 가장 빠르게 듣고 불이익이 생기면 대처방법도 배울 수 있어서 그들에게 이 골목은 소중한 요람이다.
아시아권의 각종 식자재를 파는 식품점들이 다양하게 있다.
매산시장 골목에 다문화 식당들이 자리를 잡은 것은 대략 10년 정도 됐다. 이주노동자들이 하나둘 자리를 잡으면서 오일장인 매산시장은 어느새 다문화 시장으로 변했다. 수원시에서도 이 골목을 다문화 거리로 지정했다. 처음에는 조선족과 중국인들이 들어오고, 결혼으로 이주한 베트남 주부들이 모이는 식당이 들어섰다. 강산이 변한 10년 동안 다양해진 이주노동자들의 판도를 따라 이제는 아시아 대륙의 거의 모든 식재료와 음식 그리고 교역품들을 찾아볼 수 있다. 국경을 넘지 않고서도 쑹화강반점에서 만주식 옥수수랭면을 먹거나 얼큰한 옌볜식 개장국을 땀 나게 먹을 수 있다. 미얀마 식당에서 샨족의 쌀국수를 먹을 수도 있고, 러시아 식당에서 튀긴 고기만두인 사모사로 배를 채우고 깔바사 소시지를 안주로 보드카를 즐길 수 있다. 이 골목에서 베트남 쌀국수는 난이도가 낮은 순한 맛이다.
시장거리에서 파는 식자재들도 흔히 보기 힘든 것이 많다. 큰 함지박 안에는 겨울인데도 동면에 들 수 없는 개구리들이 살아서 버둥거린다. 뭐에 쓰느냐고 묻자 “훠궈로 먹으면 별미”라고 답한다. 그 옆 고기요릿집에서 파는 음식은 삶은 돼지 혀를 비롯해서 흔히 보기 힘든 재료들이 손님을 기다리고 있었다. 술 한잔에 얼굴이 불콰해진 중년의 남성은 “이게 둘이 먹다가 하나가 죽어도 모른다”며 돼지 혀를 사갔다. 중국식 빵집에서는 끼니로 먹는 큰 꽈배기와 꽃빵을 팔고 있다. 꽈배기도 ‘우유꽈배기·고구마꽈배기·꿀꽈배기·부드러운 꽈배기’ 등 종류가 많다. 부부가 꽈배기를 사가면서 “두유나 우유와 함께 먹으면 맛있다”고 설명한다. 빵가게 주인은 중국 헤이룽장성 출신으로 한국에 온 지 20년이 됐다고 했다. 처음에는 식당 주방보조로 그릇 닦는 일부터 시작했다가 파출부며 건설현장 잡부를 거쳐서 빵집을 냈단다. 장사도 잘되고 한국에 집도 샀다고 자랑한다.
이주노동자를 위해 송금서비스와 각종 편의를 제공하는 서비스 업체들이 있다.
중국인과 조선족들은 매산시장 골목에서 활착에 성공했다. 거리의 반은 옌볜 요리집이고 중국 식재료상들이다. 골목을 오가는 이들과 흥정하는 소리도 중국말이거나 옌볜식 억양이 거셌다. 초창기에 자리 잡은 이들은 벌써 집도 두어 채 샀고, 가게도 번창하거나 다른 사업에도 손을 댔다고 한다. 자신이 자리를 잡으면 가족을 데려오고 친척과 이웃까지 불러들여 세력을 넓히길 반복하고 있다. 아마도 그들의 선대는 희망을 찾아 압록강과 두만강을 건너 메마른 광야에서 삭풍을 견뎌내며 뿌리를 내렸을 테고, 그들은 다시 대를 건너 이곳까지 흘러와 자리를 잡고 제 살 곳을 만들었으리라. 흥안령 아래 황무지거나 수원역전 매산시장 골목길이거나 비 피할 지붕 아래서 두 다리를 뻗고 한 끼 밥을 배불리 먹을 수 있다면 그곳이 고향이 되고 살 만한 땅일 것이다.
현지에서만 맛볼 수 있는 다양한 음식들이 있다.
옌볜요리집과 중국 식재료상이 절반
대부분 공장에서 일하거나 간혹 농장에서 일하는 다른 지역의 이주노동자들과 달리 중국 출신 노동자들의 일자리는 그 폭이 넓고 깊다고 한다. 그들은 우리 사회에서 노동이 필요한 대부분의 일터에 스며들었다. 예전에는 식당에서 일하는 이들이 많았다면 요즘엔 일용직 건설노동자로 일하는 이들이 늘었다고 했다. 골목 안에는 중국인 건설노동자들을 위해 작업복이며 안전용품을 파는 가게까지 생겼다. 나이든 여성들은 간병인으로 일하는 것이 인기라고 한다. 일정한 교육을 받고 자격을 얻으면 일거리는 널려 있다고 했다. 60대의 조선족 여성은 “몸이 못 따라서 그렇지 일은 많다. 병원에서 시키는 대로만 하면 되니까 일도 그다지 고되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그도 아이 돌보는 일을 하다가 간병인으로 일한단다. 병든 이를 돌볼 일손마저 이제는 이주노동자들에게 맡겨야 하는 시대가 됐다. 어쨌든 고마운 일이다.
이 골목의 노래방 또한 다문화를 실감할 수 있다. 베트남 사람이 하는 노래방엔 베트남·캄보디아·미얀마·인도네시아·필리핀·말레이시아·인도·러시아·태국·일본·몽골·방글라데시·중국·포르투갈·스페인 노래까지 망라돼 있다. 요즘 이 골목에서 약진하는 세력은 미얀마 사람들이라고 한다. 주류를 차지한 중국계 상점과 굳게 뿌리내린 베트남 가게, 은근히 세력이 확장되는 네팔인들을 뒤쫓아 미얀마인들이 치고 올라오고 있단다. 둘러보니 미얀마 식당이 벌써 서너 곳 생겼고, 그들을 위한 주점과 노래방도 생겼다. 골목 안에서 알게 모르게 세력의 영향력이 늘고 줄고 하며 보이지 않는 긴장이 있다고 했다. 요즘 미얀마 쪽 이주노동자들이 많아졌고 그에 따라 상권도 점차 늘어나는 추세다.
골목 안 부동산엔 3개월짜리 단기 월세방 매물이 많았다. 1년 이상의 장기계약은 드물고 이주노동자들은 단기 임대를 선호한다고 한다. 역전이라 임대료는 그다지 싸지 않았지만 그럭저럭 이해할 만한 가격의 매물들이 많았다. 건물주들도 몸만 들어왔다가 그대로 나갈 수 있도록 시설을 갖추어 임대하는 것이 유행이란다. 일자리를 찾아 멀리까지 떠나야 하는 노동자들에게 한 곳에 깊은 뿌리를 박고 살아간다는 것은 사치일 수도 있겠다. 매물은 많고 금세 왔다가 금세 떠나는 이들도 많다고 한다.
로데오 거리는 유행을 좇는 젊은이들로 활기에 찼다.
역전의 특성대로 아주 깊은 골목 안엔 붉은 등의 야릇한 여인숙과 검은 가리개 안에 정체를 짐작할 만한 주점들도 점점이 자리 잡고 있다. 행인을 향해 노골적으로 수작을 거는 늙은 포주의 모습은 볼 수 없지만 그래도 요상한 분위기는 좁고 깊은 골목 안에 남아 있었다. 그리고 그 주변 붉고 흰 신장대들. 천상의 선녀와 구름 위의 도사들이 속세를 위해 문을 열고 운세를 점쳐주는 점방들이 줄을 잇고 있다. 힘겹게 살아가는 이들의 주변엔 신을 파는 이들도 옹기종기 살아간다.
다문화 거리가 된 매산시장 일대의 골목길과 달리 매산로 건너 북쪽 골목은 화려하고 활기차다. 소위 로데오 거리라는 수원역전 우체국 주변 골목길은 유흥을 찾는 젊은이들이 몰려든다. 옷과 화장품과 술과 음식과 놀이가 골목 가득하다. 때때로 버스킹 공연도 벌어지고 난장도 열린다. 이주노동자 중 젊은층은 매산시장 쪽이 아니라 길 건너 이쪽 골목에서 논다고 한다. 가로정비사업으로 예산을 쏟고 있다더니 보이는 정경은 확실히 건너편과는 달랐다. 젊은이들이 몰리는 만큼 북적이고 살아 있는 모습이다.
매산로 북쪽 골목은 로데오 거리
로데오 거리가 새로운 유행의 중심이 됐지만 그 어귀에는 예전 수원역전의 풍광이 고스란히 남아 있다. 역전의 길손을 맞는 국밥집들이 길게는 오륙십 년의 이력으로 아직도 문을 열고 있다. 지금은 없어진 수인선 협궤열차를 타고 소래포구로 소금이며 생선을 떼다 팔던 장사꾼들도 그 국밥집에서 뜨듯한 국물로 배를 채우고 하루를 살러 길을 나섰을 것이다. 기찻길이 사라져도 국밥집은 아직도 문을 열고 있다. 수원역전의 국밥집들은 푸짐하고 깊은 맛이 있다.
로데오 거리를 지나 골목을 더 깊이 들어가면 위태로운 장면을 만나게 된다. 긴 유리문과 대낮에도 붉은 등. 수원역이 개발되고 주변에 백화점이 들어서면서, 아파트가 들어서고 땅값이 오르면서 이곳 붉은 등의 집창촌 골목은 애물단지가 됐다. 보기 싫은 상처거나 감추고 싶은 아픈 생채기로 남았다. 이 일대의 정비사업을 열심히 추진한다는 데 지주와 업소와 그곳에서 일하는 이들의 저항도 거세고 시비와 진통도 크다. 골목 안 사정은 복잡하고 심란하다.
금융위기 이후 세상은 많이 달라졌다. 직업도 일터도 일하는 이들도 그전과는 확연히 달라진 환경 속에서 살아야 한다. 가장 많이 듣던 이야기가 세계화이고 노동시장의 국경은 허물어졌다. 평소에는 그다지 실감하지 못하나 공장지대나 이주노동자들의 거점지역을 둘러보면 이전과 달라진 시대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다. 우리 곁에 저 멀리 히말라야의 산자락에서부터 안다만해역의 낯선 이웃까지 일자리를 찾아와 함께 일하며 살아간다. 그들은 노동을 팔 뿐더러 자신의 음식과 문화도 함께 들여와 선보인다. 역전 골목에서 국밥뿐 아니라 방글라데시의 무글라이 파라사라는 낯선 이름의 요리도 먹을 수 있고 파키스탄식 꼬치구이도 맛볼 수 있다. 문화는 풍요로워지고 나의 부족함은 누군가가 채워주고 있다. 수원역전 골목길에서 그런 모습들을 발견하게 된다. 우리는 담장은 낮아지고 이웃이 넓어진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한 번도 먹어보지 못한 인도네시아의 음식을 맛보고 싶다면 수원역전 골목길로 가자.
< 김천 자유기고가 mindtemple@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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