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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권모 칼럼]누구를 위한 부동산 정책인가

[양권모 칼럼]누구를 위한 부동산 정책인가

양권모 논설위원

 

 

입력 : 2019.12.16 21:10

“어떤 경우든 이 정부는 부동산 가격 문제에 물러서지 않겠다.”(2017년 ‘8·2 대책’ 발표 후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 회사원 구보씨는 후회막급이다. 정부를 믿고 결혼 20년 만에 서울에 내집을 장만하려던 계획을 미룬 바보 같은 자신이 원망스럽다. 구보씨의 친구는 당시 은행 대출을 받아 6억원에 구입한 강남 아파트가 2년 만에 10억원 이상 올랐다. 구보씨와 그 친구는 문재인 정부 2년을 거치면서 계층의 울타리가 달라졌다. 구보씨는 서울에서 영영 내집을 마련하지 못하는 ‘루저’가 될 거란 불안에 오늘도 시달린다.

 

문재인 정부는 단기간 내에 최고로 서울 집값을 올린 정부로 기록될 판이다. 2년 반 동안 서울 아파트 실거래 가격은 평균 40.8% 올랐고 거래금액은 2억3852만원 상승했다(부동산114 자료). 강남 4구는 5억원가량 폭등했다. 서울 아파트 중간값이 ‘고가주택’ 기준인 9억원에 이르렀다. 문재인 정부 2년 동안에 서울은 ‘다른’ 도시가 됐다.

“집값을 반드시 잡겠다”는 약속을 믿은 순진한 사람들은 쳐다보기 어려울 정도로 치솟은 집값은 부동산 양극화, 자산 불평등을 최악으로 만들었다. 지방 소도시 집 한 채 값의 불로소득을 거둔 10%와 내집 마련과 서울살이 꿈이 멀어진 90%의 간극은 메울 수 없을 만큼 파였다. 구보씨처럼 정부 말을 믿고 집 구매를 미룬 무주택자, 내집 마련이 멀어진 저소득층과 청년층, 소외된 지방 거주자는 손가락을 자르고 싶은 심정이다.

“부동산 문제는 우리 정부에서 자신 있다고 장담한다. 전국적으로는 집값이 하락할 정도로 안정화되고 있다.”(문재인 대통령 11월19일 국민과의대화) 구보씨는 대통령의 부동산 발언을 들으면서 아연해졌다. “자신 있다”는 건 각오로 새길 수 있지만, ‘안정화되고 있다’는 진단은 도통 딴 나라 얘기로 들렸다. 자고나면 ‘억, 억’ 하는 소리가 들리고, 800만명에 달하는 무주택자들은 심각한 박탈감을 토로하는 상황이다.

“전국적 안정화”는 서울·수도권 집값은 폭등하고 지방은 폭락하면서 ‘평균’의 허상이 가져온 통계의 장난이다. 서울 중위아파트 가격은 역대 최대인 8억7525만원을 기록했다. 2년 반 새 70%가 급등했다. 6대 광역시의 중위가격은 평균 2억4000만원, 나머지 지방은 1억6000만원이다. 서울의 가장 비싼 구와 싼 구의 주택가격 격차는 2016년 3.4배에서 3.9배로 커졌다. 부동산 광풍으로 자산 불평등이 극심해졌는데, ‘평균’을 앞세워 안정화를 얘기하니 여론이 사나울 수밖에 없다.

“청와대 전·현직 참모들의 부동산 가격이 2년 반 동안에 평균 40%(3억2000만원) 올랐고, 상위 10명은 10억원가량 급등했다. 참모 3명 중 1명꼴로 다주택자다.”(경제정의실천시민연합 12월11일) 구보씨는 또다시 절망한다. “집값은 반드시 잡겠다”고 호언하던 청와대의 참모들이 부동산 불로소득으로 배를 불렸다. ‘부동산 정책 설계자’로 불리는 김수현 전 청와대 정책실장의 과천 아파트는 12억원이 올랐다. “모든 국민이 강남에 가서 살 필요는 없다”던 장하성 전 정책실장의 잠실 아파트는 7억원 이상 불어났다. 정부 1급 이상 고위공직자의 30%가량이 강남 3구에 ‘똘똘한 한 채’를 보유하고, 47%가 다주택자이니 이들 역시 비슷한 재산 증식을 누렸을 게다.

청와대 참모들의 불로소득 잔치를 보면서, 구보씨는 묻고 싶어진다. 대체 누구를 위한 부동산 대책인가. 배신감에 억장이 무너지는 건 구보씨만은 아닐 터이다. “사람들은 맨날 겉으로는 소리 높여/ 자유여 해방이여 통일이여 외치면서/ 속으론 워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 속으론 워 속으론 제 잇속만 차리네.”(안치환 ‘자유’)

정부는 16일 새 부동산 대책을 내놨다. 벌써 노무현 정부의 17번을 넘는 18번째 대책이다. 문제는 대책이 적어서가 아닐 것이다. 여태 정부 대책이 나올 때마다 집값은 잡히기는커녕 되레 상승하기 일쑤였다. 정부 정책이 신뢰를 잃으면 집값은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질 수밖에 없다. 한국 사회에서 부동산은 제3자가 없다. 부동산을 잡지 못하면 부동산이 정권을 잡는다. “참여정부의 실패를 반복하지 않겠다”는 초심의 절실함으로 벼릴 때다.

 

구보씨는 이제 기대를 걸지 않는다. 믿어서 치른 대가가 너무 컸다. 다만 청와대 참모와 고위공직자들이 다주택을 처분하고 ‘똘똘한 한 채’ 투자를 유보하는지 지켜볼 생각이다. 최소한 그 정도 시그널은 나타나야 정부 대책의 실효성을 믿을 구석이 싹트기 때문이다. 흑석동 상가건물 투자로 1년 만에 9억원의 시세 차익을 실현한 김의겸 전 청와대 대변인은 “문재인 정부의 부동산 정책이 성공하면 그때 다시 집을 사겠다”고 했다. 구보씨는 김 전 대변인이 꼭 집을 다시 사는 날이 오기를 고대한다.



원문보기:
http://news.khan.co.kr/kh_news/khan_art_view.html?artid=201912162110025&code=990100#csidx951f7849ae7057b99de19af230df93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