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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치 사회의 칸 ==../-더불어민주당( 대표

‘여당의 굴욕’ 누가 자초했나

‘여당의 굴욕’ 누가 자초했나
 
오남석 정치부 차장

청와대와 정부, 여당 등 권력 3축의 상호작용을 설명할 때 흔히 ‘당청(黨靑)’ ‘당정(黨政)’이라는 표현을 쓴다. 여기엔 지지자는 물론 국민 일반과 가까이서 소통하는 여당이 청와대나 정부보다 우위에 있다는 인식이 깔려 있다. 대통령중심제에서 대통령 권력이 가장 세다는 건 상식임에도 이런 표현을 고집하는 데에는 항상 국민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겠다는 의지가 담겨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취임 때부터 이번 정부가 ‘더불어민주당 정부’라고 강조한 것도 같은 취지다.  

그런데 이런 맥락에선 이해하기 어려운, 좀처럼 보기 힘든 장면이 펼쳐졌다.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다. 이낙연 국무총리가 바로 얼마 전까지 민주당에 몸담았던 손혜원 무소속 의원의 부동산 투기 및 이익충돌 논란을 거론하고 “정부·여당은 국민 앞에 더 겸허해야겠다는 다짐을 함께 했으면 한다”고 말했다. 이는 자성의 목소리로 이해할 수도 있지만, 그 형식과 장소를 생각하면 예삿일로 넘기기 어렵다. 첫째, 정부를 대표해 참석한 이 총리가 김수현 정책실장 등 청와대 인사뿐 아니라 이해찬 대표·홍영표 원내대표 등 민주당 최고 지도부 면전에서 쏟아낸 말이다. 둘째, 공개 모두발언 형식인 만큼 이 총리가 작심하고 던진 메시지로 해석하는 게 자연스럽다. 여당 우위(優位)가 아닌 열위(劣位) 상황이 벌어진 것으로, 민주당으로서는 굴욕으로 비칠 수밖에 없다.  

예상대로 이 총리의 발언을 두고 여당에서 뒷말이 많다. “그 정도는 할 수 있는 얘기”라는 쿨한 반응보다는 “어떻게 총리가 여당을 질책하듯 얘기할 수 있느냐”는 불만의 목소리가 더 크게 들린다. 사석에서 만난 한 중진의원은 “베테랑 기자 출신의 이 총리는 말실수를 않는 사람이다. 그런 사람이 공개리에 여당에 ‘똑바로 좀 하자’고 한 거다. 대권 행보가 시작된 거다”라며 불쾌해했다. 다른 중진의원은 “예전 같았으면 (여당 인사가) 그 자리에서 들이받았을 것”이라고까지 했다. 7선 의원으로, 역대 어느 전임자보다도 강력한 당대표로 여겨져 온 이해찬 대표가 그런 얘기를 들었다는 점에서 충격이 더 큰 듯하다.  

민주당 인사들의 불쾌한 심사를 이해 못 할 바는 아니지만, 민주당 지도부가 이런 굴욕을 자초한 것은 아닌지 묻지 않을 수 없다. 이 총리의 발언은 손 의원 논란이 불거진 후 여권 고위급 인사가 처음으로 내놓은 유감 표명이었다. 손 의원 논란, 서영교 의원 재판청탁 의혹 등은 청와대도 정부도 아닌 여당에서 터진 ‘사고’임을 감안하면 납득하기 어려운 일이다. 모든 언론이 연일 관련 기사를 쏟아내고 여권에 우호적인 민주평화당·정의당까지 비판 대열에 가세하는 동안에도 민주당 지도부는 자정 노력을 이끌기는커녕 침묵으로 일관하거나 그들을 감싸는 데 급급했다. 해명을 요구하는 국민의 목소리는 외면한 채 ‘가짜 뉴스’ 타령만 되풀이했다. ‘국민 가까이’는 고사하고 마치 딴 나라 일 대하듯 했다. 결국 여론에 무감한 여당을 대신해 총리가 총대를 멘 모양새가 되고 말았다. 또 그렇게 뭉그적거리는 동안 민주당과 자유한국당의 지지율 격차는 더 줄어들었다. 민주당이 계속 이대로 가다간 더한 굴욕을 맞을 수도 있다는 경고음이다. 

greentea@munhwa.com 
오남석 기자 / 정치부 /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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