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해 빛날 5인]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진정한 어른'을 꿈꾸는 지식인
"시대가 요구하는 리더는 자기 확신을 갖고 세계와 소통해야"
머니투데이 더리더 임고은 기자입력 : 2018.01.02 12:22
노숙인과 대학, 그리고 인문학이라는 다소 어색한 연결고리를 단단히 엮은 데는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의 노력이 있었다. 그는 2013년 '어깨동무 인문학'을 시작하기 훨씬 전인 2003년부터 임영인 신부와 함께 노숙인 인문학 교육에 힘써 왔다. 이제껏 배운 것을 사회를 위해 쓰고 싶었던 마음이 계기가 됐다.
김 교수는 노숙인 자활 프로그램과 함께 다양한 사회 활동 도 하고 있다. 강단에서 학생을 가르치는 한편 약탈 문화재 환수, 우리 문화재 세계유산 등록 추진 등 몸이 열 개라도 부족할 일정을 소화한다. 동시에 이렇게 많은 역할을 하는 이유를 묻자 그는, "적극적인 사회 참여는 지식인으로서 응당 해야 할 일"이라고 강조했다. 다산 정약용의 "공부하는 것은 나를 닦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위해 일을 하기 위함이다"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김 교수는 "우리가 공부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공동체를 위해서다. 사회를 더 좋게 만들기 위해 공부한다"고 말했다. 그가 꿈꾸는 행복한 공동체 사회를 들여다보기 위해 <더리더는> 지난달 23일, 서울 광화문 머니투데이 본사 4층에서 김 교수를 만났다.
▶어깨동무 인문학 수업은 수원역에 있는 노숙인을 정상적인 사회생활로 돌려놓게 하기 위해 보건복지부가 새롭게 나선 좋은 프로그램이다. 철학, 역사, 문학, 글쓰기, 중문 문 등을 교육한다. 노숙인에게 가장 필요한 것 중 하나가 주거 공간인데 일 년 과정을 마치면 정부가 작은 원룸도 얻어준다.
노숙인도 원래는 정상적인 생활을 하던 사람이었다. 뜻하지 않은 일들로 인해 거리에 나가게 된 것이다. 그들 중에는 자활의 꿈, 희망의 꿈을 놓지 않은 분이 많다. 그런데 이 사업이 이윤을 남기는 게 아니고 사람을 위해 하는 일인지라 헌신성을 가지고 참여하려는 곳이 많지 않다. 한신대는 설립자가 독립운동가이기도 하고 교수들도 민주주의를 위해 운동해온 분들이 많아서 그런지 쉽게 시작할 수 있었다.
왜 하필 인문학 교육인가
▶인문학이라는 게 사람에 대한 이야기다. 인간의 본성을 깨우치게 만드는 학문이다. 자기 삶을 다시 되돌아보게 만든다. 또 글쓰기를 통해 지나온 시간을 글로 써보면서 ‘내가 원래 이런 사람이 아니란 데’라고 깨닫는다. 자신을 돌아보게 되니까 새 삶에 대한 욕망도 생긴다.
기억에 남는 수강생이 있나
▶두 분이 특히 기억에 남는다. 한 분은 2004년도에 처음 시작할 때 노숙인 깡패 두목이었다. 뒤통수에 커다란 혹이 있어서 혹부리 대장이라고 불렸다. 말도 못하게 거칠었다. 알고 보니 육군 소령 출신이었다. 5·18 민주화 운동 때 소위 학살군 중대장을 하고 삼청 교육대에서 지구대 대장도 했다. 그때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다. 제대 후에 정신을 차리고 보니 자신이 과거에 저지른 잘못이 너무 컸다. 그 트라우마를 이기지 못해 매일 술 마시고 가산을 탕진했다. 그러다 노숙자가 됐다. 같이 일을 시작한 임영민 신부님의 끈질긴 설득으로 인문학을 배우러 왔다. 육군사관학교도 나오고 아는 것은 많았다. 꼬박 일 년을 교육 받고 지금은 사회로 돌아가 아파트 관리소장으로 일하고 있다.
다른 한 분은 젊은 여성분이 있었다. 가난해서 초등 교육도 제대로 받지 못하고 집을 나와 공장에서 돈을 벌었다. 16살에 남자를 만나 아이를 가졌는데 남자가 도망을 갔다. 그렇게 노숙 생활을 하다가 교육을 받을 수 있다는 이야기를 듣고 온 거다. 이분이 천부적인 시적 재능이 있던 사람이었다. 함께 교육하던 임철우 소설가도 깜짝 놀랄 정도였다. 졸업하고는 등단하고 시인이 됐다.
특별히 주의한 점이 있나
▶그분들에 대한 존중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호칭에는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 교육받는 모든 분에게 반드시 ‘선생님’이라고 불렀다. 당신들을 존중한다는 것을 드러낼 필요가 있다. 그들의 삶을 무시해서는 절대 안 된다. 예전에 국회 부의장을 지냈던 분도 노숙 생활을 했다. 사람이 언제 그렇게 될지 알 수 없다. 저도, 다른 사람도 노숙자가 될 수 있다.
두 번째로는 알기 쉽게 강의해야 한다는 점이다. 이들 중에는 교육을 받은 사람도 아닌 사람도 있다. 모르는 사람도 이해할 수 있게 이야기하면서 이 학문에 관심을 보이도록 해야 한다. 또 이렇게 쉽게 풀어내다 보면 그분들 중에 아는 게 많은 분이 지식을 드러내기도 한다. 어깨동무 인문학은 1년 교육과정으로 끝날 게 아니라 평생을 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쓸 수 있게 하거나. TV를 본다 하더라도 자기 시각으로 볼 수 있게 하는 것을 목표로 했다. 이게 핵심이다.
졸업생들에게 ‘보은의 특별상’을 받았다. 다른 상보다 특별할 것 같다.
▶깜짝 놀랐다. 아마 그분들의 이야기를 많이 들어주고 편하게 다가가서 상을 주신 것 같다. 나는 보통사람이다. 가식도 없고 농담도 잘 한다. 그냥 말을 들어주는 거 그거 하나를 잘 한다. 또 그분들과 여행도 가는데 나와 김영표 원장은 빠지지 않고 간다. 그러다 보니까 아무래도 더 친해질 수밖에 없었다. 상을 받고는 상당히 뿌듯했다. 아내에게도 나랑 살면서 행복한 줄 알아야 한다고 말하기도 했다(웃음).
문정왕후어보 반환 대표단으로 참여하셨다. 이전부터 문화재에 관심이 있었나
▶문화재 관련 일을 오래 했다. 문화재보존 운동도 하고 지금도 ICOMOS KOREA(이코모스 코리아)라고 국제기념물유적협의회 한국 위원이다. 여기는 유네스코 산하기관이다. 세계유산을 심사할 때, 유네스코가 최종 결정을 내리지만 조사·의견 같은 모든 것들은 다 이코모스에 맡긴다. 이코모스 내부에서 결정하고 보고서를 올리면 그대로 유네스코 이사회에서 방망이를 두드리는 거다. 전 세계의 유산 등재·보존과 관련된 일은 다 그 기구에서 한다. 덕분에 세계유산과 관련해 전문가로 통한다. 조선왕조 의궤 세계기록유산 등재도, 남한산성을 세계유산에 올릴 때도 추진위원회에서 열심히 활동했다. 그렇게 문화재와 관련된 활동을 해오다 보니 세계유산이 어떻게 만들어지는지, 어떻게 해야 하는지에 대해 잘 알고 있다.
반환 협상은 어떻게 이루어졌나
▶어보 반환을 위해 ‘문화재찾기한민족 네트워크’를 구성해 활동했다. 안민석 의원, 문화재제자리찾기 운동 대표 해문 스님과 나, 이렇게 셋이서 공동대표로 협상을 했다. 일반인이 들으면 기적 같은 일이라고 할 수 있는 일이 일어났다.
1951년도에 미군들이 종묘에서 47과의 어보를 침탈했다. 문정왕후 어보도 거기에 포함됐다. 미국 국무부 주무 담당관 아델리안 홀이 기록해놓은 보고서 ‘아델리안 홀 레코드’를 가지고 협상을 시작했다. 원래 2차 세계대전 이후 약탈당한 문화재는 돌려주도록 1970년 유네스코 협약에 명시 되어있다. 그 협약을 근거로 반환을 요구했더니 거꾸로 어보가 종묘에 있었다는 증거를 내놓으라고 우기기 시작했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협상 당시에 문정왕후 어보를 살짝 들어보았더니 어보 옆에 묵지라고 해서 아주 오래된 종이에 한자로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라고 쓰여 있다. 내가 조선 시대 전문가다. 바로 그 자리에서 이게 어보가 종묘에 있었던 증거라고 설명했다.
[사진=뉴스1] 지난 8월 서울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된 문정왕후 어보. 문정왕후어보 화 선지에 '六室大王大妃(육실대왕대비)'라는 묵서가 써있 다. 2017.8.18 |
▶육실이라는 말은 종묘의 여섯 번째 방을 말한다. 그게 바로 중종의 방이다. 중종의 왕비가 문정왕후다. 그리고 이 대왕대비라는 말은 문정왕후를 가리킨다. 이 여섯 글자가 어보가 종묘 6번째 방에 있던 걸 증명했다. 박물관 측도 계속 연구하고 우리나라 문화재연구소 측도 두 번이나 조사했는데 몰랐다. 기적 같은 일이었다.
이후 재협상을 해서 2003년 추석 당일 날 반환 승인을 받았다. 그때 바로 돌려받았어야 했는데 미국은 해당 기관에서 반환을 승인하더라도 정부 승인이 나야 한다. 정부 승인 나는 게 이렇게 걸렸다.
고생한 보람이 있겠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문정왕후 어보 특별전’을 개최했다. 우리 대표단 다 함께 인사하러 갔다. 문정왕후 어보가 돌아와서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모습 보니까 참 뿌듯하더라.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약탈당한 문화재들이 빨리 국내로 돌아와야겠다 싶었다. 프랑스에도 우리나라 문화재가 많다. 그중 60% 정도는 국내 미소장이다. 작년에 프랑스 국립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가서 국내 최초로 ‘정리 의궤’를 발견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복지 사업은 물론 강연, 사회 운동 등 꾸준히 사회적 활동을 하고 있다. 사회에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고 활동하는 특별한 이유가 있나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식인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사회에 봉사를 한다고 해서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
꿈은 따로 있다. 수원에서 ‘어른’이 되는 게 꿈이다. 요즘 노인은 있지만, 어른은 없다는 말이 있다. 지역 내에서 갈등이 생기면 어른을 찾아가 의견 구하고 또 그 어른이 해안을 가지고 의견을 내주면 그것을 믿고, 서로 타협하고 정리하는 문화가 있었다. 요즘에는 진정한 어른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 내 이기심, 우월주의가 만연하다. 잘못된 공동체 때문에 그런다. 세상이 급변하는 시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서로 존중하면서 사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다.
당연하지만 또 쉽지 않은 일이다
▶지식인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다. 과거 지식인은 사대부였다. 사(士·선비)가 대부(大夫·관직자)가 됐다가 대부가 다시 사가 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은 한 번 대부로 가면 다시 사로 안 돌아오려 한다. 우리가 왜 공부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 공동체를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다산 선생의 말씀을 들려주곤 한다. 다산 선생은 자식에게 ‘공부를 하는 것은 나를 닦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위해 일을 하기 위함이다’ 백성을 위해 일을 하려면 과거 시험을 보고 관직에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백성을 위해 일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2018년 새해를 맞아 우리나라 곳곳의 리더들에게 한 말씀 전한다면
▶정조어록에서 정조는 ‘나는 비록 미천한 마부에게조차 이놈 저놈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갑질’이 나온다. 한국 사회를 정의롭게 하려면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해 실천해야 한다. 정조가 마부를 대하듯이 우리가 모두 서로 존중한다면 사회는 분명히 변화한다. 주역에 이런 말이 있다. 변즉통 통즉구(變卽通, 通卽久). 즉, 변화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그것의 기본이 존중이다.
두 번째로 이 시대 리더들은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자신이 가려는 길이 올바르다고 생각했다면 어려워도 반드시 가야 한다. 군자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을지언정 싸움을 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한다. 도전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화 시대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와 소통하고 교류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세계와 교류하면서 어떤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이 들면 리더들이 결정하고 추진해야 한다.
정조의 말씀을 국민들에게도 전해주길 바란다
▶정조는 ‘나는 성을 내는 기질이 있다. 그것을 누르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함양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어려서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스트레스도 받았다. 그런 걸 극복하려고 수양을 했다. 정조는 수양과 함양을 통해 부드러운 지도자가 됐다.
우리 사회가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나라는 부유해지는 반면 개인이 가난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분노하다 보면 주위에.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가정의 행복과 사회의 평화를 위해서 함양이 필요하다. 절제하고 수양하는 것이 함양하다. 우리가 너그러움에 대해 훈련을 한다면 이 사회가 조금 더 아름다워질 거다.
김준혁 한신대 정조교양대학 교수
이후 재협상을 해서 2003년 추석 당일 날 반환 승인을 받았다. 그때 바로 돌려받았어야 했는데 미국은 해당 기관에서 반환을 승인하더라도 정부 승인이 나야 한다. 정부 승인 나는 게 이렇게 걸렸다.
고생한 보람이 있겠다
국립고궁박물관에서 ‘문정왕후 어보 특별전’을 개최했다. 우리 대표단 다 함께 인사하러 갔다. 문정왕후 어보가 돌아와서 국립고궁박물관에 전시하고 있는 모습 보니까 참 뿌듯하더라. 한편으로는 앞으로도 약탈당한 문화재들이 빨리 국내로 돌아와야겠다 싶었다. 프랑스에도 우리나라 문화재가 많다. 그중 60% 정도는 국내 미소장이다. 작년에 프랑스 국립 동양어학교 도서관에 가서 국내 최초로 ‘정리 의궤’를 발견했다. 놀라운 발견이었다
▶특별한 이유는 없다. 지식인이 해야 할 당연한 일이다. 사회에 봉사를 한다고 해서 무엇을 바라고 하는 게 아니다.
꿈은 따로 있다. 수원에서 ‘어른’이 되는 게 꿈이다. 요즘 노인은 있지만, 어른은 없다는 말이 있다. 지역 내에서 갈등이 생기면 어른을 찾아가 의견 구하고 또 그 어른이 해안을 가지고 의견을 내주면 그것을 믿고, 서로 타협하고 정리하는 문화가 있었다. 요즘에는 진정한 어른을 찾기 어렵다. 그래서 그런지 사회 내 이기심, 우월주의가 만연하다. 잘못된 공동체 때문에 그런다. 세상이 급변하는 시기에 인간이 행복할 수 있는, 서로 존중하면서 사는 사회가 될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다.
당연하지만 또 쉽지 않은 일이다
▶지식인의 역할이 바로 이런 것이다. 과거 지식인은 사대부였다. 사(士·선비)가 대부(大夫·관직자)가 됐다가 대부가 다시 사가 되는 것이 아무렇지 않았다. 지금은 한 번 대부로 가면 다시 사로 안 돌아오려 한다. 우리가 왜 공부를 하는 이유는 간단하다. 사회 공동체를 위해 공부하는 것이다. 자식들에게 다산 선생의 말씀을 들려주곤 한다. 다산 선생은 자식에게 ‘공부를 하는 것은 나를 닦기 위함이기도 하지만 백성을 위해 일을 하기 위함이다’ 백성을 위해 일을 하려면 과거 시험을 보고 관직에 나가야 한다. 그렇기 때문에 거꾸로 백성을 위해 일을 하려면 공부를 해야 한다는 말씀이다.
2018년 새해를 맞아 우리나라 곳곳의 리더들에게 한 말씀 전한다면
▶정조어록에서 정조는 ‘나는 비록 미천한 마부에게조차 이놈 저놈 해본 적이 없다’고 했다. 한국 사회에서 가장 큰 문제는 존중하지 않는 것이다. 그래서 ‘갑질’이 나온다. 한국 사회를 정의롭게 하려면 상대방을 존중해야 한다. 여기서 핵심은 가진 사람이 없는 사람을 존중하는 것이다. 마음을 다해 실천해야 한다. 정조가 마부를 대하듯이 우리가 모두 서로 존중한다면 사회는 분명히 변화한다. 주역에 이런 말이 있다. 변즉통 통즉구(變卽通, 通卽久). 즉, 변화하면 통하고 통하면 오래간다. 그것의 기본이 존중이다.
두 번째로 이 시대 리더들은 자기 확신이 필요하다. 자신이 가려는 길이 올바르다고 생각했다면 어려워도 반드시 가야 한다. 군자는 싸움을 좋아하지 않을지언정 싸움을 하면 반드시 이긴다고 한다. 도전에 관한 이야기다. 세계화 시대에서 우리는 다른 나라와 소통하고 교류할 수밖에 없다. 무조건 막는다고 해결될 일이 아니다. 세계와 교류하면서 어떤 부분이 필요하다고 생각이 들면, 도전하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이 들면 리더들이 결정하고 추진해야 한다.
정조의 말씀을 국민들에게도 전해주길 바란다
▶정조는 ‘나는 성을 내는 기질이 있다. 그것을 누르려고 끊임없이 자신을 성찰하고 함양했다. 그래서 내가 다른 사람이 되었다’고 말씀한 적이 있다. 어려서 아버지의 죽음을 눈앞에서 보고 스트레스도 받았다. 그런 걸 극복하려고 수양을 했다. 정조는 수양과 함양을 통해 부드러운 지도자가 됐다.
우리 사회가 내년에는 더 어려워질 수도 있다. 나라는 부유해지는 반면 개인이 가난해질 수도 있다. 그럴 때 분노하다 보면 주위에. 가족들에게 상처를 줄 수 있다. 가정의 행복과 사회의 평화를 위해서 함양이 필요하다. 절제하고 수양하는 것이 함양하다. 우리가 너그러움에 대해 훈련을 한다면 이 사회가 조금 더 아름다워질 거다.
– 1968년 2월 9일 경기도 수원 출생
– 중앙대 사학과 학사·석사·박사
– 수원시 학예연구사(수원화성박물관 학예팀장)
– 現 국제기념물유적협회(이코모스)회원
– 現 한신대학교 정조교양대학 교수
▶본 기사는 입법국정전문지 더리더(the Leader) 1월호에 실린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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