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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주와 풍수 그리고 한국학

사주와 풍수 그리고 한국학

‘오늘의 운세’는 ‘한국 인문학의 위기’가 낳은 귀태(鬼胎)

글 : 김두규  문화재청 문화재위원·우석대 교수



⊙ 사주술은 송나라 때 지배학문이었던 성리학과 농업경제 발전과 관련
⊙ 원래 사주팔자는 고칠 수 없는 것이었으나, 명나라 이후 사주팔자도 고칠 수 있다는 이론 등장
⊙ 조선시대 ‘관학’의 일부이던 명과학(命科學)이 조선 망한 후 ‘길거리 동양철학’으로 전락

김두규
1960년생. 한국외국어대 독일어과 졸업, 독일 뮌스터대 독문학·중국학·사회학 박사 / 전라북도 도시계획심의위원, 신행정수도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행정중심복합도시건설추진위원회 자문위원, 문화재청 문화재전문위원 역임. 현 우석대 교양학부 교수 / 저서 《조선풍수학인의 생애와 논쟁》 《우리풍수 이야기》《풍수학사전》 《풍수강의》 《조선풍수, 일본을 논하다》 《국운풍수》 등

조선시대 명과학은 현대에 들어오면서 ‘오늘의 운세’를 봐 주는 ‘길거리 동양철학’으로 전락했다.
  ‘오늘의 운세’라는 유령이 대한민국을 배회하고 있다. 주요 신문들이 싣는 ‘오늘의 운세’도 그 유령이다. 일요일자 신문은 배달되지 않기에 토요일자가 친절하게 일요일 운세까지 미리 실어 독자들에게 편의를 제공한다. 단 하루로 사람의 운명이 바뀌지는 않는다. 하루하루에 매달릴 일이 아니다. 도쿠가와 이에야스(德川家康)는 말하였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任重道遠·맡은바 책임은 중하고 갈 길은 멂) 결코 서두르지 말 것!”
 
도쿠가와 이에야스의 무덤 옆에는 그의 좌우명이 적힌 팻말이 있다.
“사람의 일생이란 무거운 짐을 지고 먼 길을 가는 것과 같다. 결코 서두르지 말 것.”
  《논어》 ‘태백편’에 나오는 말이다. 일본을 통일하여 새로운 막부를 연 이에야스가 금과옥조로 여긴 말이기에 새겨들을 만하다.
 
  문제는 ‘거리의 동양철학자’들이 하루하루 불안한 삶을 사는 이들에게 조급증을 부채질한다는 점이다. 여기서 말하는 ‘동양철학자’들은 크게 네 부류인데 대개 풍수·작명·관상을 겸한다.
 
  첫째, 사주 공부 후 개업하여 그 상담기록을 바탕으로 자기 홍보를 하려는 부류이다.
 
  둘째, 사주를 하나의 담론(‘동양학’의 일부로서)으로 삼아 전설적인 사주 대가들의 기행(奇行)과 기담(奇談)들을 과장・신비화하는 부류이다.
 
  셋째, 사주 공부를 위해 중국의 사주서적들을 번역·출판하는 부류이다. 사주 공부를 함과 동시에 그 책이 출간될 경우 ‘사주전문가’로 인정을 받기 때문에 일석이조의 효과를 노린다.
 
  넷째, 일부 학원강사·증권전문가·부동산전문가·대체의학자·일탈한 종교인들이다. 증권전문가들이 사주를 배워 고객들에게 돈이 되는 종목과 시기 등을 상담한다. 입시학원 강사들이 사주를 배워 수능과 대입을 앞둔 학부모들을 상대로 진로상담을 해주고 있다. 부동산업자들은 사주를 배워 고객들에게 투자해야 할 땅과 시기를 상담해 준다. ‘대체의학자’들은 사주로 사람의 체질과 질병을 상담하며 ‘약’을 팔기도 한다. 포교를 목적으로 사주를 이용하는 종교인들도 적지 않다.
 
  우리나라만의 일은 아니다. 일본과 중국에도 사주·풍수·관상을 업으로 하는 이들이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만큼 그렇게 많지 않다.
 
 
  운세와 운명
 
홍콩(왼쪽)과 일본의 점집. 우리나라만큼 많지는 않다.
  알 수 없는 자신의 운명을 궁금해하는 것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있어 왔다. 그리하여 운명에 관한 수많은 명언이 생겨났다.
 
  - 운명이란 못하는 짓, 안 하는 짓이 없다.
  - 운명은 화강암보다 더 단단하다.
  - 운명은 나쁜 놈이지만 책임을 물을 수 없다.
  - 인간의 일생을 지배하는 것은 운명이지 지혜가 아니다.
  - 운명이란 바람과 같은 것.
  - 운명은 자기 갈 길을 걸을 뿐이다.
  - 운명의 판결은 재심이 불가하다.
  - 그 누구도 운명으로부터 도망치지 못한다.
  - 운명에 대항하는 것은 어리석은 짓이다.
  - 운명은 인간보다 더 상상력이 풍부하다.

 
  글머리에서 ‘운세’를 이야기하다가 ‘운명’으로 주제어가 바뀌었다. 운세와 운명은 어떻게 다른가? 운세(運勢)란 운(運)의 흐름[勢]을 말하고, 운명(運命)이란 운과 명(命)의 합성어이다.
 
《논형》을 지은 왕충.
  명이란 무엇인가? 2000년 전 중국의 지식인 왕충(王充·27~97년)이 명확히 해놓았다. 가난하여 책을 사 볼 수 없었던 그는 당시의 수도 낙양의 책방을 돌며 책이란 책은 모두 읽었고, 한 번 읽은 책은 그대로 암기를 할 정도로 천재였다. 그러나 배경이 없던 그는 벼슬길에서 터덕거렸고 가난에 절망하였다. 불우한 처지에서 그는 《논형(論衡)》을 쓴다. 《논형》은 2000년이 지난 지금도 지식인들에게 읽힌다. 찬탄을 금치 못하는 명저이다.
 
  왕충은 여기서 음양오행설(陰陽五行說)을 부정한다. 자신보다 200여 년 앞서 살다 간 유학자 동중서(董仲舒)의 천인합일설(天人合一說)도 그는 거부한다. 여기서 음양오행설과 천인합일설을 언급하는 것은 그것이 바로 ‘오늘의 운세’를 말할 때 사용되는 사주술의 근본 토대가 되기 때문이다. 그런데 운명론을 부정하였던 그가 명(命) 앞에 항복하여 다음과 같이 독백한다.
 
  〈사람들이 윗사람의 마음에 들거나 해를 입는 것은 모두 명(命)에 의한 것이다.
 
  삶과 죽음, 장수(長壽)와 요절(夭折)의 명이 있고, 또한 귀천과 빈부의 명이 있다. 왕에서 서인(庶人)에 이르기까지, 성현에서 지극히 어리석은 사람에 이르기까지, 모두 머리와 눈이 있고 혈기를 지닌 동물이라면 명을 지니지 않을 수 없다. 빈천해질 명이라면 부귀하게 해주더라도 화를 만나고, 부귀해질 명이면 비록 비천하게 해도 복을 만난다. … 그러므로 부귀에는 마치 신령의 도움이 있는 것 같고, 빈천에는 귀신의 재앙이 있는 것 같다. 귀하게 될 운명을 지닌 사람은 남들과 함께 배워도 홀로 벼슬을 하고, 함께 관직에 나가도 혼자 승진한다. … 빈천의 운명을 지닌 사람은 이와 상황이 다르다. 어렵게 벼슬에 이르고 겨우 승진하며, 어렵게 얻고 일을 성취하지만 잘못을 저질러 죄를 받고, 질병으로 뜻하지 않게 재산을 잃게 되어 지녔던 부귀마저 상실하고 빈천해진다. … 따라서 일을 처리할 때의 지혜와 어리석음, 행실의 고결함과 비속함은 본성과 재질에 의하며, 관직의 귀천과 사업의 빈부는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