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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득 노출 될라'…전자계약 꺼리는 부동산 중개사들

소득 노출 될라'…전자계약 꺼리는 부동산 중개사들

입력시간 | 2016.09.06 06:30 | 원다연 기자 here@

 

서초구 시범사업 후,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전역 확대
종이 대신 PC, 스마트폰으로 계약서 작성
금리 인하, 등기비용 할인 내세워도 찾는 이 없어
양방 설득에 시간 소요, 소득 노출 우려에 공인중개사는 도입 꺼려

`소득 노출 될라`…전자계약 꺼리는 부동산 중개사들
△지난달 30일부터 서울 전역에서 부동산 계약을 스마트폰이나 태블릿 PC로 할 수 있게 됐지만 실제 계약 사례가 없는 등 시장 반응은 썰렁하기만 하다. 서울 송파구 잠실동 리센츠 아파트 단지 내 상가 1층에 공인중개업소가 몰려 있다.
[이데일리 원다연 기자] “공인중개사를 그만둘 때까지나 정착이 되려나 모르겠네요.” 

부동산 전자계약을 서울 전역으로 확대 시행한 지 나흘이 지난 3일 노원구 상계동 노원역 인근에서 만난 한 50대 공인중개사의 말이다.  

지난 2월부터 서초구에서 시범적으로 부동산 전자계약을 도입해 시행해 온 국토교통부는 지난달 30일부터 시범지역을 서울 전역으로 확대했다. 부동산 전자계약은 기존에 종이로 작성하던 부동산거래계약서를 컴퓨터나 스마트폰 등을 이용해 작성하는 계약 형태를 말한다. 전자계약을 하면 계약서를 쓰면서 자동적으로 실거래신고가 이뤄지고 확정일자도 부여된다. 

전자계약은 국토부에서 지난해부터 4년간 154억원의 예산을 들여 추진하고 있는 ‘부동산거래 통합지원시스템 구축사업’의 하나로 도입됐다. 정부는 전자계약이 정착하면 계약서 위·변조 위험이 줄어 부동산거래의 신뢰도가 높아지고, 종이계약서를 유통·보관하는 사회적 비용도 줄어들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또 실거래가 등의 공적정보를 확보하는 효과도 볼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전자계약 서울 전역으로 확대…“문의는 아직”  


그러나 부동산 중개인들은 전자계약이 정착되기까지는 오랜 시일이 걸릴 것으로 내다봤다. 거래 과정에 참여하는 당사자들이 직접적으로 체감할 수 있는 효용도가 그리 높지 않다는 것이다. 이날 서울 자치구 중 아파트 매매 거래량이 가장 많은 노원구 일대와 대단지 아파트가 몰려있는 송파구 신천역 인근의 부동산 10여곳을 둘러본 결과 중개의뢰인들로부터 전자계약에 관한 문의를 받았다는 부동산은 한 곳도 찾아볼 수 없었다. 

노원역 인근 K공인 관계자는 “중개사 입장에선 의뢰인들이 요구하면 전자계약을 할 수밖에 없겠지만 주로 40~50대인 의뢰인들은 계약서에 도장을 찍는 계약 과정 자체를 중요하게 생각하고 온라인으로 이뤄지는 것들에 대해선 신뢰하지 못하는 것 같다”며 “전자 거래 문화가 익숙한 지금의 20~30대가 주요 거래층이 될 때까지는 아무래도 전자계약이 활성화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이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계약 내용이 속속들이 드러나는 것을 꺼려 전자계약을 이용하지 않을 것이란 시각도 많았다. 송파구 트라지움 단지 내 상가에 있는 H공인 관계자는 “지금도 실거래가 신고는 다 한다고 하지만 전자계약을 해서 계약서에 있는 세세한 사항을 하나부터 열까지 내보이고 싶은 사람들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실제로 우선 시범지역이었던 서초구에서 지난달까지 이뤄진 부동산 전자계약은 전체 5건에 불과했다. 지난 6월 초 서초구에서 전자계약을 이용해 거래를 체결한 윤하은 글로벌공인중개사무소 대표는 “시스템 자체는 어렵지 않아서 한두번만 더 해보면 익숙해 질 것으로 생각했지만 그 이후로 전자계약을 하겠다는 손님이 없었다”고 말했다. 

윤 대표는 “전자계약을 체결할 당시에도 거래 상대방이 전자계약을 믿지 못해 두세 차례 설득하는 과정을 거쳐야 했다”며 “빨리 거래를 성사시키는 게 중요한 중개사 입장에서는 굳이 먼저 계약을 권할 이유가 없는 것”이라고 말했다. 

◇공인중개사 유인책 부족…“세금 혜택 등 인센티브 필요” 

국토부는 전자계약을 활성화하기 위해 전자계약으로 거래한 의뢰인에게 주택담보대출 금리를 0.2% 인하해주고 등기비용도 30% 할인해 주는 등의 혜택을 내놨지만 그나마도 전자계약 확산에 키를 쥐고 있는 공인중개사들에 대한 유인책은 미비하다. 현재는 전자계약을 통해 계약한 의뢰인이 주택담보대출을 받으면 공인중개사에게 추천수수료로 대출액의 0.2%가 주어진다.  

잠실동 H공인중개소 관계자는 “지금도 공인중개사마다 은행들과 협약을 맺고 대출을 추천하면 얼마간의 수수료를 받고 있어 추천수수료 때문에 전자계약을 새로 시행하려는 중개사들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전자계약을 이용하면 중개업소의 모든 거래와 소득이 드러날 것을 우려해 제도 도입을 꺼린다는 점도 걸림돌이다. 거래액이 크지 않은 월세 중개 등에 대해선 현금영수증을 끊는 대신 얼마간의 중개보수(중개수수료)를 깎아주는 식의 거래 관행이 남아 있어 중개인 입장에서는 굳이 모든 소득이 공개되는 전자계약을 이용할 유인이 크지 않다는 것이다. 

때문에 전자계약을 시행하고 있는 서울 내 공인중개업소는 현재 770여곳에 불과하다. 국토부의 개업공인중개사 등록 현황에 따르면 올 2분기 기준 서울시에 등록된 공인중개업소는 2만 2600여곳에 달한다.  

국토부 부동산산업과 관계자는 “공인중개사들을 대상으로 전자계약을 활용하는 방안에 대한 교육과 홍보를 지속적으로 하고 있다”면서 “공인중개사들에게 특별한 인센티브를 제공하기보단 소비자들이 전자계약이 더 간편하고 믿을 수 있다는 인식의 전환이 이뤄지면 자연스럽게 정착될 제도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제도가 조기에 정착돼 효과를 거두기 위해서는 전자계약을 이용하는 공인중개사들에 대한 인센티브가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심교언 건국대 부동산학과 교수는 “전자계약을 통해 행정비용을 줄이고 수기 작성으로 인한 오류도 줄일 수 있는 등 제도 자체는 바람직한 방향이나 실행 전략이 잘못됐다”며 “제도가 흐지부지되지 않고 조기에 정착될 수 있게 하기 위해선 전자계약 실적이 일정 수준 이상인 중개사에게 세금 혜택을 주는 등의 인센티브를 고려해 봐야 한다”고 말했다. XML: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