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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만 모르는 진실, "숫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당신만 모르는 진실, "숫자가 세상을 지배한다!"
[프레시안 books : 저자, 책을 말하다] <역학의 철학> 저자 알렉스 브로드벤트 교수
'역학(疫學)'이란 이름은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낯설다. 많은 이들이, 발음이 똑같은 물리학의 역학(力學, kinetics)이나 주역과 관련된 역학(易學)을 먼저 떠올린다.

영국에서도 다르지 않은가 보다. 역학을 지칭하는 영단어 '에피데미올로지(epidemiology)'를 발음이 비슷한 '에피덤(epiderm, 피부)'으로 오해하는 사람들이 있다고 한다. 그래서 졸지에 '역학의 철학'이 아닌 '피부의 철학' 연구자로 오해를 받기도 한다고.

지난 4월 5일 한국을 찾은 남아프리카공화국 요하네스버그 대학 교수(철학과) 알렉스 브로드벤트의 말이다. 그는 국민건강보험공단이 개최한 '흡연과 폐암의 인과관계, 역학적 증거가 가지는 의미' 세미나와 보건학 연합 학술 대회 기조 강연을 맡아서 한국을 방문했다. 때마침 그의 저작 <역학의 철학>(전현우·천현득·황승식 옮김, 생각의힘 펴냄)이 한국에서 번역 출간되기도 했다.

역학도 생소한데, 역학의 철학이라니. 일반 시민들이 이런 것까지 생각해야 하나? 그러나 원치 않더라도 역학적 접근과 연구 결과들은 이미 우리 일상의 한 부분이다. 매일같이 접하는 건강 뉴스들, 예컨대 하루에 커피를 몇 잔 마시면 심장병 사망률이 얼마나 감소한다는 소식들은 대부분 역학 연구에 바탕을 두고 있다.

가습기 살균제의 건강 피해, 반도체 노동자의 백혈병 피해 여부 판단에 주요 근거가 된 것도 역학 연구였다. 때로는 규제와 법적 판단, 혹은 건강 증진 정책의 중요한 근거가 되지만 한편으로는 사람들에게 끊임없이 혼란과 걱정거리를 안겨주기도 하는 것이 역학이다.

고(故) 칼 세이건은 과학기술의 사회적 파급력이 커질수록 과학자들의 사회적 책임이 커져야 할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소수의 전문가들에게만 맡겨 두어서는 안 된다고 했다. 시민들이 과학을 이해하고, 이를 감시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맥락에서 일반 독자들에게는 다소 어려운 주제이지만, '역학의 철학'에 관한 논의를 소개한다. 지난 8일 오후, 시내의 한 찻집에서 브로드벤트 교수를 만나 이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인터뷰, 정리는 김명희 시민건강증진연구소 상임연구원이 맡았다.

왜 '역학의 철학'이 필요한가?

ⓒ생각의힘

김명희 :
흔히 철학은 실용적이지 않다고 이야기한다. 우리 일에 대한 철학적 이해가 없어도, 사실 별 문제가 없다. 그리고 자연과학자들이나 (보건의료) 전문가들은 '철학'하면 으레 전문가 윤리를 떠올린다. 철학자로서, 과학자들이나 전문가들이 자신의 일에 대한 '철학적 이해'를 갖는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설명해 달라.

브로드벤트 : 어떤 분야에서는 철학이 매우 유용하다. 예컨대 '민주주의의 이상'이란 결국 철학적 이상 아닌가. 이에 비해 (자연) 과학 영역에서는 철학이 별로 쓰임새가 없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과학에서도 철학은 매우 중요한 문제일 수 있다. 때때로, 경험적 근거를 통해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출현한다. 논리적 추론을 통해서 문제를 해결해야 할 때가 있다. 여기에서 철학은 매우 중요한 역할을 한다.

예컨대 고래를 물고기로 분류할 것인가, 포유류로 분류할 것인가, 이는 실험으로 결정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바다에 사느냐, 폐로 호흡을 하느냐, 어떤 것을 기준으로 삼을지 우리는 추론을 해야 한다. 사람들은 흔히 철학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한다고 이야기하지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철학적 질문이란 실험을 통해 직접 풀지 못하는 것을 해결해가는 것이다.

김명희 : 그런데 대부분의 역학자나 과학자들이 철학에 대해서 아무 것도 몰라도 자신의 분야에서 잘 해 나간다.

브로드벤트 : 맞다. 대개는 철학 없이도 충분히 잘 할 수 있다. 하지만 언제나 그런 것은 아니다. 단지 추가적인 (경험적) 연구만으로 밝힐 수 없는 문제들이 있다. 이 경우, 본인들은 인식하지 못하지만 철학적 방법을 동원하게 된다. 예컨대 '인과성'에 관한 유명한 역학 논문은 그 자체로 이미 철학 논문이다. 주제도, 논거도 모두 철학적이다.

2008년 <국제비만학회지>에 실린 논문이 있다. (2008년 <국제비만학회지> 32권에 실린 미구겔 허난과 새라 타우브먼의 논문 '비만이 생명을 단축시키는가? 인과 질문에 답하기 위한 잘 정의된 개입의 중요성') 두 명의 역학자가 비만의 원인에 대해 쓴 것인데, 그들이 철학을 한다고 말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그들이 엮어 낸 전체 스토리와 요점, '무엇이 원인인가?'는 그 자체로 철학, 어쩌면 철학 이상의 것이다.

김명희 : 그렇다면 모든 역학자나 과학자가 어느 정도 철학을 익혀야 한다고 생각하나?

브로드벤트 : 일반적으로 전체 학계가 너무 분절화되어 있다. 다른 분야에서 어떤 일이 벌어지고 있는지 알아야 한다. 물론 모든 것에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역학자가 철학 전문가가 될 필요는 없다. 하지만 분명히 도움이 된다고 말하고 싶다. 단순히 과학적이기보다 철학적 접근이 도움이 되는 문제와 마주칠 때가 있다. 최소한 그러한 상황을 인식하는 것 자체를 포함해서 말이다.

김명희 : 인식론 측면에서, 자연과학이나 사회과학과 비교할 때 역학의 독특한 점은 무엇인가? 아마도 이는 당신이 이 분야에 도전하게 된 학문적 동기와도 관련이 있을 것 같다.

브로드벤트 : 자연과학과 구분되는 몇 가지 차이점이 있다. 우선 이론적 모형의 구축에 관한 학문이 아니라는 점이다. 여러 자연과학 분야, 물리학, 화학, 생물학은 모두 세상에 들어맞는 어떤 이론적 모형을 구축하고자 한다. 하지만 역학은 그런 것이 아니라 특정한 문제를 '해결'하는 데 관심이 있다. 왜 이 집단의 암 발생률이 더 높을까? 학교 옆에 통신 기지국을 건설하는 게 건강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이는 기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다.

또 다른 흥미로운 특정은 실험을 하지 않고, 관찰 연구를 한다는 점이다. 물론 무작위 대조 시험이라는 실험 연구가 있지만, 진정한 의미의 통제 실험은 아니다.

이 두 가지 점이 독특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후자의 특징은 다른 사회과학 영역, 이를테면 경제학과 비슷하기도 하다. 하지만 사회과학은 이론 구축을 중요하게 생각한다는 점에서 역학과 다르다. 경제학은 법칙들, 이를테면 수요-공급 법칙, 한계 효용 체감의 법칙 같은 이론을 구축한다. 이런 측면에서 어쩌면 경제학은 역학보다 물리학에 더 가깝다고도 할 수 있다. 비록 다루는 주제가 인간, 인간 행동이라는 공통점을 갖고 있지만.

한편, 역학의 이론적 틀은 의학과 비슷하다고 할 수 있지만, 의학이 전적으로 개인에 대한 관심을 갖는데 비해 역학은 인구 집단 건강에 관심을 둔다. 바로 이 때문에 역학자들은 인과성, 귀납에 대해 글을 쓸 수 있는 것이다.

내가 이 분야를 연구하게 된 것은 우연한 계기에서 비롯되었지만, 처음 접했을 때 이런 점이 매우 흥미로웠다. 중요한 문제는, 역학 연구들이 일상에서 매우 친숙하지만, 정작 사람들이 역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는 점이다. 매일 무엇이 건강에 좋고, 안 좋고 뉴스가 나오지 않나. 하지만 과학적으로 훈련된 이들조차 역학에 대해서는 잘 모른다. 이는 매우 중요한 과학 분야이다. 사람들이 이에 대해 더 많이 알아야 한다.

"우리 아버지는 40년간 담배를 피웠지만…"

김명희 : 한국에서 논쟁이 되고 있는 세 가지 역학적 근거 논쟁에 대해 이야기 나누고 싶다. 이는 역학적 근거의 법정 활용과 관련된 전형적인 문제들을 보여준다. 우선 흡연자의 폐암 발생과 관련한 최근의 판례다. 법원은 담배 사용이 폐암 발생과 관계있다는 점은 인정했다. 하지만 인구 집단에 기초한 역학적 근거를 특정한 개인에게 적용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는 담배 위험성에 대한 흔한 반론-"우리 아버지는 40년 동안 담배를 피우셨지만 건강에 아무런 문제가 없어"-과 일맥상통하는 것이기도 하다. 철학자로서, 이 사례에 대해 당신은 어떤 이야기를 해줄 수 있는가?

브로드벤트 : 이 사례에는 세 가지 흥미로운 점이 있다. 첫째는 법원이 개인의 질병 원인을 입증하기 위해 역학적 근거를 쓸 수 없다고 한 점이다. 이는 틀린 이야기이다. 물론 우리가 확실성을 가지고 입증할 수는 없다. 하지만 인구 집단 연구를 통해서 개인의 위험 확률을 추정하는 것은 얼마든지 가능하다. 순전히 논리적인 측면에서도 그들의 주장은 틀렸다.

두 번째, 법원은 특이적 질환과 비특이적 질환을 구분했다. 담배 말고 다른 요인들도 폐암 발생에 기여하기 때문에 (즉, 비특이적 질환이기에) 담배가 원인이라고 할 수 없다는 것이다. 이건 틀렸다. 그런 구분이란 없다. 물론 어떤 질환은 분명한 원인을 가지고 있다. 예컨대 소장의 비브리오 콜레라 세균은 콜레라의 분명한 원인이다.

그런데 누군가가 (콜레라균에) 오염된 물을 마시고 설사와 발열 증상이 있는데, 미처 진단을 받지 못하고 죽었다면 이는 '비특이적 질환'이나 다름없다. 이런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 병원체는 많기 때문이다. 그런데도 법원은 이런 질환과 그렇지 않은 비특이적 질환을 구분하고, 후자에 대해서는 원인을 확정지을 수 없다고 생각한 것 같다.

그 대표적인 사례가 암이다. 대부분의 암은 한 가지 분명한 원인에 의해서 생기지 않는다. 하지만 한 가지 요인에 의해서만 발생하지 않는다고 해서, 특정 사례에서 그것이 원인이 아니라고 이야기할 수는 없다. 이런 주장은 인과성 입증이 100% 확실성으로 해당 요인이 원인이라는 것을 요구하는 경우에만 참이 될 수 있다. 이 경우에도 우리는 다양한 방법을 써서 원인을 추론할 수 있다.

예를 들어 (인구 집단 역학 연구로부터) 흡연자의 폐암 위험이 비흡연자에 비해 20배 높다고 해보자. 무작위로 흡연자 20명을 뽑았을 때, 이들 모두가 담배를 피우지 않았더라면, 이 중 한 명에게 폐암이 발병했을 것이다. 즉, 흡연자가 담배를 피우지 않았었더라도 폐암에 걸리게 될 위험 확률은 최소 20분의 1이다. 이를 적용해 인과성 확률의 하한값을 추정해보면, 담배가 무작위로 추출된 이 흡연자 개인들에게서 폐암을 일으켰을 확률은 95%(=1-1/20)가 된다.

마지막으로 법적 문제를 지적할 필요가 있다. 공익 소송인은 담배의 위험 표현에 결함이 있음을 주장했다. 담배 회사가 소비자들에게 담배의 위험을 알려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이게 틀렸다고 했다. 모든 사람들이 이미 흡연의 위험성을 잘 알고 있다는 것이다. 법적 측면에서는 그렇게 볼 수 있다.

하지만 그보다 일반적 관점에서는 다르게 생각할 수 있다. 담배 회사가 담배의 위험성은 밝힌 것은 다른 모든 이들, 역학과 공중보건학자들이 그 위험성을 이야기했기 때문이다. 담배 회사는 이 과정에 비용을 들이지 않았다. 법적 판결에서는 이런 부분을 간과했다. 법적으로는 괜찮을지 모르지만, 도덕적으로는 부당한 결론이라고 할 수 있다.

김명희 : 미국에서 있었던 비슷한 재판에서 담배회사가 패소한 전적이 있었기에, 나는 한국에서의 담배 소송은 쉬운 게임이 될 거라고 예상했었다. 그런데 그렇지 않아서 당황스러웠다.

브로드벤트 : 맞다. 나도 많이 놀랐다. 왜냐하면 미국에서 오류로 밝혀진 담배 회사의 논거들, 모든 사람들이 담배의 위험성을 알고 있으니 흡연자의 책임이라는 논리가 여전히 담배 회사 측의 책임을 회피하는 근거로 활용되고 있었기 때문이다.

▲ <역학의 철학> 저자 알렉스 브로드벤트 교수. ⓒ김명희



역학의 결론 vs. 법적 판단

김명희 : 20년 이상 핵발전소 근처에 살았던 여성이 자신에게 발병한 갑상선 암의 책임을 물어 회사(한국수력원자력)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했다. 최근 부산지방법원은 그녀의 손을 들어주었다. 이 재판에서는 대조 지역에 비해 핵발전소 인근 거주 여성들의 갑상선암 발생률이 높다는 역학 연구 결과가 중요한 근거의 하나로 채택되었다. 실제로 그녀는 연구 지역 중 한 곳에 거주하고 있었다.

역설적이게도, 이 연구를 직접 수행한 연구진은 이 결과가 인과적 연과성이 아니라 단순한 통계적 상관성이라고 결론 내렸었다. 이렇게 역학적 결론과 법적 판단이 다른 상황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해야 하나?

브로드벤트 : 내가 직접 그 연구 결과를 본 것은 아니지만, 인과성을 분명하게 배제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다만 인과성을 입증할 수 없다고 이야기했을 것이다. 어떤 (통계적) 연관성을 발견했을 때, 그것이 인과적일 수 있지만, 아닐 수도 있다. 원인적 연관성이라고 하려면 이를 뒷받침할 만한 내용들이 준비되어야 한다.

과학에서는 세 가지 선택지가 있다. 가설이 참임을 확인하거나, 거짓임을 확인하거나, 아니면 아직 판단할 만한 근거가 불충분하다고 결론 내릴 수 있다. 하지만 법정에서는 이것이 불가능하다. '유감이다, 아직 증거가 없다'라고 유보할 수 없다. 어쨌든 결정은 해야만 한다. 하지만 만일 이 연구가 '분명히 원인이 아니다'라고 결론 내렸다면 그건 다른 이야기이다. 좀처럼 설명하기 어려운 부분이다.

그리고 영국 법에서는 '정책'이라고 부르는 부분이 있다. 특정한 개인을 돕거나 기업들의 예방적 행위를 장려하기 위해서 증거가 불충분해도 법적 판결을 내리는 경우가 있다. 물론 이것이 잘못된 판결일 수도 있다.

김명희 : 법적 판결과 역학적 결론이 일치하지 않는 유사한 사례를 경험한 적이 있나?

브로드벤트 : 역학적 근거는 있지만, 법적으로 인과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특정 사례들이 존재한다. 이런 경우를 대비해 특별한 규칙을 마련해두기도 한다.

예를 들면, 석면과 관련해서 특별법이 있다. 한 올의 석면 섬유도 중피종을 일으킬 수 있다고 한다. 그런데 한 노동자가 A 회사에서 15년, B 회사에서 20년을 근무했다고 가정해보자. 그 섬유가락이 어떤 회사에서 비롯된 것인지 알 수 없다. 이 경우 원고인 노동자로 하여금 병을 일으킨 그 섬유가 어느 회사에서 유래한 것인지 인과성을 입증하도록 요구하지 않는다. 법적으로 기업은 노동자들 보호해야 할 의무가 있다. 노동자가 위험을 회피하도록 하는 조치를 충실히 이행했는지가 중요하다. 말하자면 법적 판단을 위해 인과성에 대한 규칙을 다소 완화하는 것이다.

[프레시안 북스 지난 호 바로 가기]

왜 역학자가 '탐정'이 되어야 하는가?

김명희 : 전 세계 많은 연구자와 노동자들이 반도체 생산 노동자들의 암 발병 위험에 대해 우려해왔다. 집단적인 암 발병 사례들이 보고되고 작업장 유해물질들이 직접 확인되기도 했지만, 역학 연구들은 소위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를 보여주지 못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개 표본 크기가 작고 추적 기간이 짧아서 암 발생을 분석하기엔 통계적 검정력이 충분치 못했다.

일부 연구자와 기업들은 '이것 봐라, 모든 연구가 위험이 없다고 하지 않느냐?'라고 이야기한다. 당신은 책에서 '안정성'을 인과성 추론의 중요한 도전으로 언급한 바 있다. 과연 이 경우도 그러한 '안정성'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가?

브로드벤트 : 반드시 그런 것은 아니다. 오히려 내가 보기에 당신이 불편해하는 원천이야말로 이들 연구가 불안정하다는 데 있다. 만일 다른 방식으로 연구를 설계하고 수행한다면 결과가 달라질 수 있다는 이야기 아니냐? 그리고 '통계적 유의성'에 대해서는 이것이 매우 자의적인 것임을 지적해야 한다. 예컨대 역학에서는 주로 0.05를 기준으로 삼지만 물리학에서는 0.001을 사용한다. 또한 귀무가설이 기각되지 못했다고 해서 그 가설이 참이라는 것을 의미하지는 않는다. 이 사례의 경우, 인과성에 대한 연구 말고도 왜 이러한 결과들이 나타났는지를 설명해주는 연구가 필요한 것으로 보인다. 단순히 비슷한 결과들이 나온다고 해서 이를 '안정적'이라고 하는 것은 잘못된 생각이다.

김명희 : 책이 쉽지는 않았다. 사용되는 용어가 완전히 다르다. 물론 번역은 굉장히 빼어나서, 당신이 한국어판을 꼭 직접 읽어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브로드벤트 : 나도 한국어를 배워야 하나 싶다. (웃음)

김명희 : 그렇지만 번역판도 어렵기는 마찬가지다. 인과성 추론을 위한 '반(反) 사실적 (counter-factual) 접근과 '설명' 개념에 설명을 부탁한다.

브로드벤트 : 인과성에 대한 반 사실적 이론은 기본적으로 무엇이 원인인가에 대한 것이다. 예컨대 졸릴 때 각성이 되도록 하는 요인은 무엇인가 생각해보자. 커피를 마시면 각성이 되고, 마시지 않으면 잠이 온다는 관찰을 했다고 해 보자. 하지만 이는 여전히 무엇이 원인인지 말해주지 않았다. 이는 통계적 관련성이지 원인이 아니다.

반 사실적 이론은 A가 일어나면 B가 일어날 것이고, A가 아니었다면 B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고 이야기한다. 이는 매우 대중적인 인과성 이론이다. 책의 핵심은 역학자들이 인과성 뿐 아니라 '설명'에 대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때로는 원인이 설명을 제공하지만, 항상 그런 것은 아니다.

이를테면 우리 부모님이 서로를 만났기 때문에 내가 존재하고 여기에서 인터뷰를 할 수 있는 것이지만, 그렇다고 두 분의 만남이 이 인터뷰의 원인이라고는 할 수 없다. 역학은 인과적 사건을 확인하는데 관심을 두지만, 이는 너무 광범위하다. 어떤 것이 인과적이라고 확인하더라도 이것이 만일 현상을 '설명'하지 못한다면 전혀 흥미로운 결과가 아닐 수도 있다.

여기에서 '설명'이란 '차이' 혹은 '대조'를 설명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반 사실적 이론이 그 역할이 없다는 것이 아니라, 그것이 전부가 아니라는 것이다. A가 B를 야기한다는 것이, 곧 A가 B에 대한 좋은 설명은 아니기 때문이다.

김명희 : 당신의 '설명' 개념은 비판적 실재론 (critical realism)에서 제기하는 것과 같은 개념인가?

(비판적 실재론은 1930년대부터 사회과학을 지배해온 실증주의 접근에 대한 비판에서 비롯되어 1970년대 로이 바스카 등에 의해 발전한 과학철학의 한 흐름이다. 인식론과 존재론 측면에서 실증주의와 해석주의를 비판하며, 층화된 사회적 세계에서 작동하는 인과적 기전에 대한 설명을 강조한다. 주로 사회과학의 철학에 초점을 두고 있지만, 2000년대 이후 건강 불평등 연구, 근거 기반 보건 정책 분야에 소개되었다. 사회 경제적 요인에 따른 건강 격차의 통계적 분석을 넘어서 사회적 기전에 대한 이해, 복잡한 사회적 중재를 위한 조건들을 탐색하는 사회역학 연구에 새로운 철학적 기반을 제공하고 있다.)

브로드벤트 : 다른 학문적 전통에서 비롯된 것이다. 비판적 실재론에 대해서는 잘 모르지만, 나는 '왜'라는 질문을 강조한다고 볼 수 있다.

김명희 : 비판적 실재론에서도 '왜'와 '어떻게'라는 질문을 매우 중요하게 생각한다. 특히 인과성 추론에서 인과적 '기전'을 강조한다. 하지만 당신은 담배가 폐암을 일으키는 생물학적 기전을 알지 못한 상태에서도 원인적 연관성을 결론 내렸다는 점을 언급하며, 기전이 설명의 필수 요소는 아니라고 했다.

브로드벤트 : 설명을 위해서 항상 기전을 알아야 하는 건 아니라는 뜻이다. 예를 들면 당신이 기압계의 작동 기전을 잘 이해한다고 해서, 등산 날씨를 잘 예측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물론 기전을 아는 것은 매우 유용하다. 다만 기전을 아는 것이 인과적 관계를 파악하는 데 항상 필요한 것은 아니며, 예측의 필요충분조건도 아니다.

김명희 : 하지만 사회과학이나 사회역학에서 인과적 요인들은 매우 복잡하게 얽혀 있다. 그래서 흡연, 폐암의 연관성과는 다르게 이를 찾아내지 않으면 전혀 아무 것도 하지 못할 수도 있다. A 지역에서 매우 성공적이었던 금연 프로그램이 B 지역에서는 전혀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 우리는 핵심적인 기전, 사회적 기전을 찾아야 하는 것 아닌가?

브로드벤트 : 동의한다. 핵심은 동일하다고 생각한다. 이는 매우 깊은 철학적 질문이기도 하다. 자연계에서 어떤 두 물체의 질량이 같다는 것은 쉽게 확인 가능하지만, 사회적 세계에서는 이를 확인하는 것이 매우 어렵다. 나는 이 경우에 기전이라는 용어를 쓰고 싶지 않다. 당신이 제기하는 것과 핵심은 동일하지만, 기전이란 단어가 다른 맥락을 함축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김명희 : 마지막으로, 역학자나 비-역학자들에게 역학적 근거의 속성과 활용에 대해 하고 싶은 이야기가 있는가?

브로드벤트 : 역학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하고 싶다. 역학은 세상을 이해하고 사람들에게 영감을 주는 굉장히 흥미로운 접근법이다. 하지만 그 실체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과학을 전공하는 학부 과정에서 다루지 않으며, 심지어 의사들도 이를 잘 모른다. 그러나 이것이 실생활에 미치는 영향력은 매우 크다. 이를테면 생물학 연구 결과가 매일 뉴스에 나오지는 않지만, 역학 연구 결과는 거의 매일 접하게 된다. 역학 교육과 사람들 사이에 커다란 간극이 존재한다. 역학에 대해서 더 많이 알아야 한다.

한편 역학자는 이 학문 분야가 실천적 요소 뿐 아니라 개념적 요소를 가진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일부 역학자는 이를 이해하고 있지만, 또 일부는 그렇지 않다. 실제로 많은 역학 연구들이 그저 통계적 결론만을 내릴 뿐이다. 역학은 단순히 계산을 하는 것이 아니라 추론을 하는 것이다.

이는 탐정의 작업과도 같다. 모든 역학자가 철학자가 되어야 한다고 생각하지 않지만. 과학철학에 대한 기초적인 이해가 도움이 될 것이다. 역학 훈련 과정에 짧은 과학철학 코스가 포함된다면 좋을 것 같다. 역학과 철학 사이에 더 많은 교류가 이루어져야 한다고 본다. 사실 철학자들은 대개 과학자들과 소통하는 것을 꺼려하고 이런 것을 받아들이는 데 느린 편이다. 하지만 역학자들은 훨씬 개방적이다.

김명희 :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인터뷰를 마무리할 시간이다. 바쁜데 시간 내주어서 감사하다.

브로드벤트 : 즐거운 시간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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