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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특례시의 종합/*해우재(고 심재덕 의원, 고 심재덕 전 시장

故 심재덕 시장과 김용서·염태영 수원시장

故 심재덕 시장과 김용서·염태영 수원시장
박병두 webmaster@kyeongin.com  2014년 12월 19일 금요일 제12면 작성 : 2014년 12월 18일 19:07:11 목요일



▲ 박병두 작가·수원영화예술협회장
수원에 30년 사는 동안 나는 세 분 시장님과 특별한 인연을 맺었으니 운이 좋다고 말할 수 있겠다. 첫 번째로, 고(故) 심재덕(沈載德) 시장이다. 그는 민선 1·2기 시장과 국회의원을 지내신 분으로 여러 분야의 문화사업을 이룩했다. 그 중에 유명한 것은 화장실문화다. 집을 화장실형으로 만들어 화장실문화 개척에 진력했다. 사돈과 뒷간은 멀수록 좋다는 옛말이 있지만, 그는 사돈은 몰라도 화장실만은 집안에 두는 만큼 관리 문화가 있어야 한다는 소신을 굽히지 않았다. 자택은 해우재(解憂齋)라고 이름을 붙였다. 걱정을 푼다는 뜻으로 옛말이다. 문화가 있는 화장실에 대한 집념이 국내뿐 아니라 세계적으로 소문나, 별명이 미스터 토일렛(mr.toilet)으로 불리게 됐고 그 역시 이 별칭을 좋아했다.

나와는 1989년 만났다. 어쩌면 우연에 기댄 필연이었던 듯 싶었다. 그는 수원문화원장으로 '수원사랑' 발행인이었다. 필자는 시와 수필을 발표했고, 이때 내 이름이 각인된 모양이다. 오랫동안 친분을 가지면서 터득한 것은 집념이 강하다는 것과 인품이 깨끗하다는 것이다. 시장직을 수행하면서 강조한 것이 첫째, 깨끗한 공직생활이었다. 그는 청렴한 생활을 했다. 두 번째로 꼽은 것이 열정이다. 그의 화장실문화에 대한 집념은 곧 그 열정인 셈이다. 세 번째로 '가정을 잘 다스려라'였다. 이런 지론으로 일관되게 살아 온 그에게 나는 무척 사랑을 받았다. 지병으로 사망할 때까지 나는 수시로 그를 찾아뵙고 여러 좋은 말씀과 지도를 받았다. 돌아가시고 나서도 매년 1월 14일이면 꼭 해우재와 산소를 찾아뵙는 것을 잊지 않고 있다.

다음은 김용서(金容西) 시장이다. 시장이 되기 전에 4·5·6대 시의원을 지내셨다. 의장도 하셨는데, 나와 알게 된 것은 그 이전이었다. 그는 모든 것이 농업에서부터 시작되어야 한다며, 설립한 것이 신성농기구센터였다. 농기구의 현대화에 대한 열망이 정치적으로 승화돼 시의원을 거쳐 민선 2·3기 시장을 지냈다.

필자와 처음 알게 된 것은 그가 신성농기구센터를 운영하던 초창기인데, 나는 그 지역 치안 책임자였다. 자주 순찰하면서 서로 인사를 나누는 동안 정이 들게 된 것이다. 항상 만나면 미소를 지었고, 손을 잡으면 그 손이 따뜻했다. 친밀하게 지내면서 여러 인생의 가르침을 받았다.

끝으로, 염태영(廉泰英) 시장이다. 이분은 나이 차이가 나지 않은 탓인지, 먼저 시장님들처럼 그리 여러 친분 관계가 얽혀 있지 못하다. 처음 그가 시장이 되었을 때 나를 좋은시장만들기 자문위원으로 위촉해 그 직을 맡았다. 이 일로 오해도 많이 받았지만 공정한 자문위원 역에 충실하려 노력했을 뿐이다. 염 시장은 나의 튀는 공직생활에 조언과 격려를 아끼지 않았다. 이제 필자도 공직을 떠나 영화와 시나리오, 그리고 문화에 전념하면서 그 만남이 잦아질 것 같다.

며칠 전 제1회 수원화성향토문화연구소 학술세미나 '심재덕 전 수원시장을 재조명하다'에서 만났는데, 그가 "반갑다"고 말했을 때 나는 정말 반가워서 잡은 손에 힘을 주었다. 그도 미소를 지어 보였다. 이심전심(以心傳心)이라 할까. 그는 인간 중심의 휴먼도시 인문학도시 행정을 역설하고 있다. 심재덕 시장의 정신과 삶을 이어받아 세계적인 도시 수원을 만들어 주길 기대한다.

/박병두 작가·수원영화예술협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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