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林씨는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實刑 살았던 인물._ 윤일병 사건 폭로 '軍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의 前歷

林씨는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實刑 살았던 인물._ 윤일병 사건 폭로 '軍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의 前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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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윤일병 사건 폭로 '軍인권센터' 임태훈 소장의 前歷

    軍을 향해 ‘헌법 수호 기관으로 인권수호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한다’는
    林씨는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자’로 實刑 살았던 인물.

    김필재

    세월호 침몰 사건과 유병언 前 세모그룹 회장의 사망 이후 ‘기사거리’를 찾고 있던 국내 언론들이 연일 ‘윤(尹)일병 사망사건’을 속보로 다루며 대서특필(大書特筆)하고 있다.

    임태훈 軍인권센터 소장.
    ▲ 임태훈 軍인권센터 소장.
    軍은 군복(軍服)을 입는 하나의 ‘거대한 사회조직’이다. 軍관련 사고는 과거에도 있었고, 현재도 존재하며,
    앞으로도 크고 작은 사건-사고가 발생할 것이다.

    일례로 박정희 대통령 집권시기인 1975년 軍사망자는 1555명이었다. 전두환 대통령 집권시기인 1980년에는 970명으로 사망자가 줄어들었다. 이후 90년대 들어 273명(1997년), 2010년 129명, 2011년 143명, 2012년 111명으로 70년대와 비교해 현격하게 줄어들었다.

    국방부가 2009년 국정감사 당시 제출한 <최근 5년 군(軍) 내부 사망사고 유형별 현황>을 보면 2006~2008년 3년간 軍에서 발생한 사망사고 가운데 60.5%가 ‘자살’로 나타났다.

    구체적으로 2006년 77명, 2007년 80명, 2008년 75명으로 軍 내부 사망사고 383명 중 자살이 232명이었다. 전체 사망자 10명 중 6명이 자살로 나타났다.

    문제는 이들의 자살 이유인데, 그 원인을 살펴보면 복무 부적응(69명)이 가장 높게 나타났다. 그 뒤를 이어 가정환경(67명), 염세(厭世)비관(54명), 이성문제(40명), 자신감 결여,(24명), 채무 고민(22명), 정신질환자(17명) 등이었다.

    복무 부적응과 자신감 결여 문제는 그렇다 치더라도 厭世비관, 異性문제, 채무고민, 정신질환까지 국방부가 책임져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한 번쯤 생각해 봐야 할 것이다.

    참고로 최근 軍內 자살사고 현황(국방부 운영 블로그 ‘열혈국방’ 2009년도 기사 인용)을 보면 10만 명당 11.4명으로 민간(20대)의 10만 명당 자살자 19명보다 낮은 수준이며, 2008년도 미군 자살률(10만 명당 20.2명)과 비교하더라도 매우 낮은 수치이다.

    언론은 전쟁에 대비하는 軍의 근본적 존재 이유, 그리고 평시 非전투손실 예방차원에서 부대병력유지를 위해 지속적으로 노력해온 國軍의 노력에 대해서도 조명해야 할 것이다. 그러나 현재의 한국 언론은 이러한 사실에 대해서는 거의 보도하지 않고 있는 실정이다.

    <軍인권센터> 임태훈 소장, 軍경험 전무

    이번 尹 일병 사망사건과 관련해 거의 매일 언론지상에 등장하는 인물과 단체가 있다.
    바로 임태훈(林泰勳) 군(軍)인권센터(민간비영리단체) 소장이다.
    軍인권센터는 尹 일병 사망사건을 최초로 폭로한 단체로 알려져 있다.

    2009년 12월3일 창립된 軍인권센터는 △예비입영자에게 군대에서 필요한 인권 관련 사항을 알려주는 ‘예비입영자를 위한 인권학교’ 정기 개최 △군대 안에서 인권침해에 대응할 수 있는 요령을 담은 ‘軍인권카드’ 제작·배포 △군대 내 反인권적 정책·법률·제도·관행의 모니터링 △군대 안 인권침해 및 차별 상담 등을 주요사업으로 하고 있다.

    林泰勳 소장은 당시 軍인권센터를 열면서 “군대는 지금까지 억압적인 문화 때문에 인권침해가 자주 벌어졌으나, 군대야말로 헌법을 수호하는 힘을 가진 기관으로 인권 수호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한다”(2009년 11월30일자 인터넷 <한겨레> 보도 인용)고 말했다.

    軍을 향해 ‘헌법 수호 기관으로 인권수호의 첨병 역할을 해야 한다’는 林씨는 정작 본인은 ‘양심적병역거부자’(병역기피)로 軍복무를 하지 않았다. 林씨는 ‘커밍아웃’을 통해 자신이 동성애자임을 공개적으로 밝혔던 전력이 있다. 그는 2004년 軍內 동성애 행위를 처벌하는 軍형법 92조 계간(鷄姦)조항, 동성애를 정신질환 으로 분류하는 징병검사에 반대하며 소위 ‘양심적 병역거부’를 선언한 뒤 구속됐다. 법원은 林씨에게 징역 1년 6개월 형을 선고했고, 1년 4개월 동안 수감 생활을 한 후 노무현 대통령 집권시기인 2005년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호치민 군대, 인민을 위한 군대 만들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겨”

    ‘동성애자인권연대’ 대표였던 林씨는 최근 인터넷 매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2014년 5월3일자 보도)에서 軍인권센터 설립 동기와 과정에 대해 아래와 같이 밝힌 바 있다.

    <참여정부 당시 국가인권위원회에서 軍인권실태에 대한 연구용역 사업이 나와서 공동연구자로 참여할 수 있었다. 윤광웅 국방장관이 육·해·공군과 해병대의 어떤 부대이건 우리가 원하는 부대를 볼 수 있도록 공문을 내렸다. 두 달 동안 서부전선, 동부전선, 진해기지, 예천, 수원 비행장, 방공포 부대, 해병대 1·2사단 등 60여 부대를 방문했다. 병사들과 함께 식사하고 근무도 같이 서고 하면서 이 친구들의 고민을 들었다. 영창까지 다 둘러보고 입창자들과 배석자 없이 면담도 했다. 이런 연구는 전무후무한 연구다...(중략)

    우리 군에서 정훈병과가 왜 생겼나. 베트남전에서 호치민 군대, 사회주의 군대의 정치장교가 어떤 역할을 하는가. 사상 무장과 사기 고취뿐 아니라 평등한 군대, 장군과 이등병이 평등한 군대를 실현함으로써 결국은 인민을 위한 군대를 만들었기 때문에 전쟁에서 이길 수 있었다는 것이 베트남전 분석이다. 그래서 정훈병과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된 영문인지 우리 정훈장교들은 반공교육만 시키고 있다.>

    “재수학원 담임선생, 학생운동 하다가 학교 두 번이나 잘린 분”

    林씨는 이어 <오마이뉴스>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에선 무슨 공부를 했느냐’는 질문에 “대구에서 재수생활을 했는데, 나는 재수를 하면서 세상을 배웠다”면서 아래와 같이 말했다.

    <재수학원 담임선생이 학생 운동하다가 학교를 두 번이나 잘린 분이셨는데, 그 분한테 존 로크의 저항권이 뭔지 배웠고, 맑스의 ‘공산당선언’을 읽어야 한다는 것을 알았다. 재수할 때 ‘종의 기원’, ‘역사란 무엇인가’, ‘군주론’ 같은 책들을 읽었다. 그러다 보니 철학에 관심이 생겼다. 학원에서는 '임태훈이 4년제 대학가면 기적'이라고 했을 정도로 입시공부를 안했다.>

    대구한의대 동양철학과 출신의 林씨는 軍인권센터 설립에 앞서 2000년 성공회대 NGO대학원에, 조희연(現 서울시 교육감) 교수의 권유로 입학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실제로 그는 지난 7월16일 <헤럴드경제>와의 인터뷰에서 “(대학원 면접을) 들어가니 조 교수(註: 조희연 교수)를 제외한 면접관들의 표정이 좋지 않더라고요. 당시 면접관들은 내 입학을 반대했답니다. 혹시 내가 중간에 상처를 받고 나가버리면 어쩌나 하는 우려 때문이었다는데, 조 교수님 설득 끝에 간신히 붙었던 거죠”라고 밝힌 바 있다.

    조희연 서울시 교육감은 1990년부터 성공회대 교수로 재직하며 同대학의 NGO대학원장, 시민사회복지대학원장 등을 지냈다. 1994년에는 당시 박원순(現 서울시장) 변호사 등과 함께 참여연대 창립을 주도했으며, 이후 단체의 사무처장, 집행위원장, 정책위원장 등을 지냈다.

    軍인권센터는 지난 7일 尹 일병 사망사고 관련 기자회견을 열었다. 이 자리에서 센터 측은 그동안 軍이 기도 폐쇄를 尹 일병의 사인(死因)이라고 밝힌 데 대해 “폭행이 尹 일병 사망의 직접적인 원인”이라며 軍검찰과 헌병대가 사건을 축소-은폐하고 있다며 의혹을 제기했다.

    이외에도 센터는 연천군보건의료원 의무기록을 인용하며 尹 일병이 병원에 도착했을 때 상태에 대해 “‘맥박, 호흡없음’으로 기록돼 있다”며 병원 도착 당시 尹 일병이 “사망한 상태”였다고 주장했다. 이에 대해 국방부는 연천군보건의료원 도착 당시 맥박과 호흡이 없었지만 심폐소생술로 호흡과 맥박을 회복했고, 이후 양주병원으로 이송했다는 점을 들어 집단 구타 당시 바로 쇼크사로 사망했다는 주장은 맞지 않는다며 반론을 내놓았다.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인권법률의료지원팀장으로 활동

    林泰勳(임태훈) 軍인권센터 소장은 최근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軍에 대한 ‘외부감시’를 강조하며 “軍이 철저하게 의회에 의한 문민통제를 받아야 한다”고 주장한다. 그러면서 그는 “국방부 장관은 반드시 군인 출신이어야 한다는 생각을 하는데 잘못된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북한과의 대치상태 등을 감안할 때 문민장관 구상은 시기상조(時機尙早)라는 게 안보전문가들의 일관된 견해이다. 2000년 이후 林 소장의 행적은 다음과 같다.

    ▲연예인 홍XX의 커밍아웃을 지지하는 모임 집행위원(2000~2001)
    ▲인터넷 국가검열반대 공동대책위원회 공동대표(2001~2002)
    ▲국가인권위원회 ‘군대 내 인권상황 실태조사 및 개선방안’ 연구사업 공동연구원(2005)
    ▲국방부-국가인권위 공동주최 ‘군인권교육 연구과정’ 운영기획 및 강사(2006)
    ▲국방부, 육군본부, 해군본부, 공군본부 인권과 소속 법무관 대상 인권교육 강사(2007)
    ▲법무부 장관 위촉 교정시민옴부즈만(2005~2008)
    ▲광우병 국민대책회의 인권법률의료지원팀장(2008~2009)
    ▲국가인권위원회 전문위원 및 전문상당위원(2008~2010)
    ▲국가인권위원회 ‘軍의료체계 인권실태조사 자문위원(2013)

    김필재(조갑제닷컴) spooner1@hanmail.net

    [조갑제닷컴=뉴데일리 특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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