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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9년 전, 왕의 특별한 나들이 3D로 본다

 

219년 전, 왕의 특별한 나들이 3D로 본다

[온라인 중앙일보] 입력 2014-04-21 3:38 / 수정 2014-04-21 3:38 글자크기 

 

1 정조의 수원화성행차 하이라이트는 ‘한강 건너기’였다. 배를 가로로 엮어 만든 배다리 위로 1㎞가 넘는 행렬이 지나갔다. 영화 ‘의궤, 8일간의 축제 3D’는 이 장면을 위해 야외에 대형 크로마 세트를 설치하고 100여 명의 사람들을 동원했으며 컴퓨터 그래픽도 활용했다.

조선 왕실은 결혼·장례·연회·사신영접 등 주요 행사가 있을 때마다 글과 그림으로 행사를 기록해 의궤를 만들었습니다. 후대가 참고할 수 있도록 말이죠. ‘의궤 중의 꽃’이라고 불리는 『원행을묘정리의궤』가 3D영상으로 복원됐습니다.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조선의 22대 왕 정조(1752~1800)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60세 생일)잔치를 위해 떠났던 8일간의 수원화성행차를 기록한 의궤입니다. 전문가들의 엄격한 고증을 거쳐 ‘의궤, 8일간의 축제 3D’ 역사 다큐멘터리로 재탄생했습니다. 200년 전 장안을 떠들썩하게 했던 수원화성행차를 숫자로 풀어봤습니다.

1795년 봄, 온 나라가 축제 분위기로 떠들썩했습니다. 정조의 어머니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을 위해 수원 화성으로 떠나는 왕의 행차 때문입니다. 오가는 8일 동안 왕을 보기 위해 전국 각지에서 백성들이 몰려와 일시적으로 통행금지가 해지되고 임시숙소도 마련됐습니다. 또 기간 중에 과거시험을 치러 지방 선비들에게 관직에 진출할 기회를 주고, 노인들을 불러 양로연을 베풀었습니다. 돌아가는 길에는 백성들이 올린 100여 건의 고충을 왕이 직접 해결해 주기도 했습니다. 수원화성행차는 백성과 함께한 8일 동안의 축제였습니다. 그런데 왜 정조는 어머니의 회갑연을 수원 화성에서 치렀을까요?

2·3 『원행을묘정리의궤』는 의궤 중 유일하게 102권이 인쇄돼 배포됐다. 제작진은 임인호 금속활자장과 이창석 각자장의 손길을 빌려 당시 활자 모습 그대로 제작해 촬영했다.
『원행을묘정리의궤』. 이 복잡해 보이는 이름에 답이 있습니다. 조선시대의 무덤은 신분에 따라 능·원·묘로 구분했습니다. 능은 왕과 왕비의 무덤, 원은 왕세자와 왕세자비, 묘는 사대부와 일반 서민의 무덤을 말하죠. ‘원행’은 왕세자 혹은 왕세자비의 무덤을 간다는 의미고 ‘을묘’는 1795년을 말합니다. 정리하면 ‘왕이 을묘년에 무덤을 다녀온 행사를 정리한 의궤’라는 뜻이죠.

정조와 혜경궁 홍씨가 찾은 무덤은 사도세자가 묻힌 현릉원입니다. 정조는 왕위에 오른 후, 배봉산(서울시립대학교 뒷산)에 있던 사도세자를 수원 화산으로 이장하고 주변에 성을 지었습니다. 그 성이 바로 혜경궁 홍씨의 회갑연이 열리는 화성입니다. 정조는 아버지가 묻힌 곳에서 어머니의 특별한 생일 잔치를 준비한 것이죠. 또 사도세자와 혜경궁 홍씨는 동갑으로 사도세자가 비운의 죽임을 당하지 않았다면 1795년은 정조에게 아버지와 어머니가 나란히 환갑을 맞는 해였습니다.

8일. 수원화성행차는 1795년 윤 2월 9~16일까지, 8일에 걸쳐 진행됐습니다. 첫째 날과 둘째 날은 서울 창덕궁에서 수원 화성에 이르는 여정으로 1km에 이르는 성대한 행렬이 장사진을 이뤘습니다. 수행인원만 6000여 명, 1400필의 말이 동원된 대규모의 행렬이었죠. 행렬의 하이라이트는 한강 건너기였습니다. 대규모의 인원이 한강을 건너기 위해 정조는 묘책을 내놓습니다. 배를 가로로 엮어 다리를 만드는 배다리(주교)를 설계한 것이죠. 진두지휘는 정약용이 맡았습니다. 배다리는 36척의 배를 사용해 11일 만에 완성됐습니다.

영화 ‘의궤, 8일간의 축제 3D’에서도 배다리를 건너는 행렬 장면이 웅장하게 펼쳐집니다. KBS특수영상팀의 박준균 감독은 “길이 80m, 폭 20m의 대형 야외 크로마 세트를 설치해 100여 명의 사람들이 오가는 모습을 5대의 카메라로 잡아 생동감 있는 행렬 모습을 담았다”고 말했습니다. 사람들의 표정까지 세밀하게 담은 실사영상에 컴퓨터 그래픽이 더해져 200년 전 한강을 건너는 정조의 위풍당당한 행렬이 되살아났습니다.
8일 동안의 행사를 담은 『원행을묘정리의궤』도 총 8권입니다. 첫 번째 권은 그림으로 자세히 묘사했고 나머지 일곱 권은 글로 기록했습니다.

현재까지 총 3895권의 의궤가 전해지는데, 그 중 『원행을묘정리의궤』를 ‘의궤 중의 꽃’이라고 부릅니다. 영화의 자문을 맡은 김문식 교수는 “이 의궤는 당대 최고의 풍속화가 김홍도가 주도하는 화원 그룹이 참여한 최고의 작품”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숫자 8에는 사도세자의 한도 담겨 있습니다. 그는 뒤주에 갇힌 지 8일째 되던 날, 죽음을 맞이했습니다.

102부는 정조가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만들어 배포한 부수입니다. 일반적으로 의궤는 필사(손으로 옮겨 적는 것)로 9부 정도를 제작해, 1부는 왕이 열람용으로 갖고 나머지 8부는 관련부서와 사고에서 보관했습니다. 하지만 정조는 국립인쇄소인 주차소에 의궤청을 설치하고 『원행을묘정리의궤』 102부를 인쇄해 배포했습니다. 국립중앙박물관 이재정 학예사는 “의궤는 일반 사람들이 볼 수 있는 자료가 아니었다. 정조는 의궤를 인쇄본으로 만들어 더욱 많은 사람들이 보기를 원했고 그 점이 『원행을묘정리의궤』를 더 특별하게 하였다”고 설명했습니다.

영화 제작진들은 『원행을묘정리의궤』복원에 심혈을 기울였습니다. 임인호 금속활자장과 이창석 각자장의 손길을 빌어 당시 활자모습을 그대로 담았고 길이가 15m에 이르는 반차도(행렬의 순서와 위치를 알 수 있도록 그린 그림)의 고유 색을 재현했습니다. 전문가의 철저한 고증을 바탕으로 만들어진 역사 다큐멘터리는 CGV 3D관에서 단독 상영합니다.

장르: 3D 역사 다큐멘터리, 감독: 최필곤, 내레이션: 여진구, 러닝타임: 73분, 관람등급: 전체관람가
개봉일: 4월 17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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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황정옥 기자 <ok76@joongang.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