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 정치 사회의 칸 ==../-더불어민주당( 대표

윤여준 “철새라니…새누리당이야말로 새가 돼야”

 

윤여준 “철새라니…새누리당이야말로 새가 돼야”

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안철수 의원과 자신이 생각하는 새 정치란 무너지고 있는 국가의 공공성을 회복하는 것을 목표로 한다고 밝혔다. 인터뷰는 9일 서울 여의도 새정추 사무실에서 이뤄졌다. 김경호 기자 jijae@hani.co.kr

[토요판] 뉴스분석 왜? / 윤여준 새정추 의장 인터뷰

▶ 윤여준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의 별명은 참 많습니다. 정치권의 대표적 전략가, 기획자, 책사라는 뜻에서 제갈량, 장자방으로 불릴 때가 있었습니다. 그런 윤 의장에 대해 새누리당과 민주당은 최근 ‘정치 철새’라며 비판의 강도를 높이고 있습니다. 그가 무소속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준비기구에 합류했기 때문입니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를 끝으로 안 의원과는 다른 길을 걸어온 그가 다시 안 의원과 손잡은 이유는 뭘까요.

윤여준 전 환경부 장관이 지난 5일 새정치추진위원회(새정추) 의장으로 임명됐다. 새정추는 안철수 의원의 신당 창당 준비기구다.

윤 의장은 이회창 총재 시절의 한나라당(현 새누리당)에서 정치를 시작한 뒤 2011년 서울시장 보궐선거 직전까지 안철수 의원을 도왔다. 안 의원이 지방선거 출마를 포기한 뒤 두 사람은 멀어졌다. 윤 의장은 그 뒤 2012년 대선에서 문재인 민주당 후보의 찬조연설을 했다. 9일 서울 여의도 새정추 사무실에서 이뤄진 <한겨레> 인터뷰는 이른바 ‘철새’ 논란부터 시작했다.

김무성 의원 최근 행보, 깎아내릴 필요 없어

-안철수 의원의 새정치추진위원회 의장을 맡으신 뒤 ‘철새’라는 이야기가 나오던데, 듣기 싫은가?

“당연히 기분이 좋을 수 없다. 나는 추운 겨울철 먹이를 구하러 따뜻한 곳으로 이동하는 철새처럼 먹을 걸 찾아서 어디를 간 적이 없다. 오히려 그런 비판을 하는 새누리당이야말로 새가 되어야 한다. 지금처럼 중요한 전환기에, 왜 조감도라는 말이 있지 않나, ‘버즈 아이 뷰’(Bird’s eye view)로 미래를 설계하고 국정을 이끌어나가야 하는데 그런 노력을 조금도 보여주고 있지 않다.”

유기준 새누리당 최고위원은 지난 6일 오전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윤여준 전 장관이 다시 안철수 무소속 의원을 돕기로 한 것과 관련해 “윤여준도 새누리당에서 민주당, 안철수로 상황에 따라 적을 달리했던 전형적인 철새 정치를 보여주고 있다”고 비난했다. 윤 의장은 “새누리당이야말로 새가 되어야 한다”는 말로 ‘철새’라는 용어를 새누리당에 돌려줬다.

-이런 중요한 전환기라는 건 뭔가?

“한반도를 포함한 동북아 질서가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국내로 눈을 돌리면 그동안 한국을 이끌어온 정치 패러다임의 효용성이 완전히 끝났다. 박근혜 대통령은 민주주의를 심화·발전시켜야 할 시기에 완전히 산업화 모델로 돌아가고 있다. 시대를 거스르는, 지금 같은 패러다임으로는 오래 버티지 못한다. 앞으로 큰 벽에 부딪히는 날이 올 것이다. 대통령이 그런 준비를 갖추지 못했다면 집권당인 새누리당이라도 국민의 역량을 모아야 하는 것 아닌가.”

-과거 한나라당 시절까지만 해도 소장파라든가, 초선 의원 그룹 등 상대적으로 개혁적 목소리를 내는 집단이 존재했는데, 지금의 새누리당에는 왜 그런 사람들이 없나?

“맞다. 나도 그게 궁금하다. 적어도 이명박 대통령 재임 기간만 해도 쇄신파라는 이들이 활동을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당을 통제하는 방식이 이 전 대통령과도 많이 다른 것 아닌가 싶다. 이 전 대통령도 상당히 권위주의적 스타일이었는데, 박 대통령처럼 저렇게 당을 수직적으로 통제하지는 않았다. 젊은 의원들의 목소리가 이런 수직적 위계를 뚫고 나오지 못하고 있다. 집권 초기라는 시기적 조건도 또다른 원인이다. 오히려 중진인 김무성 의원이 어제 정말 좋은 이야기를 했다. 대통령도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했다. 그런 면에서 김 의원이 평가받을 때가 올 것이다.”

새누리당 내 대표적인 ‘친박’ 의원으로 꼽히는 김무성 새누리당 의원은 8일 박근혜 대통령을 겨냥해 쓴소리를 쏟아냈다. 이날 부산·경남 지역 방송에 출연한 그는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을 두고 소통에 관한 문제 지적이 있다는 질문에 야당의 주장이 옳다며 “박 대통령도 대화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윤 의원은 <한겨레> 인터뷰에서 김무성 의원이 최근 철도노조 파업 사태를 중재한 사례 등을 언급하며 그의 정치력을 높게 평가했다. 그는 “김 의원이 최근 첨예한 갈등의 중재자로 나서는 모습을 몇 차례 보여주고 있는데, 아직은 리더십을 평가하기 어렵지만 어려움을 무릅쓰고 계속 이런 모습을 보이면 거기서 리더십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대선 직전 박근혜 당시 새누리당 후보 쪽 총괄선거대책본부장을 지냈으면서 자신이 폭로한 2007년 남북정상회담 대화록 내용에 대해 나중에 문제가 되자 ‘찌라시’를 보고 읽었다는 식의 발언을 해 많은 이들로부터 공분을 산 적도 있다.

“대선 당시 총괄선대본부장을 맡은 그의 처지를 이해하지만 찌라시 발언은 여당 중진의원으로서 무책임한 발언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최근 그의 행보를 깎아내릴 필요는 없다.”

철새란 말, 기분 좋을 수 없다
난 먹을 걸 찾아 어디 간 적 없다
새누리야말로 ‘새의 눈’으로
미래를 설계하고 국정 이끌어야

지난 8월 오랜만에 만났을 때
그가 꺼낸 말이 새 정치를 먼저
이야기한 건 나라는 것이었다
정치 바꾸자고 계속 요청해오니
심리 묘해지고 뒷걸음질치게 돼

안철수 두번 찾아와 거절했는데 또 연락 와

-안철수 의원에 관한 윤 의장의 생각이 궁금하다. 대선 전후 안 의원의 태도가 모호하다고 비판하지 않았나?

“그런 이야기를 많이 했다.”

-그에 대한 생각이 바뀐 진짜 계기가 뭔가?

“계기라고 할 만한 게 따로 없다. 속으로 ‘이게 다 내 업보’라는 생각은 해봤다. 3년 전 그와 함께 청춘콘서트를 할 때였다. 나는 한국 정치를 비판하면서 그에게 ‘우리 둘 다 정치인은 아니지만 정치를 바꾸는 데 노력을 해야 한다, 그게 지식인의 책무다’, 이렇게 이야기했다. 그도 정치를 할 생각은 없지만 정치를 바꾸는 데 헌신할 수 있다면 많은 노력을 하겠다고 했다. 지난 8월 오랜만에 다시 만났을 때 그는 ‘정치를 바꿔야 한다며 시작은 했는데 준비도 역량도 부족했다’며 도와달라고 했다. 나는 정치할 생각도 없고 능력도 없다고 말하며 돌려보냈다. 그때 그가 꺼낸 말이 새 정치를 먼저 이야기한 건 자신이 아니라 나라는 것이었다. 당신이 그렇게 말했으면 좀 도와줘야 하는 것 아니냐, 이런 이야기였다. 또 하나 기억에 남는 표현은 ‘이제 내가 꼭 대통령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버렸습니다’였다. 그러면서 피투성이가 되어도 앞으로만 나아가겠다고 하는데….”

-그 대목에서 마음이 바뀐 건가?

“그것 때문에 생각을 바꾸지는 않았지만 속으로 사람이 많이 바뀌었다고 느꼈다. 그런 생각을 하면서도 현실 정치에 발을 들이밀 생각이 조금도 없었기에 그의 제안을 사양했다. 두번 찾아왔고 두번 거절했다. 그런데 조금 지나 또 연락이 왔다.”

-예전에 없던 집요함이 생겼다는 건가?

“과거의 그는 그러지 않았다. 똑같은 사람에게 같은 요청을 세번 할 사람은 아니라고 봤다. 게다가 횟수가 거듭될수록 더 절실함을 엿보였다. 내가 참 의지가 약해서 그런지 똑같은 요청을 계속 받으니 사람이 뒷걸음질을 치게 되더라. 도둑질을 하겠다는 것도 아니어서…. 나도 1998년 이회창 총재와 함께 일할 때 가졌던 생각이 한국 정치를 근본적으로 바꾸겠다는 것이었고, 이 총재도 여기에 동의했기에 미력이나마 그를 도와 개혁을 실천해보려고 했다. 중간에 이 총재가 생각을 바꾸면서 내 역할이 사라진 것인데 마음속으로 그게 안타까움으로만 남아 있었다. 안 의원이 그 지점, 정치를 바꾸자는 이야기를 계속하면서 같이하자고 하니까 심리가 좀 묘해지더라.”

-마음이 지나치게 약했거나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이 있었던 거 아닌가. 두번 거절했는데, 또 만나자고 했으면 그 목적은 빤한 것이었을 텐데. 거절할 생각이 있었다면 만나지 않았을 것 같다.

“사람이 만나자는데 그걸 거절하면 안 된다. 그건 인간에 대한 예의가 아니다. 서울역에 있는 노숙자라도 나를 필요로 한다면 만나야 한다. 그 사람 요청을 거절하려면 만나서 안 하겠다고 해야 한다. 그게 예의다.”

윤 의장은 조선시대까지 충청도의 대표적 양반 가문으로 꼽혔던 파평 윤씨 문정공파의 후손이다. 그가 기억하는 대표적 선조는 유명 성리학자 가운데 한 명이었던 명재 윤증이다. 평생 관직에 뜻을 두지 않았던 윤증은 임금이 내린 좌의정 자리를 여러 차례 물리친 일화로 흰옷을 입은 정승이라는 뜻의 ‘백의정승’으로 불린 성리학자였다.

윤 의장은 자신의 집안 분위기에 대해 “전통적 유교 집안이었으니 말 그대로 정통 보수 집안이었는데, 내가 어렸을 때 받은 교육은 지금 진보세력이 강조하는 가치에 기반한 것이었다”고 말했다. 이를테면 이런 것들이다. ‘직업에 귀천이 없다지만 실제로 세상 직업에는 귀천이 있다. 하지만 그 일을 하는 사람은 똑같기 때문에 사람을 차별해서는 안 된다’ ‘한쪽에 부른 배를 두드리는 사람이 있고, 다른 한쪽에 주린 배를 움켜쥔 사람이 있는 세상은 옳지 않다’ ‘도움을 청하기 위해 대문을 두드리는 사람을 절대로 빈손으로 돌려보내지 마라’ 등이었다.

-안철수의 새 정치는 대체 뭔가. 윤 의장은 알고 있나?

“나도 그걸 답답하게 생각했고, (속시원히 밝히지 않는 것에 대해) 비판했던 사람이다. 여기 와서 가장 먼저 새 정치에 관한 그동안의 준비 상황을 물어봤다. 상당히 열심히 준비를 했더라. 아직 최종 완성이 되지 않은 상황이라 보여 달라고 하지는 않았지만 조만간 볼 수 있을 것 같다.”

-새 정치의 내용은 마련돼 있다는 건가?

“그렇다. 다만 구체적으로 어떤 내용인지는 아직 모르겠다. 상당한 기대감을 갖고 기다리고 있다. 알맹이를 채우는 과정에서 내 의견이 보탬이 된다면 좋고, 그럴 필요조차 없이 잘 나오면 그대로 수용하면 된다.”

-안 의원의 새 정치를 아직 밝힐 수 없다면, 윤 의장이 생각하는 새 정치는 뭔가?

“내 생각이 없지는 않다. 다만 지금 내 개인적 견해를 밝히면 오해가 빚어질 수 있으니 이해해 달라.”

-어쨌든 지금의 한국 정치가 문제라는 데 두 사람의 의견이 일치했고 문제의 해법이 새 정치라면, 새 정치가 바꿔나갈 부분은 어떤 것인가?

“나는 한국 정치를 구조적으로 바꿔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루아침에, 한달 안에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우리의 목표가 한국 정치의 구조적 변화라는 것이다. 이를 위해 나는 국가의 공공성 회복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는데 안철수 의원도 똑같은 이야기를 했다. 국가의 공공성이라는 가치는 국가라는 공동체를 묶어주고 유지할 수 있도록 해주는 핵심적 가치인데, 지금 이게 많이 무너져 있다. 당연히 사회는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새정치 목표는 민주적 공공성의 회복

-국가의 공공성이 무너졌다고 주장하는 근거는 뭔가?

“국민으로부터 행정권을 위임받은 대통령과 입법권을 위임받은 국회가 공동체 전체를 위하기보다 특정 정파 및 분야의 이익을 우선시하는 경우가 한두번인가. 공공성이라는 가치를 위해 봉사해야 할 국가가 특정 정파나 대기업 등 소수의 비대해진 권력에 압도되는 상황이라면 국가는 지탱하기 어렵다. 경제민주화 조항도 마찬가지다.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고 소득의 적절한 분배를 유지한다는 것, 이런 것들이 공공성에 관한 건데 국가가 이를 지키지 못한 것이다. 공동체 해체 현상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사법부도 마찬가지다. 오죽하면 유전무죄, 무전유죄라는 말까지 일반화가 될 정도였겠나. 새 정치가 가장 먼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바로 이런 것이다.”

-새 정치라는 구호가 지향하는 목표는 곧 국가의 공공성 회복, 이렇게 정리하면 되나?

“그게 가장 중요하고 핵심적인 문제라는 거다. 다만 여기서 말하는 공공성 앞에는 반드시 ‘민주적’이라는 수식어가 붙는다. 국가주의적 공공성이 아니다. 개인보다 집단의 이익이 우선한다는 생각, 국가가 결정하면 개인은 따라와야 한다는 국가주의적 공공성은 전체주의로 연결되는 것이다. 내가 말한 공공성은 어디까지나 개인의 자유와 권리가 공동체 이익과 균형을 이루는 민주적 공공성을 가리킨다.”

-그런 새 정치를 하겠다는 안철수 의원은 신당 창당을 준비하면서 가장 먼저 호남을 공략하는 모습을 보이고 있다. 낡은 지역주의를 깨겠다는 생각이라면 좀더 패권적인 영남에 뛰어들었어야 하는 것 아닌가?

“과정이 그렇게 비친 면은 있다. 다만 영남에 도전하지 않겠다는 것은 아니다. 민주당의 강력한 텃밭이었던 호남에서 민주당에 관한 신뢰가 완전히 무너졌고, 대신 찾은 것이 안 의원이었다. 가장 지지도가 강한 지역에 비중을 두는 것은 당연하다. 처음부터 그곳을 노린 게 아니라 분위기가 그렇게 쏠린 것이다. 정치는 현실이다.”

-새 정치를 하겠다며 모인 분들이 전혀 새롭지 않다는 지적은 어떤가. 윤 의장이나 김효석 전 민주당 의원 등. 어떻게 포장한다 해도 잘 안되는 느낌인데.

“아니, 새로운 사람이라는 게 뭐냐는 거다. 전혀 정치를 안해봤던 사람이 새사람인가.”

-안철수 의원이 많은 지지를 얻는 건 참신했기 때문 아닌가.

“그런 사람을 어떻게 또 찾나. 그러면 안철수는 안철수가 아닌 게 되는 거다.”

-윤 의장을 겨냥해서도 어떤 언론인은 ‘구정치의 기획자’라고….

“구정치 속에서 늘 새로운 정치를 하려고 하다가 왕따가 된 사람이 나다. 한나라당에서 내 별명이 위험한 개혁주의자였다. 나와 함께 공격당한 김효석 전 의원은 민주당을 바꾸겠다며 뉴민주당 플랜을 만든 사람이었다. 그걸 실천하지 않은 사람들이 뉴민주당 플랜 만든 사람을 어떻게 구정치인이라고 할 수 있나.”

최성진 기자 csj@hani.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