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3년, 영화 ‘살인의 추억’이 개봉됐다. A지역에서 발생한 연쇄살인 사건을 다룬 영화다. 500만 관객이 들면서 그해 최대 흥행작이 됐다. 하지만 A지역 주민들에게 이 영화의 의미는 달랐다. 영화 제작단계부터 제작사 측과 주민 간의 충돌이 빚어졌다. 주민들이 강하게 반발했다. 주민 대책위까지 만들어졌다. 결국 ‘A지역에서 절대 촬영하지 않는다’는 조건과 ‘영화 속에 A지역을 암시하는 어떤 표현도 쓰지 않는다’는 조건이 협의된 뒤에야 제작에 들어갔다.
하지만 후유증은 예상대로 컸다. 영화가 흥행하면서 각 언론이 연쇄살인 사건을 앞다퉈 재론했다. 연쇄살인 사건의 현장을 샅샅이 뒤지고 다니는 특집 방송도 이어졌다. 사건의 당사자였던 형사와 언론인 등도 잇따라 등장해 당시 기억을 증언했다. 모든 보도에는 ‘○○연쇄살인 사건’이라며 지역 실명이 거론됐다. 한 주민은 “젊은 애들이 이력서에 고향을 쓰면 취직도 안 된다”며 “언론 방송 영화가 지역 한곳을 20년째 죽이고 있다”며 분노를 숨기지 않았다.
수원이 지금 그런 위기에 놓였다. 중국인 오원춘 살인 사건 이후 지역 이미지가 심각하게 추락하고 있다. 인터넷에 ‘수원’을 검색하면 함께 뜨는 연관 검색어가 하나같이 참담하다. ‘토막 살인’ ‘20대 여성 피살’ ‘녹취록’ 등이다. ‘세계 문화유산’ ‘화성’ 등의 고유한 이미지 단어가 밀려날 정도다. 지방화 시대에 너나없이 심혈을 기울이는 게 지역 이미지 제고다. 지역의 브랜드를 높이는 길이 지역 경제를 살리는 길이라고 믿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빚어지는 일이다.
수원시도 문제를 인식하고 사건명의 변경을 요구했다. 지난 17일 검찰과 경찰에 ‘사건명에서 수원을 빼달라’고 요청했다. 대단히 적절한 판단이었다. 문제는 공식 요청 일주일이 지났지만 아무런 효과가 없다는 점이다. 거의 모든 언론이 여전히 ‘수원 살인 사건’ 등으로 쓰고 있다. 인터넷 연관 검색어도 정리되지 않았다. 공직사회에서의 명명에서도 여전하다. 심지어 청와대조차 ‘수원 살인 사건’이라는 표기로 23일 보도자료를 내는 지경이다.
이 정도의 노력으론 안 된다. 수사기관에 대한 협조요청으로 끝낼 일이 아니다. 모든 언론사에 협조공문을 발송해야 한다. 포털사이트 운영자 측에도 검색어 정리를 요청해야 한다. 도내 기관은 물론 중앙 정부와 청와대에도 시의 입장을 전달해야 한다. 활용 가능한 모든 행정력을 동원할 필요가 있다. 이번 사건에서 ‘수원’을 떼어내는 일이 문화도시 수원의 10년 20년을 지키는 일이라는 책임감을 갖고 풀어가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