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전히 길거리 무료급식소의 풍경은 달라지지 않았다. 굵은 눈발이 날리고 칼바람이 불어도 먹을 곳은 길바닥 뿐이었다.
설 명절이 나흘 앞으로 다가온 지난 5일 오후 7시 30분께 수원역 AK플라자 남측광장 내 경기일자리센터 앞.
환하게 불이 밝혀진 센터 출입구 앞으로 두꺼운 겨울 잠바와 모자를 착용한 노숙인들이 길게 한 줄을 이뤄 서 있었다. 낮부터 쏟아진 눈발이 차츰 가는 빗줄기로 바뀌면서 길바닥이 온통 빗물로 흥건히 젖어 있었지만 이들은 우산도 하나 들지 않고 비를 맞으며 밥차를 기다렸다.
잠시 후 흰색 대형탑차가 도착하자 이들은 일제히 차량 쪽으로 뜨거운 시선을 보냈다. 수원에 한 종교단체가 운영하는 무료 급식차량이었다. 근처에 모여 있던 대여섯 명의 노숙인들은 직접 다가가 짐칸 문이 열리자마자 비닐로 만들어진 간이천막을 꺼내 분주하게 설치하는 작업을 도왔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문구가 적힌 현수막도 부착됐다.
이렇게 설치된 천막은 5개. 가로 3m, 세로 6m 규모였다. 천막 아래에는 접이식 플라스틱 테이블과 의자가 깔렸지만 200명이 넘는 인원을 전부 수용하기엔 턱없이 공간이 모자랐다.
4년째 수원역에서 노숙을 하고 있는 김진성(가명·55)씨는 “비가 억수로 올 때는 앉을 자리가 없어 비를 맞으면서 먹기도 한다”며 “이럴 때는 밥이 입으로 들어가는 건지, 코로 들어가는 건지 모르겠다”고 하소연했다.
이들은 플라스틱 배식판을 받아든 뒤 제각각 뿔뿔이 흩어졌다. 메뉴는 된장국과 햄, 오뎅볶음, 콩나물무침, 김치 등 5가지 반찬에 흰 쌀밥이었다. 이날은 2달에 1차례씩 배식봉사를 해주는 후원업체 측이 간식을 가져와 빵과 우유, 초콜릿까지 특별히 제공됐다.
미처 테이블에 앉을 자리를 확보하지 못한 노숙인들이 화단 난간에 배식판을 놓고 쭈그려 앉아 식사하는 모습이 눈에 띄기도 했다. 반찬과 밥그릇 안으로 비가 떨어졌지만 허기진 배를 채우기 위해선 참고 먹을 수밖에 없었다. 바로 앞에선 버스를 타기 위해 기다리던 승객들이 힐끔힐끔 곁눈질로 이들이 먹는 모습을 훔쳐봤다.
대학생 김희주(21·여)씨는 “제 나름대로 사정이 있어 자기 집을 떠나 노숙하는 것일 텐데 도둑고양이도 아니고 건물 구석에 숨어 저렇게 밥을 먹게 내버려놔두는 건 너무 비인간적인 처사가 아니냐”고 아쉬움을 드러냈다.
이곳 종교단체 한 관계자는 “자체적으로 급식소를 운영하기엔 예산 부담이 너무 크기 때문에 지자체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여러 차례 문의를 해봤지만 가끔씩 공무원들이 나와서 둘러보고 돌아갈 뿐 별다른 도움을 준 적은 없다”며 “이젠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한숨을 쉬었다. 박종대기자/pjd30@joongboo.com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