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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저임금 불똥에 지역아동센터 아우성 “애들 프로그램 없애 월급 받야야 하나”

최저임금 불똥에 지역아동센터 아우성 “애들 프로그램 없애 월급 받야야 하나”


[한국 중앙일보] 기사입력 2019/01/05


최저임금 10.9%↑, 지역아동센터 지원금 2.8%만 증가
지원금으로 월급·운영비·프로그램비 모두 내야 해
복지부 “당장 예산 못 늘려. 개인·기업 후원 활성화”
전문가 “운영비와 인건비 분리해 양질 인력 확보해야”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회원들이 지난달 18일 정부세종청사 기획재정부 앞에서 집회를 갖고 기본운영비 인상을 요구하고 있다. [뉴스1]
지난달 31일 오후 서울 구로구 구로파랑새나눔터 지역아동센터. 센터 안의 아이들 10여 명은 자유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원래 이 시간엔 피아노를 배워야 하지만 강사 선생님 휴가로 수업은 취소됐다. 그렇다고 별도의 프로그램이 운영되진 않았다. 센터에 있는 걸 지루해하던 아이들은 삼삼오오 공을 갖고 인근 초등학교나 놀이터로 향했다. 성태숙 구로파랑새나눔터 센터장(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 사무총장)은 “예산이 다 돼 아이들끼리 놀게 놔뒀다”며 “해가 바뀌면 최저임금 인상으로 기존에 하던 프로그램도 줄여야 할 판”이라고 말했다.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이 어려움을 호소하고 있다. 올해 시간당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10.9% 올라 인건비 부담은 커진 데 반해 지역아동센터의 운영비 인상률은 그에 미치지 못한 2%대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지난달 11일 청와대 청원게시판에 올라온 지역아동센터 관련 청원.[사진 청와대 게시판 캡처]
지난달 11일 청와대 국민청원 게시판에는 ‘지역아동센터를 살려주세요’란 제목의 청원이 올라왔다. 청원자는 “최저임금은 10.9% 인상하면서 지역아동센터의 운영비예산을 2.8% 인상해주면 운영을 어떻게 하라는 겁니까”라며 “복지사들 최저임금 맞춰주려면 시설장들이 현재 받는 자기 월급을 10~20% 깎아야 가능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아이 낳아 기르기 좋은 나라를 만든다면서 왜 지역아동센터를 이 지경까지 만드는지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 청원에는 4일 현재 동의자 수가 2만3000명을 넘었다.

지역아동센터는 1970~80년대 도시빈민지역을 중심으로 빈곤 아동을 교육하기 위해 벌인 ‘공부방’ 운동에서 시작됐다. 2004년 아동복지법이 개정되면서 공부방이 지역아동센터란 아동복지시설로 규정됐다. 이때부터 시설운영비 명목으로 국고 지원금이 지급되기 시작했다. 보건복지부의 ‘2017년 12월 기준 전국 지역아동센터 통계조사보고서’에 따르면 전국 지역아동센터 수는 4189곳이다.
전국의 지역아동센터 종사자들이 지난달 13일 오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내년도 지역아동센터 예산을 현실화할 것을 촉구하고 있다. [연합뉴스]

지난달 8일 국회를 통과한 2019년 지역아동센터 예산은 1259억9500만원으로 지난해 1225억7000만원보다 2.8% 올랐다. 해당 예산안대로라면 아동 29인 이하 시설은 지난해 하반기 국고 지원금 대비 3~4만원, 30인 이상 시설은 10만원이 늘어난다. 10~19인 이하는 458만~473만원, 20~29인 이하는 484만~499만원, 30인 이상 시설은 670만원의 국고 지원을받게 된다.

중요한 것은 500만원 전후의 금액만으로 각 지역아동센터는 인건비와 관리비, 사업비(교육 프로그램 등)를 감당해야 한다는 점이다.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에 따르면 한 시설당 평균 29명의 아동을 돌보고 2.4명의 복지사가 근무하고 있다. 1명 이상의 복지사와 센터장이 월급을 받고, 약 30명이 되는 아이들의 서비스 비용도 운영비에서 감당해야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복지사의 임금은 늘 최저수준이다. 최저임금이 8350원으로 인상되는 올해엔 이마저도 맞추지 못할 형편이다. 성 센터장은 “복지사와 센터장이 월 175만원만의 최저임금만 받아도 급여, 퇴직금, 사회보험료까지 합하면 1인당 210만~220만 원이 든다”며 “이것만으로도 벌써 지원비의 대부분을 차지한다”고 말했다. 더구나 운영지원금의 10%는 아이들 프로그램 등에 쓰이는 사업비로만 집행해야 한다. 임대료·공과금·관리비까지 생각하면 적자일 수밖에 없다는 것이 지역아동센터 측의 주장이다.

보건복지부는 사업비 의무 사용 비율을 5%로 낮춰 나머지를 인건비로 쓰라고 제안하고 있다. 센터장들은 이에 대해서도 강하게 반발한다. 성 센터장은 “자율동아리·귀가지도·생일잔치 등을 지원금의 10%인 47만원으로 해결했는데 5%로 줄이면 상당수를 폐지해야 한다” 며 “우리 월급 받자고 아이들 프로그램비를 깎는 짓을 어떻게 할 수 있나”라고 말했다.

복지부도 상황을 모르는 것은 아니다. 변효순 복지부 아동권리과장은 “올해 지역아동센터 지원 예산을 지난해보다 117억까지 증액해 줄 것을 정부에서 요구했지만, 예결위에서반영이 안 됐다”며 “(사업비 비중 축소가) 바람직하지 않은 부분도 있지만, 예산을 당장 늘릴 수 없어 내놓은 대책”이라고 말했다. 그는 “센터들이 운영지원비 외에 받는 지자체 추가지원, 개인·기업 후원을 더 늘려 부족한 예산을 보충할 계획”이라고 덧붙였다.

하지만 고성준 수원 매산지역아동센터 센터장은 “국고 지원 이외 후원을 받는 건 쉽지 않다”며 “개인 후원을 일부 받지만 모자라 운영비 일부를 사비로 충당하기 위해 주말에 아르바이트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지역아동센터연합회는 지난달 18일 기획재정부 앞에서 시위한 데 이어 24일 추가경정 예산 편성을 약속해달라는 내용의 서한을 작성해 여·야 당대표에 전달했다.

전문가들은 국고 지원비 지원 구조를 개선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김형모 경기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시급한 건 국고 지원 항목에서 인건비와 운영비를 분리하는 것”이라며 “다른 복지시설처럼 인건비는 인건비대로 최저임금 이상을 편성하고, 운영비는 물가인상률을 반영해야 한다”고 말했다. 박지영 상지대 사회복지학과 교수는 “지역 빈곤 아동의 교육·양육·보호 기능을 맡는 아동센터는 정서적 교류를 담당하는 인력이 제일 중요하다”며 “인건비가 제한적이다 보니 지역아동센터에서 좋은 인력이 떠나는데, 안정적인 인건비 지원으로 종사자 질을 높여야 한다”고 말했다.
이승호·김태호 기자 wonderm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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