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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동산 경제학, 미친 집값 도대체 얼마나 더 오를래

부동산 경제학, 미친 집값 도대체 얼마나 더 오를래

수요와 공급, 욕망과 질시, 양가적 역설이 어우러진 고차 방정식

입력 : 2018-09-0


[출처] - 국민일보 
[원본링크] -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012649036&code=61141511&sid1=eco

 


서울 집값이 또 오른다. ‘이쯤 되면 잡을 의지가 없는 것 아니냐’는 여론이 부담으로 작용했는지 정부는 8·2 부동산 대책 이후 1년 만에 투기지역 확대 등 추가 규제를 내놨다. 여의도·용산 통합개발을 시사하며 집값 급등세에 불을 붙였던 박원순 서울시장도 지난 26일 사업 추진을 보류하겠다고 선회했다. ‘표면적으론’ 정부·시장·여론 모두 하락을 원하는데 집값이 잡힐 기미는 보이지 않는다. 묘연한 해법은 현실을 직시하는 데서 출발한다. 왜, 누구를 위해, 무엇을 바라 부동산 가격은 계속 진격하는가.

수요·공급의 딜레마

시장에서 재화 가격을 결정짓는 기본 요인은 수요와 공급이다. 가격이 끝없이 상승하는 건 결국 시장 원리에 따라 수요가 공급을 앞서고 있다는 얘기다. 부동산 역시 마찬가지다. 많은 전문가들은 중장기적 관점에서 집값이 당분간 상승 기조를 유지할 것으로 보고 있다. 8·2 대책이 기본적으로 공급과 수요를 불균형하게 다루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대출 규제, 보유세 강화 등 정부의 규제 기조는 ‘투기 수요’ 억제에 방점이 찍혀 있다. 문제는 시장 수요의 중심축인 ‘실거주 수요’는 정책이 좌우하지 못하는 상수에 가깝다는 점이다.

매년 사회생활을 시작하는 청년들이 서울로 올라와 새집을 찾고, 서울 내 실거주자들도 더 나은 집을 찾아 주거를 ‘업그레이드’하길 원한다. 부동산으로 이득을 보려는 투기세력의 존재는 여전하지만 시장의 지배적 심리는 ‘빚내서라도 사서 살다보면 손해는 안 본다’에 가깝다. 종국엔 정책이 시장을 이기기 어려운 구조다.

서울·지방의 불균형

최근 정부 정책은 부동산 공급 확대와는 선을 그어 왔다. 최근 3년간 사상 최대 규모의 건축허가 물량이 발생하는 등 수요 대비 공급 과잉이 우려된다는 이유에서다. 실제 지난해 전국 주택 준공은 56만9000가구로 역대 최대치를 기록했다. 올해까지 더하면 최근 4년간 누적 준공물량은 200만 가구를 돌파할 전망이다.

하지만 지방으로 수요 분산이 이뤄지지 않는 일종의 ‘동맥경화’ 상태에서 서울에만 공급 제한이 집중되면서 시장 왜곡현상을 야기했다. 2015년만 해도 비슷한 수준이었던 지방과 수도권 미분양 가구 수는 올 상반기 기준 1대 5(수도권 1만, 지방 5만 가구) 비율로 벌어졌다. 서울은 공급과 거래량 모두 줄어들었지만 재건축 및 주택 청약 수요만 해도 차고 넘친다. 주초 대대적인 정부 합동단속을 비웃기라도 하듯 지난주 서울 아파트값은 0.37% 올라 올해 최대 오름폭을 기록했다.

업계 관계자들은 “매물이 달리니 호가 변동이 예민해졌다. 작은 호재에도 금세 시장이 들썩이고, 수요자들은 엄청나게 뛴 가격에 황당해할 수밖에 없는 구조”라고 입을 모았다. ‘호가 상승→규제→매물 고갈→공급 부족’의 악순환이 감지된다.

정부는 공급 확대의 대안으로 임대주택 활성화를 강조하고 있지만 “근본이 다른 수요를 단순 주택 수 확대 관점에서 합산하는 식으로 접근하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지적이 많다. 정부가 8·27 부동산 대책에서 양질의 저렴한 주택공급을 확대하기 위해 수도권 내 공공택지를 추가 개발하겠다고 밝혔지만 택지 개발이 짧게는 2년, 길게는 5년이 걸린다는 점에서 볼 때 수급 불균형을 해소할 것이라는 기대는 크지 않다.

가심비(價心比), 투자 관점에서

2018년 소비 트렌드 중 하나인 ‘가심비’는 ‘가격 대비 성능’을 뜻하는 가성비에 ‘만족(心)’을 더한 신조어로 심리적 만족감까지 중요시하는 소비 형태를 말한다. 단순히 저렴한 상품을 찾기보다 가격 대비 만족의 극대화를 추구하는 이 같은 심리가 가장 잘 반영되는 시장이 바로 부동산이다.

단지 저렴한 가격을 찾아 외곽으로, 낙후지역으로 향하는 실수요자는 많지 않다. 공공임대주택이 공급 확대에도 불구하고 주요 타깃인 서민들로부터도 외면 받는 이유는 결국 가심비가 떨어지기 때문이다. 은행 대출을 끼고 힘겹게라도 ‘서울에 내 집을 마련해놓는다’는 행위를 단순히 ‘분수에 안 맞는 투기’로 치부하기 어려운 이유다. 우리처럼 인구와 인프라가 서울·수도권에 집중된 나라라면 더더욱 그렇다.

‘투자할 곳이 없다’는 측면에서도 수도권 내 집 마련은 항상 일석이조의 경제행위로 통했다. 국내에서 확률적으로 가장 안전한 투자대상이기 때문이다. 1990년대 국제통화기금(IMF) 외환위기나 2000년대 글로벌 금융위기 등 경제위기를 포함하더라도 우리나라 부동산 시장은 꾸준히 ‘우상향’을 유지해 왔다. 리먼 사태의 후폭풍을 맞은 2008년 말∼2009년 초에도 서울 집값은 2%대 조정에 그쳤다.

반면 집값 상승에는 줄곧 가속도가 붙는다. 지난해 6월 이후 정부가 6·19, 8·2 대책 등을 잇달아 내놓으며 집값 잡기에 총력을 다한 1년2개월 동안 서울 아파트값은 20% 이상, 수도권도 10% 넘게 올랐다. 여기엔 리스크가 큰 데다 불경기 영향으로 힘이 빠진 주식시장, 2%대 이자율에 불과한 은행 금리 등도 한몫했다. 부동산에 비해 상대적으로 투자대상으로서 매력을 잃었기 때문이다. 피 같은 돈을 투자하는데 가성비뿐 아니라 가심비까지 충족시키는 대안이 있다면, 거기에 ‘올인’한다한들 누가 돌을 던질 수 있을까.

강도 높은 부동산 규제로 그동안 잠잠하던 서울 집값이 다시 뛰고 있다. 정부는 주택 공급이 충분한데도 투기 수요로 인해 시장이 왜곡되고 있다고 주장한다. 하지만 시장의 반응은 다르다. ‘빚내서라도 집을 사서 살다보면 손해는 안 본다’는 심리가 확산되고 있다. 사진은 초고층 아파트 재건축으로 논란이 됐던 서울 압구정동 아파트 단지 전경. 국민일보DB


사는(Buying) 것인가 사는(Living) 곳인가

현 정부를 포함한 진보정권의 주택정책은 궁극적으로 ‘집은 사는 것이 아니라 사는 곳’이란 관점에 기반하고 있다. 지난해 대통령 선거 당시 현 여권 인사들의 정책 지향이나 공약, 정권의 밑그림을 그린 국정기획위원회에서도 그런 기류는 일관되게 감지됐다.

하지만 주택 시장을 바라보는 소비자의 관점은 ‘오직 거주’만으로 100세 시대를 향해 가는 자신들의 노년을 보장받을 수 있을까 하는 우려와 닿아 있다. 정부의 역점 사업인 공공임대주택만 하더라도 서울 주요 지역과 변두리, 서울과 수도권, 수도권과 지방은 온도차가 확연하다. 현실에서 집이 단순히 ‘사는 곳’에 그치지 않는다는 역설적 방증이다.

국민들 역시 ‘집값은 잡아야 한다’는 명제와 ‘막상 집값이 떨어지면 어쩌나’ 하는 우려 속에서 양가적 역설에 사로잡혀 있다. 세대 간 입장이 다르고, 계층 간 조건이 상이하지만 누구나 손해를 피하려 한다. 종국엔 임차료를 받길 원하지 임차인으로 남고자 하지 않는다.

무주택자들의 부동산 정책 질타와 투기 비난 이면에도 집값이 떨어지면 집을 마련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깔려 있다. 당연한 심리다. 그리고 이 모든 역설은 부동산 정책을 누구도 풀기 어려운 고차방정식으로 만들어버렸다.

김수현 청와대 사회수석은 과거 공저자로 참여한 ‘노무현이 꿈꾼 나라’에서 부동산 낙관론에 대해 “자가 소유가 선이고 본성이라는 이데올로기적 허구가 뒷받침돼 있다”며 소비자들을 ‘수혜자이자 피해자이며 비이성적 시장 과열의 토양’이라고 비판했다. 자가 소유가 선이나 본성이 아니라면 소비자들이 ‘내 집 마련’에 집착하는 진짜 이유는 무엇인가. 현 정부가 추구하는 ‘진보적 부동산 정책’의 해답은 거기에 있을 가능성이 높다.

정건희 기자 moderato@kmib.co.kr
[출처] - 국민일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