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원시 기네스북이 있다면 ‘가장 바쁜 사람’으로 오를 만한 인물이 있다. ‘일 하는 시장’으로 수원시내를 종횡무진 누비는 염태영 수원시장이다.
지난 9월 ‘생태교통 수원 2013’을 열어 국내·외 행사를 개최하랴, 손님을 맞으랴 더욱 바쁘게 보내고 있는 그를 행궁동에 마련된 임시 집무실에서 만났다. 워낙 바쁜지라 인터뷰는 짧았지만 진솔한 그의 모습은 수원에서 나고 수원에서 자라 수원을 위해 일하고 있는 그가 수원을 얼마나 사랑하는지를 대변하기에 충분했다.
‘맹장수술’ 하자마자 행사장 달려온 ‘투혼시정’
반대하는 주민들 일일이 설득… 구도심 행궁동에 ‘희망의 홀씨’
평소 보아오던 모습과 달리 까칠한 피부와 헬쓱해진 얼굴이 눈에 띄었다. 아니나 다를까 최근 무려 5㎏이나 살이 빠졌다고 한다. 사실 그는 생태교통 행사 개막을 3일 앞두고 맹장수술을 했지만 단 하루도 쉬지 않고 수술 당일에도 현장에서 시민들을 만나고 행사에 참여하는 등 ‘맹장투혼’을 불살랐다.
염 시장은 “생태교통 행사에서 자전거를 타고 다니느라 상처가 오래간 것은 사실이지만 그래도 수술은 잘 회복됐다”고 건강우려설을 일축했다. 대신 “행사로 인해 이런저런 불편을 겪는 주민들을 아침·저녁으로 만나고 다니면서 일교차가 심해진 날씨 탓에 감기가 심하게 걸려 살이 빠진 것 같다”고 했다.
무엇보다 일을 우선시하는 그의 성향 때문에 애가 타는 것은 본인이 아닌 수행 공무원들이었다. 평소 염 시장은 이동 중에 짬을 내 쪽잠을 자거나 스트레칭을 하고 지역주민을 만나기 위해 현장을 둘러보면서 많이 걷고 움직이는 정도로 건강관리를 하고 있다고 한다.
‘워커홀릭’에 가까운 염 시장이 가장 신경을 쓰고 있는 현안은 바로 ‘생태교통 수원 2013’이다.
행사는 한달이었지만 준비 기간은 2년에 달했고, 불편을 감수해야 하는 만큼 반대하는 주민들이 있을 수밖에 없는 일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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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일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생태교통 수원2013’ 개막행사에서 염태영 수원시장 등 내빈과 시민들이 생태교통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
행사 막바지, 무리 없이 마무리되고 있는 소감을 물었다. 고지를 앞에 둔 등산가 같은 표정으로 숨을 크게 내쉬며 그가 입을 열었다.
“정말 자치단체장으로서 이런 도전은 공무원이나 주민에게 어려움을 안겨주는 일이라 쉽지 않았고, 다시 하라면 할 수 있을까 싶을 정도로 회의가 드는 지난한 과정이었다”고 운을 뗀 그는 “차를 한 달 간 빼놓는다는 것이 주민들에게는 상상하기 어려운 상황이었는데, 행사의 필요성과 의미를 주민들에게 설득하는 일을 해야 하는 공무원에게도 만만한 일은 아니었다.
주민들이 행사 개최를 위해 발생하는 고통과 불평, 불만을 집단화 하는 경우가 발생하면서 폭발적인 반대에 부딪히기도 했다. 주민들과 대화를 많이 했고, 국가를 넘어 국제적인 행사에 공감해 주시길 거듭 부탁했다. 결국 마지막에는 반대하던 주민들도 각기 주민추진단으로 역할을 해주셔서 고맙고 자랑스러운 마음이 크다”고 전했다.
특히 개막식 당일, 아침에 대부분의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차량을 이동시키고 협조했던 모습은 염 시장에게 깊은 감동으로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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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1일 수원시 팔달구 화성행궁 광장에서 열린 ‘생태교통 수원2013’ 개막행사에서 염태영 수원시장 등 내빈과 시민들이 생태교통 퍼레이드를 하고 있다. 한달 간 개최된 이번 행사는 세계 최초로 행궁동 주민들이 자동차 없이 비동력 이동 수단만으로 생활하며 기후변화 문제와 미래 도시모델에 대한 메시지를 전세계에 전했다 |
그는 “행사를 비방하는
플랜카드도 있었지만, 가장 반발이 심했던 정조로도 8일간 통제가 잘 됐고 상인들이 자신들만의 축제도 만들 정도였다. 교통통제가 끝난 뒤에는 주민들이 ‘통제를 좀 더 할걸 그랬다’고 말하기도 했다는 것을 전해 듣고 힘들었지만 진정한 이해와 협력이 이뤄졌다는 벅찬 마음이었다”고 했다.
하지만 여전히 비판의
목소리도 남아 있다. 행사에 투입된 비용을 모두 소모성이라고 판단하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염 시장은 이런 시각에 대해서도 이유 있는 반박을 했다.
그는 “다른 축제들은 대부분의 지원이 직접공사비로 쓰여 행사가 끝나면 대부분 사라지지만 이번 생태교통 축제는 다르다. 동네 환경 개선을 위해 쓰인 비용에 대해 비난한다면 낙후된 동네에서 어떤 행위도 하지 못했던 주민들의 입장을 배려하지 않은 것이다. 동네 인프라 개선에 쓰인 돈은 절대 날아간 돈이 아니다”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지속가능성에 대한 우려 등 이유 있는 비판은 필요하다”고 인정했다. “간판이나 벽면을 개선해 가로경관이 좋아지는 등 가시적인 성과가 있지만 후속 발전 부분은 행정이 할 수 없는 것이다. 주민들이 지역발전을 위해 무엇이 좋은지 스스로 결정할 수 있도록 도울 것이다. 걷고 싶은 거리환경이 조성된 행궁동 주민들이 앞으로의 모습을 스스로 결정하길 바란다”고 덧붙였다.
특히 “주말만이라도 차 없는 거리를 만든다면 전국적인 명소가 될 수 있고, 획일화된 인사동의 대안으로 재밌는 공간을 만들 수도 있다는 가능성 등 고무적인 판단이 있다”고 아이디어를 제시하기도 했다.
축제 개막을 앞둔 8월 말에 터진 ‘이석기 사태’
“객관적인 잘못은 지적받고 시시비비는 분명히 가려져야 할 것”
행사를 목전에 두고 다소 생뚱맞은 고비도 있었다.
생태교통 수원 2013 축제 개막을 앞둔 8월 말, 갑작스레 ‘사건’이 터지면서 염 시장과 시가 엉뚱한 분위기 전환을 맞았다.
이석기 의원이 국정원 수사를 받으면서 시의 산하단체 장들이 연루돼 구속되고, 시가 구설에 오른 것이다. 3년 전 선거 당시 공동정부 구성 등을 논의했다는 이유로 시의원들의 비판도 받아야 했다. 시정의 책임자로서 염 시장은 시민들에게 수차례 사과하고 해명하는 일도 소홀히 하지 않았다. 어떤 생각이었는지가 궁금했다.
염 시장은 “우선 시의 산하단체 장이 구속됐다는 게” 충격적이었다. 시민들을 볼 면목이 없을 정도로 총괄적 책임자로서 사과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이런 일을 다시는 용납하지 않을 것이고, 추가로 관련자가 드러나면 바로 계약해지 하거나 사직서를 받을 것이다.
그들이 혹시 공적인 업무에서 잘못한 일이 있으면 안 되기에 투명하게 수사요청을 받을 준비하고 협력하라고 지시했다”고 말하며 “상황을 왜곡하거나 감출 생각은 전혀 없고 엄격하게 법의 심판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지금까지 정파적으로 일하지 않았고 사회질서와 안녕, 법질서에 대해 완고한 원칙주의자로서 정책을 해왔다고 자부한다. 반사회적 세력에 협조할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우리 시민들이 알아줄 것이다”고 전했다.
또 “일부 인물들이 밖에서 엄한 짓 한 것에 대해 처벌 받아야 하지만 다른 부분까지 모두 매도되고 저평가 되는 것은 안타깝다”며 “수원이 일부 세력의 소굴처럼 되는 것은 맞지 않고, 객관적인 잘못은 지적받고 앞으로는 철저히 조심하겠지만 시시비비는 분명히 가려져야 할 것”이라고 단호하게 말했다.
가장 기억에 남는 일 ‘프로야구 10구단 유치와 생태교통’
수원·화성·오산 3개시 통합 마무리 짓지 못해 아쉬워
염 시장은 민선 5기 시장으로서의 임기가 80% 가량 지났다. 지난 3년간의 행적을 돌아보기도 해야 할 시점이다. ‘일 잘하는 시장’, ‘노력하는 시장’, ‘열심히 하는 시장’으로 정평이 날 정도로 많은 일을 하면서 가장 기억에 남는 일은 뭘까.
그는 프로야구 10구단 유치와 생태교통을 꼽았다. “프로야구 10구단을 유치하는 과정은 선거를 한두번 더 치른 느낌일 정도였다. 마지막에 다 엎어졌던 것을 다시 일으키는데는 여러 지역사회 주민들과 자원의 도움이 아니었으면 힘들었을 것”이라고 회고했다.
또 생태교통사업에 대해선 “2년 전 유치를 결정하고 마음 졸였다. 미리미리 준비하고 공사는 최단 시간에 하려고 3개월 잡고 시작했는데 콘크리트 위에 돌 붙이는 양생 등의 과정을 기다리는 주민들을 이해시키기가 힘들었지만 좋은 결과로 이어져 다행스럽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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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9월 3일 수원시 팔달구 행궁궁 화성행궁 국제회의장에서 열린 ‘생태교통 수원2013’ 세계 시장 회의에서 염태영 수원시장 등 참석자들이 손을 맞잡고 있다. (왼쪽부터 콘라드 오토 짐머만 ICLEI 세계본부 도시의제 의장, 박연희 이클레이 한국사무소장, 웨이리안장 길림성 부시장, 마틴 하그 독일 프라이부르그시 부시장, 염태영 수원시장, 다이사쿠 카도가와 일본 교토시장, 박완수 창원시장, 휴고 루이스 멕시코 라고스 모레노시장, 루이 쉬팡 대만 카오슝시 부시장) |
워커홀릭 염 시장도 아쉬운 점은 있다. 역점적으로 추진했던 수원·화성·오산 3개시 통합 문제를 마무리 짓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는 “지방자치단체와 중앙정부, 지방자치단체와 광역자치단체와의 엄연한 차별이 존재해 지역적 특성을 살린 장단기적인 발전방안을 마련하는데 어려움이 있었다”며 “남은 임기 동안 지방분권과 지방자치의 완성을 통해 도시경쟁력을 확보할 수 있도록 역량을 집중시켜 나갈 것”이라고 밝혔다.
시장이 너무 일만 하고 정치를 안 한다는 비판도 있다고 하자 그는 “지방자치단체장은 일로 평가받아야 한다는 소신을 갖고 해왔다. 지역 주민들이 뽑아준데 대한 당연한 도리라고 생각한다”면서 “시장이 일을 잘하는 게 우선 아니냐”고 반문했다.
그렇다면 가족에게는 어떤 마음일까. “0점 가장일 것 같다”고 하자 잠시 말을 잇지 못한 그는 “평가가 좋을 리 있겠냐”면서 “서울에서
공부하고 있는 아들과 잘 챙겨주지 못하는 아내에게 항상 미안한 마음”이라고 전했다.
인터뷰를 마치고 수행 공무원들이 행사 시간에 맞춰 걸음을 재촉하는 중에도 행궁광장
벤치에 앉아 쉬고 있는 노인에게 먼저 인사를 건네고, 자전거를 타는 시민들과 일일이 악수를 하며, 주민의
사진촬영 요청에도 흔쾌히 응하는 염 시장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시장’ 위에 ‘시민’을 적어놓은 수원시의 조직도가 떠올랐다.
글 _ 박수철·이지현 기자 jhlee@kyeonggi.com 사진 _ 김시범 기자 sbkim@kyeongg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