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수병에 콜라 담으면 안되는 이유는?
2007년 12월 19일 (수) 18:36 한겨레신문
[한겨레] 건강과 미용에 좋다는 ‘웰빙’ 혼합차가 한창 인기다. 길을 가는 여성들의 손은 테이크아웃 커피 대신 혼합차병을 들고 있다. 이런 유행이 가능한 데에는 갖고 다니기 쉬운 용기, 즉 페트병이 한 몫을 하고 있다. 만일 유리병이나 캔에 담겼다면 선풍적인 인기를 끌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데 혼합차 페트병은 생수병과 좀 다르다. 훨씬 단단하고, 뚜껑이 있는 주둥이 부분이 투명하지 않고 하얀 색이다. 혼합차 성분을 오랫동안 변함없이 유지하기 위해서다. 생수를 시작으로 탄산음료, 과즙음료, 맥주, 혼합차까지 페트병이 담을 수 있는 음료의 스펙트럼이 점점 넓어지고 있다. 새로운 기능성을 갖는 페트병이 속속 등장하기 때문이다. 변신을 거듭하는 페트병에 대해 알아보자. 페트(PET)는 폴리에틸렌 테레프탈레이트(PolyEthylene Terephtalate)의 약자로 플라스틱의 한 종류다. 플라스틱은 그 구성성분에 따라 다양한 종류가 있다. 예를 들어 칫솔, 볼펜 같은 플라스틱제 생활용품은 주로 폴리에틸렌(PE)이나 폴리프로필렌(PP)으로 만든다. 가볍고 싸고 만들기 쉽기 때문이다. 그러나 플라스틱병은 거의 100% 페트재질이다. 다른 재질에 비해 페트가 병으로 많이 쓰이는 이유는 뭘까? 우선 페트는 투명도가 유리에 버금갈 정도로 뛰어나다. PE나 PP가 따라갈 수 없다. 기체 투과도도 중요한 요소다. 내용물이 물이라면 별 문제가 아니지만 탄산음료나 주스가 되면 병의 자격조건이 까다로워진다. 병속의 이산화탄소가 빠져 나가도 안 되고 바깥의 공기 중 산소가 안으로 들어와도 문제가 생긴다. 페트는 PE나 PP에 비해 기체 차단성이 50배나 더 높다. 페트의 높은 강도도 장점이다. 같은 두께일 경우 PE나 PP에 비해 페트가 더 단단하다. 비슷한 강도를 지닌 병을 만들 경우 그만큼 재료를 아낄 수 있다. 단열성도 뛰어나서 영하 160℃까지 내려가는 국제우주정거장 표면에 페트재질의 단열층이 붙어있을 정도다. 이런 여러 장점 덕분에 음료를 담을 용기로 페트가 선택됐다. 같은 재질로 돼 있지만 페트병은 내용물에 따라 모양새가 제각각이다. 좀 더 들여다보면 페트재질 자체도 조금씩 다르다. 경제성과 기능성을 고려해 목적에 맞는 최적의 조건을 찾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생수병과 콜라병을 놓고 보면 같은 용량일 경우 생수병이 더 두께가 더 얇다. 가장 두드러진 차이는 밑 부분이다. 생수병은 편평한데 비해 콜라병은 굴곡이 있다. 자세히 보면 밑이 반구처럼 볼록한 병을 세우기 위해 둘레로 대여섯 개의 지지대, 즉 발이 있는 형태다. 톡 쏘는 탄산음료를 담고 있으니까 병모양도 튀게 만든 것일까? 콜라와 같은 탄산음료 페트병이 이렇게 독특한 모양을 한 이유는 내부의 압력 때문이다. 이산화탄소를 주입하면 병 내부의 압력이 2.5~3.5기압이나 된다. 생수병 모양이라면 아래 부분이 압력을 이기기 못해 불룩 튀어나오게 된다. 따라서 제조된 날부터 소비자가 마실 때까지 고압의 내용물을 담고 있으려면 내부 힘을 분산시킬 수 있는 디자인이 필요하다. 페트병이 담고 있는 내용물의 성질, 보관조건에 따라 컴퓨터 시뮬레이션을 한다. 가장 적은 비용으로 최적의 모양을 찾는 것이다. 실제로 생수병에 탄산음료를 넣고 시뮬레이션해보면 힘을 많이 받는 병 밑 가운데 부분이 불룩 튀어나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페트병이 담는 음료의 범위가 넓어지면서 웰빙 음료, 맥주 등을 담을 기능성 페트병도 개발되고 있다. 웰빙 음료는 대체로 미생물에 취약하다. 생수는 영양분이 없고 탄산음료는 산성이라 미생물이 자라기 어렵다. 그런데 웰빙 음료는 보통 중성이고 영양분이 있어 미생물이 자라는데도 ‘웰빙’이다. 균을 확실히 죽이기 위해 90℃ 정도의 고온에서 병에 내용물을 넣는다. 그런데 일반 페트병이 물렁물렁해지기 시작하는 온도는 75℃로 90℃에서 무용지물이 된다. 따라서 물렁물렁해지는 온도를 90℃ 이상 끌어올리는 공정이 필요하다. 특히 주입하는 액체가 처음 닿는 병목 부분은 조금만 변형이 생겨도 뚜껑이 꼭 닫히지 않으므로 더 확실해야 한다. 병목 부분은 따로 적외선을 쬐여 온도를 높여준 뒤 서서히 식혀주는 결정화과정을 거친다. 이 과정에서 분자들이 더욱 촘촘하게 배열된 고분자가 얻어지고 겉모습은 불투명한 흰색이 된다. 기체가 드나드는 것을 좀 더 확실하게 차단하는 페트병도 나왔다. 맥주는 이산화탄소가 톡 쏘는 게 제 맛이다. 사람들이 가장 쾌감을 느끼는 병속 압력은 2.5기압. 탄산음료의 경우 미리 3.5기압의 이산화탄소를 넣어 유통과정에서 조금 빠져 나가도 탄산의 느낌을 주도록 한다. 그러나 맥주는 자연발효 과정에서 탄산이 생성되는데 2.5기압 정도밖에 안 된다. 따라서 공기 유입이 완전히 차단되는 페트병이 필요하다. 맥주 패트병은 안팎의 페트재질 층 사이에 기체 차단성이 높은 특수 합성수지 필름이 놓여있다. 세계적으로 페트병 수요는 급증하고 있다. 전 세계에서 일년에 나오는 페트병은 150만t에 이른다. 무겁고 깨지는 유리, 속이 안 보이고 한 번 따면 다 먹어야 하는 알루미늄 캔. 페트병에 익숙해질수록 이런 불편함이 더 거슬린다. 게다가 이제는 담지 못하는 내용물이 거의 없을 정도로 다양한 기능성 페트병이 나오고 있다. 이제 모든 병은 페트로 통하는 게 아닐까. (글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과학향기 출처 : KISTI의 과학향기 ⓒ 한겨레(http://www.hani.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신뢰도 1위' 믿을 수 있는 언론 <한겨레> 구독신청 하기 <한겨레는 한국온라인신문협회(www.kona.or.kr)의 디지털뉴스이용규칙에 따른 저작권을 행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