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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성-교계 연계사업은 ‘미적미적’

화성-교계 연계사업은 ‘미적미적’
수원 華城, 알려지지 않은 진실 / <2>갈 길 먼 화성 성지화
[경기일보 2007-12-25]
수원순교자에 대한 연구는 지난 1995년 김학렬 신부의 연구를 기점으로 본격화되었다. 이후 2000년 9월20일 최덕기 주교에 의해 현 북수동 성당을 중심으로 한 화성이 ‘수원순교성지’로 선포된 후 매년 수원지구 차원의 ‘순교자 현양대회’가 열리고 있다.
이후 각종 기록과 증언 등을 통한 수원지방 순교자에 대한 연구가 활발히 진행, 수원교회사연구소는 2005년 ‘수원 순교 성지와 수원 지역 신앙 선조들의 삶과 죽음’이란 주제로 교회사학 제2호를 발간했다.
현재까지의 연구결과에 따르면 수원 지역에서 처형된 공식적인 순교자들은 모두 144명으로 이중 78명이 수원에서 순교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들을 제외한 중요한 인물은 한양이나 연고지로 끌려가 순교했다.
이들은 대부분 64대 수원유수 이경하가 재임하던 1866년 10월부터 1869년 2월 사이, 즉 병인박해 시기에 순교했다. 당시 고종을 앞세운 흥선대원군은 프랑스 선교사 처단과 이어진 프랑스 함대의 공격(병인양요)을 막아내는 과정에서 쇄국정책을 더욱 강하게 전개했고, 병인양요 전투 지휘로 흥선대원군의 신임을 받은 이경하가 내포지역의 신자들을 발본색원하기 위해 수원에 파견된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수원유수가 조정에 올린 보고에는 ‘천주교에 관여했다는 소문이 들리면 즉시 가서 호미로 잡초를 제거하듯이 없애버리겠다’는 내용이 실려있는 등 당시의 살벌했던 분위기를 엿볼 수 있다.
이처럼 내용적인 측면에서의 연구진척에도 불구, 실제 화성과 천주교 순교성지의 연계는 잘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천주교계는 2000년 순교성지 선포 이후 북수동성당을 중심으로 성지화 사업을 펼치고 있고, 화성사업소도 3년 전부터 이에 대한 사업타당성을 인정하고 있으나 두 곳의 유기적인 연계는 이뤄지지 않으면서 화성성지화에 대한 밑그림조차 그리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교계는 이미 2005년 수원 순교성지 심포지엄을 통해 ‘화성사업소와 상호 연대하여 화성문화 재개발과 병행추진한다면 신자·비신자 모두에게 화성과 천주교의 역사를 널리 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밝힌 바 있으나 화성사업소와 천주교계의 공식적인 만남은 단 한차례도 없었다.
홍승근 수원시의원은 지난달 28일 시의회에서 “천주교 순교역사와 화성성역화 사업의 연계를 검토하라”라고 주문하기도 했다.
이에 대해 북수동성당과 화성사업소측은 모두 “아직 초기단계라 구체적인 계획이 없을 뿐, 사업 연계에는 동의한다”고 말했다./임성준기자 sjlim@kgib.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