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의 개혁은 일방적이었다. 국민은 먹고 살 길이 막막한데,진보만을 위한 진보를... 국민들은 외면했다." - 주저리 1
"무엇보다 노무현 정부의 실정 때문이다... 이명박 후보의 당선은 노무현 정부가 가져 온 민생파탄, 사회 양극화의 결과다." - 주저리 2
이 말을 한 사람들이 누구라고 생각되는가. 수구언론? 아니다. 이번 대선의 '패인'을 분석한다면서, 한 진보한다는 사람들이 내뱉은 말이다. 대선 결과, 정권의 색깔이 바뀌었으니 뭐 전혀 틀린 말은 아닐 게다.
문제는, 진보한다는 사람들조차 이런 조중동류의 해석을 빌려오면서 나름대로의 제대로 된 분석은 아주 게을리 한다는 점이다. 진보들은 지난 5년 동안 참여정부와 노무현 현상에 대한 해석을 수구적 주류 찌라시에 맡겨왔다. 또는 그 해석을 무비판적으로 따랐다. 그러더니, 어찌보면 당연하다 하겠지만, 이제 패인 분석마저도 저들의 논조를 순순히 빌려온다. 편하게 진보한다. 아주 더럽게 무책임한 태도다. 이게 우리나라의 '진보'들이다.
무서운 패배주의
다시 승리하기 위해서는, 땅박류의 이러한 어처구니없는 승리가 재연되지 않기 위해서는, 패인을 분석하는 것이 급선무다. 그것에 대해서는 오케이!. 패인을 알아야 승리의 단초를 마련할 수 있다.
그러나, 분석과 해석을 하려면 제대로 해야 한다. 그것이 절대 중요한 이유는, 만약 도하 찌라시들이 주장하는 것처럼, 이번 대선의 결과는 순전히 '참여정부(개혁세력)의 무능(실정) 때문'이라는 것을 인정하는 순간, 다시 말하면, 패배 후의 상실감에 빠져, 저 편리하고 무책임한 해석을 무심코 받아들이는 순간, 개혁 세력의 재집권은 거의 영원히 물 건너가기 때문이다. (장담컨대, 자민당류가 60년 장기 집권하는 옆 동네 일본처럼 딴당류도 영구 집권하게 된다. 이것은 무서운 패배주의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그동안 대한민국에서 보아왔던 것과는 판이한 (참신했으나 때론 이질적이고 비주류적인) 참여정부의 '충격적' 등장에 대한 의의와 해석을 조중동류에 맡겨왔다. 그것이 이번 대선결과에도 영향을 미쳤다. 그런데, 다시 강조하지만, 만약 패배의 원인에 대한 분석마저도 저들의 해석('개혁 세력의 무능 때문')을 마냥 따른다면, 이것은 심각한 문제다.
만약, 저 편리한 해석을 인정하게 되면, 국민들은 앞으로 개혁을 표방하는 정권에는 절대 표를 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패배주의에 쉽게 빠져들면, "흠이 많지만, 게 중에 좀 잘 할 것 같아서"라며 단서를 달아 땅박을 찍었다는 대부분의 사람들도 자신들의 (땅박) 선택이 '옳았다'고 느끼게 될 것이고, 앞으로도 '개혁(진보) = 국민 못 살게 하는 철없는 무능세력'이라는 등식을 머리에 박고 살게 될 것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는데 다시 집권할 수 있을 것 같은가. 수구들은 이번 패인을 개혁(진보)세력의 전체(!!)의 무능 때문이라고 두고두고 써먹을 것이다. 두고보라.
따라서 진보들이 재집권을 원한다면, '개혁세력이 무능하기 때문에 국민들이 그들을 버렸다'는 아주 위험천만한 조중동류의 패인 분석 틀을 지금 당장 깨부숴야 한다. 지금 진보들이 할 일은 그것이다. 한가하게 '노무현 탓'이라고 조중동을 되풀이 할 일이 아니라는 것이다. 보다 엄밀한 '패인' 분석이 필요하다. '패배' 그 자체는 몰라도 패인에 대한 저 수구적 논리는 절대 인정하면 안된다. 다시 말하면,'개혁세력이 무능했고 갱제가 에려워서'가 아니라, 다른 뭔가가 패배의 요인으로 작용했다는 것이다. 이게 시리즈 글의 주제다.
보이지 않는 지역주의
"이번 대선에서 '세대 변수'가 힘을 쓰지 못한 만큼 '지역 변수'도 힘을 잃었다는 분석들이 적지 않다. '바꾸자 신드롬'과 연동된 '경제 프레임' 말고는 아무것도 맥을 못 췄다는 평가다. 지금까지 한국 정치 분석틀 가운데 가장 강력한 준거가 지역주의였음을 상기하면 상당히 달라진 지점이다."(프레시안)
위 기사에서도 볼 수 있듯이, 이번 선거를 얼핏 보면 '지역주의'는 없는 것 같다. 이게 사실이라면, 이번 선거의 역사의 의의는 자못 크다. 그러나 저 기사가 사실일까. 피상적으로는 그렇게 보일런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정답부터 말하자면, 이번 선거 결과, 지역주의는 '소리 없이' 완성됐다.
지난 19일 출구조사 결과를 보도하는 TV에서 가장 크게 필자의 눈에 띈 것은 땅박의 승리도 아니요, 정동영의 패배도 아니었다. 호남의 고립이었다. 광역시도별로 '누가 1등 했나'를 보여주는 그림에서 호남은, 수도권과 충청권 뿐 아니라 제주도까지 둘러싸여 완벽히 고립되어 있었다. 역대 주요 선거에서 호남이 이 만큼 완벽하게 고립되었던 적이 있었나?
이게 단지 우연에 의한 결과일 뿐일까. 즉, 뿌리 깊은 지역갈등이 이번 선거를 통해 해소된 것일까. 우리나라 선거에서, 다른 모든 변수들을 종속변수로 만들어버린다는 그 무서운 지역주의가 갑자기 사라진 것일까. 지역주의는 사라진 게 아니라 사라진 듯 보였을 뿐이다. 오히려 이번 선거에서 지역주의는 완성되었다. 지역주의의 완성은 곧 호남의 고립이다.
호남이 고립됐다는 것은, 소위 말하는 진보-개혁 세력이 고립되었다는 의미이고, (정동영과 신당이 아니라) 노무현 정신이 고립되었다는 얘기다. 국민의 정부와 참여정부로 이어진 지난 '10년'의 고립이다. 시대정신의 고립이요 포위다. 누가, 어떻게 이 고립화 작전을 주도했는가.
마케도니아님이 언급했듯이, 이번 대선의 결과는 지난 90년의 3당 합당의 재탕이요, 그 야합 정신(DJ, 즉 호남의 고립)으로의 복귀다. 그때의 주역, 영샘과 종필 옹이 땅박 지지를 공개 선언한 것도 결코 우연의 일치가 아니다. 다만, 다른 점이 있다면 그때는 정치공학적으로 인위적으로 (호남의 고립이) 이루어진 반면 이번에는 '국민의 선택'이라는 형식을 띠고 진행되었다는 점이다. 그러나 목적과 결과는 완전히 똑같다. 완전 성공이다.
불편한 진실
선거를 통해 '자연스럽게' 호남이 '조용히' 고립되었기 때문에 사람들은 이번 선거를 '갱제 선거'로 착각하고 있다. 완벽한 지역주의 선거였는데, 사람들에게는 그렇게 보이는 않았다. 진보적인 시각을 가졌다는 사람들도 감쪽같이 속고 있다. 모르는 사이, 지역주의의 무서운 올가미에 걸려들고 있는 것이다.
확실히 겉으로만 보면, 이번 선거는 그전과는 달리 노골적인 지역주의는 보이지 않았다. 대구-경북 지역패권주의의 맹주 박근혜가 경선과정에서 탈락했고, 호남을 볼모로 삼아 가스통을 휘두르던 민주당도 삽질을 거듭했다. 그리고 출신지가 상대적으로 '덜 알려진' 땅박, 정동영, 이회창이 붙었다.
착각이다. 지역주의가 없는 것처럼 보였을 뿐이다. 수구들은 '분열하여 지배하라'는 철칙을 절대 버리지 않는다. 잘 보라, 진보들은 흔히 '국민통합'을 곧잘 외치지만, 수구들은 '국민통합', '지역감정 해소' 등의 구호는 웬만해서는 절대 외치지 않는다. 그것이 묻지마 득표에 도움이 되지 않는다는 것을 잘 알기 때문이다.
BBK 동영상이 터지면서도 묻지마들은 얼굴에 철판을 깔면서 뭉쳤다. 정동영을 중심으로, 진보들도 막판에 뭉쳤지만 보수들은 더 똘똘 뭉쳤다. 사람들이 '거짓말...위장...' 등등으로 땅박을 공격하면 보수들은 '털어서 먼저 안나는 사람 있나'....하면서 오히려 더 지지의사를 확고히 했다. 이것은 저들이 절대 버릴 수 없는 승리의 게임 방정식이다. 어쩌면 저들이 동영상의 출현을 더 반겼는지도 모른다.
그들은 왜 뭉쳤을까. 땅박이 갱제를 살릴 수 있을 것 같아서? 노!, 땅박만이 '이 눔의 정권'을 '드디어 갈아치울 수 있는' 능력이 있어 보였기 때문이다. 더 수구적인 이회창도 그것에 도움이 안 되면 '배신자'가 되어야 하는 것이다. 어떤 변수가 닥쳐오더라도 당황하지 말고 똘똘 뭉치자는 것.
그렇다고 노골적으로 다시 '우리가 남이가'를 외칠 수는 없는 법. 여기서 저들이 필승의 카드로 들고 나온 게 '갱제'다. 자기들이 '국민통합'이니, '지역주의 해소'니 떠들어봤자 지나가던 개가 웃을 것이라는 것쯤은 딴당이 더 잘 알고 있다. 사람들을 확실하게 홀릴 수 있는 회심의 카드, 그 뭔가가 필요했다. 바로 돈. 국경과 지역을 불문하고 넘나든다는, 세대를 불문하고 열광한다는 바로 그 물건 말이다.
'상대는 무능, 우리는 돈(갱제); 개혁은 아마추어, 보수는 일자리 만드는 프로; 저쪽(호남) 찍으면 가난, 우리 찍으면 부자'.........뭐 이렇게, (남들이 다 그렇다니까) '먹고 살기 힘들'어 보일 때, '갱제'를 내세우자 지역주의를 굳이 들먹이지도 않았는데, 단박에 호남의 고립이 완성된 것이다. 이것은 불편한 진실이다.
17년 전으로
이번 선거로 시대는 정확히 1990년 3당 합당 시절로 되돌아갔다. 17년 후퇴한 것이다. 민노단 등 진보세력이 1987년의 시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듯이, 보수들은, 국민들을 데리고, 그 그립던 호시절, 3당 야합 체제로 돌아간 것이다. 1987년의 안티테제인 3당 합당의 목표와 결과는 호남의 고립이었다. 진보적이라는 호남의 고립은 그 3당세력의 영구 집권을 의미한다.
재밌는 것은, 3당 야합에 가장 격렬히 반발했거나 피해를 봤던 두 사람, 즉 김대중과 노무현이 그 후 잇달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는 점이다. 이것은 이들 두 사람이 집권하게 된 것은 3당 합당 체제, 즉 지역주의에 대한 반발 때문이라는 것을 의미한다.
DJ는 지역주의 피해의 상징이었고, 민주당 간판으로 부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신 노무현은 '무모하게도' 지역주의의 해체와 최초의 '전국정당화'를 실험했다. 두 사람은 모두 '지역주의 철폐'를 분명히 들고 나왔기 때문에 승리할 수 있었다. 이것은 거꾸로 수구들에게는, 이 두사람(의 정신)을 다시 고립시킬 수만 있다면 지역주의는 최종 완성될 수도 있음을 의미한다.
이쯤해서 수구들에게 목표는 뚜렷해지지 않겠는가. 그래서 그들은 와신상담, 두 사람 집권기간을 '잃어버린 10년'이라고 물량공세, 융단폭격을 가한다. 이게, 사람들로부터 열광적인 지지를 얻자마자, 다시 호남은 고립되었다. 이번에는 더 완벽히, 그리고 '돈'을 통해. 지역주의의 타파는 곧 개혁이다. 그렇다면, 이번 선거를 통해 지역주의는 반지역주의, 즉 개혁을 패배시키는 데 성공했다.
지난 5년간 조중동을 필두로 한 수구들은 호남의 고립을 교묘히 진행해왔다. '교묘'했다는 것은 예전처럼 그것을 공공연히 외치지 않았다는 뜻이다. 비록 츄리닝 차림이었지만 5.18국립묘지도 방문했다. 지역주의를 노골적으로 부추기는 대신, '모든 사람의 관심사'인 돈을 화두로 올렸다. 호남=개혁세력이 지지기반인 참여정부를 (돈에) '무능하다'고 했다.
걸려든 정동영
정동영이 이 수작에 말려들었다. 전국정당화의 실험기구 열린우리당을 스스로 해체하고 지역주의의 화신, 민주당에도 쩔쩔매었다. '고향' 전북지역의 놀라운 조직표를 동원해 신당 대통령 후보 자리를 꿰찼다. 스스로 전국으로 나가지 못하고 제 발로 영역을 축소했다. 자초한 패배이다.
정동영의 패배는 오랜 전부터 예고되어 있었다. 2004년 총선에서 압승할 때, 절체절명의 위기에 몰린 수구들이 주장한 것은 무엇이었나. 그것은 '천천히 살살하자'는 엄살이었다. 분명, 대통령 탄핵 후에 압도적 승리를 몰아준 국민들이 주문한 것은 지역주의자들의 최후의 숨통을 끊어 놓으라는 것이었는데, 정동영은 자기 앞에 갑자기 굴러 떨어진 압승과 차기 대권에 도취한 나머지, '상생'과 '협력'을 외쳤다. 이것은 1980년 서울역 앞 회군, 1987년 '승리'에 취해 그 자리에만 계속 머물다 3당 합당 쿠데타를 맞이한 케이스와 똑같다.
탄핵을 주도했던 딴당이나 민주당(조순형)은 모두 '묻지마 지역주의' 하나로만 버티어오고 있는 상황이었다. 국민들이 분노한 것은, 권력의 정통성이 국민들로부터 나온다는 사실을 인정하지 않고 지역 패권주의 , 지역 할거주의로부터 나온다는 저들의 구시대적 오만한 사고 방식이었다. 국민들은 정동영에 그것을 혁파하라는 미션을 맡겼다. 그러나, 그 천재일우의 기회를 허망이 날려버린 참혹한 결과는 재보선 40전 전패로 나타났다. 대선인들 이길 수 있었을까.
개혁 세력 전체가 (역부족으로) 패한 것은 분명하지만 더 정확히는 정동영의 패배다. 어찌되었건 그는 개혁세력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그가 만약, 지난 5년간의 상황을 일목요연하게만 파악했더라면, 이렇듯 힘없이 주저앉지는 않았을 것이다. 주변상황에 휩쓸리지 않고, 현상을 관통하는 본질을 하나 잡아내어 그것에만 집중했어야 했다. 상생이니 통합이니 이것도 저것도 아니게 피상에만 매몰돼 어물어물하다가 땅박의 '돈'에 한 방에 간 것이다. 정동영이 놓친 그 본질이란 호남의 고립이다.
호남의 고립, 개혁의 좌절을 막기 위해 정동영은 먼저 밖으로 치고나갔어야 했다. 전국정당을 표방한 당을 사수해야 했다. "그때는 기회를 날렸지만, 지역주의를 절단내기 위해 마지막으로 한 번만 더 밀어달라"고 국민들에게 호소했어야 했다. 국민의 정부, 참여정부의 후계를 자처했어야 했다. 그러나, 정동영은 곁가지에만 휘둘리다 3년의 시간을 허망하게 보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