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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놈 리더십 상놈 대통령 [중앙일보]

상놈 리더십 상놈 대통령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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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나라 속담에 양반을 비꼬는 해학을 보면 양반은 딱 굶어 죽기 십상이다. ‘양반은 배고파도 밥 먹자고 하지 않고, 장맛 보자고 한다’, ‘양반은 문자 쓰다가 저녁 굶는다’, ‘양반은 안 먹어도 긴 트림’ …. 고등학교에 다닐 때 국어 선생님이 “양반은 입 덕, 상놈은 발 덕”이라고 말했던 기억도 난다.

김상대 아주대 명예교수의『언어와 진실』이란 책에는 ‘입 덕’ 대신 ‘글 덕’이라고 명시돼 있고, 우리 속담도 ‘상놈은 발 덕, 양반은 글 덕’이라고 한 걸 보면 아마 국어 선생님이 착각하신 듯하다. 그러나 입 덕이든 글 덕이든 속뜻은 같다. 지체 높은 양반이야 말 몇 마디만 하거나 글 몇 자 끼적거리기만 하면 되지만, 막 굴러먹는 상놈은 발품깨나 들여야 한다는 뜻이다.

요즘 이명박 대통령 당선자를 ‘CEO(최고경영자) 대통령’이라고 일컫고 있다. 본인 스스로는 ‘경제 대통령’을 자처한다. 새 정부의 이름은 ‘실용정부’로 정했다. 하지만 너무 실리만 따지는 데서 나오는 차가운 기계음 같다. 국가 원수는 CEO 역할만 하는 게 아니다.

대통령에 임하는 자세부터 추슬러야 하고, 어느 손가락을 찔러도 아픈 곳 없도록 두루 살펴야 한다. 마침 이명박 당선자는 “국민을 섬기겠다”고 약속했다. 스스로 상놈이길 천명한 셈이다. 그의 이 같은 머슴 정신과 실용 정신을 묶어 ‘상놈 리더십’이라 명명하면 어떨까 싶다. ‘상’자에는 여러 의미가 담겨 있는데, 이를 세 가지로 구분해 당선자에 대한 기대치를 가늠해 보자.

① 발로 뛰는 상(常)놈 =

일단 기대가 되는 대목이다. 늘 실용을 강조하는 당선자이기 때문이다. 당선자는 후보 시절에는 양반이었다. 당선을 위해 입발림만 했다. 그러나 이젠 실천이다. 발이 부르트도록 뛰어다녀야 한다. 입만 살아있다가는 나라 망한다. 어쭙잖은 문자 쓰다가 백성들 저녁 굶긴다. 당선자는 대선 경쟁이 한창이던 11일 TV 토론에서 이렇게 말했다. “말만 앞세우는 무책임한 지도자는 대한민국을 건져낼 수 없습니다. 저는 말로 하는 정치인이 아닙니다. 실천하는 정치인입니다”라고. 집권 5년간 단 하루라도 양반입네 거들먹거리지 않길 바란다.

② 살찌우는 상(商)놈 =

당선자의 주특기라 할 만큼 큰 걱정이 없는 분야이면서도 가장 어려운 분야이기도 하다. 당선자는 굴지의 대기업 현장에서 잔뼈가 굵었다. 학생 시절엔 넝마주이로 돈을 벌었다. 후보 때도 자신이 기업인 출신임을 자랑스럽게 말하고 다녔다. 그렇지만 대내외적인 경제 여건이 당선자에게 그다지 우호적이지 않다. 그가 아무리 경제 마인드로 무장했다 하더라도 나라 살림 살찌우고 국민 배부르게 하기는 쉽지 않겠다. 그럼에도 현대건설 태국 공사 현장에서 폭도들로부터 회사 금고를 지켰던 정신을 대한민국 경제 지키는 데에도 발휘해 주길 기대한다.

③ 두루 요긴한 상(桑)놈 =

솔직히 가장 우려되는 부분이다. 상놈 리더십은 대통령 혼자 잘해서 발휘될 수 있는 게 아니기 때문이다. 측근과 친인척도 함께 잘해야 한다. 예부터 뽕나무(桑)는 여러모로 요긴하게 쓰였다. 누에를 기르는 데는 뽕잎이 최고다. ‘오디’라 불리는 뽕나무 열매는 관절염과 고혈압에 좋고, 노화를 억제하는 물질을 갖고 있다고 한다. 뿌리껍질은 해열제와 이뇨제로 사용돼 왔다. 잎(측근)과 뿌리(친인척)가 썩는다면 나무(대통령)가 무성하게 자랄 리 만무하다. 상놈 리더십은 대통령뿐만 아니라 대통령 주변 사람 모두 갖춰야 할 덕목이다.

자, 대통령 당선 이후부터 국민은 양반이고 이명박 당선자는 상놈이다. 이제 국민은 말만 하면 된다. 글만 쓰면 된다. 발품 파는 일은 당선자가 하라. 상놈 리더십을 가진 상놈 대통령이 되라.

정선구 경제부문 차장

출처 : Tong - yhyo91님의 정치와 미래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