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 질서 흔드는 중국 파워 ‘팍스 시니카’온다 [중앙일보] 중국의 부상이 2008년의 화두다. 지구촌이 올해를 기점으로 중국을 중심으로 돌아갈 예정이다. 8월 베이징(北京) 올림픽은 중국의 부상을 전 세계에 알리는 최고의 이벤트다. 명실상부한 강대국으로 부상할 중국의 기세로 한반도 주변 환경도 큰 변화가 불가피하다.
본지는 떠오르는 중국의 힘에 주목, 중국과 관련된 연중 특별기획을 선보일 예정이다. 연초 특집 첫 회로 ‘대국’과 ‘부흥의 길’이라는 방향을 세우고 국력 신장에 나선 중국의 이면을 들여다본다. 2회는 활발한 비즈니스로 전 세계를 누비는 중국 민영기업과 거침없는 중국 경제의 활황세를 다룬다. 3회에서는 이번 올림픽을 통해 미국을 넘어서 세계 최강의 수준으로 향하는 중국 스포츠와 그 근간을 이루는 문화적 저력을 조명한다.
사실 ‘중국의 부흥’은 이미 구문(舊聞)이다. 이젠 황제국을 준비하는 ‘황태자의 나라’쯤으로 중국을 대접하는 분위기다. 최근 중국이 보여준 화려한 약진을 살펴보면 이런 태도에 고개가 절로 끄덕여진다. 각종 세계 1위 기록을 중국이 갈아치우고 있기 때문이다.
중국은 2003년과 2005년 두 차례에 걸쳐 우주인을 지구궤도에 올린 뒤 2007년에는 달 탐사까지 나섰다. 중국의 첫 달탐사선은 달에 산다는 전설상의 미인 ‘창어(嫦娥)’의 이름을 달고 날아올랐다. 달나라로 간 창어는 돌아오지 않았지만 달 관측자재를 잔뜩 실은 창어-1호는 지구로 귀환한다. 자체 여객기를 개발해 하늘로 올린 데 이어 시속 300㎞가 넘는 자체 고속철도 선보였다. 지구촌 곳곳의 유전과 가스전, 광산이 속속 ‘차이나 달러’ 앞에 무릎을 꿇고 중국의 소유가 됐다. “세계를 사들인다”는 질시 섞인 우려가 나올 정도다.
중국은 이미 여러 분야에서 세계 1위다. 지난해 9월 말 현재 405억 달러를 넘긴 세계 최대 기업공개(IPO) 시장이자 철강·시멘트·유리·가전·의약품·정보기술(IT) 등 총 170여 품목에서 교역량이 세계 1위다.
구매력을 기준으로 한 과거 시대별 국가총생산(GDP) 변화율만 봐도 중국의 부흥은 자명한 사실로 확인된다. 서기 1년 중국의 GDP는 전 세계의 25.45%로 1위였다. 1820년엔 32.92%로 전성기였다. 그러나 1840년 아편전쟁 이후 급속히 기울기 시작했다. 1850년의 경우 17.07%로 서유럽에 뒤처졌다. 이때부터 1940년까지 100년간은 암흑기였다. 1890년엔 미국, 1934년엔 러시아, 그리고 1961년엔 일본에 추월당했다. 그러나 78년 개혁·개방 이후 급속히 과거의 영광을 되찾고 있다.
10년 만에 러시아를 추월했고, 92년엔 일본을 넘어섰다. 2013년께에는 서유럽을 타고 넘은 뒤 미국을 넘볼 것으로 예상된다. 옛날의 ‘팍스 시니카(Pax Sinica)’의 영광을 재현하는, 완벽한 중화의 부흥을 완성하는 셈이다.
베이징=진세근 특파원
◆팍스 시니카(Pax Sinica)= 중국이 세계를 대표할 만한 유일 초강대국으로 떠오른 상황을 일컫는다. ‘평화’를 뜻하는 팍스(Pax)와 ‘중국’을 뜻하는 시노(Sino)를 합친 말이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중심의 세계 평화를 뜻하는 팍스 아메리카나(Pax Americana)에서 따왔다. 일부 서구 언론은 세계은행 보고서 등을 근거로 중국이 세계 최대의 경제대국이 될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경제대국이 된 중국이 문화적 자존심을 앞세워 동북아 및 세계 질서를 자기 뜻대로 재편할 수 있다는 우려도 담고 있다. |
‘팍스 시니카’ 온다 <상> 번영의 길로 달린다 [중앙일보] ‘대국굴기’열풍 … 13억 인민에 강대국 꿈 심다 중국 중앙방송 런쉐안 PD ‘다큐 대장정’ 대국으로 일어선 중국이 다시 부흥의 꿈을 다져가고 있다. 지난 2년 동안 중국인의 마음을 수놓았던 염원이다. 개혁·개방 30주년을 맞는 올해의 중국은 베이징 올림픽 개최를 계기로 강대국, 나아가 미국에 맞설 지구촌의 수퍼 파워로 도약할 기세다. 꾸준한 고속 경제성장과 이를 야무지게 이끌었던 중국 공산당의 집요한 전략 덕분이다. 13억 중국인의 뇌리에 각인된 대국과 부흥의 기대는 TV의 한 제작감독에 의해 구체화됐다. 이를 통해 중국인의 ‘강대국 꿈’을 들여다본다.
1984년 중국 북부 몽골 평원을 코앞에 둔 닝샤(寧夏)의 벽촌 핑뤄(平羅). 마을을 부드럽게 감싸 안고 돌아가는 황허(黃河)를 한 청년이 바라보고 서 있다. 18세를 맞은 청년 런쉐안(任學安), 아침은 굶었지만 표정은 밝았다. 움막 같은 초라한 집에서 지낸 18개 성상. 마침내 그는 수도인 베이징(北京)에 간다. 그의 가슴은 터질 것 같았다. 태어나서 처음 나서는 타관 길, 그 길은 대국의 수도 베이징으로 곧게 뚫려 있었다.
베이징광보(廣播: 방송)대학. 총명한 시골 청년 런의 꿈은 기자였다.
“세상의 모든 것을 보고 싶었다. 세상을 움직이는 사람들을 만나고 싶었다. 그래서 기자가 되고 싶었다.”
대학에서 런은 꿈을 바꿨다. 기자 대신 연출가를 택했다.
“중국의 근·현대사를 관통하는 거대한 드라마를 찍고 싶었다. 글로는 도저히 표현해 낼 수 없는 것들을 큰 그림으로 담아내고 싶었다.” 결국 런쉐안(42·사진)은 1993년 중국 중앙방송국(CCTV)의 프로듀서로 입사했다. 그리고 2006년 그는 결국 ‘큰일’을 저지르고 말았다.
‘대국굴기(大國崛起)’.
2년간의 작업 끝에 완성한 역사 다큐멘터리다.
“2003년 11월 말의 어느 날 출근길에서 라디오 방송을 들었다. 공산당 최고위 의결기구인 정치국이 ‘15세기 이후 강대국의 발전사’를 집단으로 학습했다는 소식이었다. 출근길의 소음 속에서 나는 멀리서 울려오는 역사의 목소리를 들었다. 나는 ‘이 일을 내가 맡을 것’이라는 사실을 본능적으로 알았다.”
그의 직감은 현실로 이어졌다. 15세기 이후 강대국의 흥망사를 조망하라는 방송국의 지시가 떨어졌다. 대상은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프랑스·독일·일본·러시아·미국 등 9개국. 런은 즉각 자원했다. 대학 때부터 틈틈이 역사를 공부하면서 쌓은 지식으로 역사 드라마에 대한 풍부한 아이디어를 늘 제시했던 런에게 방송국 지도부는 흔쾌히 일을 맡겼다.
“대국의 흥망사를 취재하면서 나는 비로소 중국이 대국임을 실감했다.”
런이 본지와 만난 자리에서 들려준 얘기다. 무슨 말일까.
“e-메일만 보내면 곧 바로 회신이 왔다. 이매뉴얼 월러스틴 등 대석학들도 예외가 아니었다. 중국 중앙방송국에서 역사 다큐멘터리를 제작한다는 말 한마디면 모든 것이 해결됐다.”
취재에 정말 아무 어려움도 없었다. 9개국의 주요 인물을 만나고 희귀 자료를 열람하는 일이 전혀 어렵지 않았다. 9개국의 정부·대학·학자들이 자기 일처럼 나섰다.
“프랑스 정부는 인권선언서 원본까지 내놨다”고 런은 소개했다. 인권선언서는 수십 년 동안 단 한번도 외부에 공개되지 않았던 희귀본이다. 그러나 CCTV가 취재를 원한다는 말 한마디에 굳게 잠겼던 보관함이 열리고, 인권선언서 원본이 CCTV 카메라 앞에 놓여졌다. 대단한 파격이다.
대국굴기는 폭풍처럼 대륙을 강타했다. 2006년 11월 13일부터 24일까지 CCTV의 경제전문 채널인 채널 2를 통해 방영했을 때 시청률이 60%를 웃돌았다. CCTV 사상 최고 기록이다. 결국 27일 재방송됐고, CD와 책으로 편찬됐다. 첫 판에 1만 권을 제작한 책은 발매 사흘 만에 매진됐다.
한 편의 다큐멘터리가 폭풍이 된 이유는 두 가지다. 하나는 사관(史觀)의 변화다. 마르크스·레닌주의는 과거의 대국을 ‘식민주의 국가’로 간주하고 혐오한다. 중국이 과거 서구 제국의 가장 큰 먹잇감이었던 점도 과거의 대국을 폄하하는 이유다.
그러나 대국굴기는 이 모두를 송두리째 바꿨다. 자본주의 국가의 경쟁력과 권력 분점, 법치, 교육의 가치를 높게 평가했다. 서방 정치제도의 우수성을 중국의 대표 방송이 처음이자 공식적으로 인정한 셈이다.
또 하나의 이유는 ‘그 다음 대국은?’에 대한 독자들의 갈망이다. 대국굴기는 시기적으로 지구촌을 지배해온 국가들을 차례로 묘사했다. 현재의 대국은 당연히 미국이다. 그러나 ‘그 다음 대국은?’이란 부분은 공란으로 남겨놨다. 중국 시청자들은 그 공란 속에서 ‘중국’이란 두 글자를 읽어냈다. 연출자도 그렇게 생각할까?
“그런 생각을 구체적으로 하지는 않았다. 그러나 ‘만일 중국이 그 다음 대국이 된다면 얼마나 좋을까’ 하는 생각은 해봤다.”
런의 솔직한 답변이다. 런의 다음 말이 더욱 걸작이다.
“만일 중국이 그 다음 차례 대국이 된다면 이는 비단 중국뿐만 아니라, 주변국 나아가 전 세계의 기쁨이 될 것이다. 중국은 평화를 사랑하는 국가다. 평화를 사랑하는 또 하나의 대국이 탄생한다면 지구촌의 축복이 아닌가.”
이렇게 에둘러 얘기할 필요가 사실은 없다. CCTV 스스로가 이미 그 답을 내놨기 때문이다. 형식은 대국굴기의 속편을 통해서다. 이번의 제목은 ‘부흥의 길(復興之路)’로 정했다. 대국의 갈 길을 명확하게 제시한 셈이다.
부흥의 길이 보여준 자신감은 대국굴기를 훨씬 뛰어넘는다. 대국굴기는 구상·촬영·방송에 이르기까지 조심스럽고 조용하게 진행됐다. 방송 전 대대적인 선전도 없었다. 정치적 주제를 거의 다루지 않는 경제전문 채널(CCTV 2)을 통해 방영했고 방영시간도 저녁 황금시간대는 피했다.
그러나 부흥의 길은 달랐다. 우선 방영 시기를 제17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17大·10월 15~21일) 개막 직전, 국경절 황금 연휴의 주말인 5일부터 10일까지로 잡았다. 당대회는 우리로 치면 대통령 선거 같은 행사다. 당의 최고지도부를 뽑는 자리이기 때문이다. 극히 민감한 시기다. 이런 행사가 열리기 직전에 부흥의 길을 방영했다는 것은 중국 차기 정부의 목표가 ‘중화 부흥→대국 건설’에 있음을 분명하게 보여주는 대목이다. 게다가 채널도 CCTV의 간판 채널인 CCTV 1로 잡았다.
그뿐이 아니다. 전회 방송이 아직 끝나지도 않았는데 ‘부흥 포럼’을 출범시켜 네티즌들에게 발표의 마당을 제공했다. 중앙선전부·국가광전총국 등 방송을 감독하는 상위 기구의 고위 간부들이 모두 포럼 개막식에 참석하는 파격 행보도 보였다.
이 논단에는 “무엇이 근본인가? 민주와 자유다” “민주 없는 국가는 미래도 없다. 공산당이 당내의 탐관오리를 깨끗이 도려내지 못한다면 중국엔 영원히 부흥은 없다” “일당독재는 감독할 길이 없다. 그러므로 반드시 부패한다”는 등의 글들이 버젓이 떠 있다. 과거라면 상상하기 어려운 장면이다. 자신감 넘치는 대국의 모습이다.
부흥의 길 다음은 뭘까. 런은 “아직 미정”이라고 즉답을 피했다. 2008년 5~6월께 후속작을 고려 중이라고 한다.
베이징= 진세근 특파원
◆대국굴기(大國崛起)=‘대국이 일어서다’라는 뜻으로 중국 중앙방송국(CCTV)이 제작한 다큐물 제목이다. 2년여의 제작 기간을 거쳐 2006년 11월 13일부터 24일까지 방영됐다. 경제전문 CCTV 채널 2에서 방영해 시청률 60%를 웃돌았던 화제작이다. 포르투갈·스페인·네덜란드·영국·프랑스·독일·일본·러시아·미국 등 과거 강대국의 부침을 다뤘다. 각국의 국가 경쟁력과 권력 분점, 법치와 교육 등 제도적 강점을 집중 부각했다.
◆부흥의 길(復興之路)=대국굴기에 이어 CCTV가 선보인 후속 화제작. ‘천년의 변화(千年局變)’편에서 중국의 근·현대사 전체를 일람한 뒤 ‘고난의 세월((峥嶸歲月:1912~1949)’ ‘신생 중국(中國新生:1949~1967)’ ‘위대한 전환(偉大轉折: 1967~1992)’ ‘세기의 도약(世紀跨越: 1989~2002)’ ‘과거를 이어받아 미래를 개척하다(繼往開來: 2002~2007)’로 19세기 이후 지금까지 중국의 굴욕과 부흥의 역사를 그렸다. 대국을 지향하는 중화민족의 꿈과 투쟁의 역사를 파노라마 식으로 조명했다는 평가다. 지난해 당대회가 열렸던 10월 CCTV 주채널인 1번의 황금시간대에 편성해 뜨거운 호응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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