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팔달문.남포루.동북각루,동북공심돈 의 사진과 설명

팔달문.남포루.동북각루,동북공심돈 의 사진과 설명
2008.01.10 22:30
http://tong.nate.com/jc5115/42829326
팔달문



시설물명 : 팔달문(八達門)

지정번호 : 보물 제402호

지정연도 : 1964년 9월 3일

시  대 : 조선 1796년(정조 20)

유  형 : 건축

소 재 지 : 수원시 팔달구 팔달로2가



상세정보

조선 후기인 1794년에 세운 화성의 남쪽 문으로, 문의 이름은 사방팔방으로 길이 열린다는 의미를 담고있다. 화성의 4성문 중 동쪽문과 서쪽 문에 비해 북쪽문과 남쪽 문은 더 크고 화려하게 꾸몄다.

돌로 쌓은 무지개 모양의 문은 왕의 행차 시에도 가마가 드나들 수 있을 만큼 널찍하게 내고 위에는 정면 5칸 측면 2칸의 중층 문루를 세웠다. 문루 주위 사방에는 낮은 담을 돌리고 바깥쪽으로는 반달형 옹성, 좌우에는 적대 등 성문 방어에서 핵심적인 역할을 하는 시설을 두었다.

옹성은 우리 나라 성곽에서 일찍부터 채용되었던 방어 시설로서 서울성곽의 동대문, 전주성의 풍남문 등에서도 볼 수 있는데, 팔달문의 옹성은 규모와 형태 면에서 한층 돋보인다. 또한 팔달문은 도성의 문루처럼 우진각 형태의 지붕과 잡상 장식을 갖춘 문루로서 규모와 형식에서 조선 후기 문루 건축을 대표한다.

사진자료

남포루




시설물명 : 남포루(南砲樓)

유  형 : 건축

소 재 지 : 경기도 수원시 화성성곽 내 위치








상세정보

포루(砲樓)는 성벽의 일부를 밖으로 돌출시켜 치섬과 유사하게 축조하면서 내부를 공심돈과 같이 비워 그 안에 화포 등을 감추어 두었다가 위. 아래와 삼면에서 한꺼번에 공격할 수 있도록 한 시설이다.
성곽시설물중에서 가장 중무장된 시설이라 할 수있다.

화성에는 벽돌을 사용하여 모두 5개의 포루(남포루, 서포루, 북서포루, 북동포루, 동포루)를 만들었는데, 서포루만 약간 작고 4개의 포루는 동일한 규격이다.포루는 3층으로서 지대 위에 혈석(穴石: 대포발사를 위해 구멍을 뚫은 돌)을 전면 2개, 좌우 3개씩 놓았다. 그 위에 벽돌을 쌓았고 안쪽으로 판자를 잇대어 2층으로 구분하였으며, 총혈 15개를 만들었다.
지대 위에 뚫은 혈석은 포루(砲樓)에서만 볼 수 있는 시설이다. 상부에 문루 3칸을 만들어 총안과 전안을 뚫어 놓았고, 문루 바깥 면에는 짐승그림을 그렸다. 처마는 납도리 홀처마에 우진 각지붕이다.

남포루는 팔달문에서 화양루(서남각루)에 이르는 방어역할을 수행하였으며, 현재 팔달산 남쪽 중턱의 홍난파노래 위쪽에 위치하고 있다. 남포루는 1796년 7월 9일에 완성되었으며, 만드는데 3,203냥의 비용이들었다.

사진자료

동북각루



시설물명 : 동북각루

유  형 : 건축

소 재 지 : 경기도 수원시 화성성곽 내 위치









상세정보

동북각루는 벽성의 서북 19보 용연(龍淵)의 위에 있다.
광교산의 한 쪽 기슭이 남으로 벋어내려 선암산이 되었고, 다시 서쪽으로 감돌아 몇리를 내려가 용두(龍頭)에서 그치고서 북쪽을 향하여 활짝 열렸다. 용두란 것은 용연의 위에 불쑥 솟은 바위이다.
성이 이곳에 이르면 산과 들이 만나게 되고 물이 돌아서 아래로 흘러 대천에 이르게 되니, 여기야말로 실지로 동북 모퉁이의 요해처이다.

장안문을 잡아 당겨 화홍문과 이어지게 함으로써 앞뒤로 서로 마주 응하여 1면을 제압하고 있다. 그리고 절벽을 따라 성을 쌓고 바위에 누를 세우니 편액은 방화수류정(訪花隨柳亭)이라 하였다. [전 참판 조윤형(曺允亨) 씀]
동서로 세 간인데 가운데는 온돌을 놓았고 북쪽으로 한 간을 붙이고 남쪽은 반 간(半間)을 물리었으며, 서쪽의 한 간은 또 길게 두 간을 늘리었다. 남쪽을 밖으로 물린 것은 마치 곡척(曲尺)처럼 생겨 있는데 평난간을 둘러쳤다. 그리고 위에 만(卍)자 쇄창(蔘)을 갖추었다. 온돌 4면에는 또 다시 만(卍)자 장자(障子)를 갖추었는데, 온돌의 면과 판자를 깐 면은 서로 판판하게 만들었다.

남쪽 동쪽 북쪽의 3모퉁이에는 5번 꺾인 팔각(八角)으로 각각 종횡의 짧은 대들보를 얹었다. 지붕 용마루의 네모진 서까래가 들쭉날쭉하여 처마를 번쩍 들고 있으며 지붕 용마루에는 망새[鷲頭]를 교착시켜 꽂았는데, 한 가운데에 3마디 절병통(節甁桶)이 까마득하게 솟아 있다.
동북쪽 평난간 밖에는 또 처마마다 판자를 깔아 성두(城頭)를 위압하고 있다. 2중으로 교란(交欄)을 설치하고 밖에는 전붕판문(戰棚板門) 16개를 설치하였는데, 만듦새는 마치 병풍을 포개어 친것 같다. 위에는 전안(箭眼) 각 1개씩을 내고, 아래에 총안 각 2개씩을 뚫었다.
단청은 5토를 사용하였으며, 대들보 위는 회를 발랐다. 내면에는 절지(折枝)를 그렸고, 정간(正間)의 조정(藻井)에는 연잎[荷葉]을 받쳤다.
동북 교란 아래의 성면 벽돌 높이 7척, 두께 4척 4촌, 위 아래에 총안 19개를 뚫고 널판지를 깔았다.

아래의 서남에도 벽돌을 돌려쌓아 담을 치고 담의 남쪽에 벽돌 홍예의 작은 문을 내었다.
동쪽의 물림난간 아래에도 판문을 내고 숨었던 적병의 발사에 대비하여, 포루의 제도와 같이 하였다. 정간 남쪽 처마와 층계로 누대를 만들되 돌을 깎아서 가장자리를 둘렀다. 누대의 높이 4척, 남북의 길이 13척 4촌, 동서의 너비 16척 4촌이다. 위에 방전을 깔아 우사(射)와 읍양(揖讓)의 예를 올릴 수 있을 정도의 면적을 유지시켰다. 대 위의 서북에 각각 고란층제(高欄層梯)를 놓아 정자의 위로 통하게 하였다. 대 아래의 동남 양면에도 4층 보석(步石)을 설치하고 그 남쪽 11보의 거리에 낮은 담을 쌓고 전문(箭門)을 내었다. 용연(龍淵)은 북성 밖에 있는데, 모양이 반달 처럼 생겼다. 둘레가 210보, 깊이 6척이고, 가운 데에 작은 섬이 있다.
못위 성모퉁이에 방화수류정이 있고, 정자 아래에 있는 바위는 옛날부터 용머리라 하여 낚시터로 삼을 만하다. 못의 서쪽에 석각 이두(石刻頭)를 설치하였는데, 물이 많이 차면 이 이두로 물을 화홍문 밖으로 뿜어 내게 되어 있다.


사진자료

동북공심돈



시설물명 : 동북공심돈

유  형 : 건축

소 재 지 : 경기도 수원시 화성성곽 내 위치










상세내용

동북공심돈은 노대의 서쪽 60보쯤 되는 거리에 있다.
성탁(城托)의 위 성가퀴 안에, 요동(遼東)에 있는 계평돈(平墩)을 본떠서, 벽돌로 쌓아서 둥그렇게 돈(墩)을 만들었는데, 겹으로 둘렀다.

높이 17척 5촌, 바깥 원 둘레 122 척, 벽돌로 된 부분의 두께 4척, 안쪽 원 둘레 71척, 내원과
외원 사이에 가운데 4척 5촌의 공간을 비워두고, 2 층 덮개판으로 둘렀다. 아래 층 높이 7척 3촌, 가운데 층 높이 6척 5촌인데, 모두 군사들의 몸을 숨길 수 있게 하였다.
바깥 쪽으로 총안을 뚫어서 밝은 빛을 끌어들이는 구실을 겸하게 하였다. 위 구멍은 26개, 아래 구멍은 14개[사방 각각 1척]이다. 위 아래 덮개판 위는 진흙과 회를 섞어 쌓았다.
아래 층 공심에서 구불구불한 벽돌 사닥다리를 거쳐 위로 올라가면 위층에 이르게 되어 있다. 그 규모는 기둥 6개를 세웠는데 길이 12척이고 너비 10척이며, 단청은 3토를 사용하였다.

평평한 여장을 둘렀는데 높이 5척, 위 아래에 포혈 23개와 누혈 6개를 뚫어 놓았다. 아래 층 안 쪽에는 벽돌로 만든 홍예 모양의 작은 문을 설치하였다. 또 문 동쪽으로 공심을 막아서 온돌 한 간을 지어 놓았는데 방안(方眼)을 창으로 삼아 군사들이 출입하게 하였다.


사진자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