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숭례문과 팔달문

숭례문과 팔달문
-이제는 팔달문을 지켜야 한다―

지난 2월 우리는 600년을 이어오던 위대한 유산을 순식간에 잃어버렸다. 숭례문 화재는 정확하게 노무현의 참여정부에서 이명박 정부로 이양기에 발생했다. 이에 대한 원인으로 노무현과 이명박 전·현직 대통령이 거론되었으며, 그 덕에 오세훈 현 서울시장은 아무런 책임 추궁 없이 여론을 피해나갔다. 역으로 말하면 우리 국민 대다수는 노무현과 이명박 프레임에 갇혀 있는 형국이다. 누가 숭례문을 개방했는가는 필자의 생각으로는 별 중요하지 않다. 만일 이명박 대통령이 대선에서 승리하지 않았다면 그의 책임론은 별로 거론되지 않았을 것이다. 다시 말해 오세훈 시장이나 유홍준 교수 등의 하수(?)에는 별 관심이 없는 것이다.
숭례문 화재의 책임과정을 다시 짚어보자. 일차적인 책임은 불을 지른 당사자에게 있다. 그렇다면 이 노인에게 숭례문 화재에 대한 보상을 할 능력이 있는 것인가? 명백하게 그렇지 않다. 숭례문은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작은 문이 아니라 사회가 책임지고 관리해야 할 문화유산이라는 것 때문에 온 나라가 들끓은 것이다. 당연하게 2차적 책임은 사회가 져야 할 몫으로 돌아온다. 그럼 사회적 책임의 궁극적인 화살은 누구를 겨냥한 것인가? 우리 사회를 이끌고 있는 거대한 국가시스템이다. 이번 숭례문 화재의 책임에 국가시스템이 거론되는 당연한 이유인 것이다.
언제나 답은 합리적 해결방식에 있다. 누구를 비난하기 위해 원인을 찾는 것이 아니라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우리는 책임을 추궁한다. 숭례문 화재의 근본 원인을 살펴보면, 더욱 그러하다. 방화범으로 검거된 노인은 토지 보상에 불만이 있었고 섣부른 국보급 문화재의 대책 없는 개방이 2차적 원인으로 거론되고 있다. 후자에 대해서는 문화재 안전시스템을 강화하는 것으로 해결을 한다고 하지만 전자에 따른 토지보상의 불만은 어떻게 할 것인가? 모든 토지보상에 불만이 없도록 일일이 국가가 찾아다니며 설득하고 교육을 한 후에 보상을 해줄 것인가?
적어도 국가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일은, 문화재가 개인의 분노를 폭발시킬 대상이 절대로 될 수 없다는 사회철학을 만들어내는 것이다. 또한 책임질 만한 위치에 있는 사람이 책임을 지고 문제를 해결하겠다는 성실한 자세가 필요한 것이다. 불타버린 숭례문의 복원현장에 가보면 그 답을 알 수 있고, 국민들이 과연 무엇을 원하는가를 느낄 수 있을 것이다. 이제 퇴임한 노무현 정부에 이 일의 책임을 묻는 이는 아무도 없다. 정권 이양기에 발생한 일이고 그들에게는 앞으로의 일에 책임질 능력이 없다고 보기 때문에 이명박 새 정부에 국민들은 무수한 질문을 하고 있다. 정확하게 말하자면 책임을 지는 이명박 정부의 성실한 자세를 요구하고 있는 것이다.
이번 숭례문 화재의 교훈은 우리에게 사회철학의 부재가 어떠한 결과를 나을 것인가를 예측하고 있다. 문화유산의 가치는 천민자본주의 가치로는 도저히 생겨날 수가 없는 것이다. 눈앞의 개발과 화폐가치만을 마음에 둔다면 숭례문 복원 따위는 아무런 돈이 생겨나지 않기 때문이다. 국민들이 숭례문을 사랑한 이유는 결코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민족의 자존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세계문화유산의 하나인 화성과 팔달문, 장안문이 지닌 가치는 또 어떠한가? 문화유산이 지닌 가치는 바로 사회구성원들이 공동체를 느끼게 하는 데 있다. 특정 계급의 전유물이 아닌 우리 모두의 이상을 그리는 것이 문화유산의 가치인 것이다.
그러나 새 정부의 장관청문회를 보고 있노라면 또 다른 불길이 마음속에 치밀어 오른다. 난항을 겪고 있는 돈만 많은(?) 장관 후보자들을 보면서 우리나라의 개발독재 과정에서 빚어진 천민자본주의의 모습이 다시 떠오르고 있는 것이다. 아직도 석연하지 않은 BBK 특검, 지금도 진행 중인 삼성 특검과 함께 의혹이 불거져 나오는 수많은 이들의 재산형성과정을 보며 과연 국민들이 숭례문 복원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있을지 의문이다. 지난 대선에서 입에 거품을 물고 경제회복을 하겠다는 한나라당이 정권을 차지한 지금, 사회철학이 없는 경제 살리기의 결과가 과연 어떠할 것인지는 불을 보듯 뻔하다. 사회철학의 부재는 사람들 사이에 문화유산에 대한 가치부여의 기회를 잃게 하고, 경제성 최우선의 비뚤어진 자본주의적 발상을 당연시 할 것이다. 사회철학의 회복과 함께 숭례문은 복원돼야 한다. 국민들이 나서 팔달문과 장안문을 지켜야 할 때다.
이영문/아주대의료원 정신건강연구소장
게재일 : 2008.03.0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