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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지경 속 한나라당

요지경 속 한나라당
[경기일보 2008-3-24]
한나라당의 돌아가는 꼴이 점입가경이다. ‘친박(親朴)연대’ 공동선대위원장 홍사덕 전 의원이 강재섭 한나라당 대표와 “한판 붙자”고 대구 출마를 선언한 건 동네 골목대장이 되려는 아이들의 싸움보다 더 재밌다. 지난날 기자는 여러번 한나라당의 분당을 종용했었다. 동상이몽의 이중생활을 걷어치우고 일찌감치 갈라서는 게 낫다고 말했었다. ‘친박연대’ 출범은 박근혜 의원만 참여하지 않았지 사실상의 분당이다.
홍 전 의원은 “총선이 끝난 후 한나라당이 질서를 되찾고 새 지도부를 맞아 거듭나도록 하기 위해 결심한 것”이라고 말했지만 대구·경북(TK)지역의 ‘박근혜 정서’를 겨냥한 건 불문가지다.
“공천과정에서 친박 인사들을 죽도록 놔 둔 강 대표의 배신을 응징하고 박근혜 전 대표를 대통령으로 만드는 게 출마 목적”이라고 공격했다. 강 대표가 “오면 붙어야지”라고 짧게 응수했지만 홍 전 의원의 도전은 뜻밖의 복병이다. 낙관할 수 없는 한판 싸움이다. 박근혜 의원이 두사람 중 누구를 지지하겠는가. 강 대표가 어젯밤 불출마를 전격 선언했지만 어제의 동지가 오늘의 적이 되는 촌극이 또 재연됐다.
YS(김영삼 전 대통령)가 한나라당의 공천결과에 대해 “민의를 전혀 존중하지 않고 멋대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을 공천해버렸다. 아주 실패한 공천, 잘못된 공천”이라고 비난한 것은 한나라당으로선 치명상이다. 더구나 “(한나라당의) 버르장머리를 고쳐서 압도적인 다수로 김무성 의원을 국회로 보내주는 일을 해달라”며 친박계의 좌장격인 김 의원을 “앞으로 대통령도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추켜 세웠다.
김무성 의원은 한나라당을 탈당하면서 “살아서 (한나라당에) 다시 돌아와 박근혜 대통령 만들기에 앞장설 것”이라고 했지만 한나라당이 받아줄 리 없다. 한나라당 대선 경선 때부터 이명박 대통령을 공개적으로 지지해온 YS의 공격이 파괴력이 어떨진 능히 짐작된다. 아무래도 태상왕격인 YS를 잘 못 모신 것 같다.
수원에 지역구를 둔 남경필 의원이 “한나라당의 총선 승리와 이 대통령의 성공을 위해 이상득 국회 부의장의 불출마를 촉구한다”고 밝힌 것은 용단이다. 남 의원은 “원칙과 기준이 상실된 공천의 후유증으로 한나라당이 흔들리고 있다. 공천 갈등을 극복하고 이반되고 있는 민심을 다시 잡기 위해서는 이 부의장의 결단이 절실하다”고 주장했다.
이명박 대통령의 친형인 이 부의장은 73세의 5선임에도 영남권 중진 물갈이에서 제외돼 ‘형님 공천’이란 비판을 받았다. 이 부의장은 초기 내각 인사와 당 공천에도 영향력을 행사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책임론도 제기 돼 왔다.
대표적 보수파로 총선 불출마를 선언한 김용갑 의원도 “공천에서 다선 고령을 배제한다면서 자기 형님만 어찌 공천을 할 수 있단 말인가. 이것은 국민의 정서와 정치도의를 저버리는 것인데 개혁 공천이라고 외쳐대니 믿는 국민이 어디 있겠느냐”고 비판했다.
하지만 이 부의장은 “공천장 다 줬는데 무슨 쓸데 없는 소리를 하느냐, 개의치 않는다”며 남 의원의 요구를 일축했다. 오히려 단호하게 출마의지를 밝혔다. 강재섭 대표도 “뒷북치는 소리다. 크게 꾸짖고 싶다”고 이 부의장 편을 들었다. 남경필 의원의 ‘충정’을 평가 절하했다.
그러나 이 부의장 용퇴론은 “무슨 쓸데 없는 소리냐”고 무시할 일이 아니다. 수도권 초·재선 의원과 공천을 받은 신인들 사이엔 남 의원의 주장에 동의하는 사람들이 많다. 이들의 집단적 사퇴요구가 제기돼 파장은 만만찮다.
박근혜 의원의 행보에 관심이 쏠리지 않을 수 없다. 어제 “한나라당의 공천에 강 대표와 지도부가 책임을 져야 한다”고 공개적으로 비판한 박 의원은 일찍이 한나라당 대표를 역임했고 대선 후보로 이 대통령과 정정당당히 경선해 국민적 호감을 샀다. ‘깨끗한 승복’도 보여 줬다. 하지만 대선후보 경선에서 자신을 도와줬던 측근들이 거의 낙천되자 한나라당의 ‘불공정 공천’을 강력하게 비판하고 칩거에 들어갔었다. 그 박 의원이 측근들의 선거사무소 개소식에 연달아 참석하며 다시 움직이기 시작했다.
박 의원은 개소식 축사 곳곳에서 “정치에서 가장 중요한 게 신뢰다. 가장 중요한 것은 약속한 사람을 믿을 수 있느냐는 것”이라고 나무랐다. 한나라당 공천을 두고 “신뢰가 깨졌다”고 비판했던 불만을 우회적으로 드러냈다.
하지만 ‘친박 연대’ 출범과 같은 문젠 언급을 피하면서도 “건투를 빌 뿐”이라고 여운을 남겼다. 공천자대회에도 불참한 박 의원이 친박 후보자들의 선거 사무소 개소식만 챙기는 것은 앞으로 선거 과정에서 친박 측 후보들에 대한 ‘선택적 지원’을 하겠다는 뜻을 드러낸 것이겠다.
한나라당이 ‘4·9 전쟁’에서의 승패는 예측 불허다. 공천결과가 100% 만족일 순 없지만 내분 탓이다. YS의 진노, 친박연대의 등장, 홍사덕 전 의원의 대구 출마, 이상득 국회부의장의 공천과 용퇴 불가 등 잡음이 너무 많다.
궁금한 게 있다. 친형의 국회의원 출마를 이명박 대통령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한나라당의 집안 사정은 들여다 볼수록 요지경 속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