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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유가시대 달라진 생활풍속도

고유가시대 달라진 생활풍속도
  • 올 초만 해도 리터당 1600원대였던 휘발유 값이 1900원을 넘어서며 서민들의 생활풍속이 변하고 있다. 운전대를 놓고 대중교통을 이용하는가 하면 자전거로 출퇴근하는 직장인도 늘고 있다. 또 몇 십 원이라도 아끼기 위해 직접 주유대에 서거나 제휴카드와 할인카드를 꼼꼼히 챙기고 수시로 주유소 가격 비교 사이트에 들러 조금이라고 싼 곳을 찾아다니고 있다. LPG 차량으로 바꿔타기 위해 눈길을 돌리는 SUV 차량 운전자들도 부쩍 늘었다.

    자동차 운행 포기, 대중교통 이용 증가

    가장 큰 변화는 대중교통 이용객이 급증한 것이다. 지하철 1~4호선은 사무실 인근 역을 중심으로, 국철은 원거리 역 이용승객이 크게 늘었다. 버스 이용은 서울과 경기지역이 대조적이다. 서울은 소폭 줄었지만 경기지역 버스 이용객은 50만명 이상 늘었다.

    서울메트로 자료에 따르면 지난해 1분기 지하철 승하차 인원은 하루 평균 572만여명으로 역당 4만9326명이다. 하지만 올해는 이보다 1만3766명 늘어난 573만5685명이었다. 특히 사무실이 밀집한 구로디지털단지역과 시청역, 잠실역, 선릉역, 강변역, 역삼역 등은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이용객이 1만~12만명 가량이나 늘어났다. 구로디지털단지역은 지난해 1월부터 4월까지 104만명이 이용했으나 올해는 110만명이었다.

    국철은 경인선을 제외한 모든 선로의 이용객이 늘었다. 서울 시내에 위치한 역은 지난해에 비해 한산해졌지만 도심권에서 멀어질수록 국철 이용객은 대폭 증가했다.

    코레일 자료에 의하면 지난해 1분기 국철을 이용한 승객은 경부선 8733만2412명과 경인선 6580만2117명, 경원선 4127만8545명, 중앙선 567만3173명, 안산선 1838만3798명, 과천선 1442만6681명, 분당선 3290만5444명, 일산선 1451만4634명으로 총 2억8031만6804명이었다. 하지만 올해 1분기에는 2억8665만3149명으로 633만6345명(덕계, 도심, 팔당 죽전역 제외)이 증가했다.

    가장 많이 늘어난 선로는 경부선, 가장 큰 폭으로 이용객이 증가한 역은 수원이었다. 전년 동기대비 경부선 209만여명, 분당선 183만명, 안산선 73만명, 경원선 65만명, 중앙선 42만명, 과천선 37만명, 일산선 32만명이 늘었다. 하지만 경인선은 송내역이 37만명, 부천역 21만명, 역곡역 20만명 등 일부 역 승객이 증가했지만 대부분의 역에서 감소세를 보이며 10만여명이 줄었다.

    경부선은 서울역~영등포역 구간은 전년과 비교해 비슷하거나 감소했지만 신도림역~천안역 구간은 큰 폭으로 늘었다. 특히 수원역은 58만명, 신도림역 42만명, 병점역 39만명 등으로 도심지역에서 멀어질수록 이용객이 증가했다. 분당선도 모란역 41만, 오리역 28만, 야탑역 26만, 서현역 24만명 등 전년에 비해 183만명이 늘었다.

    코레일 관계자는 “경기권 이용객 증가는 유가인상을 가장 큰 원인으로 판단하고 있다”며 “서울 도심권 거주자들은 자가용 유지비용과 대중교통 이용요금이 별반 차이가 없어 아직까지 자가용 이용이 경제적으로 큰 부담이 안 되지만 원거리 거주자는 휘발유 값을 감당하기 힘들기 때문에 자가용 출퇴근 등을 포기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버스 이용객수도 달라졌다. 지난해 1분기 동안 서울지역 하루 평균 이용객은 439만6000여명이었지만 올해 같은 기간에는 431만3000여명이 이용하는데 그쳤다. 하지만 경기지역은 1분기 버스이용객이 280만여명으로 51만여명이나 증가했다.

    자전거족도 늘었다. CJ몰에서 올 2월부터 한 달 반 만에 팔린 자전거 수가 1000대를 넘어섰다. 이는 지난해보다 4배 이상, 2006년에 비해 10배가 넘게 판매량이라는 게 회사 측 설명이다. 특히 ‘트라이다 접이식 미니벨로’ 자전거가 가장 많이 팔렸다. 바퀴가 작고 접을 수 있어 지하철이나 버스에도 가지고 탈 수 있어 회사원들의 구매가 늘었다. 기동력이 좋은 MTV 자전거 판매량도 급증하고 있다.

    서울 강남구도 출퇴근 시 자전거를 이용하는 직장인이 늘어나면서 지난달 27일부터 ‘자전거 무료 임대사업’을 시작했다. 청담역과 강남구청역에 자전거 135대를 비치했으며 주요 지점 29곳에 자전거 보관대를 설치했다. 구청 측은 이 사업이 유가인상 시점과 맞물려 좋은 반응을 얻을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휘발유·경유 값 인상에 LPG 차량 각광

    유가인상은 차량을 선택하는데도 많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휘발유와 경유가격이 비슷해지자 SUV 차량 판매가 시들해지고 LPG차량은 인기를 끌고 있다.

    쌍용의 액티언 2.0 디젤차량은 1월 한달 간 787대가 팔렸지만 2월에는 절반인 305대에 그쳤다. 3월에는 459대가 팔렸지만 3월이 성수기인 점을 감안할 때 후퇴한 셈이다. 카이론 2.0도 1월 1017대, 2월 557대, 3월 532대에 그쳤으며 렉스턴은 1월 606대, 2월 383대, 3월 549대 판매됐다. 로디우스 2.7 역시 189대, 133대, 140대로 추락했다.

    하지만 LPG 차량 판매는 꾸준히 늘고 있다. 기아자동차 로체LPG는 1월 1489대, 2월 1495대, 3월 1586대로 증가했다. 뉴카렌스 LPG 역시 기름값이 대폭 오른 2월 884대였지만 3월에는 1486대로 1.5배가량 늘었다. 삼성자동차의 뉴SM5 LPG 차량도 1월 818대, 2월 967대, 3월 1726대가 나가며 주가를 올렸다.

    기름값 인상, 운전자 인식까지 변화시켜

    휘발유 가격이 리터당 1900원에 육박하자 한 푼이라도 아끼려는 알뜰족이 늘고 있다. 주유소 가격비교 사이트를 찾아 조금이라도 싼 주유소를 찾아보는가 하면 셀프주유소에서 직접 주유하는 사람들도 늘었다.

    한국석유공사가 운영하는 ‘Opinet 주유소종합정보시스템’ 사이트는 고유가 시대 물가안정을 목적으로 지난 4월 열었지만 국내 사이트 순위 482위에 오를 정도로 단기간에 많은 사람들에게 주목받고 있다. 하루 방문객수는 4만~6만여명에 이른다.

    1992년 국내 처음 도입된 후 점차 자취를 감췄던 셀프주유소도 다시 활성화되는 분위기다. 국내 정유사들도 시장상황을 예의주시하면서 셀프주유소 확대 계획을 내놓고 있다. 네티즌들은 위치정보와 체험후기를 공유하는 등 셀프매장에 큰 관심을 보이고 있다.

    현재 소비자가 직접 주유할 수 있는 셀프주유소는 전국에 40여곳. GS칼텍스가 23곳, SK에너지 9곳, 에쓰오일 6곳, 오일뱅크가 4곳을 운영 중이다. 이들 대부분은 지방에 위치하고 있지만 최근 서울 시내 점주들 문의도 많이 늘었다. 고객은 일반 주유소에 비해 리터당 30~50원가량 절감할 수 있고 주유소는 인건비와 판촉비 등 경비를 줄일 수 있어 인기다. 오일뱅크는 올해 들어서만 2개 매장을 새로 열었다.

    셀프주유소로 전환한 업체 매출이 늘었다는 점도 점주들의 관심을 끄는 요인이다. GS칼텍스에 따르면 셀프주유소로 전환한 업체의 판매량이 전과 비교해 2배 이상 증가했고 대부분의 업체들도 20~30%가량 매출이 늘었다.

    셀프매장에 대한 관심이 늘자 정유사의 모습도 달라지고 있다. GS칼텍스는 셀프주유소의 소비자 주유 패턴과 요구사항, 동향을 분석중이고 SK에너지와 에쓰오일, 오일뱅크도 기존 설치, 운영 노하우를 바탕으로 필요한 시점에 시설을 전환할 수 있도록 대비하고 있다. 에쓰오일은 올해 중으로 2~3개 매장을 셀프주유소로 전환할 계획이다.

    주유 할인혜택이 신용카드 선택 기준

    고유가 시대와 함께 변한 것이 제휴카드의 적극 활용이다. 과거 귀찮거나 ‘얼마나 많은 도움이 될까’ 싶어 쓰지 않던 포인트 적립을 꼼꼼히 챙기고 주유할인 혜택이 신용카드 선택 기준이 되고 있다.

    서울 동작구 상도동에 사는 최모(51)씨는 주유소 선택 기준 1순위가 신용카드 가맹점 여부다. 자신의 신용카드로 할인혜택을 받을 수 있는지 가장 먼저 살펴보고 결제할 때 직원에게 신용카드와 포인트 카드를 함께 건넨다. 최씨는 운 좋게도 지난해 7월 이전 신용카드를 발급받아 리터당 최대 100원까지 할인 받을 수 있다. 카드사의 과당경쟁을 막기 위한 금융감독원의 조치로 지난해 7월 이후 신용카드 발급자의 리터당 최고할인 혜택은 현재 80원으로 내렸다.

    신용카드 선택 기준도 바뀌고 있다. 어떤 카드가 주유 할인 혜택이 많은지 따져 보고 카드를 발급하는 소비자가 늘고 있다.

    충북 청주에 사는 강모(29)씨는 취업과 함께 신용카드를 발급받았다. 그가 선택한 카드는 우리V카드였다. GS칼텍스 주유소 이용 시 리터당 80원까지 할인되는 점이 마음에 들었다. 마지막까지 적립형 카드와 할인형 카드를 고민하다 결국은 할인 혜택을 택했다.

    그는 “많으면 리터당 100원 할인돼 모으면 매달 2만원 정도 절약할 수 있다. 포인트를 적립해 많아지면 다른 서비스를 이용할까, 할인을 받을까 고민하다 할인형 카드를 선택했다”고 말했다.

    신용카드 회사들은 정유사 이름을 내건 전용카드를 선보이거나 새로운 카드를 내놓으면서 주유할인 혜택을 반드시 포함시킬 정도로 신경을 쓰고 있다.

    신한카드 홍보담당자는 “신용카드 회사들이 2~3년 전부터 주유소 할인 혜택에 중점을 둔 카드를 대거 선보였다. 지금은 거의 모든 카드에 주유 할인 혜택이 있다고 보면 된다”며 “신한카드는 최근 LPG 차량 판매 증가에 맞춰 SK엔크린 LPG 신한카드를 3월에 내놨다. 휘발유와 경유에 비해 상대적으로 할인 혜택이 적었던 LPG 운전자를 공략한 것으로 반응이 좋은 편”이라고 말했다.

    조영옥 기자 twins@segye.com

    불법보다 먹고 사는 게 중요하다”
    대전 L모씨 유사 휘발유 이용기

    대전에 사는 운전 경력 5년차 L(31)씨는 올해 초부터 유사 휘발유를 자주 쓰고 있다. 차량 이용 횟수를 줄이는 것만으로는 치솟는 기름값을 감당하기 힘들어 선택한 결정이다. 유사휘발유를 사용하다 적발될 땐 50만원의 과태료가 부과된다는 사실을 알고 있지만 집중 단속기간을 피해 유사휘발유를 사용하고 있다.

    유사휘발유를 사용할 경우 엔진이 떨리거나 녹킹 현상이 일어난다는 부작용이 걱정되기도 하지만 당장 1~2만원을 절약하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하다. 휘발유로 36리터 주유할 경우 6만5000원가량이 들지만 유사휘발유는 이보다 40% 싼 4만원이면 가능하다. 또 내년에 중고사이트를 통해 차를 판매하고 새차를 구입할 생각이다.

    그도 처음에는 불법 유사휘발유 업체를 단속해야 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휘발유 가격이 고공행진을 거듭하면서 생각이 바뀌었다. 지인의 사용 후기도 한몫 했다. 직접 써보니 휘발유와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이었다. 반신반의하던 그가 소개받은 전화번호로 연락을 했다. 단속과 차량훼손 걱정도 앞섰지만 딱 한번만 사용해보자고 마음먹었다.

    L씨는 “전화를 걸자 업체에서 누구 소개를 받았는지부터 물었다. 지인의 이름을 대자 경계를 풀고 위치를 확인한 뒤 10분이 지나자 유사휘발유를 가져왔다. 신원부터 확인하고 주유를 했다. 업체용으로 제작된 승용차에는 18리터짜리 흰 기름통이 꽉 들어차 있었다. 2통 주유 가격은 3만6000원인데 사인을 10장 받으면 한 통을 무료로 주유할 수 있는 쿠폰까지 줬다”고 말했다.

    당초 제품을 믿지 못했던 그의 유사휘발유 사용감은 대만족이었다. 지금은 업체에서 그의 목소리까지 기억할 정도로 단골손님이 됐다. 단속에 대한 두려움도 줄었다. 집중 단속기간에는 업체가 알아서 영업을 중단하거나 경찰 눈에 띄지 않기 위해 한적한 곳으로 유도해 주유하기 때문이다.

    L씨는 유사휘발유에 대한 인식을 달리 하면서 더 많은 업체를 이용했다. 1000원이라도 싸다면 그 업체와 거래했다. 하지만 솔벤트와 소부, 메탄 등 유사휘발유 제조 비율이 각기 달라 사용감에서 차이를 느껴 지금은 한 업체만 이용하고 있다.

    그는 “뉴스를 보면 주유소들도 가짜 휘발유를 섞어 팔다 적발되던데 유사휘발유와 다를 게 뭐가 있는가. 이래도 속고 저래도 속으니 그냥 당당하게 값이라도 싼 유사휘발유를 사용하겠다”며 “돈 많은 사람이야 휘발유 가격이 2000원을 넘어도 큰 부담이 안 되겠지만 우리 같은 서민들은 생계 때문에 차를 안 몰 수도 없고, 그렇다고 비싼 휘발유를 넣을 수도 없지 않겠냐”고 주장했다.


    조영옥 기자 twins@segye.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