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카테고리 없음

채식바람

채식바람

삼보일배의 민주노동당 강기갑 의원은 대표적 채식주의자다. 1987년의 6·10항쟁 때 항의단식 후 회복식 과정에서 야채와 생식의 중요함을 깨달았다고 한다. 그는 이후 줄곧 채식으로 살고 있다. 강직한 기개와 청초한 순수도 채식에서 비롯된 게 아닌가 싶다. 육식 추세 속에서도 채식을 즐기는 사람들이 꾸준히 늘고 있다. 허신행 전 농림수산부장관, 패션디자이너 앙드레김, 가수 김창환씨 등 주변을 둘러보면 제법 많다. 철인삼종경기의 탤런트 송일국도 채식주의자란다. 채식주의자는 기본적으로 육상동물의 고기를 먹지 않는다. 이는 다시 비건(vegan)과 베지테어리언(vegetarian)으로 나뉜다. 비건은 우유, 달걀은 물론 벌꿀조차 먹지 않는 완전 채식주의자다. 베지테어리언은 이들 음식까지만 섭취하되 고기는 안 먹는다.
한국채식연합에 따르면, 국내 채식주의자는 전체 인구의 1%인 50만 명에 가깝다. 여기에는 승려 등 종교인도 포함돼 있다. 이 가운데 30% 정도가 비건이고, 나머지는 베지테어리언이란다. 하지만 국내 채식주의자의 비율은 선진 외국에 비해 상당히 낮은 편이다. 미국은 전체 인구의 5% 정도가 채식을 하고, 영국은 12%가 채식주의자로 분류된다. 이웃 대만은 무려 34%가 채식에 의존한다고 한다. 인간은 채식동물일까, 육식동물일까? 물론 잡식동물이라고 학교에서 배웠다. 생활 속에서 보고 느끼는 바로도 그렇다. 하지만 인간의 기본바탕은 채식이며 이를 거스른 결과, 질병 등 온갖 부작용이 생기고 있다고 채식주의자들은 주장한다.
미국 존스홉킨스 대학의 앨런 워커 인류학 교수는 인간이 채식동물인 이유와 증거를 하나하나 들이댄다. 곰곰 살펴보면 참고할 대목이 적지 않다. 육식 선호로 치달아온 그동안의 추세를 생각할 때 특히 그렇다. 먼저 손톱과 발톱이다.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을 붙잡아 찢어야 하기 때문에 한결같이 발톱이 길고 날카롭게 구부러져 있다. 그러나 채식동물은 대체로 평평하다. 인간의 납작한 손톱과 발톱은 무얼 의미할까? 턱과 이빨 역시 그렇다. 육식동물은 다른 동물을 물어 죽여야 하기 때문에 강한 턱과 뾰족하고 날카로운 송곳니가 발달했다. 초식동물처럼 곡물이나 과일을 갈거나 부술 필요가 없어 맷돌 모양의 어금니는 갖고 있지 않다. 육식동물은 고기를 찢어서 삼키는 게 고작이어서 이빨을 상하로만 움직여도 되지만, 초식동물은 곡물을 잘게 빻아야 하므로 상하는 물론 좌우로도 움직여줘야 한다. 당신의 입을 벌리고 비교해 보라. 호랑이의 이빨을 닮았나, 소의 이빨을 닮았나 말이다.
소화액 분비에서도 육식과 초식은 분명한 차이를 나타낸다. 초식은 식물성 탄수화물의 소화를 위해 타이알린이라는 효소를 입에서 침으로 분비하는데, 이는 인간도 마찬가지다. 반면 육식은 이를 분비하지 못한다. 대신 육식동물은 위에서 초식동물보다 10배나 강한 염산을 분비한다. 포획동물의 살점에 들어 있는 세균과 노폐물을 소독하기 위해서다. 인간의 위에서 나오는 염산의 산도는 영락없이 초식동물의 그것이다. 고기를 먹으면 더부룩하니 소화가 잘 안 되는 이유이기도 하다. 창자의 길이도 육식동물과 초식동물은 극명한 차이를 보인다. 고기는 곡물보다 빨리 부패하는 특징이 있다. 따라서 육식동물은 전체 창자의 길이가 자기 몸길이의 3배밖에 안 될 정도로 짧다. 반면 초식동물은 소화기관이 몸길이의 8~20배나 된다. 몸길이의 10배가 되는 소화기관을 가진 인간은 초식동물을 빼닮았다. 육식이 많아지면서 대장암 등의 질환자가 증가한 건 바로 이 때문이다.
최근 쇠고기 사태와 조류 인플루엔자(AI) 여파로 채식에 대한 관심이 부쩍 높아졌다고 한다. 채식 뷔페 등에는 손님이 밀려 빈자리를 찾기 힘든 반면, 마트나 백화점 등의 육류 코너는 썰렁하다는 것이다. 이번 파동을 계기로 아예 채식주의로 돌아서려는 사람들도 늘어난단다. 채식관련 전문사이트의 가입신청자가 몇 달 전에 비해 크게 증가했다니 국민들이 건강문제에 얼마나 민감하게 반응하는지 짐작할 수 있다. 사실 우리 민족은 근래까지만 해도 고기에 별로 익숙하지 않았다. 명절이나 생일 때나 고기를 먹었을 뿐 보통 때는 곡물 음식 중심으로 영양분을 섭취했다. 초식동물처럼 살아왔던 거다. 그러다 국민소득 증가와 함께 육식의 비중이 커졌다. 이 영향으로 암을 비롯한 각종 질환자가 전에 없이 늘어난 것도 사실이다. 육식의 냉혹한 대가라고 할까? 이번 쇠고기 사태와 AI파동은 육식 과신에 대한 자성의 계기이기도 하다.
임형두
게재일 : 2008.05.3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