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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명박 대통령 배워야할 위기를 기회로 바꾼 5명 해법

이명박 대통령 배워야할 위기를 기회로 바꾼 5명 해법

2008-06-15 (일) 13:45 중앙일보


[중앙일보]

지지율이 20%선을 밑도는 이명박 대통령은 총체적 위기 국면을 어떻게 돌파해야 할까.

중앙SUNDAY는 15일 위기를 기회로 바꾼 5명의 지도자 사례를 소개했다. 신문은 사례를 통해 ◇조금씩 바꾼다 ◇반대파를 끌어들인다 ◇국민의 눈물을 닦는다 ◇덜 일하고 더 생각한다 ◇타고 온 뗏목을 버린다 등 5가지로 정리했다.

1 조금씩 바꾼다

고이즈미 준이치로 전 일본 총리는 ‘소걸음 개혁’의 사례를 보여 준다. 김광웅 서울대 교수는 “5년5개월간 재임한 고이즈미는 관료 조직을 절반으로 줄였지만 점진적으로 했다”며 “이명박 정부 들어 정부 조직을 졸속으로 줄이면서 관료사회가 마비됐다”고 말했다. 고이즈미는 자신의 최대 성과로 손꼽히는 우정 민영화 역시 집권 4년이 지나 정면승부를 걸었다.

노조 지도자 출신의 룰라 브라질 대통령은 2003년 취임 초 신자유주의 노선을 채택했다. 국제 신용평가기관들이 좌파 집권에 놀라 신용등급을 하향 조정하는 가운데 보수보다 더 보수적인 경제정책을 밀어붙였다. 조희문 한국외대 교수는 “사회복지 예산을 늘리고 최저임금을 올려 빈곤층의 어려움을 보살핀 게 우파 정권과 다를 뿐이었다”고 설명했다.

2 반대파를 끌어들인다

로널드 레이건 전 미국 대통령은 81년 취임 때 ‘깜짝 인사’를 단행했다. 백악관 비서실장에 자신의 정적인 조지 부시의 40년 지기이자 최고 참모인 제임스 베이커를 기용했다. 또 사상 최대의 감세안과 국방비 증액을 위해 반대파를 설득하는 데 총력을 기울였다. 함성득 교수는 “하원을 장악한 민주당 의원들을 영화 관람장에 초대해 자신이 직접 팝콘을 튀겨 대접할 정도였다”고 설명했다.

클린턴 역시 닉슨·포드·레이건 시절 공화당 홍보 전략가로 활약한 데이비드 거건을 백악관 참모로 기용했다. 이어 중도 성향의 리언 파네타를 비서실장에 발탁했다. 클린턴은 공화당이 주장하던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법안도 수용했다. 이후 클린턴은 여야를 넘나드는 대화 정치에 성공했다. 함 교수는 “레이건은 입법적 리더십이 가장 뛰어난 대통령 가운데 한 명”이라고 평가했다.

브라질의 룰라는 미 보스턴은행 총재를 지낸 야당 하원의원을 중앙은행 총재에 발탁했다. 룰라는 여야 의원들을 자주 만나면서 굵직한 현안이 생기면 설득하러 다니는 것으로 유명하다.

3 국민의 눈물을 닦는다

원자바오 중국 총리는 5월 12일 쓰촨성 대지진이 발생하자 위험을 무릅쓰고 즉각 피해 현장으로 달려갔다. 원 총리는 부상당한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눈물을 닦아주었다. 또 올해 초 100년 만의 폭설 피해가 발생해 설날 귀성객이 발을 동동 구르는 현장에서 잠바 차림으로 메가폰을 든 채 민심을 위로했다. 그는 개혁파인 자오쯔양 전 총서기의 측근이었음에도 지금까지 건재하고 있다.

고이즈미는 매일 TV 카메라 앞에서 ‘5분 코멘트’를 통해 “구조개혁을 하면 일본 경제가 되살아날 수 있다”고 호소했다. ‘10년 불황’에 지친 일본인의 마음을 달래고 희망을 주는 ‘한마디 정치’였다.

루스벨트는 1933년부터 12년간 재임하면서 1500번 넘는 기자회견을 했다. 대공황과 전쟁에 지친 국민을 위로하고 “믿고 따라 달라”고 호소하기 위해서였다. 그는 미국 역사상 처음이자 마지막인 4선(選)대통령이다.

4 덜 일하고 더 생각한다

46세의 클린턴은 취임 초 선거캠프 참모들을 대거 중용했다. 그런 가운데 국정은 꼬이고 팀워크는 엉망진창이 됐다. 클린턴 스스로 LA공항에 대통령 전용기를 세워 놓고 머리를 깎는 비정상적 행태를 보였다. 당시 부통령인 앨 고어마저 “백악관은 마치 아마추어 축구단 같다”고 혹평했다. 뒤늦게 백악관 참모로 합류한 데이비드 거건은 “당시 클린턴은 기운도 없고 참을성도 없으며 판단력이 흐려질 정도로 지쳐 있었다”고 말했다. 하지만 클린턴은 8개월 만에 긴 휴가를 얻어 기력을 회복했다. 충분한 수면과 골프·독서를 통해 국정 구상을 가다듬고 ‘화려한 부활’을 할 수 있었다.

5 타고 온 뗏목을 버린다

강에서 바다로 나가면 큰 배로 바꿔 타야 한다. 레이건은 ‘작은 정부’와 ‘강한 미국’을 모토로 내걸었다. 하지만 경제 상황이 호전될 기미를 보이지 않자 취임 두 달 만에 지지도가 떨어졌다. 설상가상으로 연방정부 소속 항공관제사 1만7000명이 소속된 노조(PATCO)가 81년 8월 임금인상을 요구하는 파업을 일으켰지만 레이건은 단호했다. PATCO가 대선에서 자신을 지지했음에도 ‘48시간 이내 복귀명령’을 어긴 1만여 명을 해고했다. 이후 여성 대법관 최초 임명, 감세 법안 통과 등과 맞물려 레이건의 인기는 급등했다.

룰라는 집권 노동자당(PT)을 대대적으로 정비했다. 급진좌파와의 결별을 선언하고 이들을 탈당 또는 출당시켰다. 룰라는 과반 의석을 확보치 못해 연립내각을 구성했지만 지금도 그의 지지율은 PT보다 훨씬 높다.

디지털뉴스 jdn@joins.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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