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예24기는 지성과 야성을 갖춘 몸짓" | |||||||||||||||||||||||||
[인터뷰] 김영호 무예24기 전수원장 | |||||||||||||||||||||||||
수원화성행궁 앞은 오전 11시만 되면 기합소리와 함께 과거 병사들이 전투하는 것처럼 무술인들이 나와 전통무술을 선보인다. 바로 수원시의 자랑 '무예24기'가 바로 그들이다. 남녀노소, 시민, 외국인에 관계없이 모두 그들의 움직임에 열광한다. 그런 무예24기 뒤엔 김영호(46) 전수원장이 버티고 있었다.
"당시 임 선생님의 '천년을 이어온 민족무예의 맥이 일제 통치로 단절된 사실을 알면서도 내버려두는 것은 민족적 자존심이 허락하지 않았다'는 말에 공감해 무예24기를 배웠습니다. 그 때부터 제 인생이 바뀐 것이지요" 93년부터 무예 수련자들과 함께 '무예도보통지' 윤독회를 시작했고 2000년까지 경남 거창과 고령에서 가야산 무예학교를 운영하기도 했다. 무예의 길을 선택한 것에 후회를 느낄 정도로 힘들어 그런 그가 어떻게 수원과 인연이 맞아 이렇게 무예24기를 수원에 뿌리내릴 수 있었을까? 이에 대해 김 원장은 "수원과 화성, 정조, 무예24기 이 모든 것들이 딱 맞았습니다. 무예24기를 전파하려면 정조대왕의 숨결이 느껴지는 수원으로 가야겠다고 결심했지요. 하지만 생각과는 달리 너무나도 힘든 시기를 겪어야만 했었습니다" 김 원장은 수원에 와서 관련재단과 수원시 등을 찾아다니며 무예24기에 대해 설명했다. 하지만 그에게 돌아온 것은 차가운 냉대 뿐이었다. 당시 무예24기에 대해 잘 알려져 있지도 않았을 뿐만 아니라 화성에서 무엇을 한다는 것은 받아들여지기 힘든 부분이었다. 하지만 포기할 수 없었던 김 원장은 갖고 있던 재산을 모두 쓰고 빚까지 내면서까지 무예24기를 알렸다. 카드처럼 빚을 내어 갚고 또 빚을 내어 갚아나갔다. 하지만 한계가 찾아오는데는 그리 오래 걸리지 않았다. "정말 모든 걸 포기하고 싶었을 정도로 힘들었습니다. 10년을 하면 길이 트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10년을 넘게 해도 길이 보이지 않았으니까요. 이 길을 선택한 것 자체를 후회했을 정도였습니다.. 제 인생 가장 힘든 시기였을 겁니다" 하지만 죽으라는 법은 없다고 예전에 키웠던 한 제자가 찾아와 선뜻 6천만원을 주고 갔다. 죽기 직전에 오아시스를 만난 것이다. 그 뒤로 공연을 본 경기문화재단과 수원시에서 처음으로 지원을 해주기로 약속하는 등 길이 보이기 시작했다. "정말 죽기 직전에 살아난 거나 다름 없어요. 이 분들 뿐만 아니라 강진갑, 김준혁 선생등 앞에서 뒤에서 도와준 분들이 너무나도 많았습니다. 지금 제가 이 자리에 있을 수 있는 것도 모두 그 분들 덕분이죠. 다시 한번 감사드린다고 전하고 싶어요" 그리고 김 원장은 그 누구보다도 가족들에게도 가장 미안하고 고맙다고 전하고 싶다고 한다. "산후 조리도 못 끝내고 반지하 방에 놔두고 떠나 산후우울증까지 걸렸던 아이들엄마(김준영씨,44)와 10년에 12번을 이사하느라 친구도 못사귄 아들 범균이(16), 태어난지 40일만에 떠나야만 했던 아들 영창이(8)에게 미안하면서도 또 한편 나를 믿고 따라와 줘 정말 고맙다고 전하고 싶습니다. 고생시킨 것 만큼 더 많이 사랑하고 보살펴야죠"
무예는 지성과 야성이 합쳐져야 근 20년 가까이 무예에 목숨을 걸고 무예24기를 알리는 그에게 무예란 과연 무엇일까? 이에 김 원장은 한마디로 요약한다. "우리에게 잠들어 있는 야성을 깨우는 행위입니다" 김 원장은 현 시대가 첨단과학문명시대로 가면서 자동화 시설로 인해 움직임이 없어지고 지성만 늘어가지 야성이 죽었다고 말한다. 무예란 그 야성을 키우는 하나의 몸짓일 뿐 어려운 것이 아니라고. "무예라는 것이 단순히 취미로 만들어진 것이 아니라 과거 나와 주변, 국가를 지키기 위해 만든 것입니다. 무엇인가를 지키기 위해 만들어진 아주 합리적이고 과학적인 몸짓이지요. 책을 통해 지성을 키우고 무예를 통해 야성을 키워 내 몸을 지키는, 아주 쉬운 개념입니다" 그래서 그는 지성과 야성의 조화를 강조한다. 지식없는 몸짓은 단순한 힘쓰기고 힘없는 지식은 단순한 이론에 불과하다는 것이 그의 주장이다. 김 원장은 그렇기 때문에 무예24기 시범단들에게도 항상 지성을 쌓도록 가르치고 강조한다고 한다. 무예가 전국적으로 뿌리내렸으면... 현재 무예24기는 얼마 전 서울팀도 구성해 올 6월부터 남산타워 앞에서 시범을 보이고 있다. 수원에서 벗어나 전국으로 확대시키는 첫 걸음을 뗀 것. 이는 김 원장의 꿈이기도 하다. "시범단은 그저 알리는데 목적이 있습니다. 무예란 보는 것이 아닌 직접 하는데 의미가 있으니까요. 우리 시범단을 보고 무예에 관심을 갖고 참여하는 시민들이 많아지길 바랍니다. 무예는 어려운 것이 아니라 생활무예처럼 우리 생활 안에도 들어올 수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나라 곳곳으로무예가 퍼지는 것, 이것이 바로 제 꿈입니다"
마지막으로 열심히 시범을 보이고 있는 단원들에게도 고맙다는 말을 잊지 않았다. "단원들이 땀으로 목욕할 정도로 더운 날 고생이 많습니다. 하지만 사람은 어려운 시기에 성숙하는 법이지요. 무예24기는 단원 한사람 한사람이만들어 가는 것으로 열심히 하는 단원들에게 고맙다는 인사를 전하고 싶습니다. 더운 여름 탈나지 않게 다치지 말고 건강하게 잘 보냈으면 하는 바람입니다" 김 원장은 지금 그 꿈을 실현하는 길에 서 있다. 그리고 그 꿈을 이루기 위해 그의 뒤에서 가족과 단원들, 도움을 주는 지인들이 그의 등을 밀어주고 있다. 김 원장의 꿈처럼 무예가 전국에 뿌리내릴 수 있게 되기를 간절히 빌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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